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 백년 만의 시골중학교 동창회

2006.08.27 12:30

김영옥 조회 수:100 추천:19

반 백년 만의 시골중학교 동창회                    
                                                                                  행촌수필문학회  김영옥



경남 함양중학교는 해마다 8월 중순이면 총동창회를 갖는데, 올해로 60회를 맞는다. 나는  6회 졸업생이다. 그동안 한 번도 연락을 받지 못했다. 설사 받았다해도 갈 겨를이 없었다고 하는 게 맞는 말이다. 주부들의 한 세상이 그렇게 나들이가 쉬웠던가.  올해는 전주에 사는 3년 간 짝꿍이었던 친구가 함께 가보자고 권했으나 그는 갑자기 몸을 다쳐서 못 가고 나 혼자만 참석했다.
  
  수학여행을 떠나는 여학생 마냥 2시간 걸리는 거리이기에 서둘러서 약속 장소로 갔다. 그러나 이리저리 둘러봐도 아무도 나오질 않았다. 걸어서 3분 정도에 있는 상림 숲으로 발길을 옮겼다. 낯익은 숲을 한 바퀴 돌아보았다. 상림 숲은 함양의 자랑거리이자 천연기념물 154호로 지정되어 있다. 약1100여 년 전, 신라 진성여왕 때 함양고을 태수로 온 유명한 학자 고운 최치원 선생이 고을 중앙으로 흐르는 강물로 인해 홍수가 잦은 걸 보고 강물을 돌려놓고 둑을 쌓아 그 위에 나무를 심었다고 한다. 나무들은 합천 가야산에서 가져와 심었는데 강둑을 보호하기 위해 조성한 人工林이다. 上林, 下林이었는데 하림은 농경지로 변하고 상림은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다. 나무의 종류가 120종이나 되고, 2만여 그루나 된다고 한다. 늙을 대로 늙은 나무들은 윤기 없는 잎사귀를 매달고 있고, 가지들은 땅에 닿을 정도로 늘어져 있었다. 여기저기 썩은 나무들의 흉물스런 몰골들이 애처로웠다. 유심히 보았더니 곧은 나무는 별로 없고 나무 밑둥에서부터 두세 가지로 뻗은 것이 많음을 보고 옛 선조의 지혜에 감동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잠시 나무 그늘에 앉아 옛 추억에 잠겼다. 앞쪽 넓은 마당에서, 이웃 인월중학교와 축구시합이 있을 때 세라복 파란 넥타이를 풀어 흔들며 응원하던 모습이 아련히 떠오르며 단발머리 친구들의 모습들이 스치고 지나갔다. 모두들 어떻게 변했을까?서로 알아보기나 할까?  졸업한지 강산이 다섯 번 하고도 중반의 세월이 흘렀다. 숲을 떠나면서 세월의 무상함에 마음이 저려옴을 무엇이라 표현하리!

설레는 가슴을 안고 모임장소로 가니, 몇몇 남자친구들이 술상을 놓고 앉아 있다가 반겼다. 돌아가며 악수를 청했다. 누구라고 말해도 얼른 못 알아보다가. 그들이 청년시절에 우리 아버님이 정치에 관여하셨기에 그 아버지의 딸이라고 하자 더 쉽게 알아차렸다. 그 시대에는 남녀가 한 곳에서 공부는 했지만 얼굴도 못 익힐 정도로 내외를 지켰기에 반이 다르면 더욱 모를 수밖에 없었다. 기다려도 여학생들은 나타나지 않았다. 나 혼자이지만 옛날 같이 부끄러운 마음은 조금도 없고 친했던 친구처럼 느껴졌다. 이래서 동창이 좋다고 하는 건가.  

까까머리 소년, 단발머리 소녀가 반백의 머리에 주름진 모습으로 만났으니 정말 감개무량했다. 하나씩 친구들이 나타날 때마다 대 환영이다. 경쟁사회에서 늘 경계심에 짓눌려 웅크린 고양이처럼 살다가, 오랜만에 마음을 툭 터놓고 술잔이 오가고 그때 그 시절로 돌아가 허심탄회하게 이야기꽃을 피웠다. 동시대에 태어나 한 건물 안에서 3년을 아니 그 이상을 부대끼며 격동기를 지나고, 같은 사회의 공기를 마시고 살아왔기에 세대차이가 있을 수 없고, 서로를 이해할 수 있어 정이 더 가는 것이 아닐까?

저녁식사를 하고 모교로 향했다. 옛날보다 크게 변한 것은 어느 도시에나 있는 아파트다. 외따로 언덕에 있던 목조건물은 현대식 3층 건물로 바뀌었고, 비만 오면 진창이던 운동장도 넓게 잘 단장되었다. 27회가 주축이 되어 금년행사를 맡아 많은 경비를 들여 식장을 화려하게 꾸며놓았다. 영상설비가 잘되어 60회의 지나온 발자취를 한 눈에 볼 수 있었다. 화려한 불꽃놀이에 레이저 춤이며, 유명한 가수들도 몇 초청하고, 선물추첨도 있어 참석자들의 마음을 들뜨게 했다. 잘 차려 놓은 밥상처럼 모두들 먹고 마시고 취한 듯 60회 동창회 전야제는 시끌벅적하게 진행하였다. 27회 후배들의 수고는 칭찬하지만, 하룻밤 3시간정도 즐기자고 너무 많은 경비를 낭비한 것 같아 아쉬웠다. 그 중 뜨거운 불꽃놀이는 삼갔으면 좋을 것 같았다. 요란스럽고 시끄러워야 잔치 맛이 나는지 생각해봄직하다. 좀더 모교를 잊지 않고 후배들에게 본이 되는 알찬 프로그램을 짰더라면 더 좋았을 것 같다.

그 다음날, 젊은 후배들은 각 회기별로 체육대회가 있지만 우리들 6회는 70이 넘은 나이 탓인지 지리산 자락 물 좋은 곳으로 갔다. 남자가 3반이고 여자32명+남자18명 1반 합하여 4반이면 200명이 넘는데, 앞서 먼 세상으로 간 사람도 많고 외국으로 이민을 가거나 몸이 불편한 사람도 있겠지만 20여 명만 참석한 것이 못내 서운했다. 여학생들은 항상 6,7명은 나왔다는데 올해는 나 혼자였다. 또 가까이 있으면서도 잘 나오지 않는 사람도 있단다. 사회활동이라도 하면 나오고 그렇지 않으면 나오지 않는 것이 한국사회의 잘못된 관념인 것 같다.

산에는 몇 그루의 큰 나무만 있다고 산이 아름답게 보일까? 산에는 큰 나무 작은 나무부터 나무를 감고 올라가는 칡넝쿨도 있고 온갖 풀이 어우러져야 아름다운 산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사회도 갖가지 타고난 재능대로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며 사는 것이 바람직하리라 믿는다. 우리 동창들도 살아 있다면 동창생의 자격으로 참석해서 함께 만나 즐거움을 나누었으면  더 좋을 것 같다.              (2006년 8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