숟가락 방랑기

2005.09.23 13:13

정현창 조회 수:65 추천:10

숟가락 방랑기
전북대학교평생교육원 수필창작과정(기) 정현창


   “꽝!”
   난, 정신을 잃고 말았다. 반짝반짝 빛나는 스테인리스 강철판이었던 내가 프레스 밑으로 끌려 왔다는 생각밖에는 없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 작은 식당의 숟가락 통에 무수한 쌍둥이 형제들과 함께 누워있었다.


   새로 개업한 식당이라 손님은 그리 많지 않았다. 예쁘고 부지런한 주인 아주머니 때문에 식당은 항상 깨끗하였다. 하루에 몇 명씩의 손님은 있었으나 나는 식탁에 올려지지도 않았다. 나의 첫 손님은 누구일까? 마음을 조이며 그렇게 며칠이 흘러갔다. 어느 날 점심시간에 드디어 내가 손님상위에 올려졌다. 얼마나 마음이 콩당콩당 뛰었는지 모른다. 아주머니들 몇 명이 아이들과 함께 식사를 시작했는데도 나는 그냥 상위에 놓여있었다. 너무나 실망하여 나는 너무 못생겨서 상위에 올랐어도 손님들이 사용하지 않는 거라 생각하며 훌쩍이고 있었다.  그때 옆에 있던 아이가 “엄마! 맘마!”하며 보챘다. 그러자 아이의 엄마는 나를 집어 자기 밥그릇에서 밥을 조금 뜨더니 바로 아이에게 주지 않고 엄마 입으로 온도를 재어보고는 아이에게 먹이는 것이었다. 아이의 입이 내 크기보다도 너무 작아서 내 일부분만 들어갔는데도 어쩌면 그렇게 부드럽고 아이의 입에서 풍기는 젖 냄새가 좋은지 너무 황홀했다. 밥만 주는 게 아니라 밥 위에 엄마의 사랑을 올려주는 숟가락. 그 밥을 받아먹으며 “까르륵, 까르륵” 웃는 아이를 볼 때 나는 숟가락으로 태어난 게 너무 자랑스러워 조물주께 감사를 드렸다.


  며칠 후 나는 K교수가 몇몇 제자들과 함께 저녁식사를 하는 자리에 올려졌다. 나는 자랑스럽게도 K교수의 손에 들려졌다. 모두들 글을 쓰는 사람들인 모양이었다. 너무나 수준 높은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글을 쓰는 즐거움을 들으면서 나도 글을 써봤으면 하는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정신을 잃고 말았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K교수가 너무나 술을 많이 마셨기 때문에 나까지 취해버렸던 것이다.  


이번엔 중년부인들이 계모임을 갖는 모양이었다. 옷들이 너무 화려하고 화장도 진하게 했으며 목걸이 등 제법 값이 나가는 보석들로 치장한걸 보니 아주 잘 사는 부인들 같았다. 나를 쥔 손에도 번쩍번쩍 커다란 보석반지가 두개씩이나 끼어 있었다. "우아! 신난다!" 나도 갑자기 고급스러워지는 것 같았다. 그런데 내 생각이 커다란 착각이었다는 걸 알기까지는 그리 긴 시간이 필요 없었다. 부인의 입 속으로 들어가는 순간, 입에서 풍기는 역겨운 냄새와 부인들끼리 다른 사람을 흉보는 대화를 들으면서 너무 실망했었다. 나는 어서 빨리 식사가 끝나기만을 기다려야 했었다.


   가을 햇살이 너무도 아름다운 오후에 까만 옷을 입은 수녀 세 분이 마주앉은 상에 올라가게 되었다. 성호를 긋고 식사를 시작한 수녀들은 창가에 피어있는 코스모스처럼 청초하고 조용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어렵게 살고 있는 이웃을 도와줄 방법을 이야기했다. 겨울이 다가오는데 달동네 사람들의 연탄걱정도 하였고 결식아동들의 점심걱정도 하였다. 나도 무엇이라도 도와주었으면 하고 생각했었다. "천사, 그래 난 천사들의 식탁에 올라 있는 거야. 비록 화장은 안 했어도 그들의 입에서 풍기는 향기는 너무 좋았다."


  내가 숟가락으로 태어난지도 오랜 세월이 흘렀다. 우리 식당도 주인아주머니의 친절과 맛깔스러운 음식솜씨 덕에 날로 번창하였다. 나도 덩달아 바빠졌고 많은 사람 손에 들려져 입 속을 드나들었다. 몸이 아픈 사람, 식사가 끝날 때까지 떠드는 사람, 한 마디도 하지 않고 밥만 먹는 사람 등 모든 사람들의 식사풍경은 달랐다. 많은 사람들을 만나는 동안 사람은 겉모양과 행동이 다르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겉모양보다 마음의 아름다움이 더욱 빛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앞으로도 더욱 많은 천사들에게 들려지기를 기도 드린다.(2005. 9.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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