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스크

2005.08.16 12:29

고명권 조회 수:42 추천:6

마스크 유감
전북대학교평생교육원 수필창작과정(야) 고명권

휴일이면 나는 가끔 근처 모악산을 비롯하여 가까운 산을 즐겨 찾는다. 때로는 내가 속한 직장의 등산동아리회원들이나 교회등산모임 회원들과 같이 가기도 하지만, 주로 아내와 자주 가는 편이다.

요즈음은 임신 8개월의 임산부 배를 연상케 하는 나의 복부지방을 제거할 요량으로 날마다 아침 일찍 일어나 삼천변을 걷는다. 나는 걷기를 좋아한다. 돈들이지 않고도 내 나름의 즐거움을 느끼며 건강을 유지할 수 있으니 걷기야말로 일석이조가 아닌가.

그런데 요즈음 등산이나 새벽 천변에 나타나는 새로운 현상 때문에 마음이 언짢다. 다름이 아니라 정체불명의 마스크가 주는 혐오감 탓이다. 마스크는 방진(防塵)·방독(防毒) 또는 외부의 유해광선이나 물질로부터 방어를 목적으로 얼굴을 가리는 기구다. 일반적으로는 병균·먼지 등이나 감기의 외부 확산을 막기 위해 코·입을 가리는 경우, 또는 자신의 얼굴이 남에게 알려지지 않도록 눈이나 얼굴을 가리는 물건이다. 그런데 이런 마스크가 등산과 새벽이나 야간 운동을 할 때 등장하고 있어 보기에 흉하다.
산을 찾거나 천변에서 운동하는 사람들 중에 어느 날부터인가 얼굴에 마스크를 쓴 사람이 하나둘 생겨나기 시작하더니 요즘에는 많은 사람들이 얼굴에 마스크를 쓰고 다닌다. 처음에는 주로 젊은 여인네들이 마스크를 썼지만 지금은 나이든 부인들이나 심지어는 중년남자들까지도 이 마스크를 착용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새벽운동이나, 휴일 등산길에 마주치는 낯선 사람들에게도 건강하고 해맑은 미소를 지으며 "안녕하세요?" 또는 "수고하십니다."라고 인사를 하여 서로 기분 좋고 유쾌한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그러나 이제는 정체불명의 마스크를 한 사람들이 새벽 천변에 나타나더니, 이어 산에서도 보이고, 요즘에는 밤에도 보인다. 어디 그 뿐인가. 시내 철공소의 용접기사에게서나 봄직한 검은 플라스틱 모자를 얼굴과 평행하게 눌러쓰고 운동을 하는 사람도 많다.
이 선캡은 야외활동을 할 때 운동모자 대신 간편하게 머리에 쓰고 햇빛의 각도에 따라 챙을 조절하는 편리한 물건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 선캡을 자신의 얼굴을 가리는 주요 방법으로 사용하고 있다. 맑은 날의 산길, 상쾌한 새벽길과 저녁 운동 길에서 마스크에 검은 선캡을 한 사람들은 썩 잘 어울리는 그림은 아니다.

공급이 수요를 창출한다고 하였던가? 어느 등산용품 생산업자가 등산이나 야외활동을 할 때 햇빛의 자외선으로부터 예쁜 얼굴과 눈을 보호하고자 이 마스크와 선캡을 개발했을 것이다. 미용과 시력보호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의 욕구와 맞아떨어져서 많은 매출을 올렸으리라. 이러한 물건들은 햇빛으로부터 얼굴과 눈을 보호하는데 아주 요긴한 장비이다. 그러나 새벽과 저녁 운동 길, 호젓한 산길에서 마스크를 착용하는 것은 결코 유쾌한 모습이 아니다. 자기 얼굴을 꼭 숨겨야할 특별한 사유가 있지 않다면……. 다른 사람들에게 시각적으로나 심적 부담을 주는 일이니 말이다.

언젠가 신문에서 이 같은 현상에 대한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즉 농촌형 의식을 갖고 도시생활을 하는 중·장년층에서 쉽게 볼 수 있는 현상이라는 것이다. 미국의 사회학자 W.F 오그번이 "급속도로 발전하는 물질문화에 대해 예의나 질서의식 또는 그에 따른 가치관의 변화에 보조를 맞추지 못하는 이른바 '문화지체(Cultural Lag)현상'"이라고 정의했다는 것이다. 특히 전주와 같은 곳이 문화지체현상이 심하다고 지적한다. 이렇듯 거창한 이론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이런 부자연스런 현상이 마치 시내 빌딩의 무질서한 간판처럼 보이는 것은 비단 나만의 느낌일까?
                                        (2005. 8.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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