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다른 결혼식
2005.04.02 08:39
색다른 결혼식
전북대학교평생교육원 수필창작 기초반 신영숙
청첩장이 왔다. 서울에 사는 남편친구가 아들의 결혼을 알리는 청첩장이다. 봉투를 뜯는 순간 청첩장 외에 또 한 장의 핑크 빛 신문 한 장이 동봉되어 있었다.
신랑 신부의 모든 것이 거기에 실려 있었다. "우리는 이렇게 만났어요, 우리 둘은 이런 사람이에요, 우리부모는 이런 분이십니다." 군데군데 신랑 신부의 어린 시절부터 현재까지의 사진과 가족들의 사진도 실려있었다.
신문을 읽고 결혼식장에 찾아가면 궁금증 없이 결혼식만 보면 될 것 같았다. 결혼식은 강남의 어느 호텔에서 오후 5시로 되어 있었다. 결혼식 당일 시간 맞추어 식장에 들어서니 은은한 국악관현악단의 선율이 하객들의 귀를 사로잡았다. 국악 반주에 맞춰 신랑신부가 입장하고 축가는 "가시버시 사랑"을 국악인들이 들려줬다. "가시버시" 란 부부를 낮춰 부르는 말이란다. 인생의 첫발을 우리 국악연주에 맞추어 내딛는 신랑신부에게 큰 축복이 있기를 마음속으로 빌었다.
피로연장에서는 사랑가가 연주되고 있었다. 호텔에서 듣는 국악은 새로운 맛을 느낄 수 있어 좋았다. 우리 몸에는 한국인의 정서가 흐르고 있어서인지 국악연주가 낯설지 않았다. 오늘의 결혼식 연출은 국악인인 신랑 어머니의 몫인 것 같았다.
대학에 다닐 땐 풀룻을 공부한 걸로 아는데 결혼이후 소리공부를 시작해 판소리로 대통령상까지 받고 명창의 반열(班列)에 올랐다. 사업을 하는 남편의 외조로 어려움 없이 자기 꿈을 펼친 것이다. 남편 친구들은 군악대에서 만난 동기들이다. 그 중 몇 명은 대학 동창들도 있지만, 나이 40이 넘어 전국에 흩어진 옛 동지들을 수소문해 찾아 모아 '관우회' 라는 명칭으로 사계절 목포에서 서울까지를 넘나들며 모임을 갖고 있다. 모일 때는 늘 조용하고 호젓한 장소에서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연주를 즐기며 회포를 푼다.
몇 년 전 별이 쏟아지던 여름밤, 내장산 산장을 전세 내어 관악 퍼레이드를 펼쳤다. 회원 중 몇 명은 자기 악단을 가지고 있을 만큼 수준급들이다. 연주가 한참 무르익을 즈음에는 주위 숙소에 든 관광객들이 모여들어 숨죽이고 관람하다가 박수 갈채를 보내기도 했다. 그리고 마지막엔 판소리 감상으로 이어진다. "부창부수"(夫唱婦隨)라 했던가? 부인들 중에는 제법 북 장단을 잘 맞추는 고수도 있어 판소리를 감상하는 데는 어려움이 없었다.
작년 가을에는 단풍이 절정을 이룰 때 남한산성에서 모임을 가졌다. 산성의 단풍 속에 숙소를 정하고 산성 안에서는 음주가무(飮酒歌舞)를 하면 안 된다는 규칙을 지키려고 조용한 저녁을 보내기로 했다. 하지만 옆에 있는 명창을 일행들이 가만 놔둘 리 없었다. 하지만 장단 맞추는 고수가 불참이라 장단 없는 소리는 들을 수 없었다. 모두들 아쉬워하는 모습들이 너무 안 돼 보여 북을 가져오라고 했다. 모두가 눈이 휘둥그레졌다.
내가 가야금을 연주하면서 틈틈이 장단을 배워둔 게 있어서 아쉬운 대로 박자는 짚어 갈 수 있었다. 중머리 장단에 맞춰 단가 '사철가'를 먼저 불렀다. 사계절에 우리 인생사를 비유한 노래다. 모두가 숙연해졌다. 이렇게 늘 만나면 허물없이 지내온 사이인데 오늘 아들을 결혼시킨 것이다. 밤 예식이라 식사가 끝나고 나니 어둠이 내려앉았다. 혼주(婚主)가 오늘은 하룻밤을 책임져주겠단다. 집으로 돌아오고 싶었지만 도곡동의 소문난 아파트에서 모두들 쉬어 가기로 했다.
각 동마다 손님 접대하는 숙소가 마련되어 있었다. 양실과 한실로 나뉘어 기호에 맞게 사용할 수 있었다. 안내자의 뒤를 따라 우리일행은 소문난 아파트 객실에 여장을 풀었다. 하지만 문제는 그 다음부터였다. 2시간이 채 못되어 남자숙소에서 마음대로 행동할 수 없자 답답함에 불평이 터져 나왔다. 안내자 없이는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으니, 10시가 다 되어서야 폐백과 결혼식 마무리를 끝낸 신랑 부모가 도착해 머리를 조아렸다.
27층인 집에서 34층인 숙소로 쉴새없이 음식을 날라 오고 밤늦은 시간에 뒤풀이가 시작됐다. 친구내외는 70평이 넘는 아파트에서 아들 딸 결혼 시켜 분가시키고 두 사람이 지나치게 넓은 공간을 차지하고 살고 있었다. 모든 걸 갖추었으면서도 언제나 자신들을 낮추고 남을 먼저 배려하는 겸손함이 오늘 날 그들을 있게 하는 밑거름이 되지 않았나 싶다.
이튿날 두 사람의 안내를 받으며 아파트를 빠져 나왔다. 입주자들에게는 너무도 든든한 보안시설이 방문객에게는 불편으로 느껴지니 모든 걸 자신의 입장에서만 생각하는 우리 인간의 이기심에 부끄러움을 느꼈다.
전북대학교평생교육원 수필창작 기초반 신영숙
청첩장이 왔다. 서울에 사는 남편친구가 아들의 결혼을 알리는 청첩장이다. 봉투를 뜯는 순간 청첩장 외에 또 한 장의 핑크 빛 신문 한 장이 동봉되어 있었다.
신랑 신부의 모든 것이 거기에 실려 있었다. "우리는 이렇게 만났어요, 우리 둘은 이런 사람이에요, 우리부모는 이런 분이십니다." 군데군데 신랑 신부의 어린 시절부터 현재까지의 사진과 가족들의 사진도 실려있었다.
신문을 읽고 결혼식장에 찾아가면 궁금증 없이 결혼식만 보면 될 것 같았다. 결혼식은 강남의 어느 호텔에서 오후 5시로 되어 있었다. 결혼식 당일 시간 맞추어 식장에 들어서니 은은한 국악관현악단의 선율이 하객들의 귀를 사로잡았다. 국악 반주에 맞춰 신랑신부가 입장하고 축가는 "가시버시 사랑"을 국악인들이 들려줬다. "가시버시" 란 부부를 낮춰 부르는 말이란다. 인생의 첫발을 우리 국악연주에 맞추어 내딛는 신랑신부에게 큰 축복이 있기를 마음속으로 빌었다.
피로연장에서는 사랑가가 연주되고 있었다. 호텔에서 듣는 국악은 새로운 맛을 느낄 수 있어 좋았다. 우리 몸에는 한국인의 정서가 흐르고 있어서인지 국악연주가 낯설지 않았다. 오늘의 결혼식 연출은 국악인인 신랑 어머니의 몫인 것 같았다.
대학에 다닐 땐 풀룻을 공부한 걸로 아는데 결혼이후 소리공부를 시작해 판소리로 대통령상까지 받고 명창의 반열(班列)에 올랐다. 사업을 하는 남편의 외조로 어려움 없이 자기 꿈을 펼친 것이다. 남편 친구들은 군악대에서 만난 동기들이다. 그 중 몇 명은 대학 동창들도 있지만, 나이 40이 넘어 전국에 흩어진 옛 동지들을 수소문해 찾아 모아 '관우회' 라는 명칭으로 사계절 목포에서 서울까지를 넘나들며 모임을 갖고 있다. 모일 때는 늘 조용하고 호젓한 장소에서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연주를 즐기며 회포를 푼다.
몇 년 전 별이 쏟아지던 여름밤, 내장산 산장을 전세 내어 관악 퍼레이드를 펼쳤다. 회원 중 몇 명은 자기 악단을 가지고 있을 만큼 수준급들이다. 연주가 한참 무르익을 즈음에는 주위 숙소에 든 관광객들이 모여들어 숨죽이고 관람하다가 박수 갈채를 보내기도 했다. 그리고 마지막엔 판소리 감상으로 이어진다. "부창부수"(夫唱婦隨)라 했던가? 부인들 중에는 제법 북 장단을 잘 맞추는 고수도 있어 판소리를 감상하는 데는 어려움이 없었다.
작년 가을에는 단풍이 절정을 이룰 때 남한산성에서 모임을 가졌다. 산성의 단풍 속에 숙소를 정하고 산성 안에서는 음주가무(飮酒歌舞)를 하면 안 된다는 규칙을 지키려고 조용한 저녁을 보내기로 했다. 하지만 옆에 있는 명창을 일행들이 가만 놔둘 리 없었다. 하지만 장단 맞추는 고수가 불참이라 장단 없는 소리는 들을 수 없었다. 모두들 아쉬워하는 모습들이 너무 안 돼 보여 북을 가져오라고 했다. 모두가 눈이 휘둥그레졌다.
내가 가야금을 연주하면서 틈틈이 장단을 배워둔 게 있어서 아쉬운 대로 박자는 짚어 갈 수 있었다. 중머리 장단에 맞춰 단가 '사철가'를 먼저 불렀다. 사계절에 우리 인생사를 비유한 노래다. 모두가 숙연해졌다. 이렇게 늘 만나면 허물없이 지내온 사이인데 오늘 아들을 결혼시킨 것이다. 밤 예식이라 식사가 끝나고 나니 어둠이 내려앉았다. 혼주(婚主)가 오늘은 하룻밤을 책임져주겠단다. 집으로 돌아오고 싶었지만 도곡동의 소문난 아파트에서 모두들 쉬어 가기로 했다.
각 동마다 손님 접대하는 숙소가 마련되어 있었다. 양실과 한실로 나뉘어 기호에 맞게 사용할 수 있었다. 안내자의 뒤를 따라 우리일행은 소문난 아파트 객실에 여장을 풀었다. 하지만 문제는 그 다음부터였다. 2시간이 채 못되어 남자숙소에서 마음대로 행동할 수 없자 답답함에 불평이 터져 나왔다. 안내자 없이는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으니, 10시가 다 되어서야 폐백과 결혼식 마무리를 끝낸 신랑 부모가 도착해 머리를 조아렸다.
27층인 집에서 34층인 숙소로 쉴새없이 음식을 날라 오고 밤늦은 시간에 뒤풀이가 시작됐다. 친구내외는 70평이 넘는 아파트에서 아들 딸 결혼 시켜 분가시키고 두 사람이 지나치게 넓은 공간을 차지하고 살고 있었다. 모든 걸 갖추었으면서도 언제나 자신들을 낮추고 남을 먼저 배려하는 겸손함이 오늘 날 그들을 있게 하는 밑거름이 되지 않았나 싶다.
이튿날 두 사람의 안내를 받으며 아파트를 빠져 나왔다. 입주자들에게는 너무도 든든한 보안시설이 방문객에게는 불편으로 느껴지니 모든 걸 자신의 입장에서만 생각하는 우리 인간의 이기심에 부끄러움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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