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나무에 물주기
2005.04.04 06:33
< 꽃나무에 물주는 일 >
서영복
내 나이 쉰 살이 되기 직전에 명예퇴직을 희망하면서 퇴직금 전액을 연금으로 결정한 일은 지금 생각해도 참 멋진 일이었다. 그것은 내가 해보고 싶은 일과 해야 할 일들을 아무 어려움 없이 하고 있기 때문이다. 퇴직 후 6년 동안 ‘연금’이는 나의 새로운 생활에 든든한 후원자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으니 내 인생 끝날 때쯤에는 ‘공로상’이라도 하나 만들어 줘야 할 듯싶다. 여고시절부터 꿈꾸어 오던 수필 공부를 하는 일이나, 영어 특강과 컴퓨터 강좌를 수강하는 일, 또 취미와 건강을 위해서도 매달 지불하여야 하는 금액이 만만치가 않았다. 그 뿐인가, 현직에 있을 때엔 그림의 떡이던 해외여행도 해마다 한 두 차례씩 어김없이 다니고 있으니 어찌 내 후원자를 칭찬하지 않겠는가? 그 동안 남편과 내가 나라에서 받은 월급으로 남매를 가르치고 결혼까지 시켰으니 이제부터는 갚아 나가야 할 때라고 생각하면 내가 해야 할 일, 내 손길을 기다리는 곳도 많다. 장애자들이 모여 있는 재활원에 손을 보태는 일이나, 노인 무료급식소에서 봉사하는 일, 야학교에서 문맹자들을 도와주고 가르치는 일들은 시간과 금전이 뒤따라야 하지만 ‘연금’! 이가 있기에 더욱 활발하게 계속해나갈 수 있는 것이다.
그 중에서도 내가 가장 큰 희망으로 꼽는 일이 하나 있다. 야학교의 주간 반에서 자원봉사를 하며 알게 된 현주와의 만남이다. 한글 미해득자인 할머니들 틈에서 공부하는 열 서너 살쯤의 그는 초등학교는커녕 유치원에조차 다닌 적이 없지만 수학 능력은 있어보였다. 그래서 퇴직 전에 초등교육에 몸담고 있었던 나로서는 현주의 인생에도 아름다운 초등학교 시절을 경험하도록 하는 게 도리라고 생각 되었다. 현주는 노점상으로 음료수와 커피를 파는 어머니와 달랑 둘이서 어렵게 살고 있는 아이였다. 나는 곧 현주가 살고 있는 학구의 N초등학교에 가서 편입학 문제를 상담하였다. 여러 가지 조건을 내가 책임지기로 하고 겨우 허락을 얻어냈지만 현주는 학교에 가지 않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현주의 어머니조차 아이가 체격도 크고 나이가 너무 많으니 검정고시로 중학교에 보내겠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내 생각은 달랐다. 그건 생각처럼 쉽지 않을 뿐 아니라 설령 중학교에 가게 되더라도 초등과정의 기초도 없이 제대로 중등교육을 받을 수 있을지, 어른이 된 후 자기의 남다른 어린 시절을 어떻게 추억할지 이것저것 걱정이 앞섰다. 그러나 현주는 ? 黴탔?이야기를 좀처럼 하려고 들지 않았다. 게다가 할머니들께 갑자기 소리를 꽥 지르거나 물건을 던지는 이상스런 행동을 보일 때에는 옆에서 지켜보기만 해야 하는 내가 너무나 마음이 아프고 안타까웠다. 설득을 시작한 지 석 달이 지나면서, 그만 포기하고 싶어졌지만 뭐든지 쉽게 될 거라고 생각한 내 교만함을 먼저 깨닫게 되었다. 다시 마음을 추슬러 잡은 나는 초등학교 5학년 1학기의 전 과목 교과서와 전과까지 준비하였다. 그리고 현주와의 대화 시간을 늘려가던 2월 어느 날 오후, 그것들을 가지고 현주네 집으로 찾아갔다. 교과서들을 내보이자 호기심 때문인지 이리저리 살펴보더니 “체육이 뭐예요??라고 물었다. ‘이제 됐구나!’ 하는 생각에 나는 가슴이 뛰었다. 그날 밤, 나는 잠을 설치며 까닭 없이 모두에게 감사하였다. 다음날, 편입학에 필요한 서류를 동사무소에서 떼어오고 야학교에서 만든 수료증과 담임으로서 작성한 내 의견서를 준비하였다.
드디어 2001년 3월 2일, 현주는 N초등학교 5학년 4반에 정식으로 편입되었다. 처음 신어보는 하얀 실내화를 어색해하며 현주가 멋쩍은 웃음을 남기고 교실로 들어간 후 현주 어머니에게 현주가 사용할 미술도구와 음악시간에 필요한 것들을 준비하여 주었다.
2003년 2월, 현주는 짧은 초등학교시절이지만 장학금까지 받으며 졸업을 하였다. 그리고 이어 중학교에 입학한지 한달쯤 지나서 현주의 담임을 찾아갔다. 담임선생님은 몇 가지 서류를 갖추어 오면 장학금을 받도록 추천해 주겠다고 하였다. 다행히 현주는 반 배치고사의 성적도 우수한 편이고 성격도 차분하여 장래가 기대된다고 하였다.
가끔씩 나와 현주는 학교 앞에서 만나 떡볶이랑 만두를 먹으며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눈다. 현주의 장래희망은 나처럼 초등학교의 선생님이 되고 싶다고 한다. 그래서 열심히 노력하여 교육대학교에 들어가면 학비를 전부 부담해주겠다고 약속하였다. 그는 중학교에서도 장학금을 받도록 애를 써주신 선생님과, 건강하지 않은 몸으로 고생하는 어머니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도록 열심히 공부한다고 했다. 그러니 내가 손수 데리고 가서 맞추어 입힌 중학교 교복은 더 자랑스러워 보였고 그 옷이 너무도 잘 어울리는 현주의 모습이 정말 예뻐 보였다.
이제 새 봄이 되면 현주는 어엿한 중3소녀가 된다. 어제는 온종일 비가 내려 어머니가 장사를 나가지 못하고 집에 있기에 두 모녀를 식당으로 불러내었다. 그새 현주 어머니의 표정도 많이 밝아졌다. 저녁마다 두 모녀가 학교 이야기로 시간가는 줄 모른다고 한다. 현주 어머니는 이제야 40년이 넘는 모진 고통을 잊을 수 있겠다고 하였다. 그녀의 꿈은 하나뿐인 딸을 남들처럼 곱게 길러 좋은 대학까지 가르치는 것이란다. 아마 오늘도 상쾌한 발걸음으로 일터에 나와 있을 것이다. 이제 그녀가 바라보는 일터 다리 위의 하늘은 마냥 푸르고 아름답기만 하리라.
“연금아! 울타리 곁에서 피어나는 늦깎이 꽃나무에 물주기를 멈추지 않도록
계속해서 나를 후원해 주겠지?”
서영복
내 나이 쉰 살이 되기 직전에 명예퇴직을 희망하면서 퇴직금 전액을 연금으로 결정한 일은 지금 생각해도 참 멋진 일이었다. 그것은 내가 해보고 싶은 일과 해야 할 일들을 아무 어려움 없이 하고 있기 때문이다. 퇴직 후 6년 동안 ‘연금’이는 나의 새로운 생활에 든든한 후원자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으니 내 인생 끝날 때쯤에는 ‘공로상’이라도 하나 만들어 줘야 할 듯싶다. 여고시절부터 꿈꾸어 오던 수필 공부를 하는 일이나, 영어 특강과 컴퓨터 강좌를 수강하는 일, 또 취미와 건강을 위해서도 매달 지불하여야 하는 금액이 만만치가 않았다. 그 뿐인가, 현직에 있을 때엔 그림의 떡이던 해외여행도 해마다 한 두 차례씩 어김없이 다니고 있으니 어찌 내 후원자를 칭찬하지 않겠는가? 그 동안 남편과 내가 나라에서 받은 월급으로 남매를 가르치고 결혼까지 시켰으니 이제부터는 갚아 나가야 할 때라고 생각하면 내가 해야 할 일, 내 손길을 기다리는 곳도 많다. 장애자들이 모여 있는 재활원에 손을 보태는 일이나, 노인 무료급식소에서 봉사하는 일, 야학교에서 문맹자들을 도와주고 가르치는 일들은 시간과 금전이 뒤따라야 하지만 ‘연금’! 이가 있기에 더욱 활발하게 계속해나갈 수 있는 것이다.
그 중에서도 내가 가장 큰 희망으로 꼽는 일이 하나 있다. 야학교의 주간 반에서 자원봉사를 하며 알게 된 현주와의 만남이다. 한글 미해득자인 할머니들 틈에서 공부하는 열 서너 살쯤의 그는 초등학교는커녕 유치원에조차 다닌 적이 없지만 수학 능력은 있어보였다. 그래서 퇴직 전에 초등교육에 몸담고 있었던 나로서는 현주의 인생에도 아름다운 초등학교 시절을 경험하도록 하는 게 도리라고 생각 되었다. 현주는 노점상으로 음료수와 커피를 파는 어머니와 달랑 둘이서 어렵게 살고 있는 아이였다. 나는 곧 현주가 살고 있는 학구의 N초등학교에 가서 편입학 문제를 상담하였다. 여러 가지 조건을 내가 책임지기로 하고 겨우 허락을 얻어냈지만 현주는 학교에 가지 않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현주의 어머니조차 아이가 체격도 크고 나이가 너무 많으니 검정고시로 중학교에 보내겠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내 생각은 달랐다. 그건 생각처럼 쉽지 않을 뿐 아니라 설령 중학교에 가게 되더라도 초등과정의 기초도 없이 제대로 중등교육을 받을 수 있을지, 어른이 된 후 자기의 남다른 어린 시절을 어떻게 추억할지 이것저것 걱정이 앞섰다. 그러나 현주는 ? 黴탔?이야기를 좀처럼 하려고 들지 않았다. 게다가 할머니들께 갑자기 소리를 꽥 지르거나 물건을 던지는 이상스런 행동을 보일 때에는 옆에서 지켜보기만 해야 하는 내가 너무나 마음이 아프고 안타까웠다. 설득을 시작한 지 석 달이 지나면서, 그만 포기하고 싶어졌지만 뭐든지 쉽게 될 거라고 생각한 내 교만함을 먼저 깨닫게 되었다. 다시 마음을 추슬러 잡은 나는 초등학교 5학년 1학기의 전 과목 교과서와 전과까지 준비하였다. 그리고 현주와의 대화 시간을 늘려가던 2월 어느 날 오후, 그것들을 가지고 현주네 집으로 찾아갔다. 교과서들을 내보이자 호기심 때문인지 이리저리 살펴보더니 “체육이 뭐예요??라고 물었다. ‘이제 됐구나!’ 하는 생각에 나는 가슴이 뛰었다. 그날 밤, 나는 잠을 설치며 까닭 없이 모두에게 감사하였다. 다음날, 편입학에 필요한 서류를 동사무소에서 떼어오고 야학교에서 만든 수료증과 담임으로서 작성한 내 의견서를 준비하였다.
드디어 2001년 3월 2일, 현주는 N초등학교 5학년 4반에 정식으로 편입되었다. 처음 신어보는 하얀 실내화를 어색해하며 현주가 멋쩍은 웃음을 남기고 교실로 들어간 후 현주 어머니에게 현주가 사용할 미술도구와 음악시간에 필요한 것들을 준비하여 주었다.
2003년 2월, 현주는 짧은 초등학교시절이지만 장학금까지 받으며 졸업을 하였다. 그리고 이어 중학교에 입학한지 한달쯤 지나서 현주의 담임을 찾아갔다. 담임선생님은 몇 가지 서류를 갖추어 오면 장학금을 받도록 추천해 주겠다고 하였다. 다행히 현주는 반 배치고사의 성적도 우수한 편이고 성격도 차분하여 장래가 기대된다고 하였다.
가끔씩 나와 현주는 학교 앞에서 만나 떡볶이랑 만두를 먹으며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눈다. 현주의 장래희망은 나처럼 초등학교의 선생님이 되고 싶다고 한다. 그래서 열심히 노력하여 교육대학교에 들어가면 학비를 전부 부담해주겠다고 약속하였다. 그는 중학교에서도 장학금을 받도록 애를 써주신 선생님과, 건강하지 않은 몸으로 고생하는 어머니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도록 열심히 공부한다고 했다. 그러니 내가 손수 데리고 가서 맞추어 입힌 중학교 교복은 더 자랑스러워 보였고 그 옷이 너무도 잘 어울리는 현주의 모습이 정말 예뻐 보였다.
이제 새 봄이 되면 현주는 어엿한 중3소녀가 된다. 어제는 온종일 비가 내려 어머니가 장사를 나가지 못하고 집에 있기에 두 모녀를 식당으로 불러내었다. 그새 현주 어머니의 표정도 많이 밝아졌다. 저녁마다 두 모녀가 학교 이야기로 시간가는 줄 모른다고 한다. 현주 어머니는 이제야 40년이 넘는 모진 고통을 잊을 수 있겠다고 하였다. 그녀의 꿈은 하나뿐인 딸을 남들처럼 곱게 길러 좋은 대학까지 가르치는 것이란다. 아마 오늘도 상쾌한 발걸음으로 일터에 나와 있을 것이다. 이제 그녀가 바라보는 일터 다리 위의 하늘은 마냥 푸르고 아름답기만 하리라.
“연금아! 울타리 곁에서 피어나는 늦깎이 꽃나무에 물주기를 멈추지 않도록
계속해서 나를 후원해 주겠지?”
댓글 0
| 번호 | 제목 | 글쓴이 | 날짜 | 조회 수 |
|---|---|---|---|---|
| 54 | 당신을 배웅하기 위하여-요한 바오로 2세 추모미사- | 박정순 | 2005.04.07 | 20 |
| 53 | 딸아이 교복 입던 날 | 권영숙 | 2005.04.07 | 39 |
| 52 | 기억의 퍼즐 찾기 | 유영희 | 2005.04.05 | 35 |
| 51 | 30년 넘은 바리깡 외 1편 | 김지중 | 2005.04.04 | 51 |
| 50 | 어둠 속의 빛 | 이양기 | 2005.04.04 | 37 |
| » | 꽃나무에 물주기 | 서영복 | 2005.04.04 | 40 |
| 48 | 무한보장 자유보험 | 고광영 | 2005.04.03 | 38 |
| 47 | 시작이 즐겁다 | 김정자 | 2005.04.02 | 39 |
| 46 | 색다른 결혼식 | 신영숙 | 2005.04.02 | 110 |
| 45 | 낭랑 18세 | 배윤숙 | 2005.04.01 | 54 |
| 44 | 또 하나의 울타리가 무너지던 날 | 남궁금자 | 2005.03.28 | 51 |
| 43 | 봄 이야기 | 김정자 | 2005.03.28 | 43 |
| 42 | 소중한 사랑 | 신영숙 | 2005.03.25 | 44 |
| 41 | 새들이 하늘을 나는 이유 | 유영희 | 2005.03.23 | 63 |
| 40 | 버릇 | 강영미 | 2005.03.19 | 34 |
| 39 | 봄이 오는 길목에서 | 신영숙 | 2005.03.18 | 51 |
| 38 | 눈을 들어 하늘을 보라 | 최선옥 | 2005.03.17 | 79 |
| 37 | 한국수필문단의 교통정리는 누가 할 것인가 | 김학 | 2005.03.14 | 109 |
| 36 | 친절과 미소의 미 | 김영옥 | 2005.03.13 | 47 |
| 35 | 해마다 여름이 오면 | 김학 | 2005.03.12 | 4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