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순을 넘어 일흔으로 가는 마지막 길목

2005.12.17 13:55

김병규 조회 수:94 추천:20

예순을 넘어 일흔으로 가는 마지막 길목      
- 2005년을 보내며-
전북대학교평생교육원 수필창작과정(고) 김병규


새해 아침에 결심했었다. 욕심을 버리고, 미움도 버리고, 노여움까지 다 버리고 순박하게 살자고 다짐했었다. 좋은 생각에, 좋은 말만하고, 좋은 일만하며, 기쁜 날을 살자고 결심했었다. 고운 마음으로 이웃을 사랑하고 노년의 품위를 지키며 곱게 살자고 다짐했었다.

을유년 새해 첫날이 어제 같은데, 거리엔 또 구세군의 종소리가 울린다. 기쁨과 슬픔이 함께 헸던 2005년 한해가 역사의 물결 속으로 사라지는 소리다. 고희의 문턱에 이르니 세월이 이렇게 빠른 것을……. 과거를 반성하지 않는 사람은 내일의 희망을 열기 어렵다. 지난해를 여과 없이 살펴 옳고 그름을 가려야 하고, 그 과정을 거울삼아 미래의 설계를 알차게 꾸며야한다. 나도 우리 집안에 일어난 중요한 10대 뉴스를 밝혀 미래를 열어갈 기준으로 삼으려 한다.

1, 내가 글을 써서 상을 받았다
내가 상을 받다니 꿈같은 일이다. 노년에 든 책가방, 지도 교수님의 정성어린 강의가 내 마음을 감화시켜 수필공부에 나로서는 최선을 다했다. 언제나, 세상에서 조금이나마 인정받는 글을 쓸까 고심 중에 양성평등실천사례수기공모에 응모하라는 교수님의 권고가 있었다. 수상 소식을 들었을 때 뛸 듯이 기뻤다. 시상식 날, "연세 많으신 분이 대단하십니다. 축하합니다." 격려의 그 말씀에 용기가 더욱 충천했다. 상금도 50만원이나 되었다. 의미 있는 그 돈을 어디에 쓸까?. 나와 만나 43년 온갖 고초를 겪으며 불평 없이 살아온 아내에게 옷을 선물하기로 하였다. "사람이 갑자기 변하면 신변에 변고가 생긴다는데, 당신 이상 있는 게 아니요? 평생 선물이라곤 생각도 없던 분이 나에게 선물이라니?" 아내는 농담 섞인 말로 얼버무리면서도 주름진 얼굴이 밝아 보였고 입가엔 웃음이 흘렀다.

2, 효성이 지극한 큰아들 내외
큰아들 내외가 다니는 교회(남서울교회)의 초청을 받았다. 강원도 오대산 청소년수련원에서 있었던 하계수련회에 참가하라는 초청이었다. 모기가 극성을 부리던 찜통 더위의 한 여름인데도 모기는 찾을 수 없었고 시원하기가 천국 같은 곳이었다. 조석의 예배에서 믿음의 의미를 크게 깨달았다. 아들 내외의 친구들이 친자식들처럼 우리 내외를 살펴주었고 목사님이 관심 있게 보살펴주어서 3박4일간의 유익한 수련을 마쳤다. 아들 내외가 교회에서도 좋은 인연을 만난 듯 싶어 든든하였다.

3, 막내아들 회사 사장의 초청
아들이 입사한 후 8년 만에 있었던 부형초청행사에 참석했었다. 아들의 회사 다이모스(주)는 자동차, 탱크, 항공기 등의 부품과 부속품을 생산하는 큰 회사다. 일에 바쁜 꿀벌이 슬퍼할 틈도 없다하듯이 전 사원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제품을 생산하여 국내 소비에 충당하고 세계 전역에 수출하여 외화를 벌어드리고 국력신장에 큰 역할을 하는 회사다. 아들이 미국과 독일 프랑스까지 출장하며 도입한 시스템에서 로봇이 작동하여 생산되는 제품이 자동으로 나오는 것이 신기하게 보였다. 아들이 어떤 일을 하는지 궁금증이 싹 풀렸다. 현장 견학을 마치자 사원과 부형들이 한자리에 모여 연회를 열었고 선물까지 주어 고마웠다.

4, 목욕탕 폐업
오랫동안 휴업으로 공과금만 부담했던 목욕탕을 폐업했다. 극도로 쇠약한 아내의 도움을 받을 수 없어, 운영하자면 종업원 문제, 비싼 기름 값 문제 등 한정된 예상수입으로는 적자를 면치 못하리란 판단에서였다. 폐업신고와 동시에 목욕탕에 딸린 각종 허가를 취소하고 돌아올 때, 앞이 캄캄하며 눈시울이 뜨거웠다. 소득 없이 노년을 어떻게 보낼까하는 걱정이 내 마음을 어둡게 했다.

5, 작은딸 부부의 불화
지난해 부부불화로 우리 내외에게 충격을 주었던 작은딸 내외가 그 일을 되풀이  했다. 최악의 사태까지 갈 위기에 처해 있었다. 나 역시 자제능력을 상실하고 고심했었다. 내가 외면하면 갈라설 지경에 이르렀다. 상황은 차마 글로 남길 수 없도록 심각했었다. 이혼만은 막아야 한다고 서둘렀다. 세월이 가고 나이가 들면 철도 들어 달라지겠지, 기대하며 최선을 다했다. 이혼율이 높다는 이야기를 자주 들었지만 하마터면 내 집에서도 그런 일이 벌어질 번했다. 아찔한 순간을 가까스로 넘겨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6, 큰딸 가족의 해외 진출
큰사위가 일본으로 발령을 받았다. 큰딸 내외는 어른을 공경하는 착한 심성과 베풀기 좋아하는 아름다운 마음을 지니고 있다. 큰사위는 일본으로 떠나면서 3년 간 자기 부모님의 생활비를 마련해 드리고, 처부모인 우리에게까지도 3년 간의 용돈을 섭섭잖게 보내왔었다. 3년의 임기를 무사히 마치고 또 많은 배움과 경험을 쌓고 돌아오기를 빌고 있다.

7, 큰아들 누명 벗겨져
자정을 넘긴 밤 전화가 울려 불길한 예감으로 받았다. 좀처럼 술을 입에 대지 않는 아들의 취한 목소리였다. "아버지! 제가 어려운 고비를 넘겼어요. 3개월 동안이나 검찰조사를 받고 오늘에야 누명을 벗었어요." 거의 울먹이는 목소리였다. "그래, 무슨 누명?" 나는 답답했다. 회사의 책임자가 일으킨 부정에 동조자로 연루되어 심한 조사를 받았는데 오늘 혐의에서 벗어났다고 했다. 친구들의 위로를 받으며 술을 들다보니 아버지 생각이 나서 전화를 드렸다고 했다. 세상 살다보면 그렇게 억울하고 어려운 일도 있으니, 불의는 멀리하고 바른길을 걸으라고 격려하면서도, 검찰 조사에서 얼마나 시달렸을까 생각하며 그 날 밤 뜬눈으로 새벽을 맞았다.

8, 작은아들 신 장비 도입 성공
저 지난 해, 아들은 해외에 장기출장을 했었다. 미국, 독일, 이태리 등을 출장하며 신 장비를 도입 장치하다가, 허리를 다쳐 수술까지 받았었다. 금년에도 독일에 출장하여 새 장비를 도입한다는 전갈이 와서 염려를 했더니, 기계 조작능력이 숙달되어 순조롭게 진행된다는 소식을 보내주었다.

9, 즐거운 사회복지회관 등록
우리 마을에 덕삼종합사회복지관이 문을 열었다. 전주 기전대학의 후원으로 웅장하게 세운 복지관은 주로 60세 이상 노인을 대상으로 건강체조, 태극권, 에어로빅, 요가, 민요교실, 노래교실, 치매예방교실, 인터넷 등을 가르친다. 나는 아내와 같이 등록하여 우리 취향에 맞는 과목을 선택하여 배우며 유익하고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10, 우리 집 꼬마농장 농사 풍년들어 나누는 기쁨 만끽
집 뒤란의 30평 공터는 우리 집 유일의 꼬마농장이다. 금년에는 친구의 땅을 빌어 농장을 확장했었다. 주로 농약을 않는 작물을 선택하다보니, 생강, 고구마, 대파, 호박, 강낭콩 등을 심었다. 강낭콩의 경우 여름 우기에 수확을 했는데, 수확 후 싹이 나서 곤욕을 치렀다. 타 작물은 풍족한 수확이 되어 오랜만에 이웃에 주는 손이 되었다. 특히 생강의 경우는 품질도 좋고 생산량도 넉넉하여 여러 집에 나눌 수 있었다. 주는 손은 언제나 행복하고 즐거웠다.

2005년을 보내고 나면 나는 고희를 맞는다. 인생칠십고래희(人生七十古來稀)라고 했다는데 내가 그 일흔 고개를 넘게 된다. 일흔 살에 바라보는 세상의 모습은 어떨까? 인생의 지평선이 어서 보고 싶다.
               (2005. 12.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