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첫 외유

2005.04.12 07:52

김지중 조회 수:84 추천:8

아내의 첫 외유(外遊)
                전북대학교평생교육원 수필창작과정(야) 김지중(金智中)


  첫째 날(토요일)
  점심을 먹고, 이것저것 챙긴다며 부산을 떨던 아내는 오후 1시가 넘어 집을 나섰다. 그리고 나머지 가족들은 평상시와 다름없이 지냈다. 딸아이는 공부하러 나갔고 아들아이는 자기 방에서 컴퓨터에 빠져 여념이 없다. 난 산책 겸 운동 삼아 건지산(乾止山)에 다녀와 텔레비전을 보다가 신문을 읽고, 그러다가 책을 뒤지며 오후를 보냈다.
  저녁 어스름에 딸아이가 돌아와서 함께 저녁식사를 했다. 냉장고에 미리 마련해 둔 반찬그릇을 꺼내 뚜껑을 열고 식탁에 펼쳐놓았다. 밥은 보온밥통에서 각자 먹을 만큼 공기에 담아 먹었다. 아직까지는 무난한 편이다. 시키지도 않았는데 아들녀석이 손수 설거지를 했다. 아무런 불평불만도 없었다. 그동안 아내에게서 전화가 한 번 왔었다는 아들아이의 전언(傳言)이었지만 난 그저 담담했다. 4박 5일의 여정이 시작되는 첫 날의 우리 집 풍경이다.

  둘째 날(일요일)
  전날 잠자리에 들면서 시계의 알람을 맞추고 아들에게까지 일어나는 시간을 부탁했었는데 먼저 눈이 떠졌다. 출근하는 월요일에 대비해서 예행연습 삼아 밥하고 찌개 끓이는 시간을 맞추려고 했었다. 이른 아침에 등교하면 밤늦게 돌아오는 아이들을 위해 한 끼 정도는 미리 준비해서 먹이고자하는 아버지로서의 내 마음의 발로(發露)이자 아내의 무언의 부탁이기도 했다. 그래서 잠자리에서 생각한 것이 달걀 찜이었다. 그것이 제일 수월하리라 생각되었다. 달걀 네 개를 깨서 냄비에 풀었다. 흰자와 노른자가 섞이도록 한참을 휘저었다. 노랗게 풀린 달걀에 한 컵의 물을 붓고 다시 저었다. 간을 맞추기 위해 소금보다는 새우젓을 반 숟가락 정도의 양을 넣고 다시 저었다. 그리고 가스레인지에 냄비를 올렸다. 노랗고 하얀 봉우리가 올라오면서 본래의 양보다 절반정도는 불어나는가 싶더니 동시에 타는 냄새가 났다. 처음부터 너무 불을 세계해서 익으면서 탄 것이다. 그래도 절반의 성공인 셈이다.
  아침식사는 그렇게 해결했다. 소요시간은 대략 설거지까지 1시간 반정도 걸렸다. "오늘 점심은 중화요리다!" 아이들에게 공표(公表)를 하고 세종대왕이 근엄한 표정을 짓는 지폐를 한 장 건넸다. 저녁식사는 어제와 동일한 메뉴와 방법을 택했다. 아들녀석이 누나에게 설거지를 강권했다. 어제 자기가 했으니 오늘은 누나가 당번이라는 것이었다.

  셋째 날(월요일)
  오늘 아침도 누가 깨우지 않았는데 일찍 일어났다. 출근과 식사를 해결해야 한다는 잠재적인 강박관념이 그렇게 행동하도록 시킨 듯한 느낌이다. 어제와 달리 오늘은 전기밥솥에 밤새 물에 불린 검정콩을 넣어 밥을 지었다. 그리고 예행연습을 한대로 달걀 찜을 준비했다. 어제 달걀 찜은 조금 짜고 탄 냄새가 났었다. 오늘은 새우젓을 어제 보다 조금 덜 넣고, 불을 잘 조절해서 정상적인 식사가 진행되었다.
  아침 7시 20분, 아이들을 모두 등교시켰다. 설거지는 내가 했지만 집사람이 있을 때와 다름없는 아침시간이다. 그래도 예전보다 부지런을 떨며 출근 준비를 했다. 현관을 나섰다가 가스밸브와 문단속이 미심쩍어 다시 문을 열고 들어와 두어 번 확인하다보니 오히려 한 10분 더 늦어졌다.
  퇴근 후, 손위동서와 맥주(麥酒) 몇 잔을 마셨다. 동병상련(同病相憐)의 정을 나누었다. 아직까지는 별 탈 없이 잘 지내고 있다. 그리고 내일은 또 휴일인 식목일이다. 마음이 한결 가볍다. 2박3일째 이상 무다.

  넷째 날(화요일)
  징검다리 휴일이다. 그래서 아침식사도 이젠 여유롭다. 세 번째의 달걀 찜은 그만 얘기해야할 것 같다. 새로운 종목에 도전해보기로 했다. 고등어구이를 선택했다. 밀폐된 구이기구에 간 고등어를 넣고 가스레인지의 불을 켰다. 탄 음식이 몸에 좋지 않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첫 번째 시도는 역시 시원치 않았다. 그래도 고등어구이는 골라 먹을 부분이 더 많아 다행이었다. 쉬운 일이 없다는 사실을 또 깨닫게 되었다. 늦은 아침식사여서 시계는 아침9시를 조금 넘기고 있었다. 오늘은 휴일이어서 점심 메뉴는 면(麵) 종류라고 선언하고, 각자 해결하도록 했다.
  또 건지산에 올랐다. 휴일이어서 그런지 많은 사람들이 눈에 띄었다. 체련공원 축구장에서도 전국 규모의 교회대항 경기가 펼쳐지고 있었다. 나들이를 나온 가족, 원색차림의 사람들이 많았다. 저 무리 속에 우리 가족들이 끼었더라면 좋았을 걸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학교 공부에 얽매인 아이들은 토요일 오후나 공휴일에 함께 밖으로 나가자고 권해 보지만 이내 고개를 돌리고 만다. 공부에 대한 스트레스를 주말에라도 풀라고 제안하지만 오히려 집에서 쉬는 게 편하다는 게 아이들 대답이다. 어느새 나흘이 지나고 있다.

  닷새 째 날(수요일)
  새벽 6시, 이제 자동으로 눈이 떠진다. 그리고 어제보다는 오늘이 훨씬 더 익숙해졌다. 그런데 아침 식사와 아이들 등교가 다 마무리되고 출근을 서두르면서 얼굴 한 쪽에서 뭔가 이물감을 느꼈다. 거울을 보니 입 주변의 오른쪽에 좁쌀 만한 물집이 여러 개 생겼다. 피곤하면 나타나는 나의 유쾌하지 않은 트레이드마크다.
  손위 동서와 곡차를 나누면서 서로 자신만의 노하우를 자랑삼아 겨루곤 했는데 이게 무슨 소용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내가 집에 없을 때, 그동안의 빨랫감 처리와 집안청소까지도 완벽하게 수행하고 보란 듯 자랑하려고 했는데 아내가 도착한다는 날 아침에 브레이크가 걸리다니……. 회사로 아내에게서 전화가 왔다. 인천공항에 도착했다는 것이다.
  나로서는 주말과 징검다리 휴일이 낀 4박 5일간의 짧지 않은 주부연습 기간이 마무리되는 시간이고, 아내에게는 결혼 후 처음으로 자기만의 시간을 향유하다 다시 주부로 돌아오는 전환기이기도 하다. 집안 일이며 아이들과 남편 뒷바라지 등 모든 것을 떨쳐버리고 4박5일 동안 홀가분하게 이국의 정취를 흠뻑 만끽하고 돌아온 아내다. 아내의 첫 해외여행이 얼마나 즐거웠는지 어서 이야기를 듣고 싶다. 오늘밤엔 우리 집 식탁의 화제가 만발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