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양으로 가는 길

2005.07.24 17:18

이은재 조회 수:91 추천:6

담양으로 가는 길
전북대학교평생교육원 수필창작과정(야) 이은재



죽향(竹鄕)? 문향(文鄕)? 사림의 고장 추성고을로 떠나는 들녘은 초원 위에 핀 망초꽃의 군락으로 눈꽃을 뿌려 놓은 듯한 섬광이었다. 옥정호에 피어난 안개 때문인가. 운무에 덮인 산골짜기에서 물보라가 하롱하롱 피어올랐다. 모악터널을 지나 끝없이 펼쳐진 수려한 산세에 내 마음도 승화되어 옥정호 운무처럼 훨훨 날았다.


순창과 담양의 경계에 놓인 강천산은 호남의 소금강으로 불릴 만큼 강천호를 끼고 이어지는 강 숲이 매혹적이었다. 반영(反影)에 비친 강물 속에 또 하나의 산이 바람 불 때마다 작은 파문을 일으키며 일렁였다. 산 벚나무, 넝쿨장미, 금계국, 망초꽃의 군락으로 투영된 강 숲은 어찌나 아름답던지 바람도 그냥 가지 못하고 조망하고 있었다. 40미터의 벼랑에서 떨어지는 병풍폭포의 위용에 눈이 시렸다. 세차게 떨어지는 물줄기는 연어 떼들의 모천회귀처럼 강인한 생명력이 있었다. 병풍바위 밑을 지나오면 죄가 사해진다는 전설에 면죄 받지 못한 죄를 용서받기 위해 나도 언젠가는 병풍바위 밑을 지나리라 생각했다. 수정 같은 물결 속에서 유영하는 쉬리 떼들의 해맑은 눈동자를 보려고 다가가자 놀라서 바위틈으로 숨어버렸다. 짓궂은 아이들이 돌멩이를 던지며 쫓아갔지만 도도한 빛이 감도는 벽계수엔 파문만 일었다. 복잡한 국립공원의 소란스러움보다 한국 최초의 군립공원 강천산은 적요해서 더 청정했다. 푸짐하게 먹고 노는데 더 기쁨이 많은 한국인들의 습성 탓인가, 마음껏 신선한 공기를 마시고 싶은 내게 고기 굽는 삼겹살 냄새는 이곳 산사에서조차 도시의 공해를 추억하게 했다. 병풍바위에서 떨어지는 낙숫물 소리는 오카리나 연주처럼 강천산 계곡을 싱그럽게 울렸다.


절도 있는 근위병들이 열병식을 하는 모습인가. 2열 종대로 늘어선 정갈한 모습은 사관생도들의 행보처럼 기품이 있었다. 순창에서 담양으로 가는 길목에서 만난 메타세콰이어 가로수 길, 그 경이로움에 찬탄을 금할 수 없었다. 삼각형 모양으로 좌우대칭을 이루며 왕성한 광합성을 시작한 잎사귀들은 바람이 불 때마다 진초록 실루엣을 연출하고 있었다. 오래 전에 심어졌던 이 가로수는 도로개발의 광풍에 휘몰려 베어질 경각에 있었지만 가로수 길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구명운동으로 살아남았다니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담양에서 순창방면으로 이어지는 국도 20리 길과 광주에서 담양으로 넘어오는 29번 국도는 아름다운 메타세콰이어 가로수 길로 탄성을 지르게 한다. 태고의 신비를 간직한 나무, 1억 년 전 백악기 공룡시대 화석에서도 발견되어 '살아있는 화석나무'로도 불리는 메타세콰이어는 침엽수림이면서도 잎은 한없이 유연하다. 봄에는 격동을 이겨낸 생명력으로, 여름에는 녹음 짙은 그늘로, 가을에는 금빛 단풍으로, 겨울에는 눈꽃의 풍광으로 사계의 비경을 자아내는 메타세콰이어 가로수 길이 너무도 아름다워서 계절이 바뀔 때마다 다시 와 보리라 생각했다.


문득 바라본 들녘에 냇가를 따라 늘어선 아름드리 나무들이 시선을 꽉 차게 했다. 거목들이 행진하고 있는 저 냇가엔 무엇이 있는 것일까. 궁금한 나는 일행 속에서 이탈하여 천변으로 달려갔다. 그곳에서 영산강의 시원인 담양천(관방천)과 300년의 수령이 넘는 천연기념물 관방제림의 풍광을 만날 수 있었다. 담양천을 따라 늘어선 나무들은 번호표를 달고 있었다. 가장 걷고 싶은 숲길 1위에 선정되었다는 관방제림의 푸조나무와 팽나무 등 고목들은 연리지(連理枝)처럼 얽혀 뿌리를 드러내 놓고 기나긴 풍상을 말하고 있었다. 담양천의 범람을 막기 위해 심어졌다는 관방제림의 나무들은 당산목이나 지신목의 수호신으로서도 숭배를 받으며 마을사람들과 애환을 같이 하였을 것이다. 온갖 시련과 역경들을 하나하나 나이테 속에 감추며 그 오랜 세월동안 푸른 잎을 부활시키는 고목들을 보며 나약한 인간들은 거목의 가슴 한 자락에라도 의지하고 싶어졌을 것이다. 부산 수영동의 푸조나무가 오백 년이 넘은 풍상에도 장수를 하는 것은 그를 의지하려는 마을사람들에 대한 책임감 때문이 아니었을까. 푸조나무 아래에 서니 물푸레나무를 담근 푸른 물이 뚝뚝 떨어지는 듯 싱그럽다.

      나무도 아닌 것이 풀도 아닌 것이
      곧게 자라기는 누가 그리 시켰으며 또 속은 어이하여 비어 있는가
      저리하고도 네 계절에 늘 푸르니 나는 그것을 좋아하노라.

윤선도의 '오우가'에 나오는‘죽(竹)’을 노래하며 '죽녹원(竹綠苑)'에 오르자 대나무들이 죽향(竹香)을 풍기며 환호했다. 돌계단을 하나하나 걸어서 오르면 대숲으로 둘러싸인 들머리에 죽녹원이란 간판을 단 청살문이 나온다. 이곳엔 온통 올곧게 솟아오른 대나무만 선비의 절개와 기상처럼 하늘을 찌른다. 사각사각 스치는 댓잎소리는 의(義)를 목숨처럼 여기던 사림의 사대부들이 풍기던 기품인가. 국가의 선택을 앞에 두고 마지막 담판을 짓던 이방원의 '하여가'에 응수한 정몽주의 '단심가'가 곧게 솟아오른 대나무 우듬지를 맴돌며 눈을 부릅뜨고 있었다.


충효가 실종되어 가는 세상에 선비정신도 역사 속으로 사라져 가는가. 선비의 모습으로 비유되던 대나무의 곧은 절개와 기상을 인식하기보다 관광객들은 음이온이 쏟아진다는 죽림욕(竹林浴)을 즐기려는 낭만에 더 무게를 두고 있는 듯했다. 조금은 아쉬운 마음인데, 한켠에 시화가 놓여 있다. 조상을 모욕한 죄인이 어찌 감히 하늘을 바라볼 수 있는가, 평생 복상(服喪)을 하여도 다 씻지 못할 죄인이라며 평생 삿갓을 쓰고 유랑하던 방랑시인, 해학시인, 풍류시인 김삿갓(김병연)의 시 앞에서 발걸음이 멈춰졌다.


  떠돌던 나에게 삿갓은 빈배와 같아
  한번 쓴 것이 사십 평생을 지냈구나
  목동이 가벼운 차림으로 소 먹이러 나갈 때 쓰고
  늙은 어부가 고기 잡을 때 쓰던 것이라
  술에 취하면 벗어서 꽃피는 나무에 걸었고
  흥겨우면 벗어 들고 다락에 올라 달구경하였네
  속인의 의관이야 모두 겉치레지만
  내 삿갓이야 모진 풍우에도 근심 안 주는 고마운 의관이었지


오랫동안 병상에 누워 계신 어머니가 겨울에 대나무 순을 먹고 싶다고 하자 맹종은 눈 덮인 산을 헤매었으나 구할 수 없어 어머니에게 효행을 할 수 없음을 슬퍼하며 눈물을 흘리자, 눈물이 떨어진 자국에서 죽순이 돋아나 어머니께 효행을 하였다는 맹종죽에 대한 중국 설화 한 토막을 들으며 맹종죽을 바라보니 모자의 눈물이 투영되어 있는 듯 애틋했다. 그래서인지 맹종죽은 눈이 녹는 이른봄에 제일 먼저 솟아오른다고 한다. 모기가 많은 대나무 숲에 모기를 퇴치하기 위해 편백나무를 심었다는 부연설명까지 피력하는 가이드의 얼굴에 땀방울이 방울방울 맺혔다.


에메랄드 빛 댓잎 술은 그 빛깔이 너무도 청초해서 입으로 마시기 전에 눈에서 먼저 취해버렸다. 여름에 밥이 상하자 하인은 주인 몰래 대밭에 쉰밥을 버리고 주인에게 들킬까봐 댓잎으로 덮어놓았다. 어느 날 주인이 대밭 옆을 지나다가 향기에 끌려 댓잎을 들춰보니 향긋한 술이 되어 있었다. 그것이 댓잎 술의 기원이 되었다고 한다. 댓잎 술 한 잔에 취기가 도니 대숲 아래 죽순모양을 한 전등이 이채롭다. 죽순에 불이 밝혀진 밤은 얼마나 낭만적일까. 오롯이 우는 귀뚜라미의 풍악소리에 흐느끼는 가을밤은 또 얼마나 적요할까. 대나무 잎에서 떨어지는 이슬을 먹고 자란다는 죽로차(竹露茶) 한 잔 마시면 나도 선비가 될 수 있을까.


대나무는 선비다. 지표면에서부터 우듬지 끝까지 곧게 뻗은 자태를 보면 선비의 절개를 보는 듯하여 우러러 보게 된다. 선비는 오직 한길만을 지향한다. 풀무 불에 담금질할수록 벼린 칼날처럼 선비는 학정 속에서 더 저항을 얻는다. 지천에서 자라고 있는 대나무를 보며 담양고을의 선비들은 곧은 절개와 기상을 품었을 것이다. 담양이 사림(士林)문화의 산실이었던 역사를 유추해 보더라도 결코 대나무와 무관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대나무는 비움으로써 높이 오를 수 있었고, 칸칸마다 마디를 만들어 성찰함으로써 욕심을 절제하였다. 부러질지언정 타협하지 않았다. 삭풍 부는 엄동설한에 더 꼿꼿한 자태로 푸른빛을 발했다. 댓잎에 스치는 저 바람소리는 신라 감은사에 울리던 만파식적 피리소리인가,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외쳤던 어느 이발사의 함성인가, 비분강개하던 사육신의 눈물인가, 아! 죽장에 삿갓 쓰고 팔도를 유랑 걸식하던 김삿갓의 시름소리인가.


소쇄원으로 가는 길에 만났던 추성고을(담양)은 거대한 그린 필드였다. 창공이 지표면까지 내려온 듯 푸른 물결만 가득했다. 눈보라 속에서도 푸름을 잃지 않는 대나무, 정갈한 침엽수림으로 하늘을 가린 메타세콰이어 가로수 길, 관방제림의 푸조나무와 팽나무의 원시림, 세상과의 타협을 거부하고 숨어 들어온 사림(士林)들이 자연에 칩거하며 시문을 펼쳤던 소쇄원, 송강 정철의 혼이 담긴 한국가사문학관에 이르기까지 죽향이자 문향이며 사림의 고장인 담양을 나는 뜨겁게 사랑할 것 같다. 또 한 계절이 바뀌면 나는 그 가로수 길과 그 대나무 숲길, 그 푸조나무 숲길을 다시 걸어보리라. 벗들과 지란을 꽃피우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