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잎 같은 아이들

2005.04.22 21:55

이정화 조회 수:61 추천:11




꽃잎 같은 아이들
전북대학교평생교육원 수필창작과정(고) 이정화



오래간만에 서점에 들렸다. 여러 종류의 책들을 둘러보다가 신간코너에서 탤런트 김혜자 씨의 상반신 사진과 함께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란 표제가 붙은 책이 눈에 띄어서 샀다. 표지 안쪽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지은이의 인세는 우리나라를 비롯해 전 세계의 고통 받는 아이들을 돕는데 전액 쓰입니다." 라고.
책장을 넘겨보니 피부색이 검은 아프리카 어린이들이 흙 범벅이 된 누더기 옷을 걸치고도 천진난만하게 웃는 모습과 비쩍 마른 아이의 사진이 실려 있었다. 김혜자 씨는 지난 십 년 간 월드비전 친선대사로서 강대국들에 의한 전쟁지역이나 같은 종족간에도 서로 다른 종교나 이념으로 빚어진 내전으로 난민이 된 아이들과 여자들을 찾아다니며 그들의 고통스런 삶을 기록한 글이었다. 여러 나라의 지원과 자원 봉사자들의 구호활동에도 턱없이 모자라는 식량과 의료 부족으로 굶어죽고 병들어 죽어 가는 아이들을 보면서 그녀는 "도대체 신은 어디에 있는가! 정말 존재하기나 하는가! 저들을 그대로 죽도록 내버려 둘 거냐!"고 절규하듯 묻고 또 묻는다. 엄마 등에 업혀서 감자 한 알을 들고도 입으로 가져갈 힘이 없어서 축 늘어져있는 아이의 손, 얼굴에 파리가 달라붙어도 쫓을 힘도 없다는 아이들, 먹을 것이 없어서 며칠동안 풀만 뜯어먹어서 얼굴이 온통 푸른 풀물이 들었다는 아이들……. 나는 이 책을 눈이나 머리가 아닌 그냥 가슴으로 읽었다.

보고 느낀 사실을 애써 치장하거나 멋 부리지 않고 담담하게 써내려 간 문체들이 오히려 더 진한 감동으로 다가왔다. 뜨거운 물에 샤워를 하고 푹신한 침대에 누워있으면 자신이 위선자처럼 느껴졌다고 토로하기도 하고, 탤런트나 가수들이 옷 벗기 경쟁을 벌일 때 그곳 아이들은 입을 옷이 없어서 벗고 산다고 꼬집기도 했다. 어느 해 가을, 모든 것이 허무해져서 홀연히 이 세상에서 사라지고 싶다고 시인에게 하소연했더니, 이왕 사라지려면 갠지스 강가에서 사라지라는 말에 시인을 따라 나섰던 인도 여행. 그 여행길에서 마음의 평화와 삶의 의지를 다지고 다시금 힘을 내어 세상의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서 일하리라 다짐했다고 한다. 연기자로서 수많은 상을 받으면서 영광을 누렸고, 이제 편안한 여생을 보낼 수도 있는데 그런 일에 생을 바치게 된 것이 자신의 운명 같다고도 했다. 좋은 연기자가 되기까지는 어찌 영광만 있었으랴. 남보다 몇 배 부단한 노력이 있었을 것이고 수없이 많은 좌절과 상처도 있었으리라. 그러한 일들이 숱한 내공으로 쌓이다보니 견디기 힘든 상황에서도 참고 인내하며 해낼 수 있도록 버팀목이 되었을 것이다. 아이들의 슬픈 눈망울이 잊혀지지 않는다는 착하고 여린 마음씨와 헌신의 정신이 무엇보다 우선이었을 그녀가 더욱 아름답게 보인다. 그런 힘겨운 일을 십 여 년 동안이나 해왔고, 앞으로도 남은 생을 불쌍한 아이들을 위해서 살겠다는 것은 보통 사람의 의지로는 참으로 실천하기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마지막 책장을 덮고 베란다로 나갔다. 멀리 마을의 불빛들이 밤배의 집어등(集魚燈)처럼 무수하게 빛나고있다. 밤이 깊었는데도 피부에 닿는 바람이 부드럽고 따뜻하다. 아직도 아이들이 놀이터에서 떠드는 소리가 들려온다. 이따금 엄마를 부르고 친구들을 부르는 구김살 없이 맑은 소리들이 어울려 훈훈한 봄밤의 공기를 흔들고 있다.
우리 돈으로 백 원이면 난민촌 어린이의 한끼 식사를 해결할 수 있다는 말이 가시가 되어 가슴을 찌른다. 오랫동안 백 원에 대한 가치를 잊어버리고 살았다. 처음 아프리카 지역의 참상이 알려질 때만해도 사랑의 빵 보내기 저금통에 동전을 모아 은행에 가져다주기도 했었다. 그러다가 흐지부지 그만두고 말았다. 돼지 저금통에 백 원, 오백 원 동전을 가득 채워서 연말이면 구세군의 자선냄비에 가져다주고는 다시 조금 더 큰 돼지 저금통을 사와서는 "엄마도 돼지 밥 많이 주세요!" 하던 딸아이가 작년에는 취직을 하고 집을 떠났다. "엄마 나는 다른 돼지 사서 키울 테니까 이 돼지는 엄마가 대신 빵빵하게 키워 주세요!" 하고 부탁했는데 돼지 저금통이 크기도 했지만 나의 무성의로 인하여 연말에는 물론 지금까지 채워지지 못하고 있다. 딸아이가 내려올 때마다 아직도 그대로라며 핀잔을 주곤 했다. 조금 일찍 서둘면 될 일을 꾸물거리다가 약속 시간에 늦을라치면 번번이 택시를 타고 동전을 다 써버리는 바람에 제대로 돼지 밥 먹여 줄 겨를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가끔 텔레비전 화면의 모금 번호에 전화를 걸고는 할 일을 다했다는 듯이 그냥 무관심해지는 오늘의 내 무디어진 감성이 두렵다.

헐벗고 굶주리는 아이들이 어디 아프리카뿐이랴. 저 지난해 이맘때 서울 산동네 벌집에서 늙고 병든 외할머니와 술집 나가는 엄마와 어린 동생과 살고 있다는 초등학생 소년이 예수님 앞으로 쓴 눈물겨운 편지가 생각난다. 오늘도 양지의 뒤쪽 그늘에서 그 소년처럼 시린 가슴으로 절박한 하루 하루를 살아내고 있을 아이들. 불쌍한 그 아이들을 어찌 꽃으로라도 때릴 수가 있겠는가.
찬란한 생명의 계절 오월, 이 달에는 어린이날이 있다. 또 5월은 청소년의 달이며 가정의 달이기도 하다. 세상의 모든 아이들이 따뜻한 가족의 품에서 사랑과 보호를 받으면서 행복한 꿈을 꾸었으면 좋겠다.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 는 말을 경구(警句)처럼 새기면서 조금 더 부지런해져서 돼지 밥이라도 열심히 먹여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