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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은 어버이날입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이후 두 번째로 맞는 어버이날입니다. 어제 김천에 계신 아버지께 전화를 드렸지요. 보내드린 것 잘 받으셨냐고. 잘 받았노라고 하시는데 힘이 없는 목소리였습니다. 아버지로서는 아내 없이 맞는 두 번째 어버이날이니 우울해하시는 것이 당연한 일일 터, 울음이 나올 것 같아 전화를 얼른 끊었습니다.



  작년 7월호 문예지에 신작시 4편을 발표하면서 썼던 산문을 이 자리에 올립니다.





  <내 시 속의 어머니>





  2월 19일에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암세포가 췌장에서 폐로 간으로 전이되어 손쓸 수가 없었다. 향년 77세. 그리 오래 사신 것은 아니지만 어머니의 생은 고난으로 점철되었기에 편한 세상으로 가신 것이라고 애써 나 자신을 위로하였다.




  경북 상주가 고향인 어머니는 일제 강점기 말기에 경성여자사범학교에 들어간 재원이었다. 1948년에 행해진 초대 국회의원 선거에 떨어진 외할아버지는 딸의 학비를 댈 수 없다고 선포하면서 학업을 중단시켰는데, 그때부터 어머니의 고난은 시작되었을 것이다. 1950년 4월 30일에 행해진 제2대 국회의원에 당선된 외할아버지는 서울에 있다가 6·25를 맞이하셨고, 이웃사람의 고발로 북으로 끌려가셨다. 선거자금을 댔다면서 빚을 갚으라고 몰려온 채권자들에게 재산을 다 내준 어머니는 처녀 가장으로서 외할머니와 여섯 동생의 학비를 벌기 위해 교사생활을 시작하였다. 졸업장은 없었지만 시험을 치러 준교사자격증을 딴 덕분이었다.




  궁핍의 정도는 말 그대로 극빈이었다. 아침을 먹으면 점심 끼니를 때울 방도가 없는. 서울대 공대와 미대에 들어간 두 남동생의 3학년, 2학년 등록금을 마련해주지 못한 것은 어머니 평생의 한으로 남았다. 아르바이트 같은 것은 꿈도 못 꿀 1950년대였다.




  궁핍은 시골 경찰서 경관이었던 남자와의 결혼으로는 벗어날 수가 없었다. 그나마 남편은 어느 날 경찰복을 벗고 실업자가 되고 말았다. 김천중앙초등학교 앞 문방구점 희망사의 문을 연 어머니는 30년 동안 어린 학생들을 손님으로 맞이하면서 공책과 연필을 팔았다. 처음에는 연탄난로를, 나중에는 석유난로를 피우면서 겨울을 났는데, 겨울마다 동상으로 고생하신 어머니를 기억한다. 저녁이면 다리가 퉁퉁 부어 “아이고 다리야, 아이고 다리야” 신음을 내뱉다 잠자리에 드시던 어머니를 기억한다.




  슬하의 세 자식이 어머니의 마음을 편케 해 드렸을까. 장남은 서울대 법학과에 들어갔지만 사법고시에 도전하지 않고 문학도의 길을 걸어갔다. 장남이 법조인이 되지 않고 문학을 하겠다고 하자 아버지는 긴 세월을 광기에 사로잡혀 살아갔다. 차남인 승하란 놈은 고등학교를 두 달 다니고 집을 뛰쳐나가더니 4년 동안 학생이 아닌 신분으로 살아가면서 속을 썩인다. 잠을 못 이루는 병을 얻어 대학교에 입학하고서도 1년을 휴학한 끝에 다니는데, 대학생이 되어서도 계속 문제를 일으키는 골칫덩어리였다. 딸인 막내는 1985년에 병원에 입원한 이후 하루도 어머니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지 않는 환자로서의 삶을 살아간다.




  어머니는 10대 후반까지는 행복했을 것이다. 민족 전체가 식민지의 삶을 살아갔던 시대였으니 성장기도 그다지 행복하지 않았을지 모르지만. 하지만 20대로 접어들면서부터는 고생이란 것을 ‘지지리’ 하다 가셨다. 어머니는 평생토록 몸의 어느 한 곳은 반드시 편찮으셨다. 하지만 아침이면 가게 문을 열고 밤늦게 문을 닫는 삶을 정확히 30년 동안 꾸려갔다.




  영구차를 타고 화장터로 가면서 마음의 슬픔, 몸의 아픔이 없는 곳으로 가게 되었으니 잘된 일이라고 마음속으로 부르짖었으니……. 관이 화구 속으로 들어간 이후 시간을 보내면서 화장장의 하늘을 보았다. 처음에는 연기가 꽤 거무튀튀했는데 나중에는 하얀 색으로 변해가는 것이었다. 몸을 이루고 있던 살과 수분이 연기로 사라지는 광경은 장엄하였다. 내 손과 팔다리, 가슴도 언젠가 저렇듯 연기가 되어 사라질 것이다. 화장은 한 시간 남짓 만에 끝났다.




  쇠침대를 끌어냈을 때, 아! 어머니는 내 눈앞에 하얀 뼈만으로 존재해 있었다. 가장 위쪽에 있는 둥근 바가지 하나―바로 해골이었다. 팔뼈와 다리뼈, 그리고 골반뼈를 보았다. 어머니의 팔과 다리는 여염집 여자의 팔다리가 아니었다. 공장노동자 이상으로 굵었다. 나는 장사에 여념 없던 어머니에게서 포근한 모성을 별로 느껴보지 못했다. 하지만 굵은 팔다리는 날씬한 여자의 팔다리보다 훨씬 아름다웠다. 그런데 내 눈앞에서 그 굵은 팔다리는 보이지 않고 하얀 뼈마디만 놓여 있는 것이었다. 태아인 나를 감싸 안고서 보호해주었던 골반뼈는 왜 그리 작게 보이는지…….




  화장장의 화부 아저씨는 하루 평균 몇 구의 시체를 처리하는 것일까. 시종 아무 표정이 없었다. 어머니의 유골은 쇠로 만든 커다란 쓰레받기에 쓸어 담겼다. 분쇄기에 넣고 돌리니 어머니의 뼈가 금방 가루로 변하는 것이었다. 20년 전, 친구 박형희의 유골은 사람이 손으로 빻았는데……. 따뜻한 유골함을 받아 안았다. 함을 꼭 껴안았다. 생각해보니 나는 어머니를 꼭 껴안아본 적이 없었다. 어머니가 너무너무 보고 싶은 날이다.


                                                                             ―『문학사상』(2007. 7)





<어머니가 가볍다>




아이고 -

어머니는 이 한마디를 하고

내 등에 업히셨다




경의선도 복구공사가 한창인데

성당 가는 길에 넘어져

허리를 다치신 어머니




받내는 동안 이렇게 작아진

어머니의 몸 업고 보니

가볍다 뜻밖에도 딱딱하다




이제 보니 승하가 장골이네

내 아픈 니를 업고 그때……

어무이, 그 얘기 좀 고만 하소




똥오줌 누고 싶을 때 못 눠

물기 기름기 다 빠진 70년 세월 업으니

내 등이 금방 따뜻해진다







<어떤 손>




잠든 어머니의 손을 잡는다

손은 깊은 계곡이다

물 흐르지 않는




내 손은 약손 승하 배는 똥배

배 쓸어주시던 손길 참 부드러웠는데

어머니의 손은 지금 황폐하다



첫사랑을 잃고 서럽게 울었을 때

손수건 꺼내 내 눈물 닦아주셨는데

어머니의 손은 지금 자갈밭이다



30년 동안 공책과 연필을 파신

그 손으로 무친 나물의 맛

그 손으로 때린 회초리의 아픔



이제 곧 동이 터 오면

세 번째 수술을 받으시는 날

잠든 어머니의 손을 잡는다





<어머니의 두통약 뇌신>




오후의 햇살이 비쳐들면

세상은 졸음에 겨워 노랗게 되곤 했습니다

가게 한 귀퉁이에서 어린 저는 졸고

어머니 이맛살에는 깊은 골이 패었습니다

누가 그렇게 괭이질을 하고 있었던 것일까요




손가락으로 관자놀이를 누르고 누르고

나중에는 손등으로 이마를 때리고 때립니다

처음에는 하루에 한 포 나중에는 하루에 다섯 포

머릿속에 거머리가 기어 다니는 것 같구나




약의 양이 느는 동안 어머니는 늙어갔습니다

노란 셀로판지 하늘 붉은 색으로 바뀌면

어머니는 마침내 저를 깨우고

저는 약국에 가 뇌신*을 사오곤 했습니다

한 사발 물과 함께 이맛살이 평평해지면

어머니는 가게 문을 닫고 집으로 향했습니다




약에 취해 비틀비틀 걸어가시면서

아이고, 머리가 안 아프니 살 것 같다

아들 보며 희미하게 웃으시는 어머니

어느 날은 뇌신 한 포 몰래 먹어 봤더니

세상이 금방 노랗게 변하는 것이었습니다




어머니 곁에서 오래오래 잠들고 싶었을 따름이었지요





* 뇌신ː내 어린 날의 두통약으로 ‘뇌신’과 ‘명랑’이 유명하였다. 흔히 ‘노신’으로 불린 이 약은 내성이 강해 점점 더 많이 먹어야 효과가 나타났다.







<세상의 모든 어머니에게>




자궁 적출 수술을 하신 날의 밤

통증으로 잠 못 이루는 당신 곁에 앉아

서른셋에 죽은 한 사내의 이적을 읽습니다




눈앞에서 자식이 죽어가는 모습을 본

세상의 모든 어머니들이여

그대 살아갈 생애의 무게는

이 우주의 무게와 맞먹을 것입니다




눈앞에서 어머니가 죽어가는 모습을 본

세상의 모든 자식들이여

그대 살아갈 생애의 무게는

이 우주 무게의 일부를 이룰 것입니다




34년 전 난세포 하나로 저를 잉태하고

오늘 자궁을 들어내신 나의 어머니

한쪽 가슴 이미 없으시니

그대 여성으로서의 몫은 다하신 것이지요




그날 1960년 4월 18일

한나절 꼬박 통증으로 눈물 흘리며

생명이라는 우주를 이 우주에 내보내신

당신을 다시 한 번 불러봅니다

“어머니―”라고.







<늙은 어머니의 발톱을 깎아드리며>




작은 발을 쥐고 발톱 깎아드린다

일흔다섯 해 전에 불었던 된바람은

내 어머니의 첫 울음소리 기억하리라

이웃집에서도 들었다는 뜨거운 울음소리




이 발로 아장아장

걸음마를 한 적이 있었단 말인가

이 발로 폴짝폴짝

고무줄놀이를 한 적이 있었단 말인가

뼈마디를 덮은 살가죽

쪼글쪼글하기가 가뭄못자리 같다

굳은살이 덮인 발바닥

딱딱하기가 거북이 등 같다




발톱 깎을 힘이 없는

늙은 어머니의 발톱을 깎아드린다

가만히 계셔요 어머니

잘못하면 다쳐요

어느 날부터 말을 잃어버린 어머니

고개를 끄덕이다 내 머리카락을 만진다

나 역시 말을 잃고 가만히 있으니

한쪽 팔로 내 머리를 감싸 안는다




맞닿은 창문이

온몸 흔들며 몸부림치는 날

어머니에게 안기어

일흔다섯 해 동안의 된바람 소리 듣는다







<2000년 동안의 밤>




세상의 하 많은 슬픔 가운데 하나

이제 막 숨 거둔 아들을 확인한

사지가 축 늘어진 아들을 껴안은

어머니의 슬픔




얼마나 아팠을까

머리칼을 쓸며 흘린 눈물이

저 바다의 넓이를 이룰 때까지

나의 피에타*는 완성되지 않을 것 같다



어디에 묻어주랴

가슴을 어루만지며 내쉰 한숨이

2000년 동안의 밤을 데려올 때까지

나의 피에타는 완성되지 않을 것만 같다




눈앞에서 스르르 눈감은 자식을 껴안은

어머니의 마음은

신의 아들이거나 사람의 아들이거나

가축이거나 들짐승이거나

다를 바가 있으랴

호흡을 멈춘 저 몸이

점점 식어가는 저 아이가




그대 눈앞에서 죽어 있는 것이

그대의 사랑스런 자식이로구나

그대의 하 불쌍한 자식이로구나

뱃속에서 키워

살을 찢고 태어난 저 아이가




* 피에타(pietà)ː죽은 예수의 몸을 떠받치고 비탄에 잠긴 성모 마리아의 모습을 묘사한 미술적 주제. 미켈란젤로의 피에타 상이 특히 유명하다.







<세상의 한 어머니>




아팠느냐 내 아들

많이 아팠느냐

목이 말랐느냐 내 아들

얼마나 목이 말랐느냐

누가 너의 이르디이른

이런 못 박혀 죽는 죽음이

패배가 아니라

영광스런 승리라 한다

그런 승리 싫다

값비싼 향료 대신

내가 바칠 수 있는 것은 눈물뿐

눈물밖에 바칠 것이 없음이

참말로 싫다

사랑할 수 있었을 때

더 사랑치 못한

이 죄의 값으로

이렇게 황급히 장례를 치르는

내 슬픔 안다면

너 더욱 슬퍼할 것이니

이 울음 그만 그쳐야 할 텐데

그쳐지지 않으니 내가

참말로 싫다

이젠 정말 안 아픈 거냐

목마르지 않은 거냐







<고해성사>




고해에 노를 저어 가는

저는 아직도 사람입니다

모든 고뇌하는 넋은

고뇌의 깊이로 말미암아

아름다울 것입니다

사람 사이에서 한번쯤

사람답게 살라고 낳아주셨으나

사람들 사이에서 자주 더럽혀지고

자주 참담해지고




이 밤에 날벌레들이

형광불빛을 보고 머리 박고 달려듭니다

제가 살아온 날수만큼 많은 미물이

저로 인해 죽을 것입니다

제가 살아온 달수만큼 많은 사람이

저로 인해 괴로웠을 것입니다

얼마나 더 죄 지어야

단 한 번인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까?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밤

완전한 어둠 속에 꿇어앉아

몇 시간째 흐느끼고 있었습니다

홀로 기도하는 밤에야

제 자신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지금부터라도 사람 같은 사람이

사람의 얼굴을 한 자식이

되고 싶습니다…… 어머니……







<어머니의 아랫배를 내려다보다>




어머니의 음모를 본 적이 없었다

한때는 풍성했을까 지금은 듬성듬성

흰색과 갈색도 섞여 있는 음모

바퀴벌레 같은 희망과 토막 난 지렁이 같은 절망

기저귀 갈아드리며, 때때로 사타구니 닦아드리며……

내 몸이 언젠가 저 구멍에서 나왔다니




어머니 알몸을 본 적이 없었다

젖가슴 크기를, 유두 색깔을 알 도리 없었다

염하는 중늙은이와 조수인 젊은 친구

무표정한 얼굴로 어머니 몸을 염포로 싸고 있다

체중 줄이지 못해 늘 힘겨워했던 당신의 몸

암세포가 덮친 말년의 고통 말해주듯이

불룩했던 아랫배가 푹 꺼져 있다 쭈글쭈글하다

30년 장사일 하는 동안

체중을 지탱했던 튼실한 두 다리

젓가락이 되어 있다




염장이 중늙은이야 뭐 대수롭지 않겠지만

젊은 조수가 내려다보고 있는 어머니의 하체

내 치부를 드러낸 것보다 더 부끄러워

입 안이 마른 염전이 되고

시선이 숨을 곳 찾아 자꾸 달아난다

곶감 같은 저 아랫배

언젠가는 홍시 같았을까

어머니도 아버지한테 이 말을 했을까

“이리 와서 이 배 좀 만져봐요.

태동이 대단한 걸 보니 사내앤가 봐요.”




저 아랫배 그 언젠가

내 아버지를 달뜨게 했을 것이다

무덤처럼 솟아올랐을 것이다

아랫배 속에서 나 한때 웅크리고 있었겠지만

모레면 배부를 일 다신 없을 세상으로

어머니 저 몸을 불태워 보내드려야 한다







<주검과는 대화할 수 없다>




운명하셨습니다

의사선생님의 말에 감정이 없다

죽음이 참 단순하구나

숨쉬던 이 숨쉬지 않고

말하던 이 말하지 않을 뿐

나 볼 일 없는지 눈을 뜨지 않는다




주검과 나 더 나눌 얘기가 없는 거다

어머님 전 상서, 이승하 본제입납

때로는 마지못해, 때로는 보고 싶어

편지를 올리기도 했었지만

이제는 수취인 불명

승하야 보아라 하고 시작하는 답장을

주검은 쓸 수 없다




침묵의 언어로 어머니 앞에서 약속한다

숨쉬는 모든 생명의 운명을 관觀하겠다고

죽어가는 모든 것들의 아픔을 철綴하겠다고

우선은 어머니의 죽음을 이웃에 알리고

동사무소에 가서 신고도 해야 한다

그리고는 모든 기억의 종이를 꾸깃꾸깃 구겨야 한다



       www.poet.or.kr/l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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