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염자 / 이월란
2011.02.14 10:26
우리 집 강아지의
ID칩 하나를 손톱 아래로 끼워 넣었다
애완동물처럼 나를 잃어버려도 식별해내고 싶었다
출입문의 보안장치처럼 나를 안전하게 지켜내고 싶었다
온갖 파일을 기억해주는 휴대전화처럼 나를 작동시키고 싶었다
탈 없는 목숨은 살아 있지 않는 것
맑은 아침, 바이러스에 감염되었다
오래 전 이식해 둔 인공장기에
누군가 온라인으로 침입해 온 건지도 모르겠다
해커들은 도처에 널려 있다
최악의 프로그램을 향해 돌진하는 세상에서
무뇌아인 나는 스스로를 복제할 수도 없다
데이터는 밤새 입력되고
파일은 벌건 대낮에도 사라지고 있었다
치유의 명령어를 잊은 지도 오래였다
신은 애프터서비스를 처음부터 거절하였다
충전의 소실점은 어디인지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는다
항간에 떠도는 무료 백신들은 그리 믿을게 못 된다
나의 스페이스는 보완되지 못한 파일들로만 꽉 차 있었고
잦은 다운로드로 하드웨어는 경박해져 있었다
손상된 프로그램들은 마비된 네트워크 속에서 미아가 되었다
상주시킨 메모리들은 제어권을 내어주고
신종 인플루엔자처럼
혈류에 실린 수백만 개의 버그들은 세월보다 빨랐다
내성이 붙을 때도 되었건만 변종의 속도를 따라내진 못한다
브레인은 시동이 걸리지 않는다
취약점을 낱낱이 들켜버린 내 몸 속의 슬래머 웜
하이퍼텍스트로 나를 검색해낼 수 없을지라도
경솔히 전원을 끌 수는 없다
두 눈 속 모니터에 동공만한 어둠이, 다운 직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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