융수현에서의 3박4일

2005.09.19 06:58

박선배 조회 수:65 추천:5

융수현에서의 3박 4일    
                                             KBS전주방송총국 박선배


인천공항을 이륙한 비행기가 기수를 남쪽으로 돌리더니 3시간 30분을 달려 도착한 곳은 중국의 계림. 공항 청사를 나서자 훅하는 열기에 숨이 막히는 듯했다. 눈을 돌리자 진안 마이산과 유사한 봉우리 수 십 개가 한 눈에 들어왔다. 계림에 온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이곳에서 다시 버스를 타고 5시간을 달려 도착한 곳이 3박 4일 취재 일정의 베이스캠프인 중화인민공화국 광서성 유주시 융안현 융화호텔이었다. 우리는 이곳에 여장을 풀고 늦은 저녁을 먹고서야 비로소 쉴 수 있었다. 무려 17시간의 여행이었다. 습한 열기가 몸을 감싸며 우리를 유혹했지만, 이국의 낯선 풍경도 밤의 유혹도 내일 할 일에 대한 부담 때문에 접을 수밖에 없었다.


이튿날 아침 일찍 일어나 다시 버스로 산길을 달렸다. 산은 높고 골은 깊었다. 3시간 정도를 달리던 버스가 산등성이에 멈추더니 저 멀리 보이는 것이 묘족(苗族)의 마을이라고 광서 TV 관계자가 통역의 입을 빌어 설명해주었다. 산비탈에 줄지어 선 검은 지붕의 가옥들……. 우리의 목적지인 광서성 융수묘족자치현 홍수향 황내촌이다. 우리는 황내촌 사람들의 생활과 그들의 낡은 교육시설 및 전북대학병원의 의료봉사활동을 촬영하기로 되어 있었다. 차에서 내려 마을 원경을 촬영한 후 우리는 버스를 타고 내리기를 반복하면서 프로그램의 도입부를 촬영했다. 좁은 마을 진입로 양쪽에 지어진 낯선 목조가옥, 우리나라 송아지 크기의 어미 소와 강아지 크기의 송아지를 몰고 한가롭게 지나가는 사람, 나무 막대기에 볏단을 꿰어 메고 가는 아낙네들…….  모든 것들이 낯설어 이국적이었다.


마을로 들어서는 순간 나는 깜짝 놀랐다. 마을 진입로 양쪽으로 전통복장을 한 수십 명의 남녀들이 전통악기를 연주하며 우리를 환영하고 있었다. 악대는 성인 남자들로 구성되었고, 악기는 모두가 대나무를 이용한 것이었는데 저음악기와 고음악기가 서로 어울려 웅장하고 미묘한 하모니를 이루었다. 그 악대 뒤쪽으로는 젊은 처녀들이 역시 전통복장에 은으로 만든 장신구를 머리와 목에 두르고 미소지으며 꽃을 흔들어 우리를 환영하고 있었다. 그 마을의 전통이란다. 그 마을에 귀한 손님이 오면 그런 환영의식을 거행한단다. 프로그램의 특성상 리포터 한 사람만 답례하며 그 장엄한 터널을 통과하게 하고 나는 이리 뛰고 저리 뛰며 그 순간 순간들의 영상을 카메라에 담았다. 나중에 알았지만 우리는 그 의식의 대가로 돈을 지불해야만 했다.


이글거리는 태양은 그곳에 사정없이 내리 쬐고 있었다. 등줄기를 흘러내리는 땀은 옷을 적실 틈도 없이 바로 말라 버렸다. 카메라가 돌아가는 순간에도 눈가에 흐르는 땀을 한 손으로 계속 훔쳐내야만 했다. 얼굴에 바른 선크림은 10분을 버티지 못하고 모두 닦여져 버렸다. 작렬하는 태양열로 카메라가 뜨거워져 어깨에 멜 수 없었다. 수건으로 카메라를 감싼 후에야 촬영을 계속할 수 있었다. 지미집 촬영을 할 때는 카메라가 내 어깨보다 조금 더 태양 쪽으로 접근하자 그 뜨거움을 참지 못하고 멈추어 서 버렸다. 다시 바닥으로 내려서 부채질을 좀 해주었더니 재 작동은 되었지만…….


그들의 생활은 가난했고 환경은 열악했다. 그들은 성품이 온순해서 다른 부족에게 쫓기고  쫓기다 결국 그런 깊고 험한 산 속에 터전을 잡았다고 한다. 1년에 3모작이 가능한 습하고 더운 기후를 가진 곳이어서 벼농사에는 최적의 기후였지만 높고 깊은 산 속이라 경작지가 좁아 그들의 식량은 항상 부족하고, 그로 인해 가난의 고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그들은 대부분 하루 두 번 식사를 할 것이라는 가이드의 설명이 있었다. 가옥은 대부분 2층 목조 주택이었다. 지붕은 나무껍질로 만들어서 우리나라의 너와집과 비슷했다. 가옥의 1층은 화장실과 소, 돼지, 닭 등을 기르는 축사이고, 2층은 사람이 거주하는 공간이었다. 계단을 통해 2층으로 올라가면 바로 베란다가 나온다. 집 전체 면적의 약 1/4정도인 베란다는 시원했고, 베란다에서 바라보는 경치는 참 아름다웠다. 베란다 천장에는 옥수수가 걸려 있었다. 우리의 옛날 시골집을 연상케 하는 정겨운 모습이었다. 집안으로 들어가면 우리의 거실 비슷한 비교적 넒은 공간이 나오고 이곳의 중앙에 연기에 검게 그을린 솥이 하나 걸려 있었다. 그 주위로는 간단한 취사도구, 약간의 식량, 물동이, 가축의 사료로 쓰이는 풀 등 생활의 모든 것이 아주 조금씩 있었다. 거실의 가장자리로 방이 있는데 방은 아주 작아서 1인용 내지는 2인용 나무 침대가 전부였다. 그 방의 벽에는 나무로 만든 작은 창이 하나 있었다. 창을 열자 시원한 바람이 밀려 들어왔다. 창 밖으로 보이는 마을이 이방인의 눈에는 마냥 평화롭게만 보였다. 그곳 가옥들은 상수도 시설이 없어서 그들은 마을 요소 요소에 있는 공동상수도나 우물에서 물을 길어다 식수로 사용했다. 초등학교 3학년 여학생이 큰 양동이 두 개에 물을 가득 담아 긴 막대기로 연결해 어깨에 메고 비탈길을 오르던 모습이 눈에 아른거린다. 그 어린 소녀의 걸음걸이는 조금의 흔들림도 없었고, 양동이의 물 또한 전혀 출렁임이 없었다. 나이에 비해 너무나 힘든 일인데도 그 어린 소녀는 자기가 해야 할 일로 굳게 믿고 있는 듯했다. 아무런 불평도 불만도 없었다.


산비탈에 형성된 마을은 진입로를 제외하고는 모두가 좁은 오솔길이었다. 자연을 벗삼아 살아가는 그들의 차림새는 허름했지만 그들의 눈빛은 참으로 순수했다. 그들의 영혼이 순수하기에 눈빛이 그렇게 맑은 것이리라. 학교 시설 또한 매우 열악했다. 우리가 촬영차 방문한 그들의 소학교는 2층의 낡은 건물이었는데, 칠판은 몇 십 년을 사용했는지 다 낡아서 마치 널빤지를 붙여놓는 것 같았고, 분필은 담배꽁초 크기 정도의 것도 찾아볼 수 없었다. 오직 콩알만한 분필만이 눈에 들어왔다. 선생님은 그 콩알만한 분필로 칠판에 글씨를 쓰고 지울 때는 다 낡아 헤어진 헝겊으로 지웠다. 계림에 있는 3년제 음악전문대학에 다니는 웨이쩐롱이라는 묘족 아가씨가 방학을 맞아 집에 다니러 와서 초등학교 음악수업을 담당하고 있었다. 참 예쁘게 생긴 음악선생님이었다. 어린 학생들의 눈망울 또한 초롱초롱했다. 우리 취재진이 신기한 모양이었다. 외부 방송 취재진이 그 마을에 온 것은 우리가 처음이었단다.


현대식 건물이라고는 벽돌로 만든 마을 회관이 전부였다. 회관 옆에는 보건소가 있었고, 보건소의 벽에는 에이즈 예방 포스터가 붙어 있었다. 그곳은 자유분방한 성문화 때문에 에이즈가 많다는 가이드의 설명을 들었다. 더운 날씨를 피해 시원한 숲 속으로 들어간 남녀들이 넘치는 춘정을 이기지 못하고 자유롭게 사랑을 속삭이는 모양이다. 보건소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컴컴하고 지저분한 보건소 내에는 어린아이 두 명이 엄마의 품에 안겨 링거 주사를 맞고 있었다. 감기 환자란다. 보건소에는 보건요원인 남자 한 명이 근무하고 있었다. 내일이면 첨단 의료기술을 가진 전북대학병원 의사들이 의료봉사활동을 올텐데 빨리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해가 많이 기울 무렵 우리는 촬영을 중단하고, 다시 버스로 3시간을 거꾸로 달려 숙소로 돌아갔다.


이튿날, 전북대학병원 의사들이 학교 교실에다 임시 진료소를 설치하고 의료봉사활동을 시작했다. 전북대학교 의료봉사팀은 내과, 소아과, 외과, 정형외과, 치과 등의 교수와 간호사 그리고 약사로 구성되어 있었다. 노인부터 어린아이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왔다. 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웃는 얼굴로 봉사활동에 임하던 의료진의 모습이 아름답게 보였다. 한 아주머니는 악성 종양이라는 진단이 나왔다. 그 아주머니는 빨리 수술해야 한다는데 그곳 의료 사정상 그럴 수도 없고, 지금은 어떻게 되었는지 자꾸 마음에 걸린다. 의료봉사 활동이 끝나고 우리의 촬영도 끝나갈 무렵 우리를 위한 환송식이 있었다. 이틀이라는 짧은 만남이었지만 정이 들었는지 한국말을 배우고 싶어했다. 내가 간단한 중국말 정도는 할 수 있어서 그들에게 한국말을 알려주었다.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사랑해요, 안녕히 가세요 등등…….  그들은 서툰 발음으로 잘 따라했다.


우리가 마을을 떠날 무렵 그들은 정성스럽게 준비한 선물을 우리의 목에 일일이 걸어주었다. 예쁜 실타래의 양쪽에 매단 계란 두 개와 역시 예쁜 실타래의 양쪽에 매단 대나무 잎으로 싼 찰밥 두 덩이였다. 그들이 손님을 배웅할 때의 전통이란다. 지금은 통과의례와 같은 일종의 의식이 되어버렸지만 그 옛날엔 지금처럼 교통이 발달한 것도 아니고 또한 산 속에 음식점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먼길 돌아가면서 배고프면 먹으라고 주던 정성어린 선물이었으리라 생각하니 그들의 뜨거운 인간애를 느꼈다. 같이 갔던 VJ 김대종 씨가 시계를 벗어 우리가 방문했던 집의 예쁜 3자매 아가씨의 언니 손에 쥐어 주었다. 마음의 선물을 하고 싶었는데 달리 줄 것이 없어서 시계를 벗어주었다고 한다. 따뜻한 가슴을 가진 청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떠나올 때 그들은 내가 가르쳐준 서툰 한국말로 작별 인사를 했다.
"안녕히 가세요!"  
우리는 그들의 정성어린 배웅을 받으며 그 마을을 떠났다. 내가 다시 그곳에 갈 수 있을까? 많은 상념들이 머리를 스쳤다. 어쩌면 나와 그들과의 전생에서의 인연도 지금처럼 이렇게 짧았으리라.


작렬하는 태양 아래 카메라 두 대를 연출하느라 동분서주한 미소가 아름다운 PD 김대현!
말없이 행동으로 보여주는 수수한 영혼의 소유자 VJ 김대종! 힘든 일을 묵묵히 도와준 로맨티스트 오디오맨 유진명! 살인 더위 속에서도 아름다움을 잃지 않은, 언제나 예쁜 리포터 최민경! 2005년 7월 유주에서 보여준 KBS전주방송총국 취재진들의 모습은 참으로 장하고 건강한 젊은이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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