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추석 요즘 추석
2005.09.16 08:38
옛날 추석 요즘 추석
국제펜클럽한국본부 부 이사장 김 학
해마다 추석은 어김없이 찾아온다. 오라지 않아도, 기다리지 않아도 때가 되면 성큼성큼 찾아온다. 기름 값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아도, 지구촌 어느 구석에서 전쟁이 터지고 재앙이 발생해도 추석이면 저마다 차를 몰고 고향을 찾는다. 방송과 신문들은 민족의 대 이동이라고 대서특필한다.
반세기 전 내가 시골에 살 때는 추석이 그렇게 움직이는 명절인 줄 몰랐었다. 농경사회 시절이어서 그랬는지, 풍년이 들면 차례상이 좀 푸짐했을 뿐, 멀리서 찾아올 친척도 없었다. 오히려 농사를 거들어주던 머슴이 자기네 집으로 가버리니 우리 집은 식구가 더 줄어서 허전했었다. 설날에는 세배하는 이들이 찾아와 집안이 벅적대며 웃음소리로 가득했지만 추석은 오히려 쓸쓸한 날이었다.
멋진 한옥차림의 전주 역으로 마중을 나갔다. 때 맞춰 서울에서 출발한 무궁화호 열차가 숨을 헐떡이며 역구내로 들어섰다. 꾸역꾸역 기차에서 내린 귀성객들은 저마다 손에 선물 꾸러미를 들고 밝은 표정으로 출구를 빠져나온다. 조금 기다리니 큰아들 내외와 손주 동현이가 나왔다. 지난 8월에 돌을 맞은 동현이는 제 엄마의 등에 업힌 채 나를 보며 생긋생긋 웃었다. 얼마나 예쁜지……. 선인들은 이럴 때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다는 과장법을 썼던 모양이다.
지난 돌잔치 때 허위허위 서울까지 달려가 동현이를 품에 안았더니 울어버려서 난처했었다. 제 외할아버지나 외할머니 품에서는 방긋방긋 웃던 아이가 내 품에 오자 울어버리니 난처하기도 하고 조금은 씁쓸하기도 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동현이 외가는 경기도 의정부인지라 자주 찾아 외가식구들과는 얼굴이 익어 친근감을 느끼겠지만 이 친할아버지 내외야 가뭄에 콩 나듯 만나니 어린 아이가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 이건 동현이 때문이 아니라 멀리 떨어져서 사는 내 탓이다.
어느 자리에서 들으니 요즘에는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란 호칭에서는 '외'자를 빼버리고 그냥 '할머니 할아버지'라고 부르고, 반대로 '할아버지와 할머니'에게는 '친'자를 덧붙여서 '친할아버지 친할머니'라고 부른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할아버지 할머니가 사는 지역 명칭을 붙여서 친할아버지 내외에겐 전주할아버지 전주할머니라 하고 외할아버지 내외에겐 의정부할아버지 의정부할머니라고 한다는 것이다. 성인도 시속을 따른다고 했으니 시대의 변화가 그런 방향으로 나간다면 내 어찌 막을 수 있으랴.
또 내일이면 신혼여행에서 갓 귀국한 작은아들 내외가 찾아올 것이다. 승용차로 온다니 마중 나가야 할 필요는 없지만 서울에서 전주까지 예닐곱 시간은 좋이 걸릴 것이다. 지난 해 봄에 결혼한 딸아이는 외손주와 함께 서울 근교 시댁으로 갈 터이니 조금 섭섭하지만, 서울에서 살던 아들내외와 손자가 찾아오니 참으로 살맛이 난다. 절간 같던 집에 활기가 넘치고 사람 사는 기분이 감돈다.
어떤 이는 지금을 유목시대(遊牧時代)라고도 한다. 그럴 듯한 이야기다. 농경시대에는 농사를 지으려니 한 곳에서 뿌리를 내리고 살수밖에 없다. 그러니 정착시대였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산업사회를 거쳐 정보화사회다. 농촌의 젊은이들이 모두 도시로 나가 일자리를 찾으니 고향을 떠날 수밖에 없고, 또 도시에서도 한 곳에 오래 살기보다는 이 동네에서 저 동네로, 이 아파트에서 저 아파트로 자주 이사를 다니는 게 생활화되었다. 이렇게 자주 옮겨다니는 생활을 하니 바로 유목시대라는 이야기다. 오죽하면 이삿짐센터란 신종 직업이 생겼겠는가?
추석 같은 명절은 떠돌이 생활을 하던 도시의 유목민들이 정착생활을 했던 농경시대가 그리워 고향을 찾는 날인 것이다. 정겨운 고향의 풍경도 가슴에 담고, 고향의 풋풋한 인정을 맛보며, 고향의 맑은 공기도 마시면서 도시생활에서 겪은 군중 속의 고독을 달래보는 날이기도 하다. 도시의 찌꺼기들을 고향에서 모두 훌훌 씻어버리고 활기를 재충전하고자 고향을 찾는 것이다. 도시의 유목민이 된 시골출신들은 자기들 2세 3세들에게는 타향 같은 자기네 고향을 가슴 가득 담아주고 싶어서 더불어 고향을 찾는다. 어린 시절 고향에서 살 때의 아름다운 추억들을 들려주며 후손들이 자기고향을 영원히 기억해주기 바라면서 입에서 침을 튀기리라.
올 추석에는 우리 조상 님들도 무척 기뻐하실 것 같다. 예쁜 큰며느리와 작은며느리가 정성껏 만든 차례상을 받으시고 또 대를 이을 장손 동현이까지 참석하니 얼마나 흐뭇해하실 것인가. 조상 님들의 해맑은 웃음소리가 귀에 들리는 성싶다.
국제펜클럽한국본부 부 이사장 김 학
해마다 추석은 어김없이 찾아온다. 오라지 않아도, 기다리지 않아도 때가 되면 성큼성큼 찾아온다. 기름 값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아도, 지구촌 어느 구석에서 전쟁이 터지고 재앙이 발생해도 추석이면 저마다 차를 몰고 고향을 찾는다. 방송과 신문들은 민족의 대 이동이라고 대서특필한다.
반세기 전 내가 시골에 살 때는 추석이 그렇게 움직이는 명절인 줄 몰랐었다. 농경사회 시절이어서 그랬는지, 풍년이 들면 차례상이 좀 푸짐했을 뿐, 멀리서 찾아올 친척도 없었다. 오히려 농사를 거들어주던 머슴이 자기네 집으로 가버리니 우리 집은 식구가 더 줄어서 허전했었다. 설날에는 세배하는 이들이 찾아와 집안이 벅적대며 웃음소리로 가득했지만 추석은 오히려 쓸쓸한 날이었다.
멋진 한옥차림의 전주 역으로 마중을 나갔다. 때 맞춰 서울에서 출발한 무궁화호 열차가 숨을 헐떡이며 역구내로 들어섰다. 꾸역꾸역 기차에서 내린 귀성객들은 저마다 손에 선물 꾸러미를 들고 밝은 표정으로 출구를 빠져나온다. 조금 기다리니 큰아들 내외와 손주 동현이가 나왔다. 지난 8월에 돌을 맞은 동현이는 제 엄마의 등에 업힌 채 나를 보며 생긋생긋 웃었다. 얼마나 예쁜지……. 선인들은 이럴 때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다는 과장법을 썼던 모양이다.
지난 돌잔치 때 허위허위 서울까지 달려가 동현이를 품에 안았더니 울어버려서 난처했었다. 제 외할아버지나 외할머니 품에서는 방긋방긋 웃던 아이가 내 품에 오자 울어버리니 난처하기도 하고 조금은 씁쓸하기도 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동현이 외가는 경기도 의정부인지라 자주 찾아 외가식구들과는 얼굴이 익어 친근감을 느끼겠지만 이 친할아버지 내외야 가뭄에 콩 나듯 만나니 어린 아이가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 이건 동현이 때문이 아니라 멀리 떨어져서 사는 내 탓이다.
어느 자리에서 들으니 요즘에는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란 호칭에서는 '외'자를 빼버리고 그냥 '할머니 할아버지'라고 부르고, 반대로 '할아버지와 할머니'에게는 '친'자를 덧붙여서 '친할아버지 친할머니'라고 부른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할아버지 할머니가 사는 지역 명칭을 붙여서 친할아버지 내외에겐 전주할아버지 전주할머니라 하고 외할아버지 내외에겐 의정부할아버지 의정부할머니라고 한다는 것이다. 성인도 시속을 따른다고 했으니 시대의 변화가 그런 방향으로 나간다면 내 어찌 막을 수 있으랴.
또 내일이면 신혼여행에서 갓 귀국한 작은아들 내외가 찾아올 것이다. 승용차로 온다니 마중 나가야 할 필요는 없지만 서울에서 전주까지 예닐곱 시간은 좋이 걸릴 것이다. 지난 해 봄에 결혼한 딸아이는 외손주와 함께 서울 근교 시댁으로 갈 터이니 조금 섭섭하지만, 서울에서 살던 아들내외와 손자가 찾아오니 참으로 살맛이 난다. 절간 같던 집에 활기가 넘치고 사람 사는 기분이 감돈다.
어떤 이는 지금을 유목시대(遊牧時代)라고도 한다. 그럴 듯한 이야기다. 농경시대에는 농사를 지으려니 한 곳에서 뿌리를 내리고 살수밖에 없다. 그러니 정착시대였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산업사회를 거쳐 정보화사회다. 농촌의 젊은이들이 모두 도시로 나가 일자리를 찾으니 고향을 떠날 수밖에 없고, 또 도시에서도 한 곳에 오래 살기보다는 이 동네에서 저 동네로, 이 아파트에서 저 아파트로 자주 이사를 다니는 게 생활화되었다. 이렇게 자주 옮겨다니는 생활을 하니 바로 유목시대라는 이야기다. 오죽하면 이삿짐센터란 신종 직업이 생겼겠는가?
추석 같은 명절은 떠돌이 생활을 하던 도시의 유목민들이 정착생활을 했던 농경시대가 그리워 고향을 찾는 날인 것이다. 정겨운 고향의 풍경도 가슴에 담고, 고향의 풋풋한 인정을 맛보며, 고향의 맑은 공기도 마시면서 도시생활에서 겪은 군중 속의 고독을 달래보는 날이기도 하다. 도시의 찌꺼기들을 고향에서 모두 훌훌 씻어버리고 활기를 재충전하고자 고향을 찾는 것이다. 도시의 유목민이 된 시골출신들은 자기들 2세 3세들에게는 타향 같은 자기네 고향을 가슴 가득 담아주고 싶어서 더불어 고향을 찾는다. 어린 시절 고향에서 살 때의 아름다운 추억들을 들려주며 후손들이 자기고향을 영원히 기억해주기 바라면서 입에서 침을 튀기리라.
올 추석에는 우리 조상 님들도 무척 기뻐하실 것 같다. 예쁜 큰며느리와 작은며느리가 정성껏 만든 차례상을 받으시고 또 대를 이을 장손 동현이까지 참석하니 얼마나 흐뭇해하실 것인가. 조상 님들의 해맑은 웃음소리가 귀에 들리는 성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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