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석 같은 친구

2005.03.11 07:47

김경녀 조회 수:42 추천:4

보석 같은 친구
전북대학교평생교육원 수필창작 기초반 김경녀


오전 11시 전주금암동 고속터미널에서 만나기로 한 약속시간에 늦지 않으려고 부지런히 외출준비를 마치고 현관을 나섰다. 엘리베이터가 11층에 멈춰 있어서 '이것도 운동이야'라고 중얼거리며 계단으로 걸어 내려갔다.

내가 사는 아파트는 12층 건물인데 우리 집은 3층이다. 3층부터 엘리베이터가 가동되지만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1층에서 3층까지 걸어다닌다. 그 날은 엘리베이터가 4층에 머물러 있어서 타고 내렸다. 가방을 오른손에서 왼손으로 바꿔 들며 목에 걸고 한 팔을 집어넣어 두 팔을 내저을 수 있는 메는 가방이 생각났지만 한 손을 경쾌하게 내저으며 걸었다.
'저게 뭐야?' 다섯 걸음 앞에 새까만 콩알 같은 것이 떨어져 있었다. 단추였다. 콩알만하지만 보석 같은 단추를 손바닥에 올려놓고 요리조리 살펴보았다.

서울에서 8시에 출발했는데 고속도로가 막히지 않아 30분전에 도착했다는 친구가 벌떡 일어서며 반갑게 맞았다. 이 친구는 여고 때 짝꿍인데 졸업 후 연락이 안되어 잊고 지냈다. 1962년 2월에 졸업하고 헤어진 뒤 통 소식을 알 수 없었다. 37년이라는 긴 세월동안 가끔 생각났지만 찾을 길이 없어 안타까웠다.
그런 친구를 우연히 고등학교 때 선생님을 통해서 만나게 되었으니 얼마나 반가운가! 넓지 않은 나라에서 살면서 서로 안부도 모른 채 37년을 보낸 것이다. 나는 그 동안 직장생활을 하다 결혼하여 세 아들을 낳았고, 두 아들은 이미 장가들어 4명의 손자손녀까지 두었다. 이야기보따리를 풀기 전에 점심부터 먹자고 했다. 살아온 날들의 이야기를 웃으며, 슬퍼하며 장단맞추다 보니 저녁시간이 되었다. 하룻밤 같이 자기로 했던 친구는 바쁜 일이 있어서 오늘은 이만 가야한다는 게 아닌가! 서운했지만 어쩔 것인가. 터미널까지 따라나서며 또다시 이야기꽃을 피웠다. 인절미와 우유로 저녁을 대신하라고 손에 들려주고 두 손을 높이 올려 사랑마크를 만들어 보였다. 37년 만에 만난 보석 같은 친구였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생각의 꼬리를 밟으며 걸었다. 걸으며 문득 주머니에 손을 넣으니 오전에 주웠던 단추가 잡혔다. 콩알만한 단추를 손가락으로 만지니 잃어버려서 끼우지 못했던 단추를 꿴 듯 마음이 포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