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홉 수

2005.06.21 07:11

김병규 조회 수:61 추천:11

아홉수
                               전북대학교평생교육원 수필창작과정(고) 김병규

  
나이의 끝 수에 9자가 든 해를 아홉수라고 한다. 남자 아홉수에는 신변에 재앙이 오거나 큰 사고를 당하는 등 불행이 따른다는 전래의 풍설이 있어서 사람들이 꺼려하는 경향이 있다. 나는 사주팔자나 운수소관 또는 아홉수 같이 미신에 가까운 풍속 따위는 믿지 않고 살아왔다.

내가 69년의 세월을 살아오는 동안 죽을 고비를 여러 번 넘겼고 재앙을 당하여 고통스러운 과정을 숱하게 겪어왔지만 아홉수에는 해당되지 않았다. 초등학교 4학년 가을이었다. 벼가 노릇노릇 고개를 숙이고 서늘한 바람이 스쳐 가는 논둑 길을 걸어서 집으로 돌아올 때, 목에 이상이 있었다. 기침을 크게 했더니 빨간 핏덩이가 넘어왔다. 놀랜 나는 1km 넘는 거리를 연신 피를 토하며 집으로 돌아왔다. 몸 속의 피를 몽땅 쏟아낸 것 같았다. 놀라신 아버지는 오줌을 받아 마시도록 했다. "네가 살려거든 어서 마셔라." 아버지의 말씀 따라 꿀꺽꿀꺽 마셨다. 자식을 살리려는 부모님의 노력으로 회생한 나는 오늘까지 살고 있는데, 이 고비가 아홉수가 아닌 11살 때였다.

두 번째로 죽을 고비를 넘긴 것은 군대시절의 일이었다. 제대를 3개월 남겨둔 어느 일요일, 병기참모부에 근무하던 나는 부산출신 H일병에게 업무인계를 앞두고 실무교육 중이었다. 주번사관인 관리관이 권총을 자기 책상에 놓고 잠시 외출 중, H일병이 호기심으로 권총을 들어 내 가슴에 겨냥하고 "김 병장님 쏩니다. 쏴요!"라며 장난을 치다가 그만 꽝하고 쏴버렸다. 놀란 H일병은 자신도 모르게 한 발을 더 쐈다. 첫 실탄은 책상에 앉아있던 내 양 다리사이를 지나 발 옆 콘크리트 바닥을 움푹 파놓았고, 또 한 발은 내 머리 위를 날아 천장에 구멍을 뚫어놓았다. 실로 아슬아슬한 순간이었다. 당시 간첩 침투로 작전 중이어서 야간 근무시 장전한 실탄을 그대로 놔 둔 관리관의 실수였다. 23살에 당한 일이니 역시 아홉수는 아니었다.

세 번째 죽을 고비도 있었다. 종업원 70명인 제지회사의 전무로 일할 때였다. 경비원이 선친 제사라며 대직을 요청했다. 마침 업무를 정리할 일이 있어 경비 겸 야근을 하다가 연탄을 절약하려고 연통을 막고 잠자리에 들었다. 그 잠은 길게 계속되어 48시간만에 예수병원 산소 통 안에서 깨어났다. 역시 아홉수가 아닌 52살 때였다.
그밖에도 큰아들이 두 번씩이나 교통사고를 당하여 사경을 헤매던 일, 평생을 땀흘려 쌓은 공적을 한 순간의 실수로 인하여 허공에 날려버린 일, 공직에 있을 때 모략을 당하여 검찰에 불려 다니며 고통받던 일 등 많은 어려움이 몰아칠 때마다 역시 아홉수는 아니었다. 이렇게 아홉수와는 상관없이 살아온 나이지만 나이가 들자 차차 그 의미가 가까이 다가왔다.

내가 아홉수의 의미를 깨닫게 된 것은, 고통스럽고 불운한 과정을 맞게된 요인이 자신의 경거망동에서 비롯되었다고 깨달은 후부터였다. 액운을 피하려거든 10년 주기로 하여 아홉수를 기준으로 신중하고 조심하라는 조상의 교훈으로 받아드려야 했다. 조상이 전해준 아홉수의 경고를 소홀히 하지 않고 조심스럽게 처신했다면, 불의의 재앙을 면했을 것이다. 조심성이 없고 어리석었기에 수난과 고통이 더 따랐다는 것을 느끼고 있다.

평탄한 길에서 교통사고가 나듯, 안일한 생활에서 방관과 나태가 따르고 어리석은 행동에서 실수와 실패가 따른다. 아홉수는 돌다리도 두드려 건너라는 조상의 교훈이었던 것이다. 10년 주기로 주의를 경고한 아홉수! 조상이 남겨준 지혜가 얼마나 고마운가?
나는 아홉수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싶다. 아홉수를 의식하여 보다 조심스러운 처신이 필요하리라. 심장의 고동소리는 살아있다는 의미지만 생명을 재촉하는 하나님의 음성이기도 하다. 아홉수의 경고를 의식하여 한 순간 한 순간을 귀하게 여기고 남은 인생을 보다 조심스럽게 살아야 할 일이려니 싶다.
                 (2005. 6.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