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가을에는
2005.09.29 09:09
이 가을에는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과정(고) 서순원
이 가을에는 호젓한 산길을 혼자서 걸어보고 싶다.
바람이 잠든 고요한 오솔길을, 한 잎 두 잎 시나브로 떨어지는 낙엽을 바라보며, 깊은 생각에 잠겨 걸어보고 싶다. 떨어진 낙엽 중에 고운 잎새 하나 집어 들고, 어디로 가고 있는지, 어디서 왔는지 그에게 물어보고 싶다. 걸어가는 도중에 다람쥐라도 만나면 겨울 곡식들은 넉넉히 준비해 두었는지 물어보기도 하고, 휘파람새라도 만나면 나도 그 녀석을 따라 휘파람을 불어보기도 하리라.
걷고 있는 길섶에 들국화가 피어 있으면, 그 중 제일 못난이 꽃봉오리에다 입을 맞추어 주며 속삭여 주리라. 너는 가장 못나고 가장 고독한 존재라고 슬퍼하지 마라. 뿌리가 튼튼한 너는 내년 가을엔 가장 큰 꽃봉오리로 다시 피어날 것이다. 올해의 슬픔일랑 속으로 조용히 삭이고 즐거운 내년의 환희를 준비하거라, 라고 들려주리라.
오솔길을 걷다 문득 바람이 휘몰아오고 낙엽들이 소나기처럼 쏟아지면, 나는 그 낙엽들을 맞으며 걸어보고 싶다. 그리고 바람에게 물어보리라. 낙엽들을 몰고 가는 곳이 어디인가를. 그리고 벌거벗은 나무들에게도 물어보리라. 잎들을 모두 떨궈 버리고 겨울을 맞는 그들의 속셈이 무엇인가를. 겨울이 오고 잎들 위에 수북히 내려앉을 눈들이 너무 무거워 미리미리 그들을 털어 낸 것일까? 그렇지 않으면 한해의 양식을 준비하려고 잎들을 떨어뜨려 뿌리로 보내는 것일까. 아니면 밖으로 뻗어 나온 발가락들이 너무 차가워 겨울이 오기 전에 이불을 덮어주는 것일까? 나무에게 다가가 조용히 물어 보리라.
이 가을에는 혼자서 바닷가 모래 위를 걸어보고 싶다.
파도를 따라 밀려가고 밀려오던 연인들 모습이 모두 사라져버린 텅 빈 백사장을 걸으며, 가을의 공허를 가슴속에 가득 담아보리라. 그리고 바위에 부서지는 파도를 바라보며 물거품들의 부상과 소멸의 모습을 눈 여겨 살펴보리라. 그 속에서 내 삶의 시작과 끝 모습도 가늠해보리라.
이 가을에는 깊은 산 속 이름 없는 암자에서 하룻밤을 지새고 싶다. 밤새워 흘러가는 시냇물 소리와 발가벗은 나뭇가지를 스치는 한랭한 바람소리를 들으며, 가슴속에 얼음덩이보다 더 차가운 고독을 아파하며, 하마 이름조차 멀어져 간 옛사람을 그리워하면서 이 한밤을 지새 보리라.
이 가을에는 완행열차를 타고 여행을 떠나고 싶다.
가다가 조그만 시골 간이역에서 내려, 철길 옆에 피어난 코스모스도 바라보고, 막국수 한 그릇으로 시장기를 때우고, 호주머니가 넉넉지 못했던 젊은 시절을 회상하며 한껏 추억에 젖어보리라. 창밖에 바라보이는 산기슭 사래 긴 밭에, 고개 숙인 조들의 모습도 바라보고, 잎들을 다 떨쳐버린 콩대들의 모습도 바라보며, 마주앉은 사람과 오징어 땅콩을 안주 삼아 소주 한 잔 나누어보는 여유도 가져보고 싶다.
이 가을에는 호숫가에 앉아 파란 하늘과 쪽빛 호수를 바라보고 싶다.
그리고 나에게 성큼 다가선 먼 산들의 모습을 바라보며 깊은 사색에 잠겨보고 싶다. 하늘이 어둡고 칙칙한 구름들을 모두 걷어내고 청정한 저의 본 모습을 드러내 보이니, 저만큼 먼 곳에 서있던 산들까지도 본모습이 밝게 드러나 보이는 이치를 생각해보면서, 이 가을에는 내 마음속의 구름들을 깨끗이 닦아버리고 세상의 참모습을 바라보려 애써보리라.
(2005. 9)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과정(고) 서순원
이 가을에는 호젓한 산길을 혼자서 걸어보고 싶다.
바람이 잠든 고요한 오솔길을, 한 잎 두 잎 시나브로 떨어지는 낙엽을 바라보며, 깊은 생각에 잠겨 걸어보고 싶다. 떨어진 낙엽 중에 고운 잎새 하나 집어 들고, 어디로 가고 있는지, 어디서 왔는지 그에게 물어보고 싶다. 걸어가는 도중에 다람쥐라도 만나면 겨울 곡식들은 넉넉히 준비해 두었는지 물어보기도 하고, 휘파람새라도 만나면 나도 그 녀석을 따라 휘파람을 불어보기도 하리라.
걷고 있는 길섶에 들국화가 피어 있으면, 그 중 제일 못난이 꽃봉오리에다 입을 맞추어 주며 속삭여 주리라. 너는 가장 못나고 가장 고독한 존재라고 슬퍼하지 마라. 뿌리가 튼튼한 너는 내년 가을엔 가장 큰 꽃봉오리로 다시 피어날 것이다. 올해의 슬픔일랑 속으로 조용히 삭이고 즐거운 내년의 환희를 준비하거라, 라고 들려주리라.
오솔길을 걷다 문득 바람이 휘몰아오고 낙엽들이 소나기처럼 쏟아지면, 나는 그 낙엽들을 맞으며 걸어보고 싶다. 그리고 바람에게 물어보리라. 낙엽들을 몰고 가는 곳이 어디인가를. 그리고 벌거벗은 나무들에게도 물어보리라. 잎들을 모두 떨궈 버리고 겨울을 맞는 그들의 속셈이 무엇인가를. 겨울이 오고 잎들 위에 수북히 내려앉을 눈들이 너무 무거워 미리미리 그들을 털어 낸 것일까? 그렇지 않으면 한해의 양식을 준비하려고 잎들을 떨어뜨려 뿌리로 보내는 것일까. 아니면 밖으로 뻗어 나온 발가락들이 너무 차가워 겨울이 오기 전에 이불을 덮어주는 것일까? 나무에게 다가가 조용히 물어 보리라.
이 가을에는 혼자서 바닷가 모래 위를 걸어보고 싶다.
파도를 따라 밀려가고 밀려오던 연인들 모습이 모두 사라져버린 텅 빈 백사장을 걸으며, 가을의 공허를 가슴속에 가득 담아보리라. 그리고 바위에 부서지는 파도를 바라보며 물거품들의 부상과 소멸의 모습을 눈 여겨 살펴보리라. 그 속에서 내 삶의 시작과 끝 모습도 가늠해보리라.
이 가을에는 깊은 산 속 이름 없는 암자에서 하룻밤을 지새고 싶다. 밤새워 흘러가는 시냇물 소리와 발가벗은 나뭇가지를 스치는 한랭한 바람소리를 들으며, 가슴속에 얼음덩이보다 더 차가운 고독을 아파하며, 하마 이름조차 멀어져 간 옛사람을 그리워하면서 이 한밤을 지새 보리라.
이 가을에는 완행열차를 타고 여행을 떠나고 싶다.
가다가 조그만 시골 간이역에서 내려, 철길 옆에 피어난 코스모스도 바라보고, 막국수 한 그릇으로 시장기를 때우고, 호주머니가 넉넉지 못했던 젊은 시절을 회상하며 한껏 추억에 젖어보리라. 창밖에 바라보이는 산기슭 사래 긴 밭에, 고개 숙인 조들의 모습도 바라보고, 잎들을 다 떨쳐버린 콩대들의 모습도 바라보며, 마주앉은 사람과 오징어 땅콩을 안주 삼아 소주 한 잔 나누어보는 여유도 가져보고 싶다.
이 가을에는 호숫가에 앉아 파란 하늘과 쪽빛 호수를 바라보고 싶다.
그리고 나에게 성큼 다가선 먼 산들의 모습을 바라보며 깊은 사색에 잠겨보고 싶다. 하늘이 어둡고 칙칙한 구름들을 모두 걷어내고 청정한 저의 본 모습을 드러내 보이니, 저만큼 먼 곳에 서있던 산들까지도 본모습이 밝게 드러나 보이는 이치를 생각해보면서, 이 가을에는 내 마음속의 구름들을 깨끗이 닦아버리고 세상의 참모습을 바라보려 애써보리라.
(2005.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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