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11.21 16:17

억세게 빡신 새

조회 수 244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억세게 빡신 새 / 성백군
                                                                                              

산기슭 개울가 잡초들 틈에 끼어
고개 숙인 억새꽃 본다
봄 여름이 산자락 지날 때는 거기 있는 줄도 몰랐었는데
이제, 가을이라
제 모습 드러내며 삶을 묵상하는 것일까?
실바람에도 꺼덕꺼덕 생각이 깊다

잘살아보겠다고
바람 따라 흐르다가 물을 찾아 헤매다가 지쳐서
무턱대고 주저앉은 삶
그 자리가 살 곳인지 죽을 곳인지도 모르면서
잡초들 속에 섞여 잡초 잡아먹는 잡것이 되어
억세게 살다 보니 억새라고 불어더란다.
조상님들의 유전자가 붙여준 이름, 억세게 빡신 새

하늘만 바라보며 살았지
맨몸으로 이민 와서 삼십 년 넘게, 계단도 없는 삶
잠시도 쉴 새 없이 언덕을 기어오르다 보니,
자식들 결혼하여 분가하고 손주들 몇 안아보고
이제는 홀가분한 삶, 어느새 훌쩍 커서
머리에 은빛 면류관 서넛 쓰고 주위를 굽어보는데
아직은, 키만 컸지 보면 볼수록 허허로운 세상 벌판
아무도 없고 나만 있다.

억새다
산기슭 돌아가는 저녁 해거름,
가을 노을에 붉게 젖어 하얗게 식어가는 저
백발 머리에 손을 대본다.
드디어 홀씨를 하늘로 날려 보내노니
너 혼자가 아니라고
내년 이맘때는 여럿 생길 것이고
내명년 후에는 억새밭이 될 것이라며
나를 위로해 본다


                    


List of Articles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850 낙엽 한 잎 성백군 2014.01.24 227
849 2월 이일영 2014.02.21 188
848 나무 요양원 강민경 2014.01.23 363
847 담 안의 사과 강민경 2014.01.17 332
846 등외품 성백군 2014.01.06 227
845 초승달이 바다 위에 강민경 2014.01.04 445
844 겨울나무의 추도예배 성백군 2014.01.03 382
843 장미에 대한 연정 강민경 2013.12.26 573
842 2014년 갑오년(甲午年) 새해 아침에 이일영 2013.12.26 328
841 수필 감사 조건 savinakim 2013.12.25 320
840 별은 구름을 싫어한다 강민경 2013.12.03 292
839 단풍 한 잎, 한 잎 강민경 2013.11.23 303
838 아동문학 호박 꽃 속 꿀벌 savinakim 2013.11.22 427
» 억세게 빡신 새 성백군 2013.11.21 244
836 낙엽단상 성백군 2013.11.21 201
835 보름달이 되고 싶어요 강민경 2013.11.17 234
834 갓길 불청객 강민경 2013.11.07 273
833 물의 식욕 성백군 2013.11.03 304
832 밤송이 산실(産室) 성백군 2013.11.03 271
831 가을의 승화(昇華) 강민경 2013.11.02 318
Board Pagination Prev 1 ... 68 69 70 71 72 73 74 75 76 77 ... 115 Next
/ 1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