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 헤는 밤

2005.09.26 19:07

정현창 조회 수:97 추천:6

별 헤는 밤
전북대학교평생교육원 수필창작과정(기) 정현창


  "어머나, 그럼 별님의 결혼이라는 게 있어요?"
  "그렇답니다, 아가씨."
  그리고 내가 별의 결혼이 어떤 것인가 설명해 주려고 했을 때, 나는 무엇인가 상쾌하고 부드러운 것이 나의 어깨에 가벼이 걸리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것은 리본과 레이스와 물결치는 머리카락을 곱게 누르면서 나에게 기댄 아가씨의 잠든 머리였습니다.
  아가씨는 하늘의 별들이 햇빛으로 희미하게 사라질 때까지 움직이지 않고 있었습니다. 나는 가슴을 두근거리면서, 그러나 여러 가지 아름다운 추억만을 나에게 안겨준, 이 청명한 밤의 신성한 보호를 받으며 아가씨의 잠든 얼굴을 들여다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가끔 나는 별들 가운데서 가장 아름답고 가장 빛나는 하나의 별이 길을 잃고 나의 어깨에 기대어 잠들어 있는 것이라고 상상하고 있었습니다.



  내가 어릴 적에 너무나 좋아하였던 알퐁스 도테의 '별'에 나오는  프로방스지방 어떤 목동 이야기의 마지막 부분이다. 이 부분을 읽을 땐 마치 아가씨가 내 어깨에서 잠이 든 것 같은 착각이 들곤 했다. 아니 나는 별들 가운데서 가장 아름답고 가장 빛나는 하나의 별이 길을 잃고 나의 어깨에 기대어 잠들어 있는 것이라고 상상하곤 했었다. 그래서 이 부분을 거의 외울 정도로 읽고 또 읽었었다.



   저녁운동을 하려고 아내와 함께 삼천 고수부지로 나섰다. 추분이 지나서 긴 팔 셔츠를 입었는데도 제법 옷 속으로 찬바람이 스며들었다. 스무 나흘 달은 보이지 않았다. 하늘을 보니 보일 듯 말 듯 겨우 서너 개의 별이 내려다보고 있었다.  어릴 적엔 전기도 일찍 나갔었다. 해가 지면 부지런히 저녁을 먹었는데도 상을 물리면 30촉 백열등은 몇 번 깜빡거리다가 스르르 잠들어 버렸다. 그러면 우리들은 약속이나 한 듯  모깃불 연기가 자욱한 앞마당으로 나갔다. 평상 위에서 어머니가 미리 준비해둔 찐 감자와 옥수수를 먹으며 한참이나 떠들었다. 그때는 왜 그리 할말도 많았는지 모른다. 한참 떠들다가 배도 부르고 모깃불도 꺼져가자 심심해진 우리는 평상에 나란히 누웠다. 아! 우리가 떠들고 있는 사이 까만 하늘엔 별들의 축제가 펼쳐지고 있었다. 하얀 은하수가 유유히 흐르고, 거문고의 노랫소리가 들리며, 백조는 멋진 날개를 펼친 채 날고 있었고, 영웅헤라클레스가 힘 자랑을 하고 있었다. 여름밤의 하늘엔 돌고래와 독수리자리가 더욱 빛났었다.
별자리를 찾으며 “별 하나 나하나, 별 둘 나둘…….” 하며 별을 헤다 스르르 잠이 들었다. 그 날 밤에 펼쳐진 장관은 지금도 내 마음속에서 빛나고 있다. 그런데 지금은 그 날의 축제는 볼 수가 없다. 별을 보려고 15층 옥상으로 올라갔다. 이미 밤은 깊어 사방은 고요한데 별들은 보이지 않고 술 취한 손님들을 유혹하는 휘황찬란한 네온사인들과 교회 종탑의 빨간 십자가들만 줄줄이 서있어 공동묘지의 한가운데에 서있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반짝반짝 작은 별 아름답게 비치네. 동쪽하늘에서도 서쪽하늘에서도 반짝반짝 작은 별 아름답게 비치네.” 라고 노래하던 어릴 적엔 우주를 생각하고 원대한 꿈을 꾸었었다. “저 별은 나의 별, 저 별은 너의 별, 별빛에 물들은 밤같이 까만 눈동자, 저 별은 나의 별, 저 별은 너의 별, 아침이슬 내릴 때까지” 통기타를 치면서 모닥불을 피워 놓고 바닷가에 둘러앉아 다정한 친구들과 밤을 새우며 부르던 노래였다. 우리의 젊은 시절엔 그렇게 노래를 부르며 나라를 이야기하고 우정을 말했었다. 그 후 별을 잊어버린 우리들은 아이들과 거실에 모여 앉아 텔레비전을 보면서 가족과 사랑을 말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PC방이나 자기 방의 컴퓨터 앞에 앉아 개인의 즐거움을 누리며 시간을 보낸다.



  사막에 가면 관광코스의 하나로 침낭을 덮고 사막에서 노숙을 한다고 한다. 완전히 빛과 차단된 사막의 밤은 무수히 쏟아지는 별빛을 안으며 춥고 어려웠던 여행을 완전히 잊어버리고 황홀경에 빠진다고 한다. 지금도 산골이나 시골에 가면 북두칠성과 카시오페아를 볼 수가 있다. 하지만 도시에선 몇 개의 희미한 별밖에 볼 수 없게 되어버렸다. 별을 볼 수가 없어지자 우리들은 희망과 꿈까지도 잃어버리고 말았다. 하늘이 열리고 우리나라가 열린 개천절 연휴를 맞아 별을 헬 수 있는 산이나, 바다를 찾아가서 잊어버린 꿈들을 찾아볼 일이다. 별이 쏟아지는 밤이면 나는 내 가족들에게 윤동주의 서시 '별을 헤는 밤'을 조용조용 들려주고 싶다.

별 하나에 추억(追憶)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憧憬)과
별 하나에 시(詩)와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2005.  9.  28)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54 천년 은행나무 앞에서 조종영 2005.11.07 84
153 널뛰기 권영숙 2005.11.06 66
152 사선대 가는 길 김인순 2005.10.27 78
151 세월의 강 김영옥 2005.10.26 74
150 씨와 밭 김영옥 2005.10.08 69
149 조손친교 2박3일 김학 2005.10.05 83
148 아주 잘 지냄 이금주 2005.10.02 90
147 이 가을에는 서순원 2005.09.29 61
146 추억의 곰소항 송기옥 2005.09.27 65
» 별 헤는 밤 정현창 2005.09.26 97
144 숟가락 방랑기 정현창 2005.09.23 65
143 보따리 사랑 한경선 2005.09.23 69
142 이목구비 정현창 2005.09.20 70
141 융수현에서의 3박4일 박선배 2005.09.19 65
140 시간여행 이양기 2005.09.17 60
139 옛날 추석 요즘 추석 김학 2005.09.16 133
138 벌초 권영숙 2005.09.15 50
137 코뚜레 정현창 2005.09.14 69
136 대전법원의 가을편지 이은재 2005.09.12 239
135 우리 집 공 씨들 이금주 2005.09.12 8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