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센티의 변화

2005.02.06 15:40

유영희 조회 수:80 추천:10

1센티의 변화
전북대평생교육원 수필창작반 유영희


어느 큰 교회에서의 일이란다. 교회 건물을 지은 뒤 자꾸만 담임 목사가 바뀌었다. 큰 꿈을 안고 부임하였다가는 불과 2-3개월을 넘기지 못하고 목사가 쫓겨나는 것이다. 여러 차례 그런 일이 반복되다보니 그 교회에는 가려는 목회자가 없었다고 한다. 시골에서 조용히 목회를 하던 어떤 목사 한 분이, 아무도 가려하지 않는 이른바 목사 쫓아내기 선수라고 소문난 그 교회의 목사로 부임하기를 자청하였다.
신임 목사가 예배당 안으로 들어서니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건 강단을 절반이상이나 차지한 그랜드 피아노였다. 아무리 보아도 있어야 할 자리가 아닌 곳에 피아노가 자리잡고 있었다. 왜 피아노가 그 자리에 있어야 하는지를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새로 부임한 목사는 조용히 성도들의 분위기를 살피기 시작하였다. 몇 날이 지나지 않아 교회를 쥐고 흔드는 힘을 발견하였다. 이른 바 기득권을 알아낸 것이다. 한 부부가 교회 건물을 지을 때 가장 많은 돈을 내었으며 그런 연유인지 부인은 권사 직분을 받게 되었다. 새 직분을 받게 된 기념으로 그 권사는 그랜드 피아노를 교회에서 제일 눈에 잘 띄는 강단 한 쪽을 차지하게끔 놓아두었다. 강단의 절반을 그랜드 피아노가 차지해 버리자 성도들은 피아노를 아래로 내려야 한다고 하였고, 오시는 목사마다 역시 그걸 실행하려고 하였다. 피아노를 눈에 잘 띄지 않는 강단 아래로 내려놓으려고 시도하는 목사는 그때마다 기득권을 가진 그들에 의해 쫓겨났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목사는 말없이 피아노를 그 자리에 둔 채 목회를 가졌다. 교인들 눈에 비친 목사는 쫓겨나지 않으려는 비굴한 자로 비쳐졌다. 하지만 목사는 새벽기도를 마치고 교인들이 다 돌아간 다음, 그랜드 피아노를 1센티씩 밖으로 밀기 시작하였다. 다음날, 그 다음날도……. 그렇게 3년이 지난 뒤 피아노는 강단 아래로 내려와 자리를 잡게 되었다. 아무도 언제부터 피아노가 강단 아래쪽을 향해 움직이기 시작하였는지 알지 못했고, 아래쪽에 자리를 잡은 피아노를 향해 마치 아주 오래 전부터 그 자리에 있어온 듯 바라보았다.

개혁과 보수가 늘 팽팽한 대립을 하는 오늘날, 참으로 의미 있는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자신이 쥐고 있는 힘을 뺏기지 않으려는 의도로 보수를 주장하는 측과 이제는 과거를 청산하고 새로운 역사를 창출하기 위해서 급진적인 개혁을 부르짖는 이들, 서로의 생존권이 달린 문제인지라 도대체 타협의 길은 보이지가 않는다. 과거 군사독재정권이 막을 내리고 문민정부가 열렸을 때 우리는 세상이 바뀔 것을 기대하였다. 하지만 아직까지 개혁과 보수는 팽팽한 대립만 하고 있을 뿐 실질적인 국민의 삶을 위한 발전이라고는 꼬집어 들추기가 어렵다.

어느 시대, 어느 단체고 과격한 개혁은 늘 무리수를 두기 마련이다. 변화를 두려워하는 수구세력이 주장하는 보수와 급진적인 진보를 꾀하려는 개혁은 물과 기름일 수밖에 없다. 이런 때 필요한 것이 바로 1%의 개혁이 아닌가 싶다. 갑자기 세상을 확 뒤바꿔 놓을 듯 나서는 돌풍이 아니라, 가랑비에 옷 젖듯 조금씩 이뤄 나가는 1%의 개혁은 보수와 개혁을 다 같이 만족시키는 결과가 될 것이다. 하지만 1%의 개혁은 참으로 많은 인내를 필요로 할 것이다. 재임기간에 모든 걸 완성하지 못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스스로 열매를 취하려는 욕심만 버린다면 참으로 성과 있는 개혁이 될 게 분명하다.

무리한 회사확장을 하다가 실패한 기업을 우리는 숱하게 보았다. 이도 역시 한꺼번에 많은 걸 변화시키려는 욕심에서 비롯된 일일 것이다. 1%의 개혁에는 양이 차질 않아 한꺼번에 너무 많은걸 해내려는 조급함이 부른 실패인 것이다. 이제는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서 우리는 개혁이란 말에조차 식상함을 느낀다. 이런 때 말없이 1%의 개혁을 실천하는 지도자가 참으로 아쉽다. 개혁 속에 참된 보수가 있음을 인정하며 오늘 1% 내일 또 1%의 개혁이라면 어느 날인가는, 그랜드 피아노가 강단 아래로 내려앉듯이 온전한 개혁이 뿌리를 내릴 텐데…….

진정한 보수는 급진적인 개혁을 막고 좋은 관습을 이어가는 것이 아닌가? 하지만 지금 우리가 보는 보수는 폐습[弊習]을 이어가려 몸부림치는 모습일 뿐이다. 내 기득권을 빼앗기지 않으려는 수구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머물러 있는 건 보수가 아니다. 1%의 개혁을 위해 앞으로 나아가는 보수가 참다운 보수라 할 수 있다. 눈에 보일 듯 말 듯한 1%의 개혁은 오늘 날 우리에게 많은 변화를 가져다 주었음을 부인 할 수가 없다.    

요즈음, 어려운 경제의 체감온도를 서민들은 온 몸으로 느끼며 살아가고 있다. 일 자리를 잃어버린 가장이 여전히 늘어나고 청년 실업자들은 거리를 배회한다. 1%의 발전을 위해 선뜻 나서려 하지 않는 시대에 가정은 점점 황폐화되어 간다. 이런 때 목소리만 높이는 급진적 개혁이 아닌 1%의 개혁을 주도하는 보수와 개혁이 어우러지면 좋겠다. 당장 우리 세대에는 달라진 게 없어 보일지라도 후 세대에는 그랜드 피아노가 제 자리를 찾아 갈 것이다. 1%의 개혁. 남을 향할 것이 아니라 바로 나 스스로부터 시작할 때가 아닌가 싶다.                                             (2005.1.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