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버린 한 해를 되돌아보며
2006.01.15 15:54
가버린 한 해를 되돌아보며
-2005년 우리 집 10대 뉴스를 중심으로-
김 학
2005년 을유년 한 해가 갔다. 지구촌을 두루 살펴보아도 웃을 일보다는 짜증스러운 일들이 더 많았던 해가 아니었나 싶고, 국내사정도 다를 바 없다. 특히 연말에 터진 서울대 황우석 교수의 줄기세포파동이 우리의 눈과 귀와 입을 즐겁게 해 준 한 해였다. 그렇다면 우리 집의 사정은 어땠을까?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뉴스 가치에 따라 우리 집의 10대 뉴스를 중심으로 올해의 가족사(家族史)를 정리해 보았다.
첫째, 둘째아들 창수(昌洙) 결혼
삼성전자 선임연구원인 둘째 아들 창수가 9월 9일 금요일 오후 7시 서울 프리마호텔 그랜드볼룸에서 펜클럽 명예이사장인 성기조 교수의 주례로 결혼식을 올렸다. 신부는 서울에 사는 최용혁 홍재숙 님의 외동딸 수영 양. 이로써 나는 2남1녀 모두를 성혼시켰다. 친지들에게 은혜를 많이 입었지만 마음은 홀가분하다. 외동딸인 둘째 며느리는 용모가 단정하고 마음씨마저 곱다. 외동딸이라 은근히 걱정이었는데 외동 딸 티가 나지 않아 좋다. 남편을 하늘처럼 여기고 시부모에게 곰살갑게 안부전화도 자주 하니 몹시 귀엽다. 예쁨도 미움도 자신이 만드는 것임을 다시 한 번 깨닫는다. 어서 떡두꺼비같은 손자나 하나 낳았으면…….
둘째, 큰아들 정수(廷洙) 대리로 승진
LG텔레콤에 다니는 큰아들 정수가 1월 1일자로 대리로 승진하였다. 장한 일이다. 휴일도 없이 출근하고 날마다 밤 11시나 되어야 퇴근한다니 직장생활이 얼마나 고달픈지 이해가 간다. 원래 월급쟁이라는 게 승진하는 재미로 다니는 게 아니던가? 이제 첫걸음을 떼었으니 앞을 바라보며 뚜벅뚜벅 걸어가기를 바랄 뿐이다. 큰아들 정수가 승진했으니 큰며느리 천지숙과 손주 동현이도 입이 함박만해졌을 것이다. 정수는 큰아들답게 어려서부터 책임감이 강한 녀석이었으니 앞으로도 직장생활을 잘 헤쳐나가리라 믿는다.
셋째, 친손주와 외손주 돌잔치
친손주 동현(東炫)이는 지난해 8월 5일에, 외손주 안병현(安秉賢)이는 12월 20일에 태어났으니 두 아이 모두 돌을 맞았다. 각자 생일에서 가까운 주말을 잡아 돌잔치를 가졌다. 어른들의 회갑잔치가 사라지면서 아이들의 돌잔치가 유행하게 된 게 요즘의 새로운 풍속도다. 돌잔치 때는 아이가 무엇을 집느냐가 관심거리인데 동현이와 병현이는 둘 다 약속이나 한 듯 연필을 집었다. 그 아이들의 아비와 어미는 '돈'이나 '컴퓨터 마우스'를 집었으면 했던 모양인데 그 주인공들은 눈치도 없이 연필을 선뜻 집었다. 장래 선비의 길을 걸으려는 모양이라고 박수를 치며 우리는 크게 웃었다.
넷째, 고명딸 선경(宣京), 경인교육대학교 학사편입
서울대학교에서 석사학위까지 받고 서울대 경제학부 조교로 근무하던 고명딸 선경이가 경인교육대학교 3학년으로 학사편입을 하여 다시 여대생이 되었다. 선경이 시아버지는 지난해 2월 서울시내 초등학교 교장으로 정년퇴임을 하셨고 시어머니는 올 9월에 교장으로 승진한 교육가족이다. 시부모가 선경이에게 교육대학교에 편입하기를 소망하여 그렇게 된 것이다. 딸은 출가외인이니 시부모의 뜻을 따르는 게 좋을 듯 싶어, 다시 대학원에 진학하여 박사과정을 밟으라고 주장하던 나는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다섯째, PEN클럽한국본부 부 이사장 당선
나는 지난 2월 국제PEN클럽 한국본부 32대 이사장단 선거에 부 이사장으로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이사장에 문효치 시인, 부 이사장에 김종상 아동문학가, 이수화 시인, 이길원 시인, 정종명 소설가, 김학 수필가 등이 러닝메이트로 출마하여 회원들의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된 것이다. 지역에서 활동하는 문인이 펜클럽 부 이사장에 진출한 것은 펜클럽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 아닌가 싶어 자랑스럽다.
여섯째,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과정 수강생 2개 신문사 신춘문예 수필 당선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에 수필창작과정이 개설된 지 4년 반만에 고대하던 대로 2006년 신춘문예 수필부문 당선자가 나왔다. 전북일보에선 김재희 님이 '장승'이란 작품으로 247:1의 바늘구멍 같은 관문을 뚫었다. 이미 격월간 수필과 비평으로 등단하여 활동하는 기성수필가이지만 이번에 다시 도전하여 문학소녀 시절의 꿈을 이룬 것이다. 또 이미 시인으로 등단하여 활동 중인 이주리 님은 경남신문 신춘문예 수필부문에 도전하여 '피아노와 플루트'란 작품으로 당선의 영광을 차지했다. 전주일보 신춘문예 수필부문 당선자인 서영복 님과 전북일보 신춘문예 수필부문 당선자인 한경선 님이 수필창작과정에서 몇 학기 강의를 들은 적은 있지만 재학 중 신춘문예 당선은 이번이 처음이어서 그 의미가 더 크다. 지난 2학기 때 무려 95명의 수강생이 등록하여 가장 많은 등록기록을 세우더니 이처럼 좋은 결과를 가져와서 무척 기쁘고 자랑스럽다. 6년 만에 두 번째로 내가 신춘문예 수필부문 심사를 맡게 된 것도 나로서는 또 하나의 경사였다.
일곱째, 해외문학심포지엄 참가 후 호주, 뉴질랜드 관광
한국문인협회가 마련한 해외문학심포지엄이 호주 시드니에서 열렸다. 여행비 240만 원이 부담스러워 머뭇거리자 둘째아들이 선뜻 여행비를 마련해주어서 기쁜 마음으로 다녀올 수 있었다. 호주의 수도 시드니 관광을 마치고 뉴질랜드로 건너가 남섬과 북섬을 두루 둘러볼 기회가 있어서 참 좋았다. 특히 뉴질랜드의 청정한 자연은 아주 인상적이었다. 우리나라의 1.5배쯤 되는 국토에 겨우 4백만 명의 인구가 산다니 콩나물 시루같이 빽빽한 우리나라에 비하면 인구밀도가 낮아 부럽기 짝이 없었다.
여덟째, 22년 만에 다시 교단에 선 아내
교직에서 물러난 지 22년 만에 아내가 다시 교단에 섰다. 전주교육대학교를 나온 뒤 국민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다 14년 만에 사표를 내고 전업주부가 되었던 아내다. 아이들 2남1녀 뒤치다꺼리를 하면서 세월을 보내던 아내가 어떤 일인지 기간제 교사로 다시 교단에 서게 되었다. 세 아이들이 결혼하여 분가를 하니 심심했던 모양이다. 옛날 '국민학교'라던 학교 이름이 지금은 '초등학교'로 바뀌었다. 요즘 초등학교 아이들은 옛날 국민학교 시절의 아이들보다 더 영악해졌고 학부모들의 순수성도 변했다며 아내는 몹시 안타까워한다.
아홉째, 추억과 낭만의 환상선 순환열차여행
몇 년 전부터 벼르던 순환열차여행을 하게 되었다. 초등학교 동창 세 명이 함께 한 열차여행은 즐거웠다. 원래 강원도 눈꽃을 구경하러 가는 여행인데 이번에는 반대였다. 우리 고장에는 보름정도 날마다 눈이 내렸지만 오히려 눈의 고장이던 강원도는 가뭄이 심해 대조를 이루었다. 12월 20일 아침 8시 전주를 출발한 열차는 충청북도 단양역을 거쳐 우리나라에서 가장 산골역인 승부역과 가장 높은 곳인 해발 855m의 추전역까지 두루 구경하고 돌아올 수 있었다. 전주역에 도착하니 밤 10시 반. 역시 열차여행은 추억과 낭만을 느낄 수 있어 좋았다. 열차 안에서 김밥을 나눠먹고, 마련해간 안주로 과일주 몇 잔씩 마시니 천하가 내 것인 양 부러울 게 없었다.
열째, 저금통장에서 빠져나간 5백만 원은 아직도 돌아올 줄 모르고
지난 1월 초 나는 예기치 않게 내가 예뻐하던 방송계 후배의 전화를 받았다. 미국에서 취재를 하고 있는데 일행이 사고를 당해서 급히 돈이 필요하니 7백만 원만 온라인으로 빌려달라는 이야기였다. 그 전화의 주인공은 일찍이 내가 남원방송국 방송부장으로 있을 때 수습사원으로 만나 내가 프로듀서로서 기초부터 가르쳤던 후배였다. 그 후배는 서울 본사로 올라가서 중국이나 북한을 처갓집 드나들 듯하며 잘 나갔었다. 그런 그가 자기가족이나 직장 동료에게 전화를 해서 돈을 빌려도 될 텐데 왜 퇴직한 나에게까지 손을 벌릴까 의아했었다. 또 내 전화에 발신자번호가 찍히지도 않았다. 그의 집에 전화를 걸어도 전화번호가 바뀌었다며 통화가 되지 않았다. 그 친구는 자기 저금통장번호도 아니고 생면부지 낯선 여자의 통장번호를 알려주며 그 통장에 돈을 넣어달라고 했다. 미심쩍은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지만 얼마나 다급했으면 나에게까지 손을 벌리랴 싶어 5백만 원을 송금해주었다. 송금사실을 확인하려고 전화를 건 뒤 그 후배는 지금까지 감감무소식이다.
그런 일이 있은 지 며칠 뒤 건지산(乾止山)에서 우연히 그 친구와 입사동기생인 K를 만났다. K의 말을 들으니 그 후배는 강원랜드에 드나들며 빠찡꼬를 해서 돈을 많이 날렸다는 것이다. 아는 사람들에게서 모두 돈을 빌어다 잃고 마침내 직장도 그만두었다는 것이다. 지금은 그의 연락처조차 알 수 없다고 했다. 난감했다. 모질게 거절하지 못한 게 후회가 되기도 했었다. 그러나 이미 엎질러진 물! 나 스스로 마음을 고쳐먹기로 했다. 내가 그 돈을 내 통장에서 덜어내지 않았다면 또 어떤 일이 일어났을지 모른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연말정산 혜택을 받지는 못해도 엄연히 이웃돕기를 한 셈이라고 자위하기로 했다. 언젠가 장롱 속에 넣어둔 금붙이를 양상군자(梁上君子)에게 잃고도 농 속에 있겠거니 생각했던 것처럼, 그 돈도 통장 속에 있으려니 생각하기로 했다. 그러니 한결 마음이 편했다. 언젠가 그 후배가 다시 일어서는 날 돌려준다면 공돈처럼 고맙지 않겠는가?
또 1년이 저물었다. 세월은 나이만큼의 속도로 간다는 게 맞는 이야기인 성싶다. 내 나이가 한 살 불어나게 되니 내년에는 올해보다 더 시간이 빨리 갈 것이다. 이렇게 2005년의 우리 집 10대 뉴스를 정리하고 보니 우리 집의 올해 가족사(家族史)가 대충 정리되었다. 날마다 일기를 쓰는 것은 개인사(個人史)를 정리하는 방법이다. 그렇게 개인사가 모이면 그게 가족사가 되지 않겠는가. 날마다 일기를 쓰지 못하는 사람이라도 이렇게 1년의 가족사를 정리해보면 좋지 않을까 싶다.
“군자(君子)는 새해를 맞으면 반드시 그 마음가짐과 행동을 새롭게 할 필요가 있다.”(君子履新 必其心與行亦要一新:<寄兩兒>)고 한 다산 정약용 선생의 말씀처럼 우리도 무언가 새로운 마음가짐과 행동할 일들에 대한 다짐을 해야 할 때임이 분명하다. 송구영신의 마음은 올해도 예외가 아니다. 기대와 설렘으로 또 2006 병술년 새해를 맞아야겠다.
(2005. 12. 31.)
-2005년 우리 집 10대 뉴스를 중심으로-
김 학
2005년 을유년 한 해가 갔다. 지구촌을 두루 살펴보아도 웃을 일보다는 짜증스러운 일들이 더 많았던 해가 아니었나 싶고, 국내사정도 다를 바 없다. 특히 연말에 터진 서울대 황우석 교수의 줄기세포파동이 우리의 눈과 귀와 입을 즐겁게 해 준 한 해였다. 그렇다면 우리 집의 사정은 어땠을까?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뉴스 가치에 따라 우리 집의 10대 뉴스를 중심으로 올해의 가족사(家族史)를 정리해 보았다.
첫째, 둘째아들 창수(昌洙) 결혼
삼성전자 선임연구원인 둘째 아들 창수가 9월 9일 금요일 오후 7시 서울 프리마호텔 그랜드볼룸에서 펜클럽 명예이사장인 성기조 교수의 주례로 결혼식을 올렸다. 신부는 서울에 사는 최용혁 홍재숙 님의 외동딸 수영 양. 이로써 나는 2남1녀 모두를 성혼시켰다. 친지들에게 은혜를 많이 입었지만 마음은 홀가분하다. 외동딸인 둘째 며느리는 용모가 단정하고 마음씨마저 곱다. 외동딸이라 은근히 걱정이었는데 외동 딸 티가 나지 않아 좋다. 남편을 하늘처럼 여기고 시부모에게 곰살갑게 안부전화도 자주 하니 몹시 귀엽다. 예쁨도 미움도 자신이 만드는 것임을 다시 한 번 깨닫는다. 어서 떡두꺼비같은 손자나 하나 낳았으면…….
둘째, 큰아들 정수(廷洙) 대리로 승진
LG텔레콤에 다니는 큰아들 정수가 1월 1일자로 대리로 승진하였다. 장한 일이다. 휴일도 없이 출근하고 날마다 밤 11시나 되어야 퇴근한다니 직장생활이 얼마나 고달픈지 이해가 간다. 원래 월급쟁이라는 게 승진하는 재미로 다니는 게 아니던가? 이제 첫걸음을 떼었으니 앞을 바라보며 뚜벅뚜벅 걸어가기를 바랄 뿐이다. 큰아들 정수가 승진했으니 큰며느리 천지숙과 손주 동현이도 입이 함박만해졌을 것이다. 정수는 큰아들답게 어려서부터 책임감이 강한 녀석이었으니 앞으로도 직장생활을 잘 헤쳐나가리라 믿는다.
셋째, 친손주와 외손주 돌잔치
친손주 동현(東炫)이는 지난해 8월 5일에, 외손주 안병현(安秉賢)이는 12월 20일에 태어났으니 두 아이 모두 돌을 맞았다. 각자 생일에서 가까운 주말을 잡아 돌잔치를 가졌다. 어른들의 회갑잔치가 사라지면서 아이들의 돌잔치가 유행하게 된 게 요즘의 새로운 풍속도다. 돌잔치 때는 아이가 무엇을 집느냐가 관심거리인데 동현이와 병현이는 둘 다 약속이나 한 듯 연필을 집었다. 그 아이들의 아비와 어미는 '돈'이나 '컴퓨터 마우스'를 집었으면 했던 모양인데 그 주인공들은 눈치도 없이 연필을 선뜻 집었다. 장래 선비의 길을 걸으려는 모양이라고 박수를 치며 우리는 크게 웃었다.
넷째, 고명딸 선경(宣京), 경인교육대학교 학사편입
서울대학교에서 석사학위까지 받고 서울대 경제학부 조교로 근무하던 고명딸 선경이가 경인교육대학교 3학년으로 학사편입을 하여 다시 여대생이 되었다. 선경이 시아버지는 지난해 2월 서울시내 초등학교 교장으로 정년퇴임을 하셨고 시어머니는 올 9월에 교장으로 승진한 교육가족이다. 시부모가 선경이에게 교육대학교에 편입하기를 소망하여 그렇게 된 것이다. 딸은 출가외인이니 시부모의 뜻을 따르는 게 좋을 듯 싶어, 다시 대학원에 진학하여 박사과정을 밟으라고 주장하던 나는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다섯째, PEN클럽한국본부 부 이사장 당선
나는 지난 2월 국제PEN클럽 한국본부 32대 이사장단 선거에 부 이사장으로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이사장에 문효치 시인, 부 이사장에 김종상 아동문학가, 이수화 시인, 이길원 시인, 정종명 소설가, 김학 수필가 등이 러닝메이트로 출마하여 회원들의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된 것이다. 지역에서 활동하는 문인이 펜클럽 부 이사장에 진출한 것은 펜클럽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 아닌가 싶어 자랑스럽다.
여섯째,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과정 수강생 2개 신문사 신춘문예 수필 당선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에 수필창작과정이 개설된 지 4년 반만에 고대하던 대로 2006년 신춘문예 수필부문 당선자가 나왔다. 전북일보에선 김재희 님이 '장승'이란 작품으로 247:1의 바늘구멍 같은 관문을 뚫었다. 이미 격월간 수필과 비평으로 등단하여 활동하는 기성수필가이지만 이번에 다시 도전하여 문학소녀 시절의 꿈을 이룬 것이다. 또 이미 시인으로 등단하여 활동 중인 이주리 님은 경남신문 신춘문예 수필부문에 도전하여 '피아노와 플루트'란 작품으로 당선의 영광을 차지했다. 전주일보 신춘문예 수필부문 당선자인 서영복 님과 전북일보 신춘문예 수필부문 당선자인 한경선 님이 수필창작과정에서 몇 학기 강의를 들은 적은 있지만 재학 중 신춘문예 당선은 이번이 처음이어서 그 의미가 더 크다. 지난 2학기 때 무려 95명의 수강생이 등록하여 가장 많은 등록기록을 세우더니 이처럼 좋은 결과를 가져와서 무척 기쁘고 자랑스럽다. 6년 만에 두 번째로 내가 신춘문예 수필부문 심사를 맡게 된 것도 나로서는 또 하나의 경사였다.
일곱째, 해외문학심포지엄 참가 후 호주, 뉴질랜드 관광
한국문인협회가 마련한 해외문학심포지엄이 호주 시드니에서 열렸다. 여행비 240만 원이 부담스러워 머뭇거리자 둘째아들이 선뜻 여행비를 마련해주어서 기쁜 마음으로 다녀올 수 있었다. 호주의 수도 시드니 관광을 마치고 뉴질랜드로 건너가 남섬과 북섬을 두루 둘러볼 기회가 있어서 참 좋았다. 특히 뉴질랜드의 청정한 자연은 아주 인상적이었다. 우리나라의 1.5배쯤 되는 국토에 겨우 4백만 명의 인구가 산다니 콩나물 시루같이 빽빽한 우리나라에 비하면 인구밀도가 낮아 부럽기 짝이 없었다.
여덟째, 22년 만에 다시 교단에 선 아내
교직에서 물러난 지 22년 만에 아내가 다시 교단에 섰다. 전주교육대학교를 나온 뒤 국민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다 14년 만에 사표를 내고 전업주부가 되었던 아내다. 아이들 2남1녀 뒤치다꺼리를 하면서 세월을 보내던 아내가 어떤 일인지 기간제 교사로 다시 교단에 서게 되었다. 세 아이들이 결혼하여 분가를 하니 심심했던 모양이다. 옛날 '국민학교'라던 학교 이름이 지금은 '초등학교'로 바뀌었다. 요즘 초등학교 아이들은 옛날 국민학교 시절의 아이들보다 더 영악해졌고 학부모들의 순수성도 변했다며 아내는 몹시 안타까워한다.
아홉째, 추억과 낭만의 환상선 순환열차여행
몇 년 전부터 벼르던 순환열차여행을 하게 되었다. 초등학교 동창 세 명이 함께 한 열차여행은 즐거웠다. 원래 강원도 눈꽃을 구경하러 가는 여행인데 이번에는 반대였다. 우리 고장에는 보름정도 날마다 눈이 내렸지만 오히려 눈의 고장이던 강원도는 가뭄이 심해 대조를 이루었다. 12월 20일 아침 8시 전주를 출발한 열차는 충청북도 단양역을 거쳐 우리나라에서 가장 산골역인 승부역과 가장 높은 곳인 해발 855m의 추전역까지 두루 구경하고 돌아올 수 있었다. 전주역에 도착하니 밤 10시 반. 역시 열차여행은 추억과 낭만을 느낄 수 있어 좋았다. 열차 안에서 김밥을 나눠먹고, 마련해간 안주로 과일주 몇 잔씩 마시니 천하가 내 것인 양 부러울 게 없었다.
열째, 저금통장에서 빠져나간 5백만 원은 아직도 돌아올 줄 모르고
지난 1월 초 나는 예기치 않게 내가 예뻐하던 방송계 후배의 전화를 받았다. 미국에서 취재를 하고 있는데 일행이 사고를 당해서 급히 돈이 필요하니 7백만 원만 온라인으로 빌려달라는 이야기였다. 그 전화의 주인공은 일찍이 내가 남원방송국 방송부장으로 있을 때 수습사원으로 만나 내가 프로듀서로서 기초부터 가르쳤던 후배였다. 그 후배는 서울 본사로 올라가서 중국이나 북한을 처갓집 드나들 듯하며 잘 나갔었다. 그런 그가 자기가족이나 직장 동료에게 전화를 해서 돈을 빌려도 될 텐데 왜 퇴직한 나에게까지 손을 벌릴까 의아했었다. 또 내 전화에 발신자번호가 찍히지도 않았다. 그의 집에 전화를 걸어도 전화번호가 바뀌었다며 통화가 되지 않았다. 그 친구는 자기 저금통장번호도 아니고 생면부지 낯선 여자의 통장번호를 알려주며 그 통장에 돈을 넣어달라고 했다. 미심쩍은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지만 얼마나 다급했으면 나에게까지 손을 벌리랴 싶어 5백만 원을 송금해주었다. 송금사실을 확인하려고 전화를 건 뒤 그 후배는 지금까지 감감무소식이다.
그런 일이 있은 지 며칠 뒤 건지산(乾止山)에서 우연히 그 친구와 입사동기생인 K를 만났다. K의 말을 들으니 그 후배는 강원랜드에 드나들며 빠찡꼬를 해서 돈을 많이 날렸다는 것이다. 아는 사람들에게서 모두 돈을 빌어다 잃고 마침내 직장도 그만두었다는 것이다. 지금은 그의 연락처조차 알 수 없다고 했다. 난감했다. 모질게 거절하지 못한 게 후회가 되기도 했었다. 그러나 이미 엎질러진 물! 나 스스로 마음을 고쳐먹기로 했다. 내가 그 돈을 내 통장에서 덜어내지 않았다면 또 어떤 일이 일어났을지 모른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연말정산 혜택을 받지는 못해도 엄연히 이웃돕기를 한 셈이라고 자위하기로 했다. 언젠가 장롱 속에 넣어둔 금붙이를 양상군자(梁上君子)에게 잃고도 농 속에 있겠거니 생각했던 것처럼, 그 돈도 통장 속에 있으려니 생각하기로 했다. 그러니 한결 마음이 편했다. 언젠가 그 후배가 다시 일어서는 날 돌려준다면 공돈처럼 고맙지 않겠는가?
또 1년이 저물었다. 세월은 나이만큼의 속도로 간다는 게 맞는 이야기인 성싶다. 내 나이가 한 살 불어나게 되니 내년에는 올해보다 더 시간이 빨리 갈 것이다. 이렇게 2005년의 우리 집 10대 뉴스를 정리하고 보니 우리 집의 올해 가족사(家族史)가 대충 정리되었다. 날마다 일기를 쓰는 것은 개인사(個人史)를 정리하는 방법이다. 그렇게 개인사가 모이면 그게 가족사가 되지 않겠는가. 날마다 일기를 쓰지 못하는 사람이라도 이렇게 1년의 가족사를 정리해보면 좋지 않을까 싶다.
“군자(君子)는 새해를 맞으면 반드시 그 마음가짐과 행동을 새롭게 할 필요가 있다.”(君子履新 必其心與行亦要一新:<寄兩兒>)고 한 다산 정약용 선생의 말씀처럼 우리도 무언가 새로운 마음가짐과 행동할 일들에 대한 다짐을 해야 할 때임이 분명하다. 송구영신의 마음은 올해도 예외가 아니다. 기대와 설렘으로 또 2006 병술년 새해를 맞아야겠다.
(2005. 12.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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