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워지는 정월 대보름 풍습
2006.02.12 04:29
그리워지는 정월 대보름 풍습
전북대학교 평생 교육원 수필창작반 (고) 이윤상 (110호)
내일이 정월 대보름이다. 일년 중 가장 큰 망월(望月)이 뜨는 날이다. 내일 밤은 휘영청 밝은 보름달을 볼 수 있다는 기상예보다. 달에게 소원을 빌고 액운을 물리치는 날로, 나이 든 사람들은 아련한 추억이 묻어나는 날이다.
금년은 설날이 일요일이니, 보름날도 일요일이다. 주말마다 놀러오는 손주 녀석 두 놈이 제 엄마 따라와서 내 집에서 자고 간다고 한다.
"할머니, 무슨 맛있는 냄새가 나요. 내일이 누구 생일인가요?"
"아니다. 생일이 아니라 정월 대보름날이란다. 너희들 주려고 오곡밥과 나물,부럼을 준비하고 있다."
"생일도 아닌데, 왜 그런 음식을 장만해요?"
대보름이 무슨 날인지도 모르고, 민속놀이도 모른 채 자라는 아이들인지라 궁금해하는 눈치였다. 내가 어렸을 때 겪었던 대보름 풍습은 거의 사라지고 있다. 그러나 우리의 고유민속과 문화를 보존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자라나는 어린 세대들에게 잘 가르쳐 주어야 한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직접 체험을 시켜주면 좋겠지만 아파트공간에서는 거의 불가능하다.
"애들아! 할아버지 어렸을 때 보낸 대보름 이야기를 해주마. 들어보렴.보름 전날 밤에 잠을 자면 눈썹이 희어진다고 잠을 안 자려고 애를 먹은 적도 있다. 아침에 눈을 뜨면, 이웃 친구 집에 찾아가서 "아무개야!"하고 이름을 불러서, "응?" 하고 대답하면 "내 더위!"하고 더위를 파는 것으로 보름날 아침은 시작되었다. 더위를 팔면 신나고 재미가 있어서 어쩔 줄을 몰랐지."
"더위를 판다는 말이 무슨 뜻인가요?"
"옛날에는 에어콘은커녕 선풍기도 없어서 더위로 고생을 많이 했는데, '내 더위!'하면 내 더위를 네가 가져가라는 뜻이었단다."
그런 일이 있은 뒤 할머니가 귀밝이술이라고 술을 한 모금 마시라고 주니 받아 마셨다.그리고 부럼을 까먹었다.
"아침밥은 오곡밥을 김에 싸서 먹었지. 술은 귀가 밝아지라고 먹고, 두부는 토실토실 두부처럼 살찌라고 먹고, 김쌈은 노적쌈이라 해서 부자가 되기를 비는 마음으로 먹었단다. 그리고 일 년 내내 건강하고 밥맛이 좋아지라고, 콩나물, 무우채, 토란, 머우, 고사리, 시래기, 호박말림, 우무말림, 도라지나물 등 아홉 가지 나물을 먹었다. 또한 호박, 가지를 얇게 썰어서 말린 것을 들깨를 갈아서 만든 국을 들깨탕이라고 먹었단다. 내일 아침에 너희도 너희 할머니가 만든 그런 음식을 한번씩 먹어보아라."
"할아버지, 그런데 부럼이 무엇인데, 왜 먹어요?"
"옛날 아이들은 여름철에 부스럼이 많이 났는데, 부스럼이 나지 말라고, 호두, 잣, 땅콩, 밤 을 '딱' 소리내어 쪼개서 먹었단다."
"영섭아! 너 오곡밥이 무언지 아니?"
"알아요, 찹쌀, 보리, 조, 콩, 기장을 섞어서 지은 밥이고요. 밤, 대추, 은행, 땅콩, 잣을 섞은 밥은 약밥이라고 해요."
"응, 잘 알고 있구나."
제 할아버지가 들려주는 대보름날 전통음식이야기를 아이들은 마치 전설의 고향 이야기처럼 신기하다는 듯이 듣는 눈치였다. 다음에는 대보름날에 있었던 재미있는 민속놀이를 설명해 주었다.
"할아버지 어렸을 때는 동네별로 아이들이 모여서 다리 밟기,쥐불놀이,연 날려보내기를 하고 어른들은 농악놀이, 강강수월래, 줄다리기 등을 하면서 재미있게 대보름 달맞이를 했단다.그 중에서도 가장 신나는 것은 쥐불놀이였다. 작은 깡통 속에 불씨를 넣어서 둥근 원을 그리며 빙빙 돌리면 불이 활활 타오르지. 그 깡통을 힘차게 돌리면서 논두렁을 달리면 얼마나 신이 났는지 모른다. 쥐불놀이는 새해에 액운을 물리치고, 논두렁의 병. 해충을 태워 죽이려는 뜻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법으로 금하니 농촌에서도 쥐불놀이는 할 수 없단다."
사라져 가는 민속놀이나 전통음식, 전통문화는 가정, 사회, 국가적인 차원에서 소중한 교육과정으로 만들어 되살려야 옳다고 생각한다. 금년 정월 대보름에 즈음하여 국가기관이나 자치단체에서 몇 가지 행사를 벌인다는 보도를 보고, 참 잘하는 일이라 생각했다. 새로 뚫린 청계천 광천교에서는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다리밟기 행사를 대대적으로 한다. 제주도 북제주군 한선면 고산 문화유적지에서는 부싯돌로 불을 붙이는 퍼포먼스를 펼치며 들불축제를 벌인다니 얼마나 재미있겠는가. 우리고장 임실 필봉농악 보존회에서는 기굿을 시작으로 당산제, 샘굿, 마당밟이, 대보름 판굿, 달집태우기로 막을 내린다고 한다. 전주국립박물관에서도 민속놀이 겨루기 마당, 부럼 나누어주기, 복조리, 소쿠리 연 , 공예품 만들기, 체험 마당을 운영한다는 반가운 소식이다.
보름달이 온 우주에 자신을 덜어 줌으로써 다시 보름달이 되듯이, 우리 또한 가진 것을 나눔으로써 주변을 환하게, 훈훈한 마음을 비출 수 있지 않겠는가. 나눌 줄 아는 사람은 가난해도 행복하다. 보름달 같은 원만구족(圓滿具足)한 마음이 없다면, 보름달을 닮아보려는 기원(祈願)이 없다면, 우리가 사는 세상은 얼마나 지루하고 따분할 것인가.
2006.2.12 정월 대보름을 맞으며 2.11(토) 밤에 소감을 쓰다.
전북대학교 평생 교육원 수필창작반 (고) 이윤상 (110호)
내일이 정월 대보름이다. 일년 중 가장 큰 망월(望月)이 뜨는 날이다. 내일 밤은 휘영청 밝은 보름달을 볼 수 있다는 기상예보다. 달에게 소원을 빌고 액운을 물리치는 날로, 나이 든 사람들은 아련한 추억이 묻어나는 날이다.
금년은 설날이 일요일이니, 보름날도 일요일이다. 주말마다 놀러오는 손주 녀석 두 놈이 제 엄마 따라와서 내 집에서 자고 간다고 한다.
"할머니, 무슨 맛있는 냄새가 나요. 내일이 누구 생일인가요?"
"아니다. 생일이 아니라 정월 대보름날이란다. 너희들 주려고 오곡밥과 나물,부럼을 준비하고 있다."
"생일도 아닌데, 왜 그런 음식을 장만해요?"
대보름이 무슨 날인지도 모르고, 민속놀이도 모른 채 자라는 아이들인지라 궁금해하는 눈치였다. 내가 어렸을 때 겪었던 대보름 풍습은 거의 사라지고 있다. 그러나 우리의 고유민속과 문화를 보존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자라나는 어린 세대들에게 잘 가르쳐 주어야 한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직접 체험을 시켜주면 좋겠지만 아파트공간에서는 거의 불가능하다.
"애들아! 할아버지 어렸을 때 보낸 대보름 이야기를 해주마. 들어보렴.보름 전날 밤에 잠을 자면 눈썹이 희어진다고 잠을 안 자려고 애를 먹은 적도 있다. 아침에 눈을 뜨면, 이웃 친구 집에 찾아가서 "아무개야!"하고 이름을 불러서, "응?" 하고 대답하면 "내 더위!"하고 더위를 파는 것으로 보름날 아침은 시작되었다. 더위를 팔면 신나고 재미가 있어서 어쩔 줄을 몰랐지."
"더위를 판다는 말이 무슨 뜻인가요?"
"옛날에는 에어콘은커녕 선풍기도 없어서 더위로 고생을 많이 했는데, '내 더위!'하면 내 더위를 네가 가져가라는 뜻이었단다."
그런 일이 있은 뒤 할머니가 귀밝이술이라고 술을 한 모금 마시라고 주니 받아 마셨다.그리고 부럼을 까먹었다.
"아침밥은 오곡밥을 김에 싸서 먹었지. 술은 귀가 밝아지라고 먹고, 두부는 토실토실 두부처럼 살찌라고 먹고, 김쌈은 노적쌈이라 해서 부자가 되기를 비는 마음으로 먹었단다. 그리고 일 년 내내 건강하고 밥맛이 좋아지라고, 콩나물, 무우채, 토란, 머우, 고사리, 시래기, 호박말림, 우무말림, 도라지나물 등 아홉 가지 나물을 먹었다. 또한 호박, 가지를 얇게 썰어서 말린 것을 들깨를 갈아서 만든 국을 들깨탕이라고 먹었단다. 내일 아침에 너희도 너희 할머니가 만든 그런 음식을 한번씩 먹어보아라."
"할아버지, 그런데 부럼이 무엇인데, 왜 먹어요?"
"옛날 아이들은 여름철에 부스럼이 많이 났는데, 부스럼이 나지 말라고, 호두, 잣, 땅콩, 밤 을 '딱' 소리내어 쪼개서 먹었단다."
"영섭아! 너 오곡밥이 무언지 아니?"
"알아요, 찹쌀, 보리, 조, 콩, 기장을 섞어서 지은 밥이고요. 밤, 대추, 은행, 땅콩, 잣을 섞은 밥은 약밥이라고 해요."
"응, 잘 알고 있구나."
제 할아버지가 들려주는 대보름날 전통음식이야기를 아이들은 마치 전설의 고향 이야기처럼 신기하다는 듯이 듣는 눈치였다. 다음에는 대보름날에 있었던 재미있는 민속놀이를 설명해 주었다.
"할아버지 어렸을 때는 동네별로 아이들이 모여서 다리 밟기,쥐불놀이,연 날려보내기를 하고 어른들은 농악놀이, 강강수월래, 줄다리기 등을 하면서 재미있게 대보름 달맞이를 했단다.그 중에서도 가장 신나는 것은 쥐불놀이였다. 작은 깡통 속에 불씨를 넣어서 둥근 원을 그리며 빙빙 돌리면 불이 활활 타오르지. 그 깡통을 힘차게 돌리면서 논두렁을 달리면 얼마나 신이 났는지 모른다. 쥐불놀이는 새해에 액운을 물리치고, 논두렁의 병. 해충을 태워 죽이려는 뜻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법으로 금하니 농촌에서도 쥐불놀이는 할 수 없단다."
사라져 가는 민속놀이나 전통음식, 전통문화는 가정, 사회, 국가적인 차원에서 소중한 교육과정으로 만들어 되살려야 옳다고 생각한다. 금년 정월 대보름에 즈음하여 국가기관이나 자치단체에서 몇 가지 행사를 벌인다는 보도를 보고, 참 잘하는 일이라 생각했다. 새로 뚫린 청계천 광천교에서는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다리밟기 행사를 대대적으로 한다. 제주도 북제주군 한선면 고산 문화유적지에서는 부싯돌로 불을 붙이는 퍼포먼스를 펼치며 들불축제를 벌인다니 얼마나 재미있겠는가. 우리고장 임실 필봉농악 보존회에서는 기굿을 시작으로 당산제, 샘굿, 마당밟이, 대보름 판굿, 달집태우기로 막을 내린다고 한다. 전주국립박물관에서도 민속놀이 겨루기 마당, 부럼 나누어주기, 복조리, 소쿠리 연 , 공예품 만들기, 체험 마당을 운영한다는 반가운 소식이다.
보름달이 온 우주에 자신을 덜어 줌으로써 다시 보름달이 되듯이, 우리 또한 가진 것을 나눔으로써 주변을 환하게, 훈훈한 마음을 비출 수 있지 않겠는가. 나눌 줄 아는 사람은 가난해도 행복하다. 보름달 같은 원만구족(圓滿具足)한 마음이 없다면, 보름달을 닮아보려는 기원(祈願)이 없다면, 우리가 사는 세상은 얼마나 지루하고 따분할 것인가.
2006.2.12 정월 대보름을 맞으며 2.11(토) 밤에 소감을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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