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에 온 봄

2005.03.09 15:29

김병규 조회 수:60 추천:5

고향에 오는 봄
                  전북대학교평생교육원 수필창작 고급반 김병규

고향의 바닷가 두근물에 갔습니다. 얼굴에 스치는 바람이 싱그러웠습니다. 벼랑에 달린 고드름이 녹아 떨어지는 낙숫물소리가 겨울이 떠나는 작별인사로 들렸습니다. 두근물에서는 겨울을 보내고 봄을 맞는 행사가 평화스럽게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큰아들과 손자와 나는 두근물에서 고향에 오는 봄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변산해수욕장의 남쪽 끝에 맞물린 두근물은, 변산이 서해바다로 기운차게 달려가다가 급하게 머물러 아슬아슬한 벼랑을 세웠는데 바다가 부딪혀 물보라로 장관을 연출하는 곳입니다. 벼랑 아래로는 바위산이 뿌리처럼 바다 속 깊이 깔려있습니다. 밀물에는 바위가 바다 깊이 잠기고 썰물에는 드러납니다. 바위와 바닷물의 어울린 조화 속에 청각이며 김 톳이 돋아나고, 굴·조개·꽃게 등의 어패류가 푸짐하게 서식하여 수산물의 보물창고와 같습니다. 거기서 굴 따고 조개 캐며 꽃게 잡던 사람들이 밀물이 되어 건너나올 때, 물길 깊어 나오지 못할까 가슴이 두근거린다 하여 두근물이라 합니다.

두근물은, 내 어린 시절을 모두 묻어둔 그리움의 창고입니다. 나는 두근물이 보이는 언덕에서 풀을 뜯는 소의 고삐를 잡고, 다른 손에는 책을 들어 읽으며 어린 시절의 꿈을 키웠습니다. 태양이 불덩이로 변하여 빨간 노을을 데리고 바다로 들어가는 장관을 바라보며 자연의 위대한 비밀을 지켜봤습니다. 동무들과 어울리던 그 시절이 그리워 나는 고향에 갈 때마다 찾아가는 곳입니다. 아들과 손자와 나까지 삼대가 함께 처음 찾는 두근물이서 감회가 새로웠습니다.

아홉 살 손자는, 바닷물에 씻기고 닳아 반들반들 도금된 조가비며 윤기 나는 돌을 보물처럼 줍고 있었습니다. 그 귀여운 모습이 60년 전 나를 돌아보게 했습니다. 바다와 섬들을 뚫어질 듯 바라보며 생각에 잠겨있던 아들을 보고서는 30년 전 내 모습이 보이는 듯했습니다. "아버지! 저 멀리 보이는 섬이 방폐장 설치 후보지인 위도가 맞지요?" "맞다. 위도다." 11시 방향에 가물가물 보이는 섬을 가리키며 아들과 나눈 대화였습니다. 육지와 이렇게 멀리 있는데 어째서 그리도 유치반대가 심했는지 모르겠다고 아들이 말했습니다.

방폐장유치문제로 내 고향 부안 사람들은, 찬반 양편으로 갈라졌습니다. 그들의 주장은 반목과 갈등으로 번져 20개월이나 평온(平穩)이 깨졌고, 지역공동체가 허물어져 고통을 겪었던 일이 상기됩니다. 갈라진 민심은 첨예하게 대립되어 극한상황에 이르렀습니다. 문화원을 불사르고, 소방차도 7대나 불태웠으며, 군수를 폭행하는 등 폭력이 계속되었습니다. 계속된 폭력은 인심 좋고 살기 좋은 내 고향 부안을 아수라장으로 만들고 사랑과 인정이 넘치는 민심을 여지없이 갈라놓았습니다. 본시 부안 사람들은 순박하고 선량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어디선가 종교의 성직자라는 사람들이 몰려와, 허무맹랑한 선동으로 부안 사람들의 마음을 흔들어놓았습니다. 방폐장이 들어서면 주변에 생산되는 농수축산물은 인체에 해로운 독이 생겨 판로가 없고, 산모는 기형아를 출산하며, 암 같은 질병이 발생한다고 선동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 선동에 휩쓸렸습니다. 조상 대대로 살아오고 자자손손 살아갈 터전이 방폐장 유치로 죽음의 땅이 된다는데 반겨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부안 사람들의 오해는 그래서 깊었습니다. 그러나 방폐장이 그렇게 위험하거나 해로운 시설만은 아니고, 있어야할 시설이라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입니다.

방폐장은 국민의 안정된 생활과 나라의 발전을 위해서 시급하고도 중대한 국책사업입니다. 어딘가에 반드시 설치해야 합니다. 육지에서 가물가물 멀리 보이는 낙도, 부안에서 44km나 멀리 바다가운데 있는 위도가 가장 적당한 곳이라고 합니다. 지금은 찬반 양측의 화해 물꼬가 트인다니 다행입니다. 거짓으로 선동하던 외지 사람들은 모두 물러가고 순수한 부안 사람들끼리 한자리에 모여 슬기롭게 문제를 풀었으면 좋겠습니다.

국책사업은 나라의 발전과 국력의 신장을 위하여 추진하는 큰 사업입니다. 방폐장을 설치하여 기간산업의 안정성장을 도모하고, 새만금간척공사도 효과적으로 추진하여 국력신장의 기반을 확대했으면 합니다. 천성산 터널공사도 무리 없이 추진하여 국민의 기동성과 산업유통의 신속을 꾀하며, 정부부처의 이동도 나라의 균형발전을 도모하는 일이라면 강력히 추진해야 합니다. 나라의 힘을 키우는 일이라면 우리 모두 나서야 합니다. 우리나라의 일을 놓고 4자 회담이니 6자 회담이니 떠벌리면서 목소리를 크게 하는 강대국들을 바라보면 통탄스럽습니다. 이 현상은 국력이 약한 탓입니다. 나라의 큰일에 반대나 트집을 부릴 때가 아닙니다.

방폐장 문제로 부안 사람들은 너무나 깊은 상처를 입고 값진 대가를 치렀습니다. 반대하던 사람들이나 찬성하던 사람들이나, 고향을 사랑하고 보존하고 가꾸려는 마음은 같을 것입니다. 타향에서 힘들게 사는 출향인도 고향의 발전을 희구합니다.
겨울이 물러가고 봄이 옵니다. 고향의 봄은 넓은 서해의 바다에서 바닷바람에 실려옵니다. 봄은 언 땅을 녹이고 고향사람들의 가슴도 녹여줄 것입니다. 겨울의 인고를 뚫고 변산에 피어난 복수초(福壽草)의 노란 꽃처럼 고향사람들의 가슴에 인정과 사랑의 꽃이 활짝 피어나기를 소망합니다.
            (2005. 3.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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