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3강의실을 찾아가던 날
2005.03.07 10:32
103강의실을 찾아가던 날
전북대평생교육원 수필창작 기초반 신영숙
건지산에 올라 2005년 첫 해맞이를 하였다. 수정처럼 맑고 영롱한 새해 첫날의 일출을 보면서 탄성을 지르고 환호하던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두 장의 달력을 뒤로하고 3월을 맞았습니다.
3월의 둘째 날!
겨울의 마지막 비인지 새봄을 알리는 봄비인지 모를 실비가 소리 없이 내리고 하늘은 왜 그리 우중충하던지. 개강 첫날부터 결석할 수가 없어 내키지 않은 발걸음으로 집을 나섰습니다.
남편과 아들은 각자 차를 가지고 있지만 두 사람이 집에 없을 땐 나는 늘 버스를 탄다고 나가서는 몇 발자국 걷기 싫어 자주 택시를 타고 맙니다. 그 날도 비가 내리니 택시를 타야지, 내 자신에게 변명하면서 가로수 밑에서 비를 피해보았습니다.
무심코 올려다 본 은행나무의 앙상한 가지에 어느새 물이 올라 몽우리들이 제법 토실토실했습니다. 겨울 바람의 매서움에 눌려 움츠렸던 대지에 자연의 꿈틀거림이 시작되려나 봅니다.
모든 생명체의 기지개에 섞여 나도 어깨를 펴고 일어서고 싶다는 욕망이 생겼습니다. 희망이라는 지팡이를 짚고 말입니다.
택시에 올라 미터기 숫자가 3천하고 또 얼마의 숫자가 더해지니 "다 왔습니다!" 하는 택시기사의 목소리에 나는 하던 생각을 멈추고 차에서 내렸습니다. 나는 습관이 천 단위에서는 앞 숫자만 기억하고 뒷자리는 그냥 얼버무리는 버릇이 있습니다. 만 3천 원은 기억하는데 천 3백 원은 기억 못하는 묘한 습관입니다.
그 날도 택시 요금의 뒷자리 수는 기억을 못합니다. 우리 집에서 평생교육원까지의 거리가 3천 얼마의 거리라는 것만 압니다. 그리고 유달리 잘 잊어먹는 게 이름씨들입니다. 대 문호 셰익스피어는 2만 단어를 구사했다는데 몇 자 되지도 않은 단어들마저 잊혀져가니 딱한 일입니다. 현관 입구에서 안내문을 보고 강의실을 찾아들었습니다.
자리에 앉은 수강생들의 뒷모습들이 나이의 많고 적음을 떠나서 모두가 자신에 차있었습니다. 무언가 해내고야 말겠다는 결의에 찬 모습들이 보기에 좋았습니다. 쉰의 끝자락에 선 나도 메마른 감정에 수필이라는 불을 지필 수 있을까? 자꾸만 비워지는 머리 속 용량은 충분한데 왜 저장은 안 되는 걸까? 늘 자문을 해보지만 답을 얻지 못하고있습니다.
생각들이 많이 무디어졌지만 지금이라도 갈고 닦으면 빛이 날려는지요? 숙제를 주셨지만 좋은 글감이 생각나지 않아 교수님께 편지로 대신합니다.
열심히 배우면서 느린 걸음으로 가겠습니다. 기술 부족으로 메일이 한 번에 가지 못한 점도 죄송합니다. 그래도 첫 발자국을 떼었으니 언젠가는 목적지에 이를 수 있겠지요?
전북대평생교육원 수필창작 기초반 신영숙
건지산에 올라 2005년 첫 해맞이를 하였다. 수정처럼 맑고 영롱한 새해 첫날의 일출을 보면서 탄성을 지르고 환호하던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두 장의 달력을 뒤로하고 3월을 맞았습니다.
3월의 둘째 날!
겨울의 마지막 비인지 새봄을 알리는 봄비인지 모를 실비가 소리 없이 내리고 하늘은 왜 그리 우중충하던지. 개강 첫날부터 결석할 수가 없어 내키지 않은 발걸음으로 집을 나섰습니다.
남편과 아들은 각자 차를 가지고 있지만 두 사람이 집에 없을 땐 나는 늘 버스를 탄다고 나가서는 몇 발자국 걷기 싫어 자주 택시를 타고 맙니다. 그 날도 비가 내리니 택시를 타야지, 내 자신에게 변명하면서 가로수 밑에서 비를 피해보았습니다.
무심코 올려다 본 은행나무의 앙상한 가지에 어느새 물이 올라 몽우리들이 제법 토실토실했습니다. 겨울 바람의 매서움에 눌려 움츠렸던 대지에 자연의 꿈틀거림이 시작되려나 봅니다.
모든 생명체의 기지개에 섞여 나도 어깨를 펴고 일어서고 싶다는 욕망이 생겼습니다. 희망이라는 지팡이를 짚고 말입니다.
택시에 올라 미터기 숫자가 3천하고 또 얼마의 숫자가 더해지니 "다 왔습니다!" 하는 택시기사의 목소리에 나는 하던 생각을 멈추고 차에서 내렸습니다. 나는 습관이 천 단위에서는 앞 숫자만 기억하고 뒷자리는 그냥 얼버무리는 버릇이 있습니다. 만 3천 원은 기억하는데 천 3백 원은 기억 못하는 묘한 습관입니다.
그 날도 택시 요금의 뒷자리 수는 기억을 못합니다. 우리 집에서 평생교육원까지의 거리가 3천 얼마의 거리라는 것만 압니다. 그리고 유달리 잘 잊어먹는 게 이름씨들입니다. 대 문호 셰익스피어는 2만 단어를 구사했다는데 몇 자 되지도 않은 단어들마저 잊혀져가니 딱한 일입니다. 현관 입구에서 안내문을 보고 강의실을 찾아들었습니다.
자리에 앉은 수강생들의 뒷모습들이 나이의 많고 적음을 떠나서 모두가 자신에 차있었습니다. 무언가 해내고야 말겠다는 결의에 찬 모습들이 보기에 좋았습니다. 쉰의 끝자락에 선 나도 메마른 감정에 수필이라는 불을 지필 수 있을까? 자꾸만 비워지는 머리 속 용량은 충분한데 왜 저장은 안 되는 걸까? 늘 자문을 해보지만 답을 얻지 못하고있습니다.
생각들이 많이 무디어졌지만 지금이라도 갈고 닦으면 빛이 날려는지요? 숙제를 주셨지만 좋은 글감이 생각나지 않아 교수님께 편지로 대신합니다.
열심히 배우면서 느린 걸음으로 가겠습니다. 기술 부족으로 메일이 한 번에 가지 못한 점도 죄송합니다. 그래도 첫 발자국을 떼었으니 언젠가는 목적지에 이를 수 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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