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뚜레

2005.09.14 09:01

정현창 조회 수:69 추천:25

코뚜레
전북대학교평생교육원 수필창작과정(기) 정현창


   농협에서는 해마다 농촌을 주제로 전국사진공모전을 열고 있다. 나도 공모전에 출품하려고 일년 내내 농촌을 돌아다니며 열심히 사진을 찍었다. 모내기 풍경, 김매기, 가을 추수, 풍악놀이, 고구마 수확하는 모습도 촬영했었다. 그 중에 내가 출품했던 사진은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는 봄날 다락 논에서 늙은 농부와 함께 쟁기질하는 황소 사진과, 밀짚모자에 베 잠방이를 입은 농부가 삽과 괭이 등 농기구를 넣은 지게를 지고 저녁노을을 등지며 하루 일을 마치고 워이~ 워이 집으로 돌아가는 정말 평화로운 사진이었다. 도시 주위에선 그런 모습을 찾을 수 없어 촬영을 위하여 일부러 깊은 산골을 찾아가곤 했었다. 우직하고 느린 황소는 코뚜레를 따라 힘이 겨운지 거품을 흘리며 논을 가는 모습을 삼각대까지 바쳐놓고 역광으로 열심히 촬영했었다. 그리고 사라져 가는 아름다운 농촌풍경을 어렵게 촬영했다고 자랑스럽게 생각하곤 했었다.



   그동안 출품했다 낙방하여 반송된 사진들을 정리하다가 황소가 쟁기질하는 사진을 다시 보았다. 그러나 웬일인지 촬영했던 그 봄날의 아름다움은 전혀 보이질 않고 황소 코에 덩그렇게 꿰어있는 코뚜레와 입 주위에서 흐르는 거품만 클로즈업되어 보이는 건 웬일일까? 코뚜레에 꿰어 할 수없이 거품을 흘리면서 논을 갈았을 황소가 얼마나 힘들었을까? 요즘엔 코뚜레를 한 소를 보기 어렵게 되었다. 소를 대량으로 키워서 비육우를 생산하는 요즘의 농장들은 코뚜레 같은 것은 하질 않는다. 그런데 지금도 깊은 산골에서 경운기를 사용할 수 없는 다락 논처럼 쟁기질을 해야 할 농가에서는 황소에 코뚜레를 하곤 한다. 코뚜레를 해야할 송아지는 생후 4∼5개월 이후에 짚으로 만든 <목사리>라는 고삐를 맨다. 그 후 1년이 지나면 쇠코를 뚫어 코뚜레를 꿴다. 코뚜레는 주로 노간주나무로 만든다. 둥그렇게 말아 만든 노간주나무 코뚜레는 질겨 어지간해서는 부러지지 않아 코뚜레로는 제격이라고 한다. 코뚜레의 상처는 2주정도 지나면 완전히 아물게 되므로, 적어도 한 달만에 굴레를 짜게 되며 이때 앞걸이와 목사리를 제거한다. 코뚜레를 걸어서 이마 위로 넘기고 여기에 고삐가 연결된다. 그때부터 송아지의 일생은 완전히 자유를 잃어 송아지의 의지는 완전히 무시되고 주인의 의지에 따라 쟁기질도 하고 짐도 나를 수밖에 없게 된다.



   코뚜레에 꿰어 자유를 잃고 슬픈 표정으로 주인의 손에 끌려가는 황소의 모습에서 요즘 세상에 힘없이 끌려가는 민초들의 모습을 본다. 얼마 전에 서점에 들렀다가 '날마다 사표를 쓰는 남자'란 책을 보았다. 사는 게 얼마나 힘들었으면 매일 사표를 쓰고 싶을까? 날마다 사표를 쓰는 남자들은 코뚜레가 꿰어진 남자들일게다. 현대를 살아가는 어느 누구도 자유로울 수 있을까? 충분히 이해가 가고도 남는다. 성인 남자 모두는 회사에게, 가족에게, 아니면 채권자에게 코뚜레가 꿰어서 자기 의지와는 상관없이 곰쓸개를 씹는 심정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는 게 아닐지. 자유를 찾아 코뚜레를 빼어버리고 살아가고 싶지만 또 다른 인연과 책임 때문에 빼지 못하고 독한 술 한 잔으로 답답한 마음을 달래곤 한다. 그래서 우리나라 사람들이 독한 술 먹는 양이 세계에서 4번째라고 하지 않던가.



   또한  조그만 회사를 경영하면서 나와 같이 근무하는 직원들에게 급료라는 코뚜레로 그들의 인격과 사생활까지 억압하고 있는 게 아닐지. 나의 경험과 권위라는 타성에 젖은 생각의 코뚜레로 내 아이들과 주위사람들에게 독선과 아집으로 슬픔과 분노를 안겨주지는 않는지. “왜 아빠 말만 맞아야해!” 라고 외치며 방문을 뛰쳐나갔던 큰아이의 원망에 찬 눈이 오늘 따라 선명히 떠오른다. 사랑이라는 코뚜레를 꿰어 가족을 자기 소유물로 만들고, 교육이라는 코뚜레를 만들어 학생들에게서 개성과 자유를 찬탈하는 사회. 자비와 믿음이라는 코뚜레를 꿰어 천국과 지옥으로 끌고 다니는 종교인들은 또한 얼마나 많은지.  



   눈이 시리도록 맑은 가을하늘을 보면서 내가 다른 이들에게 꿰어놓았던 코뚜레를 모두 빼내어 그들 대신 나에게 절제와 겸손이라 코뚜레를 꿰고 싶다. 또한 봉사와 사랑이라는 코뚜레도 꿰고 싶다.
(2005. 9.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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