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지팥죽
2005.12.17 09:13
동지팥죽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과정(기) 정현창
동지(冬至)에 쑤어 먹는 팥죽이 ‘동지팥죽’이다. 동지는 양력으로 12월 22, 23일경으로 1년 중 밤이 가장 길고 낮이 가장 짧은 날이다. 동지가 초순에 들면 애동지, 중순에 들면 중동지, 하순에 들면 노동지라 한다. 동지를 아세(亞歲) 또는 작은 설이라 부르기도 하는데, 동지팥죽을 쑤어 먹어야 나이를 1살 더 먹는다는 뜻이다. 중동지와 노동지에는 팥죽을 쑤지만 애동지에는 팥죽을 쑤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동지팥죽에는 찹쌀로 만든 새알심을 먹는 사람의 나이만큼씩 죽 그릇에 넣어 먹기도 했는데, 한 그릇의 팥죽을 다 먹으면 나이를 한 살 먹은 것으로 간주하는 풍습이 있다.
옛날에는 관상감에서 이듬해의 달력을 만들어 모든 관원에게 나누어주고 제주도에서는 동지 무렵 귤과 감자를, 평안도·함경도에서는 메밀국수로 냉면을 만들어 먹고 청어를 진상했다 한다. 궁중에서는 동지 절식으로 우유와 죽(타락죽)을 내려 약으로 썼다. 동지팥죽은 먼저 사당에 놓아 차례를 지낸 다음, 방·마루·광 등에 한 그릇씩 떠다놓고 대문이나 벽에다 팥죽을 뿌리고 난 뒤에 먹는다. 민간에서는 성주·조왕·삼신·용단지 등 집 지킴이 신에게 먼저 올린다. 붉은 팥이 액을 막고 잡귀를 없애준다는 데서 나왔다. 동네의 고목에도 뿌리고 팥죽이 부글부글 끓을 때 그 국물을 떠서 곳곳에 뿌리기도 한다. 팥죽은 큰솥에 한참 고아서 쌀을 넣고 퍼지면 새알심을 넣고 다시 쑤어 꿀을 조금 치고 꺼낸다. 새알심은 팥 삶은 물과 생강즙을 조금 넣어 빚고 골 때 대추를 넣으면 매우 좋다고 한다.
어머니는 동지팥죽을 꼭 쑤어 주셨다. 6남매가 둘러앉아 새알심을 만드는 것은 아주 즐거운 놀이였다. 마치 진흙으로 공작놀이를 하듯 떠들면서 재미있게 만들었다. 손과 얼굴엔 쌀가루가 범벅이 되고 허리는 아팠지만 커다란 쟁반에 우리가 만든 새알심은 소복이 쌓여갔다. 어머니는 부엌에서 커다란 가마솥에 팔을 끓이고 계셨고 창밖엔 눈이 소복소복 쌓여갔다. 온 부엌이 팥 삶아지는 냄새와 수증기로 앞을 보기 어렵게 되었을 때 어머니는 우리가 만든 새알심을 가져가 솥에다 넣었다. 바닥이 눌지 않도록 커다란 주걱으로 휘휘 저으면 뻐끔뻐끔 방울이 생겼다가 톡톡 터지는 것을 바라보는 재미도 있었다.
죽을 젓다가 팔이 너무 아파 잠시 쉬고 있으면 어머니가 보시곤 큰일이라도 난 듯 주걱을 빼앗아 계속 저었다. 죽이 되기를 기다리다 지친 우리들이 밖으로 나가서 눈싸움을 하였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어머니가 부르시는 소리에 얼른 집으로 돌아온 우리들은 서로 큰 그릇에 담긴 팥죽을 먹으려고 실랑이를 하였다. 새알심을 나이만큼만 먹으라는 어머니 말씀에 두개를 하나로 세기도 하면 정신 없이 먹고 나면 이웃집에 가져다주라고 정성껏 싸놓으신 팥죽그릇을 하나씩 들고나섰다. 어머니는 집 주위에 팥죽을 뿌리기도 하고 벽에 바르기도 하시며 뭐라고 빌었는데 그때는 무슨 말인지 모르고 그저 아깝기만 했었다.
요즘은 어머니가 쑤어주신 동지팥죽을 먹을 수가 없다. 아파트 벽에도 바르지 않는다. 나이만큼 새알심도 먹지 않는다. 동지가 되면 각 식당에 "동지팥죽 팝니다." 라는 문구가 붙는다. 어쩌다 아내가 친구 집에서 얻어오거나 한 냄비쯤 사오면 먹기는 하지만 어릴 적만큼 신명이 나진 않는다. 점차 사라져 가는 세시풍속들이 안타깝기만 하다. 우리들의 명절은 얼마나 없어지고 발렌타인 같은 새로운 풍습으로 대치될까.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이란 말이 지금은 통하지 않게 되었을까. 새알심을 직접 만들어보지 않은 손자들이 자라면 먼 역사책에서나 볼 수 있을 동지팥죽의 풍속은 이대로 없어질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멸종되는 동물을 지키려고 노력하듯 동지팥죽을 지키려는 노력도 필요하지 않을까.
올 겨울은 유별나게 시작하고 있다. 폭설(暴雪)로 인한 농민들의 신음소리가 엄동설한(嚴冬雪寒) 칼바람보다도 더욱 춥게 느껴지는 이번 동지는 12월 22일이다. 사랑이란 새알심이 가득 든 동지팥죽 한 그릇씩이라도 그들에게 전하고픈 간절한 마음이다. (2005. 12. 17)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과정(기) 정현창
동지(冬至)에 쑤어 먹는 팥죽이 ‘동지팥죽’이다. 동지는 양력으로 12월 22, 23일경으로 1년 중 밤이 가장 길고 낮이 가장 짧은 날이다. 동지가 초순에 들면 애동지, 중순에 들면 중동지, 하순에 들면 노동지라 한다. 동지를 아세(亞歲) 또는 작은 설이라 부르기도 하는데, 동지팥죽을 쑤어 먹어야 나이를 1살 더 먹는다는 뜻이다. 중동지와 노동지에는 팥죽을 쑤지만 애동지에는 팥죽을 쑤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동지팥죽에는 찹쌀로 만든 새알심을 먹는 사람의 나이만큼씩 죽 그릇에 넣어 먹기도 했는데, 한 그릇의 팥죽을 다 먹으면 나이를 한 살 먹은 것으로 간주하는 풍습이 있다.
옛날에는 관상감에서 이듬해의 달력을 만들어 모든 관원에게 나누어주고 제주도에서는 동지 무렵 귤과 감자를, 평안도·함경도에서는 메밀국수로 냉면을 만들어 먹고 청어를 진상했다 한다. 궁중에서는 동지 절식으로 우유와 죽(타락죽)을 내려 약으로 썼다. 동지팥죽은 먼저 사당에 놓아 차례를 지낸 다음, 방·마루·광 등에 한 그릇씩 떠다놓고 대문이나 벽에다 팥죽을 뿌리고 난 뒤에 먹는다. 민간에서는 성주·조왕·삼신·용단지 등 집 지킴이 신에게 먼저 올린다. 붉은 팥이 액을 막고 잡귀를 없애준다는 데서 나왔다. 동네의 고목에도 뿌리고 팥죽이 부글부글 끓을 때 그 국물을 떠서 곳곳에 뿌리기도 한다. 팥죽은 큰솥에 한참 고아서 쌀을 넣고 퍼지면 새알심을 넣고 다시 쑤어 꿀을 조금 치고 꺼낸다. 새알심은 팥 삶은 물과 생강즙을 조금 넣어 빚고 골 때 대추를 넣으면 매우 좋다고 한다.
어머니는 동지팥죽을 꼭 쑤어 주셨다. 6남매가 둘러앉아 새알심을 만드는 것은 아주 즐거운 놀이였다. 마치 진흙으로 공작놀이를 하듯 떠들면서 재미있게 만들었다. 손과 얼굴엔 쌀가루가 범벅이 되고 허리는 아팠지만 커다란 쟁반에 우리가 만든 새알심은 소복이 쌓여갔다. 어머니는 부엌에서 커다란 가마솥에 팔을 끓이고 계셨고 창밖엔 눈이 소복소복 쌓여갔다. 온 부엌이 팥 삶아지는 냄새와 수증기로 앞을 보기 어렵게 되었을 때 어머니는 우리가 만든 새알심을 가져가 솥에다 넣었다. 바닥이 눌지 않도록 커다란 주걱으로 휘휘 저으면 뻐끔뻐끔 방울이 생겼다가 톡톡 터지는 것을 바라보는 재미도 있었다.
죽을 젓다가 팔이 너무 아파 잠시 쉬고 있으면 어머니가 보시곤 큰일이라도 난 듯 주걱을 빼앗아 계속 저었다. 죽이 되기를 기다리다 지친 우리들이 밖으로 나가서 눈싸움을 하였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어머니가 부르시는 소리에 얼른 집으로 돌아온 우리들은 서로 큰 그릇에 담긴 팥죽을 먹으려고 실랑이를 하였다. 새알심을 나이만큼만 먹으라는 어머니 말씀에 두개를 하나로 세기도 하면 정신 없이 먹고 나면 이웃집에 가져다주라고 정성껏 싸놓으신 팥죽그릇을 하나씩 들고나섰다. 어머니는 집 주위에 팥죽을 뿌리기도 하고 벽에 바르기도 하시며 뭐라고 빌었는데 그때는 무슨 말인지 모르고 그저 아깝기만 했었다.
요즘은 어머니가 쑤어주신 동지팥죽을 먹을 수가 없다. 아파트 벽에도 바르지 않는다. 나이만큼 새알심도 먹지 않는다. 동지가 되면 각 식당에 "동지팥죽 팝니다." 라는 문구가 붙는다. 어쩌다 아내가 친구 집에서 얻어오거나 한 냄비쯤 사오면 먹기는 하지만 어릴 적만큼 신명이 나진 않는다. 점차 사라져 가는 세시풍속들이 안타깝기만 하다. 우리들의 명절은 얼마나 없어지고 발렌타인 같은 새로운 풍습으로 대치될까.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이란 말이 지금은 통하지 않게 되었을까. 새알심을 직접 만들어보지 않은 손자들이 자라면 먼 역사책에서나 볼 수 있을 동지팥죽의 풍속은 이대로 없어질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멸종되는 동물을 지키려고 노력하듯 동지팥죽을 지키려는 노력도 필요하지 않을까.
올 겨울은 유별나게 시작하고 있다. 폭설(暴雪)로 인한 농민들의 신음소리가 엄동설한(嚴冬雪寒) 칼바람보다도 더욱 춥게 느껴지는 이번 동지는 12월 22일이다. 사랑이란 새알심이 가득 든 동지팥죽 한 그릇씩이라도 그들에게 전하고픈 간절한 마음이다. (2005. 12.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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