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너무 빨리 커서 아까워요
2006.10.01 13:15
아이들이 너무 빨리 커서 아까워요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과정(야) 맑은 바다 이해숙
“우리 아기는 언제 두 살이 될까요?”
중풍으로 누우신 시어머니, 노환의 시아버지와 함께한 신혼생활이 돌아보면 꿈만 같다. 태어난 지 한 달된 아기는 밤낮이 바뀌어 내 잠을 빼앗아가 버렸고, 안고 있다가 내려놓기만하면 앵앵앵 울어 제꼈다. 낮에는 먹고 자고를 잘 하다가 밤이 되면 안겨 있겠다고만 하니 초보 엄마의 고충을 누가 알까. 옆에서 잘 자고 있는 남편이 한없이 미웠던 시절이었다. 더구나 꼭 정확한 식사시간을 바라는 시아버지의 성품을 맞추기도, 시어머니 수발도 힘겹기는 마찬가지였다.
태어나 한 달 만에 맞히는 예방접종을 하러 동네 소아과에 갔더니 1년 되었다는 어른 같은 아이도 접종을 하러 왔다. 뒤뚱거리면서 걷기도 하고 제법 한 마디씩 하는 폼이 어찌나 대견하고 부러워 보이는지, 아이엄마더러 우리 아기는 언제 이 아이처럼 두 살이 될까요? 하였더니 금방 크더라는 거였다. 내겐 먼 후일의 이야기처럼 들려 내 희망이 언제나 이뤄질까 하며 한숨 지은 기억이 난다.
여든 둘의 시아버지는 7남매 막내아들의 첫 아이가 몹시도 예쁘셨는지 유모차에 태워 더딘 걸음으로 동네를 한 바퀴 돌며 아이자랑을 하고 다니셨다. 동네 아주머니들에게서 덕담이라도 들으시면 싱글벙글 웃으시며 내게 와선,
“글쎄, 우리 정현이더러 꼭 장군감이라더라. 훤하게 잘 생겼다는구나. 대통령도 되겠다고 하더라.”
하셨다. 내가 봐도 예쁜데 당신 닮아 잘 생긴 손자가 얼마나 대견하셨을까? 식사만 끝나면 동네 할머니, 아주머니들의 덕담 한 마디를 듣고 싶어 아기를 유모차에 태워 달라고 하셨다. 마른 낙엽처럼 몸의 기력이 다 빠져나가 ‘후’ 불면 날아가실 것처럼 걷기도 힘겨워하시면서 유모차에 몸을 의지하며 그렇게 마을 다니기를 좋아하셨다.
지금 생각하면 눈물이 난다. 여든 하나에 아버님을 만나 여든 아홉에 세상을 떠나셨으니 나와는 짧은 8년 남짓의 세월을 사셨다. 여장부 같은 시어머니는 젊은 시절 동네일은 도맡아 하실 정도로 씩씩하고 정이 많으셨으며, 성당의 봉사활동도 열심이셨다. 일흔의 연세에 내출혈로 누우셨다가 잠깐 일어나셔서 집안일도 하셨지만 두 번째 쓰러져서는 일어나질 못하셨다. 성격이 급하시고 활동적이셨던 분이 내게는 보이고 싶지 않은 모습들을 보이며 누워계시니 얼마나 답답하셨을까?
젊으나 늙으나 예쁘고 좋은 모습을 타인들에게 보이고 싶은 것이 여자의 마음인데, 시집 온 며느리에게 자기의 병든 모습을 보이는 마음이 어떠했을까? 그래서 어머니는 내 손을 잡고 고맙고 미안하다며 눈물을 자주 흘리셨다. 그러면 그 마음을 짐작해 함께 울곤 했다.
가장 미더워하고 예뻐하던 막내아들이 낳은 아기를, 자기 손으로 안아 주지 못해 늘 아쉬워하고 섭섭해 하셨다. 둘째 아이가 크는 모습까지 보시고 여든한 살에 우리 곁을 떠나셨다. 육체적으로 피곤하고 힘들어 어떻게 시간이 지났나 싶은 그 시절. 이제 두 분도 가시고 다소 여유가 생겼다. 가을 햇살이 곱고 피부에 와닿는 바람이 기분 좋은 오늘같은 날엔, 손자손녀 사랑이 유별나시고 정이 많으셨던 시어른들이 보고 싶다.
도무지 세월이 흘러주지 않을 것 같아 답답했었고, 언제 아이가 커서 걷고 유치원 다닐까 조급해하던 그 때. 시어른들과 연년생을 키울 때는 천천히 가던 시간들이 셋째 아이를 낳고부터는 쏜살같이 흐른다. 취미로 사진 찍던 실력으로 아이들 성장앨범도 만들고 싶었고, 함께 여행도 다니며 많은 추억도 만들어 주고 싶었다. 맛있는 간식도 많이 만들어 주고 엄마의 어린시절 이야기며 꿈도 들려주고 싶었는데, 제대로 실천하지 못한 채 손바닥 사이로 빠져나간 모래알처럼 세월이 흘러가 버렸다. 어른들도 안 계시고 소망하던 직장도 5년째 다니고 있어 모든 게 여유로워졌지만 큰애는 나보다 더 커버렸다. 나이 들면 시간이 나이에 비례하여 흐른다고 하였던가?
오늘도 아이들은 생일파티에 간다, 농구하러 간다, 친구랑 컴퓨터에서 만나기로 했다면서 엄마랑 놀아주지 않으려 한다.
“우리 어머니 요즘 아들에 대한 애정이 식으셨어!”
하는 큰 아들!
“어머니 용돈 500원 주세요. 학교 끝나고 친구랑 떡볶이 사먹으려고 약속했어요!”
하는 둘째 아들,
“친구 생일 파티에 가야하니 선물 살 돈 주세요!”
하는 딸 아이.
이 아이들이 기쁨의 원천이며, 살아가는 이유이고, 잘 살아보고 싶은 목표다. 무럭무럭 자라는 아이들을 보며 오늘도 나는 남편에게 말한다.
“애들이 빨리 커서 너무 아까워요!”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과정(야) 맑은 바다 이해숙
“우리 아기는 언제 두 살이 될까요?”
중풍으로 누우신 시어머니, 노환의 시아버지와 함께한 신혼생활이 돌아보면 꿈만 같다. 태어난 지 한 달된 아기는 밤낮이 바뀌어 내 잠을 빼앗아가 버렸고, 안고 있다가 내려놓기만하면 앵앵앵 울어 제꼈다. 낮에는 먹고 자고를 잘 하다가 밤이 되면 안겨 있겠다고만 하니 초보 엄마의 고충을 누가 알까. 옆에서 잘 자고 있는 남편이 한없이 미웠던 시절이었다. 더구나 꼭 정확한 식사시간을 바라는 시아버지의 성품을 맞추기도, 시어머니 수발도 힘겹기는 마찬가지였다.
태어나 한 달 만에 맞히는 예방접종을 하러 동네 소아과에 갔더니 1년 되었다는 어른 같은 아이도 접종을 하러 왔다. 뒤뚱거리면서 걷기도 하고 제법 한 마디씩 하는 폼이 어찌나 대견하고 부러워 보이는지, 아이엄마더러 우리 아기는 언제 이 아이처럼 두 살이 될까요? 하였더니 금방 크더라는 거였다. 내겐 먼 후일의 이야기처럼 들려 내 희망이 언제나 이뤄질까 하며 한숨 지은 기억이 난다.
여든 둘의 시아버지는 7남매 막내아들의 첫 아이가 몹시도 예쁘셨는지 유모차에 태워 더딘 걸음으로 동네를 한 바퀴 돌며 아이자랑을 하고 다니셨다. 동네 아주머니들에게서 덕담이라도 들으시면 싱글벙글 웃으시며 내게 와선,
“글쎄, 우리 정현이더러 꼭 장군감이라더라. 훤하게 잘 생겼다는구나. 대통령도 되겠다고 하더라.”
하셨다. 내가 봐도 예쁜데 당신 닮아 잘 생긴 손자가 얼마나 대견하셨을까? 식사만 끝나면 동네 할머니, 아주머니들의 덕담 한 마디를 듣고 싶어 아기를 유모차에 태워 달라고 하셨다. 마른 낙엽처럼 몸의 기력이 다 빠져나가 ‘후’ 불면 날아가실 것처럼 걷기도 힘겨워하시면서 유모차에 몸을 의지하며 그렇게 마을 다니기를 좋아하셨다.
지금 생각하면 눈물이 난다. 여든 하나에 아버님을 만나 여든 아홉에 세상을 떠나셨으니 나와는 짧은 8년 남짓의 세월을 사셨다. 여장부 같은 시어머니는 젊은 시절 동네일은 도맡아 하실 정도로 씩씩하고 정이 많으셨으며, 성당의 봉사활동도 열심이셨다. 일흔의 연세에 내출혈로 누우셨다가 잠깐 일어나셔서 집안일도 하셨지만 두 번째 쓰러져서는 일어나질 못하셨다. 성격이 급하시고 활동적이셨던 분이 내게는 보이고 싶지 않은 모습들을 보이며 누워계시니 얼마나 답답하셨을까?
젊으나 늙으나 예쁘고 좋은 모습을 타인들에게 보이고 싶은 것이 여자의 마음인데, 시집 온 며느리에게 자기의 병든 모습을 보이는 마음이 어떠했을까? 그래서 어머니는 내 손을 잡고 고맙고 미안하다며 눈물을 자주 흘리셨다. 그러면 그 마음을 짐작해 함께 울곤 했다.
가장 미더워하고 예뻐하던 막내아들이 낳은 아기를, 자기 손으로 안아 주지 못해 늘 아쉬워하고 섭섭해 하셨다. 둘째 아이가 크는 모습까지 보시고 여든한 살에 우리 곁을 떠나셨다. 육체적으로 피곤하고 힘들어 어떻게 시간이 지났나 싶은 그 시절. 이제 두 분도 가시고 다소 여유가 생겼다. 가을 햇살이 곱고 피부에 와닿는 바람이 기분 좋은 오늘같은 날엔, 손자손녀 사랑이 유별나시고 정이 많으셨던 시어른들이 보고 싶다.
도무지 세월이 흘러주지 않을 것 같아 답답했었고, 언제 아이가 커서 걷고 유치원 다닐까 조급해하던 그 때. 시어른들과 연년생을 키울 때는 천천히 가던 시간들이 셋째 아이를 낳고부터는 쏜살같이 흐른다. 취미로 사진 찍던 실력으로 아이들 성장앨범도 만들고 싶었고, 함께 여행도 다니며 많은 추억도 만들어 주고 싶었다. 맛있는 간식도 많이 만들어 주고 엄마의 어린시절 이야기며 꿈도 들려주고 싶었는데, 제대로 실천하지 못한 채 손바닥 사이로 빠져나간 모래알처럼 세월이 흘러가 버렸다. 어른들도 안 계시고 소망하던 직장도 5년째 다니고 있어 모든 게 여유로워졌지만 큰애는 나보다 더 커버렸다. 나이 들면 시간이 나이에 비례하여 흐른다고 하였던가?
오늘도 아이들은 생일파티에 간다, 농구하러 간다, 친구랑 컴퓨터에서 만나기로 했다면서 엄마랑 놀아주지 않으려 한다.
“우리 어머니 요즘 아들에 대한 애정이 식으셨어!”
하는 큰 아들!
“어머니 용돈 500원 주세요. 학교 끝나고 친구랑 떡볶이 사먹으려고 약속했어요!”
하는 둘째 아들,
“친구 생일 파티에 가야하니 선물 살 돈 주세요!”
하는 딸 아이.
이 아이들이 기쁨의 원천이며, 살아가는 이유이고, 잘 살아보고 싶은 목표다. 무럭무럭 자라는 아이들을 보며 오늘도 나는 남편에게 말한다.
“애들이 빨리 커서 너무 아까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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