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밀대에서 찍은 아버지 사진을 보고

2005.04.09 05:44

황만택 조회 수:48 추천:6

을밀대에서 찍은 아버지 사진을 보고
전북대학교평생교육원 수필창작과정(야) 황만택


라일락 꽃 향기가 창 틈으로 스며드는 어느 봄날. 나는 그동안 내내 미뤄왔던 책장을 정리하게 되었다. 이 책 저 책을 매만지다가 언제나 한쪽에다 외롭게 꽂아 두었던 사진첩들을 꺼내 보았다. 그 사진첩에는 오랜 세월만큼이나 빛이 바래고 모서리가 헤어진 아버지의 사진도 있었다. 아버지의 얼굴을 잘 모르는 나는 언제나 사진첩 속에 있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면서 내 어려서 희미하게 생각나는 기억으로 아버지의 얼굴을 종종 상상해 보곤 한다. 그것은 아버지가 내 나이 5살 적에 돌아가셨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올해로 꼭 54년이 된다.
  
  일찍이 우리 집안은 할아버지가 부지런하셔서 많은 재산을 모아 천석꾼 집안이었는데 할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시자 아버지가 어린 나이에 그 재산을 물려받았다고 한다. 사진첩을 보면 아버지는 성장하면서 여행을 좋아하셔서 바다나 경치 좋은 산도 많이 오르면서 조선 팔도 여기저기를 많이 돌아다니셨던 모양이다. 나는 오늘 아버지의 그 사진첩을 펼쳐 놓고 보다가 깜짝 놀랄만한 사진 몇 장을 보게 되었다.

평안도 금수산 을밀대에서 찍은 사진이 있는가 하면, 금강산 내금강 명경대에서 찍은 사진도 있지 않은가! 찍은 장소와 날짜까지 선명히 새겨져 있는 것을 보니 1930년 9월이다. 나는 참으로 귀한 사진을 보고 있는 것이다. 수십 년 세월이 흐른 지금 남과 북이 갈라져 가보지도 못하는 평양의 을밀대를 이 사진 속에서 보다니! 나는 혼자서 무엇에 홀린 듯 진한 봄꽃 향기가 창 틈으로 밀려옴을 느끼면서 내 가슴속에서 잔잔한 파도가 울렁임을 느꼈다. 나는 아버지 얼굴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 그 사진을 보면서 당시 우리 아버지는 정말 멋진 분이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1930년이면 전주 땅에서 평양까지 가려면 교통도 불편했을 것이고 또 가는 그 길이 무척이나 멀고 먼 길이 아니었을까. 더군다나 금강산 내금강 명경대까지 여행을 가기란 참으로 어려웠을 것이거늘 아무리 돈 많은 사람이라 해도 몇 명의 친구 분들까지 대동하고 심산유곡(深山幽谷) 명경대까지 여행을 하신 것을 보면 아버지는 참으로 대단한 어른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나를 새삼 흥분케 했다.

지금부터 76년 전의 을밀대! 그 을밀대는 지금 어떻게 변했을 지 모르지만 을밀대 현판이 훤히 보이는 곳에서 백 구두를 신고 주름잡힌 바지를 입고 멜방 끈까지 하고 한 손에는 바바리코트까지 걸친 모습을 보면 아버지는 멋쟁이 신사였던 모양이다. 또 금강산에서 찍은 사진을 보면 당시에는 없던 귀한 등산복을 입고 스타킹까지 발에다 차고 사진을 찍었으니 이것을 보면 멋쟁이 천석꾼 아들이 틀림없어 보였다. 나는 그 멋쟁이 어른의 막내아들로 태어났으니 아버지의 사랑을 많이 받았을 텐데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신 바람에 아버지 얼굴도 잘 모르고 자랐으니 아버지가 무척 그립다.

지금은 남과 북이 갈라지고 삼팔선이 가로 놓여 갈 수 없는 곳이 되었지만 언젠가는 통일이 되고 우리가 자유로이 여행할 수 있을 때가 되면 나는 그 사진을 가슴에 꼭 껴안고 평양으로 달려가 아버지가 찍었던 옛날 그 모습처럼 을밀대 꼭 그 자리에서 똑 같이 사진을 찍어 보고 싶다. 또 멋진 등산복에 스타킹을 차림으로 금강산 명경대 앞에서 찍었던 아버지의 모습처럼 내 친구들과 같이 그 곳에 가서 멋지게 폼 잡고 사진도 찍어보고 싶다. 그 날이 언제 올지는 모르지만 나는 그 날을 기다리며  하루하루를 살아갈 것이다.
                                  (2005. 4.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