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과 더불어 40년

2006.09.07 17:24

김학 조회 수:187 추천:30



<나의 작가 노트>
수필과 더불어 40년
삼계 김 학(三溪 金 鶴)


*수필과 나

수필과 내가 정을 주고받은 지도 어언 40여 성상이 흘렀다. 그 동안 아홉 번째 수필집 <실수를 딛고 살아온 세월>까지 출간했으니 어림잡아 600여 편의 작품을 수필이란 탈을 씌워 독자 앞에 내놓은 셈이다. 이만한 세월, 이만한 노력이면 수필을 잘 알고 수필에 일가견을 가질 법도 하건만 아직도 초보자 시절의 수준을 벗어나지 못한 것 같아 안타깝다. 한 편의 작품을 완성할 때마다 나의 재주가 모자란다는 점을 느낀다. 그래서 그런지 아직도 자랑스레 내놓을 만한 작품 하나 없다. 그러면서도 수필과 절연(絶緣)하지 못한 채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수필에 매달리고 있다.

*수필소재와 나

나는 언제나 수필의 소재를 내 생활 주변에서 찾는다. 신문이나 잡지, 텔레비전이나 인터넷까지도 늘 나에게 좋은 수필소재를 제공해 준다. 놓쳐버리기 쉬운 사소한 일상일지라도 수필이라는 안경을 쓰고 살펴보면 좋은 소재가 되는 수가 많다. 소재가 발견되었다고 바로 작품화하지는 않는다. 수첩에 메모를 하면서 꾸준히 자료를 모은다. 여과를 시킨다. 사실 수필의 소재는 무한히 널려있다. 우수마발(牛溲馬勃)이 모두 수필의 소재이니 이 세상에 수필의 소재 아닌 게 어디 있겠는가?

*나의 수필쓰기 5단계 전략

나는 내 나름대로 정해둔 수필쓰기 5단계 전략이 있다. *주제선정 *관련소재 모으기 *틀 짜기 *원고쓰기 *글다듬기가 그것이다. 수필의 주제가 선정되면 그 주제와 연관된 소재들을 최대한 긁어모은다. 내 기억 속에 있는 소재들도 징발하고, 참고 서적이나 인터넷을 뒤져서라도 관련소재를 최대한 모은다. 열 가지든 스무 가지든 모을 수 있는 한 자료를 찾아 간추려 메모를 한 뒤, 수필쓰기에 활용가치가 있는 소재들만 남기고 나머지는 과감히 버린다. 이런 단계를 거치면서 한 편의 글을 쓴다. 좋은 주제를 만나 그에 어울리는 소재를 찾기도 하지만, 반대로 신선한 소재를 만나 그 소재에서 주제를 추출해내기도 한다. 남은 소재 중에서 어느 것은 서두 부문에, 또 어느 것은 결미부문에 그리고 중간 내용부문에는 어떤 화소를 배치할 것인가 머릿속에서 틀을 짠 다음 글쓰기에 들어간다. 이렇게 하여 초벌원고가 완성되면 컴퓨터에 저장해 두었다가 틈나는 대로 다듬기에 들어간다.

*글다듬기 방식과 나

밤에 쓴 글은 낮에, 비나 눈이 내리는 날 쓴 글은 해가 쨍쨍 내리쬐는 날 다시 그 글을 꺼내 읽으며 글을 다듬는다. 글다듬기는 며칠, 몇 주일, 그 이상이 걸리기도 한다. 나는 이처럼 글다듬기를 할 때 윤오영 선생의 ‘방망이 깎던 노인’이란 작품을 떠올린다. 어쩌면 그 노인의 방망이 깎기 자세가 바로 수필가에게 수필 다듬기의 본보기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방망이 깎던 그 노인은 기차시간이 다 되었으니 그만 방망이를 달라고 재촉하는 소비자 윤오영 수필가에게 생쌀이 재촉한다고 밥이 되느냐며 나무란다. 그래도 그만 깎고 달라는 소비자에게 그 노인은 최후의 통첩을 한다.
“다른 데 가 사우. 난 안 팔겠소!”
이는 그 노인이 방망이만 깎는 단순한 장인이 아니라는 사실을 말해 준다. 예술가의 자세가 어떠해야 하는지 일깨워주고 있다. 수필가는 모름지기 이 방망이 깎던 노인에게서 진짜 수필가의 품격을 배워야 하리라. 청탁원고 마감에 쫓겨서 허둥지둥 탈고하여 보내는 수필가라면 그 노인의 태도에서 무엇인가 크게 깨달아야 할 것이다.
*나의 수필작법

나는 전주비빔밥 같은 수필을 쓰려고 노력한다. 갖가지 채소와 양념, 고기류를 적당히 섞은 다음 비벼야 제 맛이 나는 게 비빔밥이다. 비빔밥은 영양가로 보거나, 맛으로 보거나, 색깔로 보아도 먹음직스럽다. 수필도 그래야 하리라고 믿는다. 비빔밥을 보고 입맛을 느끼게 되듯이 독자가 수필을 읽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해야 한다. 비빔밥을 먹고 높은 칼로리를 섭취할 수 있듯이, 한 편의 수필을 읽고 난 독자는 그 작품에서 정신적 영양을 흡수할 수 있어야 한다. 그 정신적 영양이란 공감대의 형성이라고 표현해도 좋다.
나는 내가 짜낸 수필이 옥양목 빛깔이기를 바란다. 울긋불긋 현란한 색채로 수놓은 비단이어도 안 되고, 피부에 해로운 화학섬유 같아도 안 된다. 아무리 두고 보아도 싫증이 나지 않는 담백한 맛이 담겨 있기를 바라는 까닭이다.
나는 나의 수필이 숭늉 맛 같기를 바란다. 술처럼 알코올이 섞여 있지도 않고, 커피나 홍차처럼 카페인이 함유되어 있지도 않으며, 청량음료마냥 톡 쏘는 맛이 없어야 한다. 그렇다고 냉수 같은 맹물이어서도 안 된다. 고소한 숭늉 맛이어야 한다. 숭늉은 아무리 마셔도 부작용이 없다.
나는 물처럼 담담한 수필을 쓰려고 한다. 물방울이 모여서 내를 이루고, 냇물이 강을, 강이 바다를 이루듯 그렇게 매끄러운 수필을 쓰고 싶다. 물은 때로는 폭포가 되기도 하고 파도를 일으키기도 한다. 그러다가는 이내 평정을 되찾는다. 마찬가지로 감정을 다독거려 결이 고운 수필을 빚고 싶은 것이다.
물은 항상 수평을 유지하려 애쓴다. 아무리 물그릇을 기울게 잡는다 해도 그릇 속에 담긴 물은 그 나름의 특성대로 수평을 유지한다. 나는 물이 수평을 유지하려 하듯 치우침이 없이 객관적인 입장에서 수필을 쓰려한다.
나는 나의 수필에 진한 역사의식이 배어 있기를 바란다. 역사는 오늘을 사는 우리들의 거울이자 내일을 살아갈 우리들의 삶의 지침인 까닭이다. 과거 없는 현재는 있을 수 없고, 현재 없는 미래 또한 기대할 수 없는 일이 아닌가. 역사의 강물은 내가 인양하고 싶은 수필이 무한대로 고여 있는 소재의 보고(寶庫)다. 나는 역사의 강물에 낚시를 드리우고 수필을 낚아 바구니를 채워 나가려 한다.
나는 가능한 한 쉽게 수필을 쓰려한다. 현학적인 중수필은 나의 취향과 걸맞지 않다. 간결하면서 템포가 빠른 경수필에 호감을 느낀다. 공감도가 높은 소재, 이해하기 쉬운 언어, 간결한 문장으로 수필을 쓰고 싶다.
나는 제목부터 쓰고서 내용을 엮어 가지는 않는다. 내용을 마무리 지은 뒤에 알맞은 제목을 붙인다. 내가 다루고 싶은 주제가 설정되면 그 주제에 필요한 소재를 장보기 하여 수필이라는 식탁을 꾸민다. 그렇게 함으로써 호감이 가는 산뜻한 제목을 추려낼 수가 있다. 나는 그런 수필을 쓰려고 노력한다.
김 학 수필<비빔밥 같은 수필을> 중에서


*더 좋은 수필을 쓰고 싶어서

붓 가는대로 쓰는 게 수필이고, 누구나 쓸 수 있는 게 수필이며, 형식이 없는 게 수필이라고들 한다. 사실은 그렇게 말장난을 하니까 수필쓰기가 더 어렵다. 일정한 틀이 있으면 19공탄 찍듯 그 틀에 맞춰 수필을 찍어내면 될 텐데 수필쓰기는 그렇지 않으니 더 힘든 작업이다. 내가 쓴 수필들이 모두 비빔밥 같은 수필이라고 장담할 수는 없다. 다만 나의 목표가 그렇다는 뜻일 뿐이다.
나는 쓸수록 어려운 게 수필이라고 여긴다. 그러면서도 수필을 나의 반려로 여기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나는 항상 남의 좋은 수필을 탐독하기를 게을리 하지 않는다. 그것 역시 나의 수필이 틀스럽게 빚어지는 데 없어서는 아니 될 영양소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마지막 글다듬기[推敲] 과정에서 나는 ‘제목, 서두, 내용전개, 결미’ 등을 오래오래 살핀다. 그러면서 한 글자라도 더 줄일 수는 없을까, 한자어나 외래어를 아름답고 부드러운 우리말로 바꿀 수는 없을까 궁리하며 다듬고 또 다듬는다.

*방송 프로그램제작과 수필쓰기의 유사성
수필쓰기는 방송 프로그램 제작과 너무 닮았다. 방송프로그램은 ‘타이틀(제목), 오프닝멘트(서두), 컨텐츠(내용), 클로징멘트(결미)’로 구성되니까 말이다. 형태가 몹시 유사하지 않는가? 방송은 시청자의 입맛을 염두에 두고 프로그램을 제작해야하고, 수필은 독자의 입맛(요구와 필요)을 예상하며 작품을 써야 한다. 프로그램제작자와 시청자의 관계도 마찬가지지만 수필가와 독자 역시 고도의 신경전을 펼치는 관계임을 알아야 한다. 작가가 이기면 독자는 끝까지 읽을 수밖에 없고, 작가가 지면 독자는 바로 책장을 덮어버리게 된다. 독자는 수필가의 작품을 읽으면서 작가의 흠결을 찾아내려 하고 결점을 발견하면 그걸 핑계 삼아 미련 없이 책장을 덮는다. 그게 독자들의 속성이다.
또 방송에서는 ‘30초 전쟁’이란 말이 있다. 아나운서가 200자 원고지 한 장을 읽는데 필요한 시간이 30초다. 그 30초 안에 시청자를 끌어당겨야 그 프로그램이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수필도 다를 바 없다. 제목과 서두가 원고지 첫 장에 들어있다. 수필 역시 30초 안에 독자가 읽을 것인가 덮을 것인가를 판단할 것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그러니 수필 역시 ‘30초 전쟁’이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인쇄매체의 독자는 영상매체의 시청자나 비슷한 속성을 지녔기 때문이다.
그밖에도 수필가는 모름지기 당대비평에 연연하지 말고 10년 후, 100년 후, 1000년 뒤의 독자를 의식하며 글을 써야한다. 나는 하루 세끼 식사로 육체적 건강을 지키듯 하루 세 편의 수필을 읽어 정신적 건강을 지키려한다. 늘 불광불급(不狂不及)의 자세로 수필에 빠져들려고 노력한다. 나는 지난날에도 그랬듯이 앞으로도 수필을 사랑할 것이다. 수필 속에 내가 있고, 내 안에 수필이 있다고 믿는 까닭이다.




*김 학 약력
1980년 월간문학으로 등단/<춘향골 이야기> <가을 앓이> <아름다운 도전> <실수를 딛고 살아온 세월> 등 수필집 9권/전북수필문학회 회장, 대표에세이문학회 회장, 임실문인협회 회장, 전북문인협회 회장, 전북펜클럽 회장 역임/국제펜클럽 한국본부 부 이사장,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전담교수(현)/펜문학상, 한국수필상, 영호남수필문학상 대상, 동포문학상 본상 등 다수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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