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 주머니와 돈지갑

2006.01.26 07:36

정현창 조회 수:186 추천:56

복 주머니와 돈지갑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과정(기) 정현창




   1960년 설날아침 현이는 싱글벙글 신바람이 났었다. 항상 늦잠꾸러기였지만 그 날만은 해가 뜨기 전에 일어나 설치고 다녔다. 지난 장날 설빔으로 사주신 색깔도 고운 한복을 벌 써 몇 번째 입어 봤는지 모른다. 시장에 같이 갔을 때 겨우 얻어 신은 하얀 운동화는 아직껏 방에서만 조심스럽게 신어 봤을 뿐이다. 오늘따라 왜 이리도 시간이 늦게 가는지…….  새 옷을 입고 새 신을 신고싶고 어른들께 세배를 드리면 주시는 세뱃돈으로 동네 구멍가게에서 알사탕과 딱지를 사고 싶어서였다. 현이가 기다리다 제풀에 지치기 시작할 때쯤 모든 절차가 끝나고 세배를 올릴 차례가 되었다. 이번에도 어른 순으로 할아버지께 세배를 드리기 때문에 현이 차례는 맨 뒤였다. 차례가 되자 엄마에게 배운 대로 세배를 드렸다. “우리 현이가 한 살 더 먹으니 얌전해졌구나. 올해도 튼튼하게 자라거라.”하시며 동전 한 닢을 주셨다. 현이는 얼른 받아서 엄마가 정성스럽게 만들어 허리춤에 달아주신 복 주머니 속에 넣었다. 큰아버지 등 가족 모두에게 세배를 다 마치니 복 주머니를 흔들면 딸랑딸랑 소리를 내며 제법 묵직해졌다. 떡국 먹으라는 엄마의 소리를 뒤로 한 채 구멍가게로 달려가는 현이의 마음은 하늘을 날고있었다.



  2006년 설날아침 창이의 마음은 무척이나 걱정되었다. 전반적인 경기부진과 큰 아빠의 정년퇴직 등 작년보다 모든 게 어려워져 도대체 집안 분위기가 설 기분이 나질 않는다. 설날 가정예배를 드리는 동안에도 예배는 안중에 없고 어른들 눈치만 살폈으나 무겁게 가라앉은 분위기는 창이를 숨막히게 했다. 할머니께 어른들이 먼저 세배를 드리고 아이들 사이에 끼어 혹시나 하고 더욱 정성껏 세배를 드렸으나 우려한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작년만 해도 배춧잎 한 장씩은 주셨는데 새로 나온 신권이라고 일부러 준비했다면서 공공연하게 반으로 줄여버렸다. 창이의 가슴은 콩콩 뛰었다. 그렇다고 어려운 사정을 아는 터라 억지로 웃으면서 받기는 했으나 너무 슬펐다. 5,000원짜리신권을 설이 지나고 만들지 않은 한국은행이 너무 미웠다. 창이의 보물 1호는 작년에 삼촌이 동남아를 다녀오면서 “창이 부자 되거라.” 하시며 선물한, 칼로 베어도 안전하다는 까만 가오리가죽 돈지갑이다. 현이는 어른이 된 듯하고 너무 신나서 친구들에게 자랑하고 다녔었다. 올 설날에는 세뱃돈을 많이 받아 돈지갑을 빵빵하게 채우고 싶었다. 오래 전부터 사고 싶었던 게임CD도 구하고 싶었고, 친구들에게도 자랑하고 싶었다. 배춧잎 한 장 없는 돈지갑을 보다가 창이는 “앙~”하고 울고 말았다.

                            (2006. 1. 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