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1.03 15:04

겨울나무의 추도예배

조회 수 382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겨울나무의 추도예배 / 성백군
                                                                                      


북가주 길거리에는
낙엽이 수북이 쌓여있습니다
바람 불면 떼 지어 몰려다니며 웅성거리고
밟으면 바스락거리며 일어서 보지만
나무에서 떨어지면서 이미 죽은 목숨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싱싱했던 초년의 초록도
고왔던 노년의 단풍도, 한때,
순식간에 지나가 버리고
남은 건 헐벗은 까만 몸뚱이뿐
항복인지 항거인지 나무는 앙상한 가지를
하늘로 치켜들고 동장군 앞에 섰습니다
봄, 여름, 가을을 지나오면서    
열심히 살았다는 자부심도
겨울 앞에 서 보니 다 헛산 삶 같아서      
한해의 몇 안 남은 날 붙잡고 회한에 젖습니다
성공한 일, 실패한 일, 화려한 것, 구질구질한 것들 모두
때가 되면 저절로 지나가고 말 것을,
지나가면 그만인 것들에게 왜 그리 집착했는지
후회해 보지만,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일인 줄 알지만
그대로 지나치기에는
주름지고 서리 내리도록 수고한 몸에게 너무 미안해
늦깎이 철든 아이의 개똥 철학처럼
적당한 이유를 가져다 붙이며 회계하는
내 마음을 읽었는지
가랑잎이 부딪히며 내는 소리를
찬양하는 박수소리로 새겨듣는 착한 겨울나무가
마지막 잎사귀 몇 붙잡고 추도예배를 드립니다
찬바람에도 연신 고개를 끄덕거리며
빨갛게 익어가든 단풍 한 잎, 더디어 은혜를 알았는지
동짓달 지는 해를 빨아들이며
이제는 바람 불지 않아도 감사하다며
시나브로 떨어집니다. 떨어져 편안히 쌓입니다

        570 - 12132013


List of Articles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450 수필 감사 조건 savinakim 2013.12.25 320
1449 2014년 갑오년(甲午年) 새해 아침에 이일영 2013.12.26 328
1448 장미에 대한 연정 강민경 2013.12.26 573
» 겨울나무의 추도예배 성백군 2014.01.03 382
1446 초승달이 바다 위에 강민경 2014.01.04 445
1445 등외품 성백군 2014.01.06 227
1444 담 안의 사과 강민경 2014.01.17 332
1443 나무 요양원 강민경 2014.01.23 363
1442 2월 이일영 2014.02.21 188
1441 낙엽 한 잎 성백군 2014.01.24 227
1440 강설(降雪) 성백군 2014.01.24 178
1439 문자 보내기 강민경 2014.02.03 386
1438 겨울 홍시 강민경 2014.02.08 361
1437 몽돌과 파도 성백군 2014.02.22 391
1436 태아의 영혼 성백군 2014.02.22 214
1435 낙원동에서 강민경 2014.02.23 259
1434 십년이면 강, 산도 변한다는데 강민경 2014.02.25 259
1433 길동무 성백군 2014.03.15 215
1432 내다심은 행운목 성백군 2014.03.15 292
1431 설중매(雪中梅) 성백군 2014.03.15 220
Board Pagination Prev 1 ... 38 39 40 41 42 43 44 45 46 47 ... 115 Next
/ 1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