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밭의 눈물
2005.05.12 18:57
보리밭의 눈물
전북대학교평생교육원 수필창작과정(야) 이은재
도시의 회색건물 속에서 포로처럼 살아가던 나는 늘 초록빛을 그리워했다. 날아갈 수만 있다면 어디든 훨훨 날아서 목가적인 전원으로 떠나고 싶었다. 그런 내게 청 보리밭 기행은 너무도 달콤한 유혹이었다. "황사 주의보, 외출을 삼가라!"는 기상캐스터의 특명은 한낱 기우였다.
조물주가 가장 심혈을 기울여 창조하였을 봄, 그 황홀한 엑기스가 파열하는 들녘은 은혜롭기만 했다. 만개한 꽃잎들은 눈꽃처럼 활강을 하고, 꿀벌들은 하강하는 꽃잎 속에서 파닥파닥 황사먼지를 털어 냈다. 새순이 돋아난 그루터기엔 생명이 움트고, 산 벚나무 군락이 곱게 똬리를 튼 산자락은 휘영청 눈이 부셨다.
전주에서 서해안 고속도로를 타고 고창 IC로 진입하여 황톳길 들녘을 달리다 보면 어디선가 보리내음이 싱그럽게 밀려온다. 유년에 맡았던 정감 어린 향기에 끌려 찾아간 전북 고창군 공음면 선동리 학원농장, 마침 '제2회 고창청보리밭축제'가 열리고 있었다.
"보리밭 속에는/주인 없는 휘파람 소리가 들린다/여자의 속살을 헤집으며/물결쳐오는 바람의 바다가 숨었다"고 노래한 나태주 시인처럼, 내가 처음 만난 보리밭 역시 어디선가 주인 없는 휘파람 소리와 짙푸른 바다가 숨어서 바람에 철썩이고 있는 듯했다.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 속엔 무한한 생명이 고동치고 있었다.
광활한 보리평원에 눈이 시렸다. 나는 아스라이 빛나는 진초록 지평선에 눈을 베었다. 끝없이 쏟아지는 햇살을 받아 사락사락 유영하는 보리 꽃이 너무도 아름다워 나는 폴짝폴짝 뛰었다. 정강이까지 자란 청 보리와 함께 공생하는 하얀 냉이 꽃, 유채 꽃, 이름 모를 꽃들이 유유자적 어우러진 들판을 달리자 소풍 나온 아이들도 보리 잎을 툭툭 치며 달음질을 했다. 아이들에게 밟힌 보리 잎에서 풀 비린내가 청정하게 날아왔다. 얼마 만에 맡아보는 유년의 향기인가. 그간 잊고 있었던 보리밭의 향수가 떠올라 가슴이 서걱거렸다.
친구가 보내준 편지 속에, "해와 하늘빛이/문둥이는 서러워/ 보리밭에 달뜨면/ 애기 하나 먹고/ 꽃처럼 붉은 울음을 밤새 울었다."는 미당 서정주의 '문둥이'란 시를 읽고 보리밭을 지날 때면 늘 가슴이 시렸다. 보리 꽃 속에 숨어 핀 깜부기를 보면 비통함을 온 몸으로 껴안고 숯 덩이처럼 타버린 나환자들의 가슴 한 자락처럼 보여 애처롭기만 했다. 어쩌면 보리밭은 거부하는 사람들을 피해 숨어 들어간 그들만의 은신처였는지도 모른다. 그 시절, 가끔 적선하라고 찾아오는 나환자들을 보면 나는 너무도 무서워 뒷걸음으로 도망쳤지만, 엄마는 광에 들어가 보리쌀을 한 바가지씩 퍼다 주시곤 했다. 나는 터번으로 감싼 얼굴 사이로 수척한 그들의 눈망울을 훔쳐보며 파르르 눈물을 떨구었다. 국가에서조차 버려 두었던 그 시절, 행려 병자로 떠돌 수밖에 없었던 천형의 유랑자들…….
어린아이 키만큼 자란 보리가 팰 무렵이면 아이들의 간을 꺼내 먹기 위해 보리밭에 문둥이가 숨어있다는 흉흉한 소문이 온 마을과 학교에 퍼졌었다. 우린 무서워서 혼자 학교에 가지 못하고 마을 공회당에 모여서 함께 학교에 가곤 했다. 그러나 한 번도 보리밭에 숨어 있는 문둥이를 볼 수 없었다. 그럼에도 서정주의 '문둥이'란 시가 나온 걸 보면 풍문처럼 떠도는 보리밭의 전설이 전혀 근거 없는 얘기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
보리밭 이랑에 앉아 있노라니 어디선가 삐리릭~~ 허공을 맴도는 소리가 들렸다. 소풍 나온 아이들이 보릿대를 꺾어 만든 보리피리 소리였다.
보리피리 불며 / 봄 언덕 / 고향 그리워 /피 - ㄹ 닐니리
보리피리 불며 / 꽃 청산(靑山) /어린 때 그리워 /피 - ㄹ 닐니리
보리피리 불며 / 인환(人 )의 거리/인간사(人間事) 그리워 /피 - ㄹ 닐니리
보리피리 불며 / 방랑의 기산하(幾山河) /눈물의 언덕을 지나/피 - ㄹ 닐니리
천형의 시인 한하운의 보리피리는 어떤 소리를 냈을까. 비탈리의 샤콘느처럼 지상에서 가장 슬픈 선율이었을까. 가도가도 끝없는 붉은 황톳길을 지나 소록도로 향하는 시인의 눈물이 보리밭에 후드득 떨어져 구슬프게 울렸을 저 보리피리 소리……. 사랑하는 모든 것들과 격리되어 생이별을 해야 했던 한센병의 고통은 어떤 것이었을까. 발가락이 한 개씩 없어져도 남은 두 개의 발가락으로 절름거리며 먼 전라도 길을 걸어갔을 시인을 헤아려 보다 슬며시 눈물이 나서 나는 조그만 보리 잎으로 내 얼굴을 가렸다.
학원농장 청 보리밭이 탄생하기까지엔 한 도시인의 시골정착기로 귀결된다. 진의종 전 국무총리의 아들 진영호 씨는 도시생활을 접고 황무지나 다름없는 이곳 구릉지대에 보리를 심었다. 보리 소비량이 급격히 떨어지면서 한 때 농사를 포기해야 할 심각한 위기도 있었지만, 고집스레 밀고 나간 직업정신이 오늘의 청 보리밭을 있게 하였다. 지금은 사진작가들이 몰려와 작품사진을 찍느라 야단들이다. 그 옛날 신성한 먹을거리로만 생각되었던 보리가 사진 작가들이 터트리는 플래시 세례를 받는 스타가 될 줄 어찌 알았을까.
보릿고개 세대에겐 보리가 결코 낭만적인 추억거리만은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보리밭이 그리워지는 건 한 때의 가난도 지나고 나면 아름답기 때문이리라. 보릿고개 세대들은 기억에서 멀어진 보리밭을 보며 진한 향수를 느낄 것이고, 좁은 공간에 갇혀 살던 아이들은 그저 너른 초원이 신기해서 우리를 탈출한 망아지처럼 뛰어다닐 것이다. 점점 사라져 가는 정서를 되살려 30만평 규모의 보리재배로 이루어낸 한 도시인의 시골정착이 고맙기만 하다. 농업과 관광을 접목한 성공에 놀란 정부는 이 일대를 국내 최초로 경관농업지구로 지정하고 이 곳에서 재배하는 보리를 책임지고 수매해 주고 있다. 어느 시골에서도 만나기 어려운 보리밭을 이곳 학원농장에서는 눈이 시리도록 볼 수 있어 좋다.
유년시절에 보리밭 밟기를 할 때면 갓 잎을 틔운 여린 보리가 이지러지는 게 안타까워 자신 있게 밟지를 못했었다. 그러나 오늘 내가 만난 보리는 경건하기까지 했다. 강풍이 불 때마다 신들린 무희처럼 흔들려도 온 몸을 다시 곧추세우는 보리, 보리는 밟을수록 더 짙푸른 빛깔로 약동한다. 삭풍의 격정 속에서 자란 보리는 저 스스로 다져진 내성으로 벌레들과 싸워도 지는 법이 없다. 그래서 농약을 하지 않는다. 소작인들이 질곡의 세월 속에서도 한 세상 풍미하며 살아갈 수 있었던 의연함은 어쩌면 보리의 강성을 닮아서가 아닐까. 눈보라 속에서도 꿈틀거리는 저 생명의 파도처럼.
보리밭 사잇길로/걸어가면/ 뉘 부르는 소리 있어/발을 멈춘다./ 옛 생각이 외로워/휘파람 불면/고운 노래 귓가에/들려온다./ 돌아보면 아무도/보이지 않고/저녁 놀 빈 하늘만/눈에 차누나……. 중천을 지나는 종달새도 그냥 가지 못하고 푸드득 날개를 치며 덩달아 노래를 합창한다.
보리밭을 뒤로하고 김제평야의 너른 들녘을 달린다. 몽골의 넓은 초원을 달리는 유목민들의 시력이 좋은 건 늘 멀리 바라보기 때문이라던가? 나도 저 멀리 빛이 닿을 듯 아스라한 지평선에 시선을 뿌려본다. 내 속에 있던 온갖 집착의 번뇌들이 방생하며 이내 가슴이 청량해진다. 바쁜 일상 속에 앞만 보고 달려가던 삶의 여정을 잠시 돌아보게 한 청 보리밭, 그간 잊고 살았던 애향심을 키우며 한 알의 밀 알로 남고 싶다. 자신을 타작하며 알곡을 남기는 저 보리처럼, 푸르게푸르게 몸부림치는 저 청 보리밭의 그 바람처럼.
전북대학교평생교육원 수필창작과정(야) 이은재
도시의 회색건물 속에서 포로처럼 살아가던 나는 늘 초록빛을 그리워했다. 날아갈 수만 있다면 어디든 훨훨 날아서 목가적인 전원으로 떠나고 싶었다. 그런 내게 청 보리밭 기행은 너무도 달콤한 유혹이었다. "황사 주의보, 외출을 삼가라!"는 기상캐스터의 특명은 한낱 기우였다.
조물주가 가장 심혈을 기울여 창조하였을 봄, 그 황홀한 엑기스가 파열하는 들녘은 은혜롭기만 했다. 만개한 꽃잎들은 눈꽃처럼 활강을 하고, 꿀벌들은 하강하는 꽃잎 속에서 파닥파닥 황사먼지를 털어 냈다. 새순이 돋아난 그루터기엔 생명이 움트고, 산 벚나무 군락이 곱게 똬리를 튼 산자락은 휘영청 눈이 부셨다.
전주에서 서해안 고속도로를 타고 고창 IC로 진입하여 황톳길 들녘을 달리다 보면 어디선가 보리내음이 싱그럽게 밀려온다. 유년에 맡았던 정감 어린 향기에 끌려 찾아간 전북 고창군 공음면 선동리 학원농장, 마침 '제2회 고창청보리밭축제'가 열리고 있었다.
"보리밭 속에는/주인 없는 휘파람 소리가 들린다/여자의 속살을 헤집으며/물결쳐오는 바람의 바다가 숨었다"고 노래한 나태주 시인처럼, 내가 처음 만난 보리밭 역시 어디선가 주인 없는 휘파람 소리와 짙푸른 바다가 숨어서 바람에 철썩이고 있는 듯했다.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 속엔 무한한 생명이 고동치고 있었다.
광활한 보리평원에 눈이 시렸다. 나는 아스라이 빛나는 진초록 지평선에 눈을 베었다. 끝없이 쏟아지는 햇살을 받아 사락사락 유영하는 보리 꽃이 너무도 아름다워 나는 폴짝폴짝 뛰었다. 정강이까지 자란 청 보리와 함께 공생하는 하얀 냉이 꽃, 유채 꽃, 이름 모를 꽃들이 유유자적 어우러진 들판을 달리자 소풍 나온 아이들도 보리 잎을 툭툭 치며 달음질을 했다. 아이들에게 밟힌 보리 잎에서 풀 비린내가 청정하게 날아왔다. 얼마 만에 맡아보는 유년의 향기인가. 그간 잊고 있었던 보리밭의 향수가 떠올라 가슴이 서걱거렸다.
친구가 보내준 편지 속에, "해와 하늘빛이/문둥이는 서러워/ 보리밭에 달뜨면/ 애기 하나 먹고/ 꽃처럼 붉은 울음을 밤새 울었다."는 미당 서정주의 '문둥이'란 시를 읽고 보리밭을 지날 때면 늘 가슴이 시렸다. 보리 꽃 속에 숨어 핀 깜부기를 보면 비통함을 온 몸으로 껴안고 숯 덩이처럼 타버린 나환자들의 가슴 한 자락처럼 보여 애처롭기만 했다. 어쩌면 보리밭은 거부하는 사람들을 피해 숨어 들어간 그들만의 은신처였는지도 모른다. 그 시절, 가끔 적선하라고 찾아오는 나환자들을 보면 나는 너무도 무서워 뒷걸음으로 도망쳤지만, 엄마는 광에 들어가 보리쌀을 한 바가지씩 퍼다 주시곤 했다. 나는 터번으로 감싼 얼굴 사이로 수척한 그들의 눈망울을 훔쳐보며 파르르 눈물을 떨구었다. 국가에서조차 버려 두었던 그 시절, 행려 병자로 떠돌 수밖에 없었던 천형의 유랑자들…….
어린아이 키만큼 자란 보리가 팰 무렵이면 아이들의 간을 꺼내 먹기 위해 보리밭에 문둥이가 숨어있다는 흉흉한 소문이 온 마을과 학교에 퍼졌었다. 우린 무서워서 혼자 학교에 가지 못하고 마을 공회당에 모여서 함께 학교에 가곤 했다. 그러나 한 번도 보리밭에 숨어 있는 문둥이를 볼 수 없었다. 그럼에도 서정주의 '문둥이'란 시가 나온 걸 보면 풍문처럼 떠도는 보리밭의 전설이 전혀 근거 없는 얘기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
보리밭 이랑에 앉아 있노라니 어디선가 삐리릭~~ 허공을 맴도는 소리가 들렸다. 소풍 나온 아이들이 보릿대를 꺾어 만든 보리피리 소리였다.
보리피리 불며 / 봄 언덕 / 고향 그리워 /피 - ㄹ 닐니리
보리피리 불며 / 꽃 청산(靑山) /어린 때 그리워 /피 - ㄹ 닐니리
보리피리 불며 / 인환(人 )의 거리/인간사(人間事) 그리워 /피 - ㄹ 닐니리
보리피리 불며 / 방랑의 기산하(幾山河) /눈물의 언덕을 지나/피 - ㄹ 닐니리
천형의 시인 한하운의 보리피리는 어떤 소리를 냈을까. 비탈리의 샤콘느처럼 지상에서 가장 슬픈 선율이었을까. 가도가도 끝없는 붉은 황톳길을 지나 소록도로 향하는 시인의 눈물이 보리밭에 후드득 떨어져 구슬프게 울렸을 저 보리피리 소리……. 사랑하는 모든 것들과 격리되어 생이별을 해야 했던 한센병의 고통은 어떤 것이었을까. 발가락이 한 개씩 없어져도 남은 두 개의 발가락으로 절름거리며 먼 전라도 길을 걸어갔을 시인을 헤아려 보다 슬며시 눈물이 나서 나는 조그만 보리 잎으로 내 얼굴을 가렸다.
학원농장 청 보리밭이 탄생하기까지엔 한 도시인의 시골정착기로 귀결된다. 진의종 전 국무총리의 아들 진영호 씨는 도시생활을 접고 황무지나 다름없는 이곳 구릉지대에 보리를 심었다. 보리 소비량이 급격히 떨어지면서 한 때 농사를 포기해야 할 심각한 위기도 있었지만, 고집스레 밀고 나간 직업정신이 오늘의 청 보리밭을 있게 하였다. 지금은 사진작가들이 몰려와 작품사진을 찍느라 야단들이다. 그 옛날 신성한 먹을거리로만 생각되었던 보리가 사진 작가들이 터트리는 플래시 세례를 받는 스타가 될 줄 어찌 알았을까.
보릿고개 세대에겐 보리가 결코 낭만적인 추억거리만은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보리밭이 그리워지는 건 한 때의 가난도 지나고 나면 아름답기 때문이리라. 보릿고개 세대들은 기억에서 멀어진 보리밭을 보며 진한 향수를 느낄 것이고, 좁은 공간에 갇혀 살던 아이들은 그저 너른 초원이 신기해서 우리를 탈출한 망아지처럼 뛰어다닐 것이다. 점점 사라져 가는 정서를 되살려 30만평 규모의 보리재배로 이루어낸 한 도시인의 시골정착이 고맙기만 하다. 농업과 관광을 접목한 성공에 놀란 정부는 이 일대를 국내 최초로 경관농업지구로 지정하고 이 곳에서 재배하는 보리를 책임지고 수매해 주고 있다. 어느 시골에서도 만나기 어려운 보리밭을 이곳 학원농장에서는 눈이 시리도록 볼 수 있어 좋다.
유년시절에 보리밭 밟기를 할 때면 갓 잎을 틔운 여린 보리가 이지러지는 게 안타까워 자신 있게 밟지를 못했었다. 그러나 오늘 내가 만난 보리는 경건하기까지 했다. 강풍이 불 때마다 신들린 무희처럼 흔들려도 온 몸을 다시 곧추세우는 보리, 보리는 밟을수록 더 짙푸른 빛깔로 약동한다. 삭풍의 격정 속에서 자란 보리는 저 스스로 다져진 내성으로 벌레들과 싸워도 지는 법이 없다. 그래서 농약을 하지 않는다. 소작인들이 질곡의 세월 속에서도 한 세상 풍미하며 살아갈 수 있었던 의연함은 어쩌면 보리의 강성을 닮아서가 아닐까. 눈보라 속에서도 꿈틀거리는 저 생명의 파도처럼.
보리밭 사잇길로/걸어가면/ 뉘 부르는 소리 있어/발을 멈춘다./ 옛 생각이 외로워/휘파람 불면/고운 노래 귓가에/들려온다./ 돌아보면 아무도/보이지 않고/저녁 놀 빈 하늘만/눈에 차누나……. 중천을 지나는 종달새도 그냥 가지 못하고 푸드득 날개를 치며 덩달아 노래를 합창한다.
보리밭을 뒤로하고 김제평야의 너른 들녘을 달린다. 몽골의 넓은 초원을 달리는 유목민들의 시력이 좋은 건 늘 멀리 바라보기 때문이라던가? 나도 저 멀리 빛이 닿을 듯 아스라한 지평선에 시선을 뿌려본다. 내 속에 있던 온갖 집착의 번뇌들이 방생하며 이내 가슴이 청량해진다. 바쁜 일상 속에 앞만 보고 달려가던 삶의 여정을 잠시 돌아보게 한 청 보리밭, 그간 잊고 살았던 애향심을 키우며 한 알의 밀 알로 남고 싶다. 자신을 타작하며 알곡을 남기는 저 보리처럼, 푸르게푸르게 몸부림치는 저 청 보리밭의 그 바람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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