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초상
2006.10.09 10:44
아버지의 초상(肖像)
행촌수필문학회 이은재
추석에 아버지께서 선산에 가보자고 하셨다. 황금 들녘엔 빨간 고추잠자리 떼가 벼 잎을 툭툭 치며 장난을 치고 수수밭을 지키던 허수아비는 꾸벅꾸벅 오수에 졸고 있는데 만추로 물들어 가는 선산으로 가는 길은 너무도 아름다웠다.
잡목이 우거진 가을 숲에 선산이 있다. 줄을 세워 단장한 조상의 봉분들이 잔디밭 속에 말없이 누워있었다. 옛 시절 명문 가문이라며 양반행세를 하며 고을을 호령하셨을 할아버지들이 지금은 한 평도 안 되는 봉분 속에서 말없이 누워 계신다. 지난여름 잦은 비에 무너진 흙더미 사이로 속살을 드러낸 묘지에 아버지의 시선이 머물고 뗏장을 때우는 꽃삽 사이로 아버지의 백발이 바람에 떤다.
아버지는 라이터로 담뱃불을 붙이시며 나직이 말씀하셨다.
"여기가 내 자리이고, 저기는 네 엄마 자리다."
아버지가 가리키는 흙무더기에 붉은 고추가 찬연하다. 가묘 자리에 산지기가 잠시 고추를 심은 것이다.
“아! 저 밭고랑에 아버지와 엄마의 무덤이 만들어질 곳이라니….”
나는 말문이 막혀 속울음이 났다. 흐르는 눈물을 아버지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눈을 비비다가 내 눈도 붉은 고추가 되고 말았다. 아버지는 마지막 당신이 눌 자리까지 자식들에게 부담주지 않으려고 몰래 가묘자리를 만들어 놓으신 것이다. 맏이인 내게 그걸 알려주시려고 선산에 가보자고 재촉하셨던 것을….
젊은 날의 아버지는 왕이셨다. 아버지의 말씀은 곧 법이었다. 아버지 말씀 하나면 모든 것들이 이루어졌다. 강퍅한 절대자처럼 군림하는 아버지가 나는 너무도 싫었었다. 유년시절에 아버지의 말씀을 거역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었다. 엄마는 아버지의 횡포 같은 억측도 당연한 것처럼 순종하셨다. 엄마는 술을 좋아하시는 아버지를 위해 자주 동동주를 담그셨고, 신 김치를 싫어하는 아버지 때문에 매일 겉절이를 만드셨다. 하루 종일 일을 하시고 늦은 밤에 김치를 담그는 엄마의 모습을 보면서 엄마를 힘들게 하는 아버지가 밉기도 했었다. 한국 아버지들의 표상처럼 아버지는 언제나 말이 없으셨지만 가끔 한 마디씩 선포하는 말씀은 엄격한 훈시 같은 것뿐이었다. 나는 그런 아버지가 너무도 무서웠었다.
젊은 날의 아버지는 힘센 장사처럼 보였다. 소달구지에 벼를 산더미처럼 싣고도 유유자적 콧노래를 부르며 들녘을 달리시던 아버지, 못자리를 만들려고 써레질을 하시며
"이랴! 이랴!"
고함을 지르시던 아버지, 가파른 비탈길에 놓인 밭을 오르며 뒷발질하는 소 엉덩이를 찰싹찰싹 때리며 쟁기로 척박한 밭을 갈아내시던 아버지, 꼴을 지게에 한 아름 지고 집으로 돌아오시는 아버지의 발걸음엔 아직도 힘이 남아 있었다.
아버지는 무너지지 않는 태산처럼 불변할 줄 알았다. 언제나 우리 곁에서 젊은 날의 초상처럼 건재하실 줄 알았던 아버지가 지난여름에 포도를 따시다가 갑자기 다리가 저리시다며 밭고랑에 주저앉으셨다. 뇌졸중의 초기증상이셨다. 다행히 가벼운 증상이어서 일찍 퇴원을 하시긴 했지만 약으로 의존해야 하는 어려운 상황이 되고 말았다. 그 일로 아버진 담배도 끊으시고 식사 때마다 반주로 드시던 -그렇게 좋아하시던- 술도 끊으셨다. 회식자리에서 특이한 술을 보면 아버지 생각이 나서 술을 한 병 얻어다 아버지께 드리곤 했었는데 이젠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올 추석에 아버지를 뵈오니 너무도 허약해지셨다. 물렁물렁한 아버지 다리를 어루만지다 나도 몰래 눈물이 났다.
“예전 같지가 않다. 남의 다리 같기도 하고 걸음을 걸으면 자꾸만 헛발을 내딛는 것 같다.”
힘없이 말씀하시는 아버지는 이제 음성조차도 쇠잔해지셨다.
갈기를 날리며 포효하는 호랑이처럼 젊은 날의 힘센 열정은 어디로 가고 이제는 웃을 때마다 듬성듬성 간격이 멀어진 치아만 쓸쓸히 얼굴을 지키고 있는가. 검게 빛나던 머리는 언제 이처럼 억새꽃이 되셨는가. 아버지 머리 위로 언제부터 무서리가 앉은 것일까. 아버지의 백발은 만년설처럼 요원한 채 새순이 부활할 기미는 보이지 않으니 이를 어이하나.
“동네사람들이 내 백발을 보고 멋지다고 해서 이젠 염색을 하지 않는다.”
며 천진스럽게 웃으시던 아버지, 그러나 나는 자꾸만 눈물이 난다.
가을 언덕에 무리지어 핀 들국화처럼 고개 숙인 아버지의 늦가을은 너무도 애처롭기만 한데 할아버지 유택에 뗏장을 입히는 아버지 뒤편으로 억새꽃이 만발했다. 나는 아버지 등 뒤로 다가가 살며시 아버지를 끌어 않았다. 그런데 아버지의 등이 너무도 차갑다. 지게에 꼴과 볏단을 산더미처럼 지고 들녘을 달리시던 예전의 그 우람하고 뜨겁던 아버지의 등이 아니었다.
여름날이면 꼴을 베어 지게에 한 짐 가득 업고도 고샅길을 훨훨 나시던 아버지가 이젠 빈 지게조차도 지실 수 없다니 세월을 이기는 장사 없다고 했던가. 삶의 무게에 짓눌려 구부정한 등은 지게를 지기엔 너무나 가녀리다. 이제는 내가 아버지를 업어 드려야 할 텐데 아버지 몸은 너무 가볍다. 어머니를 휘어잡던 아버지의 추상같던 호령은 찾을 길 없고 엄마에게 고분고분하시는 아버지의 모습이 참 쓸쓸하다. 백발에 듬성듬성 빠진 치아까지 슬쩍 밀치기만 해도 부서질 것만 같은 아버지의 모습이 너무도 안쓰럽다. 이제 와 돌이켜보니 군주처럼 군림하셨던 아버지의 젊은 날의 모습이 너무도 좋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무뚝뚝하시던 아버지가 지금은 너무도 다정하시다. 오랫동안 직장생활을 하는 내가 안쓰러운지 친정에 가면 아무 일도 못하게 하신다. 어쩌다 부엌에 들어가 설거지라도 하면 아버지는,
“네가 왜 부엌에서 일을 하느냐?”
며 나를 끌어내신다. 방에 가만히 누워서 푹 쉬라며 토닥거리시는 아버지 손엔 언제나 농익은 홍시 서너 개가 들려 있었다.
“너 오면 주려고 감나무에 올라가 장대로 하나하나 딴 홍시란다.”
산들바람이 구절초 가슴을 툭툭 치며 가을향수를 터트리는 비탈길을 아버지와 함께 내려오며 팔짱을 껴본다. 오랜만에 느껴본 父女의 끈끈한 정이다. 석양을 등진 두 개의 그림자가 정겹게 따라온다. 스산한 저녁 바람이 산등성을 스칠 때마다 이마에 드리운 아버지의 흰 머리가 푸석푸석 휘날린다. 황금빛 농로를 따라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내내 나는 슬픔의 무게에 짓눌려 그 어떠한 말도 할 수 없었다. 차창 밖으로 흐드러진 코스모스는 아버지의 야윈 등처럼 왜 그렇게도 휘청거리고 있는지….
아버지의 호령이 그립다. 유년에 너무도 무서웠던 아버지의 불호령이 그립다. 동동주 몇 잔에 얼굴을 붉히시던 아버지, 지게에 꼴을 가득 지고 힘차게 사립문으로 들어오시던 아버지, 뒤꼍 우물가에서 엄마에게 등목을 하시면서 차갑다며 물 좀 살살 끼얹으라며 엄살을 부리시던 아버지, 못자리 써레질을 하시다가
"이랴! 이랴!"
주춤대는 소 엉덩이를 후리시며 쟁기질을 하시던 아버지의 젊은 날의 초상(肖像)이 너무도 그립다. 나는 내 아버지가 ‘헤르만 헤세’가 ‘내 젊음의 초상’에서 고백한 것처럼 그렇게 당당하게 말씀하시기를 원한다.
"나는 나의 길을 성실하게 걸었고 / 추억은 소중한 것이었다. /
잘못도 실수도 많았다. / 하지만, 나는 그것을 후회하지 않는다."
어떻게 사셨건 그분은 사랑하는 나의 아버지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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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촌수필문학회 이은재
추석에 아버지께서 선산에 가보자고 하셨다. 황금 들녘엔 빨간 고추잠자리 떼가 벼 잎을 툭툭 치며 장난을 치고 수수밭을 지키던 허수아비는 꾸벅꾸벅 오수에 졸고 있는데 만추로 물들어 가는 선산으로 가는 길은 너무도 아름다웠다.
잡목이 우거진 가을 숲에 선산이 있다. 줄을 세워 단장한 조상의 봉분들이 잔디밭 속에 말없이 누워있었다. 옛 시절 명문 가문이라며 양반행세를 하며 고을을 호령하셨을 할아버지들이 지금은 한 평도 안 되는 봉분 속에서 말없이 누워 계신다. 지난여름 잦은 비에 무너진 흙더미 사이로 속살을 드러낸 묘지에 아버지의 시선이 머물고 뗏장을 때우는 꽃삽 사이로 아버지의 백발이 바람에 떤다.
아버지는 라이터로 담뱃불을 붙이시며 나직이 말씀하셨다.
"여기가 내 자리이고, 저기는 네 엄마 자리다."
아버지가 가리키는 흙무더기에 붉은 고추가 찬연하다. 가묘 자리에 산지기가 잠시 고추를 심은 것이다.
“아! 저 밭고랑에 아버지와 엄마의 무덤이 만들어질 곳이라니….”
나는 말문이 막혀 속울음이 났다. 흐르는 눈물을 아버지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눈을 비비다가 내 눈도 붉은 고추가 되고 말았다. 아버지는 마지막 당신이 눌 자리까지 자식들에게 부담주지 않으려고 몰래 가묘자리를 만들어 놓으신 것이다. 맏이인 내게 그걸 알려주시려고 선산에 가보자고 재촉하셨던 것을….
젊은 날의 아버지는 왕이셨다. 아버지의 말씀은 곧 법이었다. 아버지 말씀 하나면 모든 것들이 이루어졌다. 강퍅한 절대자처럼 군림하는 아버지가 나는 너무도 싫었었다. 유년시절에 아버지의 말씀을 거역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었다. 엄마는 아버지의 횡포 같은 억측도 당연한 것처럼 순종하셨다. 엄마는 술을 좋아하시는 아버지를 위해 자주 동동주를 담그셨고, 신 김치를 싫어하는 아버지 때문에 매일 겉절이를 만드셨다. 하루 종일 일을 하시고 늦은 밤에 김치를 담그는 엄마의 모습을 보면서 엄마를 힘들게 하는 아버지가 밉기도 했었다. 한국 아버지들의 표상처럼 아버지는 언제나 말이 없으셨지만 가끔 한 마디씩 선포하는 말씀은 엄격한 훈시 같은 것뿐이었다. 나는 그런 아버지가 너무도 무서웠었다.
젊은 날의 아버지는 힘센 장사처럼 보였다. 소달구지에 벼를 산더미처럼 싣고도 유유자적 콧노래를 부르며 들녘을 달리시던 아버지, 못자리를 만들려고 써레질을 하시며
"이랴! 이랴!"
고함을 지르시던 아버지, 가파른 비탈길에 놓인 밭을 오르며 뒷발질하는 소 엉덩이를 찰싹찰싹 때리며 쟁기로 척박한 밭을 갈아내시던 아버지, 꼴을 지게에 한 아름 지고 집으로 돌아오시는 아버지의 발걸음엔 아직도 힘이 남아 있었다.
아버지는 무너지지 않는 태산처럼 불변할 줄 알았다. 언제나 우리 곁에서 젊은 날의 초상처럼 건재하실 줄 알았던 아버지가 지난여름에 포도를 따시다가 갑자기 다리가 저리시다며 밭고랑에 주저앉으셨다. 뇌졸중의 초기증상이셨다. 다행히 가벼운 증상이어서 일찍 퇴원을 하시긴 했지만 약으로 의존해야 하는 어려운 상황이 되고 말았다. 그 일로 아버진 담배도 끊으시고 식사 때마다 반주로 드시던 -그렇게 좋아하시던- 술도 끊으셨다. 회식자리에서 특이한 술을 보면 아버지 생각이 나서 술을 한 병 얻어다 아버지께 드리곤 했었는데 이젠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올 추석에 아버지를 뵈오니 너무도 허약해지셨다. 물렁물렁한 아버지 다리를 어루만지다 나도 몰래 눈물이 났다.
“예전 같지가 않다. 남의 다리 같기도 하고 걸음을 걸으면 자꾸만 헛발을 내딛는 것 같다.”
힘없이 말씀하시는 아버지는 이제 음성조차도 쇠잔해지셨다.
갈기를 날리며 포효하는 호랑이처럼 젊은 날의 힘센 열정은 어디로 가고 이제는 웃을 때마다 듬성듬성 간격이 멀어진 치아만 쓸쓸히 얼굴을 지키고 있는가. 검게 빛나던 머리는 언제 이처럼 억새꽃이 되셨는가. 아버지 머리 위로 언제부터 무서리가 앉은 것일까. 아버지의 백발은 만년설처럼 요원한 채 새순이 부활할 기미는 보이지 않으니 이를 어이하나.
“동네사람들이 내 백발을 보고 멋지다고 해서 이젠 염색을 하지 않는다.”
며 천진스럽게 웃으시던 아버지, 그러나 나는 자꾸만 눈물이 난다.
가을 언덕에 무리지어 핀 들국화처럼 고개 숙인 아버지의 늦가을은 너무도 애처롭기만 한데 할아버지 유택에 뗏장을 입히는 아버지 뒤편으로 억새꽃이 만발했다. 나는 아버지 등 뒤로 다가가 살며시 아버지를 끌어 않았다. 그런데 아버지의 등이 너무도 차갑다. 지게에 꼴과 볏단을 산더미처럼 지고 들녘을 달리시던 예전의 그 우람하고 뜨겁던 아버지의 등이 아니었다.
여름날이면 꼴을 베어 지게에 한 짐 가득 업고도 고샅길을 훨훨 나시던 아버지가 이젠 빈 지게조차도 지실 수 없다니 세월을 이기는 장사 없다고 했던가. 삶의 무게에 짓눌려 구부정한 등은 지게를 지기엔 너무나 가녀리다. 이제는 내가 아버지를 업어 드려야 할 텐데 아버지 몸은 너무 가볍다. 어머니를 휘어잡던 아버지의 추상같던 호령은 찾을 길 없고 엄마에게 고분고분하시는 아버지의 모습이 참 쓸쓸하다. 백발에 듬성듬성 빠진 치아까지 슬쩍 밀치기만 해도 부서질 것만 같은 아버지의 모습이 너무도 안쓰럽다. 이제 와 돌이켜보니 군주처럼 군림하셨던 아버지의 젊은 날의 모습이 너무도 좋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무뚝뚝하시던 아버지가 지금은 너무도 다정하시다. 오랫동안 직장생활을 하는 내가 안쓰러운지 친정에 가면 아무 일도 못하게 하신다. 어쩌다 부엌에 들어가 설거지라도 하면 아버지는,
“네가 왜 부엌에서 일을 하느냐?”
며 나를 끌어내신다. 방에 가만히 누워서 푹 쉬라며 토닥거리시는 아버지 손엔 언제나 농익은 홍시 서너 개가 들려 있었다.
“너 오면 주려고 감나무에 올라가 장대로 하나하나 딴 홍시란다.”
산들바람이 구절초 가슴을 툭툭 치며 가을향수를 터트리는 비탈길을 아버지와 함께 내려오며 팔짱을 껴본다. 오랜만에 느껴본 父女의 끈끈한 정이다. 석양을 등진 두 개의 그림자가 정겹게 따라온다. 스산한 저녁 바람이 산등성을 스칠 때마다 이마에 드리운 아버지의 흰 머리가 푸석푸석 휘날린다. 황금빛 농로를 따라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내내 나는 슬픔의 무게에 짓눌려 그 어떠한 말도 할 수 없었다. 차창 밖으로 흐드러진 코스모스는 아버지의 야윈 등처럼 왜 그렇게도 휘청거리고 있는지….
아버지의 호령이 그립다. 유년에 너무도 무서웠던 아버지의 불호령이 그립다. 동동주 몇 잔에 얼굴을 붉히시던 아버지, 지게에 꼴을 가득 지고 힘차게 사립문으로 들어오시던 아버지, 뒤꼍 우물가에서 엄마에게 등목을 하시면서 차갑다며 물 좀 살살 끼얹으라며 엄살을 부리시던 아버지, 못자리 써레질을 하시다가
"이랴! 이랴!"
주춤대는 소 엉덩이를 후리시며 쟁기질을 하시던 아버지의 젊은 날의 초상(肖像)이 너무도 그립다. 나는 내 아버지가 ‘헤르만 헤세’가 ‘내 젊음의 초상’에서 고백한 것처럼 그렇게 당당하게 말씀하시기를 원한다.
"나는 나의 길을 성실하게 걸었고 / 추억은 소중한 것이었다. /
잘못도 실수도 많았다. / 하지만, 나는 그것을 후회하지 않는다."
어떻게 사셨건 그분은 사랑하는 나의 아버지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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