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의 등불 하나

2005.04.18 14:22

홍사화 조회 수:54 추천:4

내마음의 등불 하나 - 홍사화 -  

그는 지금 겸손되이 살고 있다. 다시 주신 빛나는 햇살에 감사하면서 하루하루를 희망차게 살고 있다. 하루를 스물 다섯 시간으로 쪼개 쓰며 온 정성을 다하여 살아가고 있다. 아내 옆에서 김을 발라주면서, 마늘을 까주면서, 일찍 출근하는 아내를 위해 즐겁게 아침밥을 지으며, 아내가 펼쳐 논 신문을 차곡차곡 접으며 그렇게 산다. 여기저기 보따리 장수라는 시간 강사도 즐겁게 하며 수업준비 하느라 밤을 꼬박 새우면서도 늘 웃으며 산다. 내 동생 남편 이 서방, 그는 그렇게 산다. 사는 게 이처럼 감사한 줄 몰랐다며 매일 매일 신나고 기뻐 노래가 저절로 나온다는 그다. 평생을 항 거부 반응 약을 투여해야 하고 두 달에 한번씩 병원에 가서 검진을 받아야하는데도 그래도 그는 이 것만도 행복하다 한다.



삼 년 전 대청댐도 말라서 이제 곧 격일로 수돗물을 공급해야 하며, 거기다 적조를 걱정하는 지방뉴스는 무더운 여름을 더욱 덥게 만들던 날,하필이면 그런날 그는 신장 이식 수술을 받았다. 몇 년을 복막투석과 혈액 투석하며 직장에 다니면서도 인정받던 은행원이었다. 내 동생이 자기 신장을 기증하고 다른 맞는 이의 신장을 동생 남편이 우선으로 기증 받기로 등록했었는데, 기증할 사람이 나타나도 그에게 맞지 않아 하루하루 애를 태우고 있던 차였다. 어머니 신장을 받기에는 어머니는 너무 연로하셨고 곧은 마음에, 형제의 신장을 받기에는 너무 미안하다며 시시 각각 다가오는 죽음과 온 몸으로 맞서 싸워오던 그였다.



그런 그가 신장을 기증하는 분이 있어 수술을 한 것이다. 기증자는 스물 여덟 꽃다운 아가씨. 운전하다가 사고로 뇌사 상태에 빠지자 그분의 아버지가 딸의 장기를 기증해 다섯 사람을 살렸다 한다. 어떤 이에게는 간을, 각막도 두 사람에게, 신장도 두 사람에게 주었다 한다. 다섯 사람 모두 새롭게 새 생명으로 태어나게 했다 한다. 그들 중의 한 사람이 내 동생 남편 이 서방이었다.



수술 후 잠든 이 서방 옆에서 동생은 그 말을 하며 펑펑 울었다. 제 남편이 다시 살게 되어 기뻐서 울고 신장을 준 그 아가씨가 가엾고 고맙다며 울었다. 사례를 하고 싶은데 아가씨의 아버지가 자신의 얼굴을 알리지 않는다며 세상에 그런 사람도 있더라며 울었다. 그 말을 듣는 우리도 함께 울었다. 딸이 이렇게 돌아가는 것도 안타까울 터인데 장기를 기증할 아버지의 마음이 얼마나 찢어졌으랴. 평생 가슴에 묻고 살아야할 자식인데 그 마음이 오죽했으랴. 그 결정을 내리는 그분 심정을 생각하니 가슴이 미어졌다. 그 날, 우리는 모두 그분의 따뜻한 등불을 하나씩 받아 걸었다. 우리도 다른 이를 위해 이 등불을 오래 밝혀두기로 다짐했었다.



그렇게 동생 남편은 새 생명의 등불을 켜들었다. 고마운 어떤 분의 은혜에 보답하는 길이라며 남보다 더 열심히 살고 있다. 수술 전처럼 일주일에 한번씩 친가는 물론 그 여러 처형 처제에게까지 일일이 안부 전화를 하며, 수원에서 제천까지 증조 할아버지 제사까지 참여하며, 전공을 살려 직장을 잃은 사람들의 창업자금 융자를 도와 뛰어다니며, 미래를 만들며 가꾸며 신명나게 산다. 귀여운, 내 동생 남편 이 서방은 이렇게 삶의 등불을 환히 밝히며 대낮처럼 산다.



세상이 점점 각박해진다며 사람들이 저마다 걱정하며 한숨을 쉰다. 딴은 그렇기도 하다. 나밖에 모르는 이기주의가 팽배해 있고 나를 위해서라면 이웃도 친구도 버릴 수 있는 세상이 되었으니까. 가끔 어둡고 컴컴한 세상에 정이 떨어질 때가 많다. 그런데 다행인 것은 아무리 어두워도 이 사회를 밝히는 등불은 어디엔가 늘 켜져 있는 것이다. 고 이수현씨도 그렇고,18년 동안 여든 네 번이나 헌혈하며 소아 암 환자들을 위해 온갖 애를 쓰시는 분도 계시고, 꽃동네 무연고 노인을 위해 젊음을 불사르고 있는 여성도 있다. 그들은 우리가 함께 등불을 밝혀 더 환한 세상 만들기를 기대하고 있는데 나는 하루 하루를 이렇게 무성의하게 산다. 아니, 남을 위해 등불을 켜들기는커녕 나 자신을 위해서도 제대로 살지 못하는 건 아닌가. '얻어먹을 수 있는 힘만 있어도 은총'이라는데 나는 그보다도 열 배, 백 배의 은총을 주셨는데, 감사한 줄도 모르고 오만하게 살고 있는 것은 아닌가 나 자신을 돌아본다. 나도, 더불어 살아야 하는 남을 위해, 나태해지는 나를 위해 어서 작은 등불 하나 켜 들어야겠다, 이제 더 이상 늦기 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