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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영 작가의 에세이/  이 눔들이 대통령을 몰라보고  


      

최종편집 : 2013.10.20 일 2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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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칼럼  이 눔들이 대통령을 몰라보고김우영 작가
김정환  |  kjhwan00@hanmail.net

      
승인 2013.10.20  11:48:50        

    

“상병이 너는 경제기획원 장관이다. 그리고 태열이 너, 너는 내무부 장관이다. 알았냐? 응?”

장마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1980년 중반 어느 여름날이었다. 인사동에 있는 카페 ‘귀천’에서 자칭 대통령 박봉우가 천상병과 강태열을 앉혀 놓고 하는 말이었다.

앞니가 다 빠져 합죽이 할아버지가 된 시인 박봉우씨가 전주 시립도서관에 근무하다가 휴가를 이용하여 상경했던 것이다. 50년대 명동의 황혼 병 환자들끼리 오랜만에 만났으니 그 반가움이 오죽했겠는가. 오후 3시가 채 안된 시각인데도 다들 거나하게 취해 있었다.

“이 자식 봐라! 내가 대통령이지 왜 니가 대통령이여, 임마!”

허연 머리칼에 발그레 취기가 오른 얼굴로 강태열 시인이 맞받아치며 나섰다.

“안뒤여, 안뒤여. 내가 대통령을 혀야 혀.”

시켜줄 사람들의 뜻 따위는 아랑곳 하지 않고 박봉우씨 고집은 요지부동 이었다. 옆에 앉은 천상병 시인은 뭐가 그리 좋은지 천진스럽게 마냥 헤헤 거리고만 있었다. 박봉우씨 말은 그랬다. 시인이란 이상을 추구하는 사람이므로 시인이 대통령의 자리에 앉아야 이상 국가가 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천상병 시인이 경제기획원 장관으로 발탁(?)된 이유는 그가 서울대 상대를 나왔다는 경력이 인정되었기 때문이며, 강태열 시인이 내무부 장관으로 임용된 것은 정치를 모름지기 굳건한 철학과 사상을 바탕으로 꾸려가야 하는데 바로 그가 철학을 전공했기 때문이었다.

아무튼 그들의 야무진 공화국 건설의 꿈은 끝내 실현되지 못했고 박봉우 시인도 몇 년 전에 작고하고 말았다. 민족분단의 아픔을 노래한 ‘휴전선’이라는 작품이 조선일보와 동아일보의 신춘문예에 동시에 당선되어 화재를 불러 일으키기도 했던 박봉우 시인. 아이들의 이름마저도 박계레, 나라, 하나로 지었을만 큼 민족통일에 대한 그의 염원은 간절했다.

전주에 살면서 즐겨 찾던 전라회관 앞에 있는 주점 ‘고향집’에 그가 남기고 간 빈자리는 지금도 크게 느껴진다. 그분의 호탕했던 기개는 아직도 우리 후학들에게 많은 가르침을 주고 있다.

군사 정권 시절이었다고 한다. 그 날도 여느 때와 다름없이 명동, 무교동을 돌며 잔뜩 취한 주당들이 광화문을 지날 무렵이었다. 그들이라고 별 수 있었겠는가. 그토록 술을 마셨으니 소변도 마려울 수밖에, 그때 박봉우 시인이 성큼성큼 걸어 나가 석변에 대고 실례를 하는데 그게 다름 아닌 이순신 장군 동상 아래였다. 호루라기를 불면서 경찰관이 달려온 것은 물론이다. 그런데 그때 박봉우 시인의 취기를 빙자한 행동이 참으로 걸작이었다. 함부로 덤비는 경찰관의 뺨을 후려갈긴 뒤 일갈했다.

“이 짜식들이 감히 대통령을 몰라보고・・・・・・!”

어안이 벙벙한 경찰관에게 또 한 번의 대갈일성이 터졌다.

“야, 임마! 내가 대통령이여, 대통령! 시인 공화국 대통령이란 말이여!”

취흥에 겨운 도취도 이 정도라면 호랑이를 깔고 앉았노라고 천하를 호령하던 논산의 김관식 시인이 오히려 무색해진다.

이 들 세 사람 중에 박봉우, 천상병 시인은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다. 강태열 시인만이 경기 부천의 지하 방에서 노환에 의지하여 술잔을 기울이고 있다. 문득 인생의 덧없음을 노래한 고려의 충신 우탁의 시조 한 수가 떠오른다.

한 손에 막대 잡고 또 한 손에 가시 쥐고 늙는 길 가시로 막고 오는 백발白髮막대로 치려터니 백발이 제 몬져 알고 즈럼길로 오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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