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고 흰 구름의 나라, 뉴질랜드

2005.06.22 07:49

김학 조회 수:56 추천:2

길고 흰 구름의 나라, 뉴질랜드
                                                   김학

우리나라 반대쪽에 있는 이상한 나라에 다녀왔다. 마치 꿈을 꾸다가 깬 것 같은 기분이다. 둥근 지구본에서 우리나라를 찾아 길다란 송곳으로 꾹 찌르면 바로 180도 밖인 그 나라가 나온다던가. 초여름에 우리나라를 떠났는데 그곳은 겨울이었다. 아무튼 그 나라는 우리나라와 반대되는 게 너무 많아 눈길을 끌었다.
그 나라의 남섬 크라이스트처치(Christchurch) 공항에 내려서 가이드가 안내하는 관광버스에 올랐다. 이상했다. 버스 타는 입구부터가 우리나라와는 달랐다. 자세히 살펴보니 왼쪽에 있어야 할 운전석이 오른쪽에 있었다. 그러니 자동차는 도로 왼쪽 차선으로 달려야만 했다. 앞에서 달려오는 차가 금방 우리 차를 들이받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냉장고 문을 여닫는 것도 왼쪽 문을 이용해야 하고, 실내 전등의 스위치 작동도 우리와는 반대였으며, 돈 세는 법도 우리와는 달랐다. 왼손잡이가 오히려 살기 편한 나라가 아닌가 싶었다.
우리는 집을 짓거나 살 때 남향집을 좋아하는데 그 나라 사람들은 북향집을 선호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가 북반구에 있는데 반해 그 나라는 남반구이기 때문이었다. 우유를 생산하는 젖소마저도 우리를 헷갈리게 하는데 한몫 했다. 우리나라에서는 검은색 바탕에 흰 무늬가 있는 게 젖소고 노란색 소들은 일반 소다. 그런데 그 나라에서는 그 반대였다. 두 나라 모두 사람이 사는 나라인데 이처럼 다를 수 있다니 놀라운 발견이었다.
우리나라는 아직까지도 남성중심의 나라인데 그 나라는 여성중심의 나라다. 우리나라의 대통령은 남성인데 그 나라의 수상은 여성이다. 이민 간 지 11년이 된다는 가이드 J씨가 들려준 이야기 한 토막에서 그 나라 남성들의 위상을 엿볼 수 있었다. 어느 주말에 J씨는 가족과 더불어 공원에 놀러 갔었단다. 공원에는 고기를 구워먹을 수 있는 바비큐 시설이 모두 갖춰져 있는데 남성들이 땀을 뻘뻘 흘리며 고기를 구웠다. 그때 여성들은 한가롭게 담배를 피우면서 아이들과 놀고 있더란다. 단군의 자손이자 귀한 양반 가문의 외아들인 J씨는 당당하게 한국식으로 아내가 고기를 굽도록 하였다. 얼마 후 아내가 돌아와 놀라운 이야기를 전해주더라는 것이다. 고기를 굽던 그 나라 남편들이 J씨 아내에게 혼자 사느냐고 묻기에 남편이 있다고 했더니, 그런데 왜 여성이 고기를 굽느냐면서 그런 남편과는 당장 이혼하라고 하더라는 것이다. J씨와 그 아내가 얼마나 황당했을 것인가. 고기 굽는 일조차도 우리나라와는 반대다. 이 나라가 얼마나 여성중심의 나라인가를 알려주는 에피소드가 또 하나 있다. 엘리베이터를 탈 때의 순서는 여성, 아이, 부모, 애완용 개나 고양이, 그 다음이 남편이라고 한다. 이런 설명을 들으며 우리는, 아들내외는 그냥 우리나라에서 살게 하고 딸과 사위를 이 나라로 이민 오게 하는 게 좋겠다며 웃었다. 그런데도 해마다 이 나라로 이민을 가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불어난다니 그 이유는 무엇일까.
묘지만 해도 우리나라와는 사뭇 다르다. 우리나라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멀리 산에다 묻는다. 화장터나 장례식장마저도 혐오시설이라 하여 주택지 가까운 곳에 설치할 수가 없다. 더구나 묘지라면 더 말할 필요조차 없다. 그런데 그 나라에서는 동네마다 마을 가운데에 공동묘지가 있었다. 또 우리나라는 시신을 눕혀서 와식매장(臥式埋葬)을 하는데 비해 이 나라에서는 세워서 입식매장(立式埋葬)을 한다. 그만큼 묘지가 차지하는 면적이 좁아지기 마련이다. 이 나라의 공동묘지에는 조그만 돌 비를 세우고, 그 묘지의 주인공이 평소 좋아하는 것이 책이면 책 모형을, 술이면 술병모형의 석물(石物)을 빚어 묘지 앞에 세운다. 이 나라 사람들은 공원나들이 하듯 날마다 그 묘지를 찾는다. 산 사람과 죽은 사람의 만남의 장소가 바로 묘지이다. 이 나라에서는 공동묘지가 혐오시설이 아니라 근린공원인 셈이다. 도시로 나가 살다 죽으면 고향선산을 찾는 사람들 때문에 우리나라의 농촌이 갈수록 공동묘지로 변하는 것을 생각하면 부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우리나라에서는 이사를 가면 반드시 동사무소에 전입신고를 해야 한다. 그러나 그 나라에서는 사람이 아니라 애완동물의 전출전입신고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 또 끼니때에 그 애완동물들에게 새로운 식사를 제공해야지 남은 밥을 주다가 이웃 사람이 신고라도 하게 되면 처벌을 받는다던가? 참 이상하고도 희한한 나라다.
예로부터 우리나라에서는 겨울이면 삼한사온(三寒四溫)이란 게 있는데 그 나라에는 삼청사우(三淸四雨)가 있었다. 사흘 추우면 나흘 따뜻한 우리나라와는 달리 그 나라에서는 사흘 날씨가 맑으면 나흘은 비가 내린다는 이야기다. 비가 자주 내려서 그런지 안개 또한 자주 우리의 시야를 방해하곤 했다. 안개 때문에 아름답다는 호수도 그냥 지나쳐야 했고, 전망이 빼어나다는 곳도 가이드의 설명에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어 아쉬웠다. 안개는 그 나라에서도 장난꾸러기이자 심술꾸러기였다. 비싼 여행비를 들여 그곳까지 찾아갔건만 안개는 우리의 입장을 전혀 배려해주지 않았다.
내가 찾아갔던 그 이상한 나라는 아오테아로아(Aotearoa) 즉 길고 흰 구름의 나라, 뉴질랜드였다. 영국이나 일본과 크기가 비슷하다는 그 나라는 400만 인구가 4,000만 마리의 양떼를 기르는 양의 천국이었다. 푸르고 싱그러운 천연림(天然林), 손바닥으로 물을 퍼마실 수 있는 깨끗한 강,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넓고도 비옥한 목초지가 21세기 과학문명시대를 살던 우리를 잠시 원시시대의 자연 속으로 끌어들인 것 같은 느낌을 주었다. 역사가 짧은 그 나라는 공해 없는 자연을 무기로 세계인을 유혹하고 있었다. 공장 굴뚝 하나 없이 농업, 임업, 수산업과 관광업으로 국민소득 14,500달러를 이룬 나라가 바로 뉴질랜드다. 비록 국토가 남섬과 북섬으로 분리되어 있지만 우리나라처럼 남과 북이 총부리를 겨누고 있지 않아 부러웠다. 그래서 그런지 태풍이나 재해마저도 비껴 가는 나라요, 뱀이나 맹수조차 없는 나라가 바로 뉴질랜드다. 아직도 스팀을 뿜어대는 북섬의 화산, 백발처럼 산꼭대기를 뒤덮고 있는 만년설(萬年雪), 따뜻하고 부드러운 황금색 해변 등은 세계인을 끌어들이기에 충분한 뉴질랜드의 관광자원들이다. 그 나라는 아름다운 자연만을 내세우는 게 아니다.
뉴질랜드는 세계최초로 여성에게 투표권을 준 나라요, 하루 8시간노동제를 도입한 나라이며, 사회복지제도를 시행한 나라이다. 세계최초 3관 왕이라고나 할까. 또 어네스트 루더포드(Ernest Rutherford)는 세계최초로 원자의 비밀을 발견했고, 에드먼드 힐러리(Edmend Hillary) 경은 안내인 텐징(Tensing)의 도움을 받아 세계최초로 에베레스트산을 정복했으며, 피터 블레이크(Peter Blake) 경은 세계최초로 요트를 타고 세계일주에 성공했던 사람이다. 이들이 바로 뉴질랜드를 빛낸 자랑스러운 사람들이다. 뉴질랜드는 어쩌면 이 지구상에서 마지막으로 신이 남겨둔 무공해청정구역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