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아르바이트

2005.02.27 16:09

유영희 조회 수:132 추천:4

새벽 아르바이트
전북대평생교육원 수필창작반 유영희


새벽 여섯시, 맞추어둔 알람이 그만 일어나라고 채근한다. 온 몸이 바스러질 듯한 통증이 목을 타고 내리지만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아들 녀석은 벌서 차 시동을 걸어 놓고 기다린다. 오늘 새벽 5.000원에 계약하고 아침 돈벌이를 약속한 터이다. 어둠이 아직 그 자리를 고집하는 시간에 돈을 벌려고 새벽에 집을 나서야 하는 것이다. 세수도 안한 채 부스스한 머리만 대충 빗어 넘기고 집을 나선다. 찬바람이 옷 속을 후빌 때는 등골이 오싹해진다. 괜한 짓을 했나? 두고 온 이불 속의 따스함이 못내 뒷덜미를 잡건만 차는 벌써 아파트 단지를 빠져 나왔다. 차츰 히터의 온도가 높아지고 시트에 깔아놓은 온열 매트가 따끈한 기운을 몸까지 전해준다.

약속한 다른 손님을 태우러 낯모르는 아파트단지로 들어선다. 아무것도 모르고 들어간 주차장은 차를 돌릴 공간의 여유조차 없다. 손님을 태우고는 핸들을 풀었다 감았다 하기를 몇 번 반복하고 전진과 후진을 되풀이하여 겨우 주차장을 빠져 나온다. 류머티스의 새벽 시간은 원래 힘든 시간인데 아침 노동은 통증을 부채질한다. 이럴 줄 알았으면 할증요금을 요구할 걸 그랬나? 핸드 브레이크 밑에 약속한 5.000원이 놓여졌다. 신성한 노동의 대가로 받은 돈의 즐거움과 행복감이라니! 5.000원짜리 지폐를 얼른 주머니 깊숙이 찔러 넣는다. 두 손님은 설마 받을까 했다가는 두말없이 돈을 받는 모습에 할말을 잃은 듯싶다.

  아들 녀석이 친구와 '겨울연가'의 촬영지로 요즘 관광명소가 된 '남이섬'을 찾아간다는 것이다. 서울 가는 새벽 여섯시 반 차 예매를 해놓고 인터넷을 열어 찾아가는 길을 열심히 훑어보고 있다. "터미널엔 어떻게 갈 건데?" 새벽 찬 공기를 맡으며 택시를 탈 줄 뻔히 알면서 질문을 던졌다. "새벽에 알아서 밥 먹고 갈 테니 걱정말고 주무세요." 알아서 한다는 녀석의 말이 너무 기특해 느닷없는 제안을 던졌다. "아들! 엄마가 새벽에 네 친구랑 터미널까지 태워다 줄 테니, 1인당 2.500원씩만 낼래?" 녀석은 엄마의 제의가 싫지는 않으면서도 아침이면 힘들어하는 어미의 몸이 내심 걱정인 모양이었다. 그 마음이 더욱 가상하여 돈을 버는 기쁨이 있다면 고통이야 기꺼이 감수한다는 웃음 섞인 진정을 토하고 아침을 맞았던 것이다.

두 아이는 5.000원을 건네 받는 어미의 계산 속이 마냥 우습기만 한 모양이다. 아들이 부모 자식간에 너무 지나친 계산이 아니냐는 항의를 할 때 두말없이 차를 세웠다. "너! 네 돈 가지고 내려. 그리고 넌 택시 타고 가!." 그 새벽 약자인 녀석은 별 수 없이 입을 다물고 터미널까지 갔다. 아마 녀석은 돈을 벌면 제일 먼저 제 차를 사리라는 다짐을 했을지도 모른다.

새벽인데도 터미널 앞은 분주하기만 하였다. "잘 다녀오겠습니다." 인사를 마치고 차 문을 닫으려는 아들의 친구를 불러 세웠다. 주머니에서 노동의 대가로 벌은 5.000원을 건네 주었다. "이건 엄마가 번 돈으로 주는 용돈이니 휴게소에서 따끈한 어묵 사먹고 커피도 한 잔 마시렴." 싱긋 웃음을 보여주며 건네는 돈을 아이는 차마 받질 못한다. 억지로 손에 쥐어주고 차를 출발하는데 두 녀석은 동터오는 아침 햇살 같은 웃음을 터트리고 서있었다.

"나 같은 엄마 있으면 나와 보라고 해. 아픈 몸으로 새벽 아르바이트 나가, 돈 벌어서 아들 놀러 가는데 커피 값 주는 엄마가 어디 있냐?" 저녁 늦게 귀가한 아들 앞에서 어미는 사정없이 콧대를 높이는데, 아들의 표정은 그저 어이없고 무언가 반격을 가하고 싶은데 마땅히 떠오르는 말이 없는 표정이다. "제 친구가요, 엄마랑 살면 날마다 즐겁고 행복하겠다고 하던데요. 그래서 직접 살아 보라고 했어요." 웃음기가 가득한 얼굴로 기껏 하는 말이다. 부모로서 충분히 해줄 서비스였지만 엉뚱한 어미의 제안으로 아들애의 가고 오는 하루길이 더더욱 즐거웠다면 어미로서 충분한 디딤돌이 되었으리라. 통증이 날마다 내 등줄기를 타고 시소놀음을 한다해도 아들의 웃음을 위해서라면 속울음을 삼킨 채 나는 여전히 피에로의 옷을 입을 것이다.(2005.2.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