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 젖은 김밥
2005.08.09 21:46
눈물 젖은 김밥
전북대학교평생교육원 수필창작과정(기) 정현창
큰아들은 김밥을 싫어한다. 아들이 초등학교 다닐 때 일이었다. 전날 만든 김밥을 도시락에 담아 갔었다. 점심시간이 되어 맛있게 생긴 김밥을 보자 친구들이 우르르 몰려와 한 개씩 집어먹었다. 그런데 조금 후에 일이 터졌다. 친구들이 심한 복통을 호소하며 괴로워하다 몇 명은 병원에서 치료까지 받고 왔단다. 식중독에 걸렸던 모양이다. 그 당시 담임선생님이 전화를 걸어와 그저 미안하다고 사과만 하고 끝났으나, 어린 아들은 친구들의 원망을 들으며 얼마나 힘들어했을까? 그 후로 아들은 김밥을 좀처럼 먹지 않는다.
김밥은 역시 엄마가 손수 정성껏 만든 것이어야 제 맛이 난다. 김밥을 말고 있는 옆에 쪼그리고 않아 엄마의 눈치를 보면서 한 개씩 주워 먹는 것이 더욱 맛있다. 하지만 요즘은 24시간 김밥 집에서 얼마든지 김밥을 먹을 수 있다. 아무 때나 1,000원만 있으면 김밥 한 줄을 먹을 수 있다. 엄마도 이젠 김밥을 말지 않는다. 소풍 갈 때도 김밥 집에서 금방 만든 김밥을 사준다. 이제는 누구나 집에서 만들어먹지 않고 김밥 집에서 사 먹는 게 상식화 되어버렸다.
김밥의 종류도 참 많다. 야채김밥, 치즈김밥, 김치김밥, 참치김밥, 쇠고기김밥, 누드김밥, 모듬김밥, 계란말이김밥 등이 있고, 김밥 집으론 그 유명한 충무김밥이 있으며, 김밥나라, 김밥천국도 있다. 아예 편의점에선 삼각 김밥도 판다.
35년 전의 일이다. 그래도 우리 고장에서는 제일 잘 나간다는 J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그 때만해도 장래가 보장되는 엔지니어가 되기 위하여 공대로 진학하려고 했으나 집안이 어려운데다 육군 장교출신 외삼촌이 엄마를 꼬여서 육군사관학교를 지원했었다. 까다로운 체력검사, 필기시험을 통과하고 신체검사를 했는데 몸무게가 미달되어서 삶은 당근을 열 개나 먹고 겨우 통과했었다. 고등학교 졸업식 날 다른 친구들은 졸업기분에 들떠 있었으나 나는 3등 완행열차를 타고 서울로 올라갔다. 육사는 1월이면 어려운 관문을 통과하여 선발된 신입생이 가 입학하여 기초 군사훈련을 받는다. 수많은 과외교육과 기회교육 시간을 통하여 군 생활 및 생도생활에 필요한 기초지식을 습득하고, 주기적으로 부여되는 육체적, 정신적 한계상황을 통해 동기애와 자신을 극복하는 법을 체득하게 된다. 이 모든 과정을 극복해야 사관생도로서의 자질을 갖추었다고 인정받게 되며 비로소 입학과 더불어 사관생도에게 부여되는 특전과 혜택을 누리게 되는 것이다. 기초 군사훈련은 Beast(금수:禽獸)교육이라 불리 는 아주 힘든 교육이었다. 나약한 민간인을 군인으로 만드는 인간 용광로였다. 힘든 하루 훈련이 끝나고 침대에 누웠을 때 화랑대역을 통과하는 완행열차의 기적소리에 얼마나 베개를 적셨는지 모른다.
드디어 6주 교육을 마치고 3월 초에 입교식이 있었다. 다른 생도들은 오랫동안 너무 고생했기 때문에 입교식 날 가족들이 면회 오기만을 목이 빠져라 기다렸다. 하지만 나는 집안 사정이 어려워 별 기대는 하질 않았지만 가족들이 몹시 보고 싶었다. 화랑연병장에서 무사히 입교식을 마치고 젊은 사자들이 용솟음치는 기개를 나타내는 축조와 두 마리의 사자가 힘을 합하는 용맹, 하늘을 찌를 듯 솟아오르는 분수로 1962년 건립된 화랑천(花郞泉) 주변에서 첫 면회가 있었다. 가족들과 생도들은 껴안고 울면서 오랜만의 재회의 기쁨을 나누었다. 준비해 온 통닭, 불고기 등 푸짐한 음식을 먹으며 그 동안의 힘든 훈련 이야기로 시간가는 줄을 몰랐다. 그러나 몇 바퀴 째 가족들을 찾아보아도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동기생들이 같이 먹자고 하는 걸 슬그머니 내무반으로 들어와 침대에 누워버렸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면회시간이 거의 끝나갈 무렵 스피커에서 나를 찾는 소리가 들렸다. 얼른 화랑천으로 뛰어나가니 가녀린 작은누나와 작은형이 서있지 않은가. 꿈만 같은 재회였다. 전주에서 일찍 출발했으나 3등 완행열차로 청량리를 거쳐 태릉까지 오는 데 거의 하루가 걸렸단다. 먼 거리를 오느라 피로에 지친 가족들은 생각 못하고 그동안 내가 고생한 이야기를 하고 또 했었다. 내 이야기를 들으며 눈물어린 눈으로 수없이 애썼다고 말하던 누나가 보자기를 풀어 집에서 싸온 김밥을 꺼냈다. 엄마가 보낸 김밥은 너무 오랜 시간이 흘러 싸늘하게 식어 있었다. 이 김밥을 손수 싸시면서 얼마나 눈물을 흘렸을까? 김밥 하나를 집어 들다가 그만 김밥 위로 눈물을 펑펑 쏟고 말았다. 그 날 눈물을 흘리며 먹은 싸늘한 김밥은 엄마와 함께 영원히 내 마음속에 남아 있을 것이다.(2005. 8. 10)
전북대학교평생교육원 수필창작과정(기) 정현창
큰아들은 김밥을 싫어한다. 아들이 초등학교 다닐 때 일이었다. 전날 만든 김밥을 도시락에 담아 갔었다. 점심시간이 되어 맛있게 생긴 김밥을 보자 친구들이 우르르 몰려와 한 개씩 집어먹었다. 그런데 조금 후에 일이 터졌다. 친구들이 심한 복통을 호소하며 괴로워하다 몇 명은 병원에서 치료까지 받고 왔단다. 식중독에 걸렸던 모양이다. 그 당시 담임선생님이 전화를 걸어와 그저 미안하다고 사과만 하고 끝났으나, 어린 아들은 친구들의 원망을 들으며 얼마나 힘들어했을까? 그 후로 아들은 김밥을 좀처럼 먹지 않는다.
김밥은 역시 엄마가 손수 정성껏 만든 것이어야 제 맛이 난다. 김밥을 말고 있는 옆에 쪼그리고 않아 엄마의 눈치를 보면서 한 개씩 주워 먹는 것이 더욱 맛있다. 하지만 요즘은 24시간 김밥 집에서 얼마든지 김밥을 먹을 수 있다. 아무 때나 1,000원만 있으면 김밥 한 줄을 먹을 수 있다. 엄마도 이젠 김밥을 말지 않는다. 소풍 갈 때도 김밥 집에서 금방 만든 김밥을 사준다. 이제는 누구나 집에서 만들어먹지 않고 김밥 집에서 사 먹는 게 상식화 되어버렸다.
김밥의 종류도 참 많다. 야채김밥, 치즈김밥, 김치김밥, 참치김밥, 쇠고기김밥, 누드김밥, 모듬김밥, 계란말이김밥 등이 있고, 김밥 집으론 그 유명한 충무김밥이 있으며, 김밥나라, 김밥천국도 있다. 아예 편의점에선 삼각 김밥도 판다.
35년 전의 일이다. 그래도 우리 고장에서는 제일 잘 나간다는 J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그 때만해도 장래가 보장되는 엔지니어가 되기 위하여 공대로 진학하려고 했으나 집안이 어려운데다 육군 장교출신 외삼촌이 엄마를 꼬여서 육군사관학교를 지원했었다. 까다로운 체력검사, 필기시험을 통과하고 신체검사를 했는데 몸무게가 미달되어서 삶은 당근을 열 개나 먹고 겨우 통과했었다. 고등학교 졸업식 날 다른 친구들은 졸업기분에 들떠 있었으나 나는 3등 완행열차를 타고 서울로 올라갔다. 육사는 1월이면 어려운 관문을 통과하여 선발된 신입생이 가 입학하여 기초 군사훈련을 받는다. 수많은 과외교육과 기회교육 시간을 통하여 군 생활 및 생도생활에 필요한 기초지식을 습득하고, 주기적으로 부여되는 육체적, 정신적 한계상황을 통해 동기애와 자신을 극복하는 법을 체득하게 된다. 이 모든 과정을 극복해야 사관생도로서의 자질을 갖추었다고 인정받게 되며 비로소 입학과 더불어 사관생도에게 부여되는 특전과 혜택을 누리게 되는 것이다. 기초 군사훈련은 Beast(금수:禽獸)교육이라 불리 는 아주 힘든 교육이었다. 나약한 민간인을 군인으로 만드는 인간 용광로였다. 힘든 하루 훈련이 끝나고 침대에 누웠을 때 화랑대역을 통과하는 완행열차의 기적소리에 얼마나 베개를 적셨는지 모른다.
드디어 6주 교육을 마치고 3월 초에 입교식이 있었다. 다른 생도들은 오랫동안 너무 고생했기 때문에 입교식 날 가족들이 면회 오기만을 목이 빠져라 기다렸다. 하지만 나는 집안 사정이 어려워 별 기대는 하질 않았지만 가족들이 몹시 보고 싶었다. 화랑연병장에서 무사히 입교식을 마치고 젊은 사자들이 용솟음치는 기개를 나타내는 축조와 두 마리의 사자가 힘을 합하는 용맹, 하늘을 찌를 듯 솟아오르는 분수로 1962년 건립된 화랑천(花郞泉) 주변에서 첫 면회가 있었다. 가족들과 생도들은 껴안고 울면서 오랜만의 재회의 기쁨을 나누었다. 준비해 온 통닭, 불고기 등 푸짐한 음식을 먹으며 그 동안의 힘든 훈련 이야기로 시간가는 줄을 몰랐다. 그러나 몇 바퀴 째 가족들을 찾아보아도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동기생들이 같이 먹자고 하는 걸 슬그머니 내무반으로 들어와 침대에 누워버렸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면회시간이 거의 끝나갈 무렵 스피커에서 나를 찾는 소리가 들렸다. 얼른 화랑천으로 뛰어나가니 가녀린 작은누나와 작은형이 서있지 않은가. 꿈만 같은 재회였다. 전주에서 일찍 출발했으나 3등 완행열차로 청량리를 거쳐 태릉까지 오는 데 거의 하루가 걸렸단다. 먼 거리를 오느라 피로에 지친 가족들은 생각 못하고 그동안 내가 고생한 이야기를 하고 또 했었다. 내 이야기를 들으며 눈물어린 눈으로 수없이 애썼다고 말하던 누나가 보자기를 풀어 집에서 싸온 김밥을 꺼냈다. 엄마가 보낸 김밥은 너무 오랜 시간이 흘러 싸늘하게 식어 있었다. 이 김밥을 손수 싸시면서 얼마나 눈물을 흘렸을까? 김밥 하나를 집어 들다가 그만 김밥 위로 눈물을 펑펑 쏟고 말았다. 그 날 눈물을 흘리며 먹은 싸늘한 김밥은 엄마와 함께 영원히 내 마음속에 남아 있을 것이다.(2005. 8. 10)
댓글 0
| 번호 | 제목 | 글쓴이 | 날짜 | 조회 수 |
|---|---|---|---|---|
| 134 | 왕산의 비밀 | 김병규 | 2005.09.10 | 49 |
| 133 | 어머니,그 영광스러운 호칭 | 김학 | 2005.09.06 | 66 |
| 132 | 초막에서 만난 다산정신 | 양용모 | 2005.09.05 | 60 |
| 131 | 코스코스와 아이들 | 권영숙 | 2005.09.04 | 140 |
| 130 | 눈물의 의미 | 김병규 | 2005.08.30 | 60 |
| 129 | 호박꽃의 항변 | 정현창 | 2005.08.24 | 67 |
| 128 | 인생GPS | 유영희 | 2005.08.20 | 50 |
| 127 | 아이들의 스트레스 | 서향숙 | 2005.08.19 | 48 |
| 126 | 마스크 | 고명권 | 2005.08.16 | 42 |
| 125 | 굳게 닫힌 문 | 권영숙 | 2005.08.14 | 43 |
| » | 눈물 젖은 김밥 | 정현창 | 2005.08.09 | 51 |
| 123 | 새로운 사랑에 푹빠졌습니다 | 정현창 | 2005.08.08 | 57 |
| 122 | 영어로 읽어보는 사모곡 | 김학 | 2005.08.04 | 583 |
| 121 | 성묘 | 김재훈 | 2005.08.02 | 44 |
| 120 | 한 여름밤의 음악분수 쇼 | 장병선 | 2005.08.01 | 42 |
| 119 | 알몸 노출죄 | 정현창 | 2005.08.01 | 66 |
| 118 | 덕진공원의 새벽풍경 | 신영숙 | 2005.07.30 | 35 |
| 117 | 명함을 버릴 때 | 최화경 | 2005.07.27 | 44 |
| 116 | 누릉지 공적조서 | 정현창 | 2005.07.24 | 79 |
| 115 | 씻뻴하세요 | 유영희 | 2005.07.24 | 4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