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물 한 모금
2005.07.11 13:30
마지막 물 한 모금
전북대학교평생교육원 수필창작반 유영희
Y형을 만난 곳은 생명을 보장할 수 없다던 20여 년 전, 어느 기도원에서였다. 나보다 서너 살 연상이었다. 병원에서는 손을 쓸 수 없다는 말기암환자나 불치병 환자들이 모여든 곳에, 그는 간질이라는 병을 가지고 왔었다. 간질은 당장 생명과 연관되는 병은 아닌지라 Y형은 혼자 머물며 원내 야간경비 봉사를 하였다. 말이 없고 어쩌다 눈이라도 마주치면 큰 눈이 더 커지는 묘한 웃음을 지었다. 자정을 넘긴 시각, 기도를 마치고 내려오면 어디선가 불쑥 나타나 "배고프시죠?"하곤 빵이나 우유봉지를 들려주고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어둠 속으로 사라지곤 하였다.
어느 날, Y형과 한 방을 쓰는 사람이 불쑥 그를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어떻게 라니? 나는 남편과 아들이 둘이나 있는 가정 주부라고. 더구나 몸에 병이 들어 기도원까지 온 사람이 되지도 않은 말을 하고 그래요?" 머리끝까지 치미는 화를 삭일 수가 없었다. '병이 들어 이런 곳에 와 있으니 내가 그리 만만하고 우스워 보이는 걸까?' 심한 자괴감까지 들었다. Y형은 간질이 아닌 말기 뇌암환자라고 했다. 결혼하여 딸까지 하나 있는데 암 선고를 받고는 그 사실을 숨긴 채 이혼했다고 한다. 운영하던 양복점을 정리하여 전 재산을 아내와 딸에게 주었다고 한다. 병원에서는 이미 손을 든 상태라 죽을 자리를 찾아온 사람이란다. 희망을 잃어버린 그의 삶에 불현듯 한 여자가 기쁨이 되었다고 하더란다. 얼마 못살 사람이니 좀 따뜻하게 대해주길 부탁하며 상대방은 말을 마쳤다. 그 일이 있은 뒤 나는 Y형을 더 외면하였던 것 같다. 통증으로 인해 걸음을 걸을 수 없을 때 방석을 깔아놓고 태워주던 자전거며, 그가 건네는 모든 호의를 거절하였다. 무슨 말을 걸어와도 늘 비수를 품은 듯 매몰찬 대꾸를 던져 주었다.
몇 달이 지난 새벽, 사무실 앞이 소란스러웠다. 기도원 바로 옆에 사시는 동네 아저씨가 노발대발 야단이시다. 어떤 환자가 한밤중에 발작을 일으켜 아저씨네 깨밭을 다 뭉개버려 일년 농사를 망쳐놨다는 것이다. 실무자가 나서서 배상을 약속하고 간밤 깨밭에서 발작을 일으킨 환자를 찾았다. Y형이었다. 밤에 산 기도를 마치고 내려오다 경련과 발작이 일어나 뒹굴기 시작했는데 그때까지도 멈추질 않는 상태라고 했다.
주방 봉사자가 미음을 쑤어 보냈지만 Y형의 발작이 그치질 않아 물 한 모금도 넘길 수가 없단다. 그는 꼬박 이틀을 죽음과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집회가 있는 날, 봉사자들이 그를 들것에 실어 들여오는 게 보였다. 하던 일을 잠시 멈추고 그가 누여진 곳을 찾았다. 발작은 잠시 멈췄지만 그는 눈도 뜨지 못 할 만큼 탈진해 있었다.
"형! 나야. 알아보겠어?" 희미하게 눈 꼬리가 움직이는 듯 하더니 겨우 손가락을 까딱거린다. 물병에 빨대를 꽂아 그의 입에 갖다대었다. 힘겹게 거부의 몸짓을 보였다. "부탁인데 이 물 한 모금 빨아봐. 안 그럼 다신 형 안 본다." 그는 겨우 몇 모금의 물을 빨아 마셨다. 갈라 터져 피가 맺힌 입술은 얼마나 힘든 싸움을 하고 있는지 여실히 보여 주었다. 문득 그의 손을 잡아 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내 일이 바쁘다는 핑계로 그 자리를 떠나 버렸다. 시간은 내일도 존재하니까. 하지만 그 날 오후, 증세가 더욱 악화되어 Y형은 봉고차 뒷자리에 눕혀져 집으로 돌아갔다. 연락을 받은 어머니가 임종은 집에서 시킨다며 부랴부랴 데려 갔다는 것이다. 그리고 일주일 후, 집으로 돌아간지 이틀만에 그가 하늘나라로 떠났다는 소식을 들었다.
날마다 죽음과 더불어 사는 생활이라 특별한 아픔을 간직하지 않은 채 한달 여의 시간이 지났다. 누군가 찾는다는 말을 듣고 나가보니 초췌한 아주머니 한 분이 울고 계셨다. 나를 보자 대뜸 손을 잡고 서러운 울음을 터트렸다. "색시가, 색시가 우리 아들 가는데 물 한 모금 먹여줬어. 집에 가서 암 것도 못 먹고, 색시가 먹여 준 물이 우리 Y가 이승에서 먹은 마지막 물이었어." 아들 가는 길에 물 한 모금 먹게 해준 내가 고마워 해남 바닷가에서 몇 번인가 차를 갈아타고 이렇게 찾아 오셨단다. 갓 서른을 넘긴 젊은 아들을 앞세운 어머니의 설움이 맞잡은 손을 타고 꾸역꾸역 가슴으로 밀려들었다. 살아온 세월을 말해주는 어머니의 주름 깊은 까칠한 손은 앞으로 얼마나 더 힘든 세월을 견디어야 할는지…….
Y형의 어머니가 집으로 돌아가신 후 나는 기도 산에 올랐다. 나는 과연 마지막 가는 사람에게 최선을 다했는가? 한 번 더 물을 권할 수도 있었는데, 먼 길 떠날 준비를 하며 지독하게 외로운 싸움을 하고 있는 목숨 앞에 힘내라고 손을 한 번 잡아 줄 수도 있었는데, 내일이라는 시간이 Y형 앞에 기다리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더라면 그렇게 매정하게 굴진 않아't을 텐데……. 해가 저물도록 숨어서 울었다. 죽어 가는 이웃에게 최선을 다하지 못한 가책은 참으로 오랜 시간 내 가슴에 멍이며 짐으로 남았다.
오랜만에 남편이랑 그곳을 찾았다. 3년을 살았던 곳인데도 이젠 낯설다. 떠날 사람은 이미 각자 서로의 길로 떠나 버리고 새로운 사람들로 채워져 있다. 기도 산에 올랐다. 호흡이 있는 동안 내 앞에 있는 사람에게 최선을 다하자던 다짐마저도 희미해진 자신을 깨닫는다. 내일이라는 시간이, 누군가에게는 이승에서 맞이할 수 없는 시간이기도 한 것을, 그때 나는 왜 몰랐던고?(2005.7.)
전북대학교평생교육원 수필창작반 유영희
Y형을 만난 곳은 생명을 보장할 수 없다던 20여 년 전, 어느 기도원에서였다. 나보다 서너 살 연상이었다. 병원에서는 손을 쓸 수 없다는 말기암환자나 불치병 환자들이 모여든 곳에, 그는 간질이라는 병을 가지고 왔었다. 간질은 당장 생명과 연관되는 병은 아닌지라 Y형은 혼자 머물며 원내 야간경비 봉사를 하였다. 말이 없고 어쩌다 눈이라도 마주치면 큰 눈이 더 커지는 묘한 웃음을 지었다. 자정을 넘긴 시각, 기도를 마치고 내려오면 어디선가 불쑥 나타나 "배고프시죠?"하곤 빵이나 우유봉지를 들려주고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어둠 속으로 사라지곤 하였다.
어느 날, Y형과 한 방을 쓰는 사람이 불쑥 그를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어떻게 라니? 나는 남편과 아들이 둘이나 있는 가정 주부라고. 더구나 몸에 병이 들어 기도원까지 온 사람이 되지도 않은 말을 하고 그래요?" 머리끝까지 치미는 화를 삭일 수가 없었다. '병이 들어 이런 곳에 와 있으니 내가 그리 만만하고 우스워 보이는 걸까?' 심한 자괴감까지 들었다. Y형은 간질이 아닌 말기 뇌암환자라고 했다. 결혼하여 딸까지 하나 있는데 암 선고를 받고는 그 사실을 숨긴 채 이혼했다고 한다. 운영하던 양복점을 정리하여 전 재산을 아내와 딸에게 주었다고 한다. 병원에서는 이미 손을 든 상태라 죽을 자리를 찾아온 사람이란다. 희망을 잃어버린 그의 삶에 불현듯 한 여자가 기쁨이 되었다고 하더란다. 얼마 못살 사람이니 좀 따뜻하게 대해주길 부탁하며 상대방은 말을 마쳤다. 그 일이 있은 뒤 나는 Y형을 더 외면하였던 것 같다. 통증으로 인해 걸음을 걸을 수 없을 때 방석을 깔아놓고 태워주던 자전거며, 그가 건네는 모든 호의를 거절하였다. 무슨 말을 걸어와도 늘 비수를 품은 듯 매몰찬 대꾸를 던져 주었다.
몇 달이 지난 새벽, 사무실 앞이 소란스러웠다. 기도원 바로 옆에 사시는 동네 아저씨가 노발대발 야단이시다. 어떤 환자가 한밤중에 발작을 일으켜 아저씨네 깨밭을 다 뭉개버려 일년 농사를 망쳐놨다는 것이다. 실무자가 나서서 배상을 약속하고 간밤 깨밭에서 발작을 일으킨 환자를 찾았다. Y형이었다. 밤에 산 기도를 마치고 내려오다 경련과 발작이 일어나 뒹굴기 시작했는데 그때까지도 멈추질 않는 상태라고 했다.
주방 봉사자가 미음을 쑤어 보냈지만 Y형의 발작이 그치질 않아 물 한 모금도 넘길 수가 없단다. 그는 꼬박 이틀을 죽음과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집회가 있는 날, 봉사자들이 그를 들것에 실어 들여오는 게 보였다. 하던 일을 잠시 멈추고 그가 누여진 곳을 찾았다. 발작은 잠시 멈췄지만 그는 눈도 뜨지 못 할 만큼 탈진해 있었다.
"형! 나야. 알아보겠어?" 희미하게 눈 꼬리가 움직이는 듯 하더니 겨우 손가락을 까딱거린다. 물병에 빨대를 꽂아 그의 입에 갖다대었다. 힘겹게 거부의 몸짓을 보였다. "부탁인데 이 물 한 모금 빨아봐. 안 그럼 다신 형 안 본다." 그는 겨우 몇 모금의 물을 빨아 마셨다. 갈라 터져 피가 맺힌 입술은 얼마나 힘든 싸움을 하고 있는지 여실히 보여 주었다. 문득 그의 손을 잡아 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내 일이 바쁘다는 핑계로 그 자리를 떠나 버렸다. 시간은 내일도 존재하니까. 하지만 그 날 오후, 증세가 더욱 악화되어 Y형은 봉고차 뒷자리에 눕혀져 집으로 돌아갔다. 연락을 받은 어머니가 임종은 집에서 시킨다며 부랴부랴 데려 갔다는 것이다. 그리고 일주일 후, 집으로 돌아간지 이틀만에 그가 하늘나라로 떠났다는 소식을 들었다.
날마다 죽음과 더불어 사는 생활이라 특별한 아픔을 간직하지 않은 채 한달 여의 시간이 지났다. 누군가 찾는다는 말을 듣고 나가보니 초췌한 아주머니 한 분이 울고 계셨다. 나를 보자 대뜸 손을 잡고 서러운 울음을 터트렸다. "색시가, 색시가 우리 아들 가는데 물 한 모금 먹여줬어. 집에 가서 암 것도 못 먹고, 색시가 먹여 준 물이 우리 Y가 이승에서 먹은 마지막 물이었어." 아들 가는 길에 물 한 모금 먹게 해준 내가 고마워 해남 바닷가에서 몇 번인가 차를 갈아타고 이렇게 찾아 오셨단다. 갓 서른을 넘긴 젊은 아들을 앞세운 어머니의 설움이 맞잡은 손을 타고 꾸역꾸역 가슴으로 밀려들었다. 살아온 세월을 말해주는 어머니의 주름 깊은 까칠한 손은 앞으로 얼마나 더 힘든 세월을 견디어야 할는지…….
Y형의 어머니가 집으로 돌아가신 후 나는 기도 산에 올랐다. 나는 과연 마지막 가는 사람에게 최선을 다했는가? 한 번 더 물을 권할 수도 있었는데, 먼 길 떠날 준비를 하며 지독하게 외로운 싸움을 하고 있는 목숨 앞에 힘내라고 손을 한 번 잡아 줄 수도 있었는데, 내일이라는 시간이 Y형 앞에 기다리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더라면 그렇게 매정하게 굴진 않아't을 텐데……. 해가 저물도록 숨어서 울었다. 죽어 가는 이웃에게 최선을 다하지 못한 가책은 참으로 오랜 시간 내 가슴에 멍이며 짐으로 남았다.
오랜만에 남편이랑 그곳을 찾았다. 3년을 살았던 곳인데도 이젠 낯설다. 떠날 사람은 이미 각자 서로의 길로 떠나 버리고 새로운 사람들로 채워져 있다. 기도 산에 올랐다. 호흡이 있는 동안 내 앞에 있는 사람에게 최선을 다하자던 다짐마저도 희미해진 자신을 깨닫는다. 내일이라는 시간이, 누군가에게는 이승에서 맞이할 수 없는 시간이기도 한 것을, 그때 나는 왜 몰랐던고?(20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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