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토리 골 추억
2005.07.14 23:56
도토리 골 추억
전북대학교평생교육원 수필창작과정(기) 정현창
퇴근길 신호등 때문에 차가 멈추자 습관적으로 FM라디오를 켰다. 마침 라디오에선 귀에 익은 올드팝이 흐르고 있었다. “Well today I'm so weary……." 순간 온몸에 전율이 일었다. 문득 타임머신을 타고 4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갔다.
그때 겨울은 참 춥기도 했었다. 중학교 2학년 때였을 것이다. 우리 집에서 도토리 골 나무다리를 건너면 조그만 교회가 있었다. 그 날은 한 달 전부터 시작된 크리스마스 준비가 거의 끝나고 있었다. 연습을 마치고 늦은 밤 우연히 소녀와 단둘이 나무다리를 건너게 되었다. 겨울 달은 무척이나 밝았고 별 또한 참으로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다. 다리건너 우리 집 울타리에는 형제들이 우산대를 이용해 만들어 걸어놓은 십자 등과 커다란 별 등이 깜박깜박 졸고 있었다. 날씨가 추워서인지 인적은 드물었고 개들마저 짖지 않았다. 아무 말 없이 다리를 건너던 소녀가 아주 낮은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All for the Love of the Girl" 그때는 라디오도 없던 시절이었고 또한 중학교 2학년이라서 소녀가 부르는 팝송은 그야말로 나에겐 충격이고 황홀 그 자체였다. 그 소녀가 달빛을 타고 내려온 선녀처럼 생각되었다. 내 마음을 모르는 듯 소녀는 다리를 다 건너자 노래를 마치고 꾸벅 고개를 숙이곤 반대편 골목으로 팔딱팔딱 뛰어가 버렸다. 그리고 세월이 흘렀다. 그러던 어느 날 라디오에서 우연히 그 노래가 흘러나와서 알아보니 쟈니허튼의 '어느 소녀에게 바친 사랑'이란 노래였다. 그런데 까마득히 잊었던 그 소녀가 노래를 따라 왜 다시 생각나는 것일까? 이름은 물론 얼굴이며 목소리까지 몽땅 잊었지만 희미한 그 소녀가 나무다리 위에서 지금도 그 노래를 나에게 들려주는 것만 같다.
아버지는 약주를 무척 좋아 하셨다. 당시 트럭운전을 하셔서 자주 집을 비우셨던 아버지가 오랜만에 집으로 오시는 날에는 저 골목 어귀에서부터 혀가 꼬부라진 소리로 "오동추야 달이 밝아 오동동이냐 동동주 술타령이 오동동이냐……." 오동동 타령을 부르시면서 집에 들어오시면 자던 우리 6남매를 하나하나 깨우셔서 사온 사탕을 나눠주시곤 했었다. 참 정이 많은 아버지이셨다.
막내와 난 늘 우리 집을 대표하여 친척들의 애·경사에 참석하곤 했었다. 부산 등 장거리를 오갈 때면 라디오를 크게 켜놓고 함께 노래를 부르곤 했었는데, 동생은 김종찬의 '당신도 울고 있네요'가 나오면 감정을 잡아가면서 멋지게 불렀다. "당신은 울고 있네요. 잊은 줄 알았었는데, 찻잔에 어리는 추억을 보며 당신도 울고 있네요……."
그녀는 역전 오거리에 있던 다방으로 날 불러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내 마음을 물어보았으나 난 거절했었다. 아무 말 없이 내 이야기를 다 듣던 그녀는 뮤직 박스로 다가가 DJ에게 노래를 한 곡 신청해놓고 다방에서 나가버렸다. "당신은 모르실 거야 얼마나 사랑했는지 세월이 흘러가면은 그때서 뉘우칠 거야……." 그 당시 최고의 히트곡인 혜은이의 데뷔 곡 '당신은 모르실 거야'가 다방 안에서 안개처럼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있었다.
사랑하는 사람들은 모두 지금 내 곁을 떠나갔지만 그때의 음악이 흐르면 음악을 타고 살며시 내 마음속으로 찾아 들곤 한다. 물론 그 사람이 그 노래를 좋아했고, 너무 잘 불러서 기억나는 것이 아니라 우연히 그 사람과 노래가 함께 내 추억 속에 각인되었기 때문이리라. 과연 나는 다른 사람들의 기억 속에 어떤 노래와 함께 어떤 이미지로 각인되었을까. 원래 음치인 나는 노래하기를 무척이나 싫어했고 지금도 노래방은 질색이다. 고등학교 때 소풍을 가서 술래가 되면 노래를 해야 했는데 그때마다 갑돌이와 갑순이를 불렀고, 졸업앨범 사인 장에도 '갑돌이 현' 이라고 써놓았다. 친구들 중에 단 한 명이라도 '갑돌이와 갑순이'를 들으면 나를 기억할까?
지금이라도 아주 멋진 노래를 한 곡 배워야 하려나 보다. 사랑하는 사람들의 추억 속에 내 멋진 노래를 각인시켜 그 노래와 함께 영원히 나를 기억하게 하고 싶다. 어느새 라디오에선 노래가 바뀌어 제수 씨가 시집와서 처음에 불렀던 신형원의 '개똥벌레'가 흐르고 있다. “아무리 우겨 봐도 어쩔 수 없네. 저기 개똥무덤이 내 집인걸…….” (2005. 7. 15)
전북대학교평생교육원 수필창작과정(기) 정현창
퇴근길 신호등 때문에 차가 멈추자 습관적으로 FM라디오를 켰다. 마침 라디오에선 귀에 익은 올드팝이 흐르고 있었다. “Well today I'm so weary……." 순간 온몸에 전율이 일었다. 문득 타임머신을 타고 4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갔다.
그때 겨울은 참 춥기도 했었다. 중학교 2학년 때였을 것이다. 우리 집에서 도토리 골 나무다리를 건너면 조그만 교회가 있었다. 그 날은 한 달 전부터 시작된 크리스마스 준비가 거의 끝나고 있었다. 연습을 마치고 늦은 밤 우연히 소녀와 단둘이 나무다리를 건너게 되었다. 겨울 달은 무척이나 밝았고 별 또한 참으로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다. 다리건너 우리 집 울타리에는 형제들이 우산대를 이용해 만들어 걸어놓은 십자 등과 커다란 별 등이 깜박깜박 졸고 있었다. 날씨가 추워서인지 인적은 드물었고 개들마저 짖지 않았다. 아무 말 없이 다리를 건너던 소녀가 아주 낮은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All for the Love of the Girl" 그때는 라디오도 없던 시절이었고 또한 중학교 2학년이라서 소녀가 부르는 팝송은 그야말로 나에겐 충격이고 황홀 그 자체였다. 그 소녀가 달빛을 타고 내려온 선녀처럼 생각되었다. 내 마음을 모르는 듯 소녀는 다리를 다 건너자 노래를 마치고 꾸벅 고개를 숙이곤 반대편 골목으로 팔딱팔딱 뛰어가 버렸다. 그리고 세월이 흘렀다. 그러던 어느 날 라디오에서 우연히 그 노래가 흘러나와서 알아보니 쟈니허튼의 '어느 소녀에게 바친 사랑'이란 노래였다. 그런데 까마득히 잊었던 그 소녀가 노래를 따라 왜 다시 생각나는 것일까? 이름은 물론 얼굴이며 목소리까지 몽땅 잊었지만 희미한 그 소녀가 나무다리 위에서 지금도 그 노래를 나에게 들려주는 것만 같다.
아버지는 약주를 무척 좋아 하셨다. 당시 트럭운전을 하셔서 자주 집을 비우셨던 아버지가 오랜만에 집으로 오시는 날에는 저 골목 어귀에서부터 혀가 꼬부라진 소리로 "오동추야 달이 밝아 오동동이냐 동동주 술타령이 오동동이냐……." 오동동 타령을 부르시면서 집에 들어오시면 자던 우리 6남매를 하나하나 깨우셔서 사온 사탕을 나눠주시곤 했었다. 참 정이 많은 아버지이셨다.
막내와 난 늘 우리 집을 대표하여 친척들의 애·경사에 참석하곤 했었다. 부산 등 장거리를 오갈 때면 라디오를 크게 켜놓고 함께 노래를 부르곤 했었는데, 동생은 김종찬의 '당신도 울고 있네요'가 나오면 감정을 잡아가면서 멋지게 불렀다. "당신은 울고 있네요. 잊은 줄 알았었는데, 찻잔에 어리는 추억을 보며 당신도 울고 있네요……."
그녀는 역전 오거리에 있던 다방으로 날 불러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내 마음을 물어보았으나 난 거절했었다. 아무 말 없이 내 이야기를 다 듣던 그녀는 뮤직 박스로 다가가 DJ에게 노래를 한 곡 신청해놓고 다방에서 나가버렸다. "당신은 모르실 거야 얼마나 사랑했는지 세월이 흘러가면은 그때서 뉘우칠 거야……." 그 당시 최고의 히트곡인 혜은이의 데뷔 곡 '당신은 모르실 거야'가 다방 안에서 안개처럼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있었다.
사랑하는 사람들은 모두 지금 내 곁을 떠나갔지만 그때의 음악이 흐르면 음악을 타고 살며시 내 마음속으로 찾아 들곤 한다. 물론 그 사람이 그 노래를 좋아했고, 너무 잘 불러서 기억나는 것이 아니라 우연히 그 사람과 노래가 함께 내 추억 속에 각인되었기 때문이리라. 과연 나는 다른 사람들의 기억 속에 어떤 노래와 함께 어떤 이미지로 각인되었을까. 원래 음치인 나는 노래하기를 무척이나 싫어했고 지금도 노래방은 질색이다. 고등학교 때 소풍을 가서 술래가 되면 노래를 해야 했는데 그때마다 갑돌이와 갑순이를 불렀고, 졸업앨범 사인 장에도 '갑돌이 현' 이라고 써놓았다. 친구들 중에 단 한 명이라도 '갑돌이와 갑순이'를 들으면 나를 기억할까?
지금이라도 아주 멋진 노래를 한 곡 배워야 하려나 보다. 사랑하는 사람들의 추억 속에 내 멋진 노래를 각인시켜 그 노래와 함께 영원히 나를 기억하게 하고 싶다. 어느새 라디오에선 노래가 바뀌어 제수 씨가 시집와서 처음에 불렀던 신형원의 '개똥벌레'가 흐르고 있다. “아무리 우겨 봐도 어쩔 수 없네. 저기 개똥무덤이 내 집인걸…….” (2005. 7.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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