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심으로 피워낸 수필의 꽃

2006.10.13 17:17

김학 조회 수:107 추천:29

佛心으로 피워낸 수필의 꽃
-김재희 처녀수필집 《그 장승이 갖고 싶다》출간에 부쳐-
김학(수필가, 국제펜클럽 한국본부 부 이사장)

Ⅰ. 김재희와 수필의 만남

수필가 김재희의 본 이름은 ‘김재규’다. 한국 문단에서 그녀의 본 이름을 아는 이는 드물 것이다. 필명으로 작품활동을 했고, 필명으로 만나 인간관계를 맺어 왔기 때문이다. 어쩌다 그녀의 본 이름을 대하면 오히려 생경하고 생뚱맞은 느낌이 든다.
김재희는 천성적인 문학소녀였다. 어려서는 병약하여 혼자서 되작거리며 놀기를 즐겼다. 그러기에 유관순처럼, 행동하는 여성이 아니라 사임당 같은, 생각하는 여성으로 자랐던 모양이다. 그런 성품의 김재희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것은 바로 문학이었을 것이다. 혼자서 책을 읽고 혼자서 깊은 사색에 빠져 원고지 앞에 앉으면 외로운 줄 몰랐을 것이다. 굳이 친구가 필요 없었을 테고, 얼마든지 혼자서도 자기만의 세계를 열 수 있었을 것이다. 그녀가 그렇게 하여 만난 세상이 바로 문학의 세계였던 것이다.
http://evsmoke.com.ne.kr/hanmgchon/kjh.htm
이것은 수필가 김재희의 홈페이지 주소다. 이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면 김재희의 모든 것을 엿볼 수 있다.
김재희는 문학 외에도 꽃꽂이라든지, 사진 찍기 같이 혼자서 할 수 있는 취미를 즐긴다. 팀을 이루어 해야 하는 일보다는 혼자서 자신의 능력으로 해낼 수 있는 일, 그것이 김재희의 취향이요 추구하는 세상이 아닐까 싶다.
김재희는 소녀시절부터 수필뿐만 아니라 시도 즐겨 써온 아마추어 문사였다. 문학소녀가 걸어야 할 길을 꾸준히 걸어왔던 것이다. 그녀의 홈페이지에 가면 그녀의 수필은 물론 시도 만날 수 있고, 꽃꽂이며 사진작품들도 만날 수 있다. 깔끔하게 잘 정리되어 있다. 마치 신사임당의 안방을 엿본 기분이 들 것이다. 그녀가 홈페이지에 모아둔 <한국의 소리>는 그 자체가 모두 시요, 수필이며, 음악이요, 미술이다. 그녀는 비밀스런 그녀의 곳간에 많은 자료를 모아두고 있다. 다람쥐가 자기의 토굴 속에 겨우살이용 도토리를 잔뜩 모아두고 긴 삼동(三冬)을 나듯이. 수필가 김재희도 언젠가는 그 자료들을 가공하여 누에가 명주실을 토해내듯 문학작품을 뽑아낼 것이다.
김재희는 연꽃처럼 성품이 여린 사람이다. 모기 한 마리도 죽일 수 없고 나뭇가지 하나 꺾을 수 없는 성정이다. 같은 생명체인 모기가 불쌍하고, 나무가 아파할 것을 염려한 까닭이다. 또 김재희는 산전수전 다 겪었을 오십대 여성인데도 고기를 먹지 못할 정도로 음식을 가린다. 불심(佛心)이 강한 여성이기에 인도사람들을 닮았는지는 모르지만 말이다.
김재희는 2002년 3월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반에 등록하여 103강의실에서 처음 만났다. 그녀가 수필과 공식적으로 만난 것이다. 이미 그녀가 홀로 오랜 습작기간을 가졌던 것은 사실이다. 그렇기에 그녀가 수필창작반에 나오기로 한 것은 대단한 결단이었으리라 생각한다. 등록할 것인가 말 것인가, 오래 고민했을 것이다. 그녀가 공식적으로 수필과 만난지 4년, 그녀는 과연 어떻게 변모했을까?
2002년 격월간 <수필과 비평> 7,8월호에서 <꽃 보살>이란 작품으로 신인상을 수상하여 수필가로 등단하더니, 드디어 2006년에는 전북일보 신춘문예에서 <장승>이란 작품으로 수필부문에 당선하여 그녀의 실력을 만방에 떨쳤다. 드디어 김재희는 그 여세를 몰아 2006년 가을 처녀 수필집 <그 장승을 갖고 싶다>를 한 권의 수필집으로 묶어내기에 이르렀다. 외유내강형인 김재희에게는 2006년이야말로 잊을 수 없는 한 해가 아닐까 싶다. 문학적으로 뿐 아니라 두 아들의 어머니인 김재희가 며느리에서 시어머니로 승격한 해도 바로 2006년 5월이기 때문이다.
김재희는 다작형(多作型)의 수필가가 아니라 아무래도 과작형(寡作型)이라고 표현하는 게 옳을 성싶다. 그만큼 깊이 생각한 다음 창작으로 옮기는 사색형인간인 까닭일 것이다. 그러나 그녀가 발표하는 수필은 편편이 가작(佳作)이다. 철따라 좋은 수필을 발굴하여 게재한다는 계간 선수필(選隨筆)에 그녀의 작품이 네 편이나 실린 것을 보면 알 수 있는 일이다.
수필가 김재희는 불심(佛心)으로 다져진 마음바탕에 수필이란 꽃을 피운 작가다. 그녀가 다루는 제재는 대개가 불심과 맞닿아 있고, 은은한 향내를 내뿜어 이 세상이 온통 법당처럼 느껴진다. 그렇다고 다른 종교인이 읽었을 때 거부감을 느끼게 하지도 않는다. 은은한 달빛에 취하듯 그렇게 분위기에 젓게 한다.
김재희가 겉으로는 묵이나 두부처럼 말랑말랑한 것 같지만 속마음은 다이아몬드처럼 단단하다. 누구보다 도전정신도 강한 편이다. 신문의 신춘문예에 도전한 것도 그렇고, 혼자서 2박3일 동안 지리산을 종주한 도전정신도 그렇다. 여린 그녀의 외모만을 아는 사람들이라면 그녀의 도전정신에 놀랄 것이고 믿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꿈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꿈이 있었기에 도전할 수 있었고, 도전했기에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기에 꿈은 이루어진다고 했는지도 모른다. 이 다음에 김재희가 도전할 목표는 무엇인지 지금부터 지켜보고 싶다.

Ⅱ. 김재희 수필가의 작품세계

김재희 처녀수필집 <그 장승이 갖고 싶다>는 행촌수필문학회 회원으로서는 열세 번째로 출간하는 수필집인 셈이다. 73편의 작품을 6부로 나누어 실었다. 제법 두툼한 수필집이 되었다. 수필집을 열면 맨 처음에 그녀의 등단작품인 <꽃 보살>과 마주치게 된다. 어느 해 부처님오신 날 절집에서 사용할 꽃꽂이를 하면서 체험한 이야기를 화소로 한 작품이다.

  정성이 깃든 꽃이 마음에 들어 꽃값 일체를 기부하셨단다. 그리고 이처럼 정성을 들여 꽃을 꽂아줄 사람이 있다면 해마다 초파일 꽃값을 기부하겠노라 약속하셨다는 말씀도 들려주셨다.
                                              -<꽃 보살> 중에서-

서울 꽃시장에서 사온 꽃들이 저온 냉장고 속에서 얼어버렸다. 화자는 발을 동동 굴러보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 화자는 꼬박 이틀 동안이나 그 꽃으로 정성을 다하여 꽃꽂이를 만들었다. 그랬더니 그 꽃꽂이를 본 신도들이 모두 칭찬을 하고, 마침내 비용을 부담하겠다는 공양주까지 나타난 것이다. 그 때 화자는 얼마나 기뻤고 보람을 느꼈을까? 바로 거기에서 글의 씨앗이 싹튼 작품이다. 그런데 이 작가는 법명도 없고 신도증도 없다고 고백한다. 자신은 ‘꽃 보살’이라고 불리는 미미한 신도일 뿐이라고 자신을 한 것 낮춘다. 그녀는 언제 어느 곳에서나 자신을 내세우려 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독자는 이 작가가 어느 누구보다도 불심이 강한 존재임을 깨달을 수 있다. 수필이 겸손의 문학임을 실증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이다.

예전엔 색이 선명하고 다혈질적인 유화 앞에 서있는 시간이 더 많았지만 이제는 묵향이 풍기는 동양화 앞에서 머뭇거리는 시간이 더 많다. 보일 듯 말 듯한 옅은 붓 자국에 눈길이 가고 텅 빈 듯한 여백에 마음이 간다. 격동이 넘치는 열띤 춤동작보다는 하얀 옷소매 부리에 흐르는 한풀이 춤의 애상에 젓길 좋아한다. 열정이 넘치는 사랑을 읊은 시보다는 담담한 인생을 읊은 시가 좋아져 가고, 소리 없이 묵묵히 흐르는 강물 보기를 좋아한다.
                                            -<원추리> 중에서-

이 화자가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바라보는 시선이나 취향도 바뀌게 된다고 토로하고 있다. 바람에 흔들릴지라도 꺾이지 않는 지리산의 원추리를 보면서 깨달은 생각과 몸짓의 변화이다. 지리산과 덕유산은 화자가 즐겨 찾는 이름난 산들이다. 정적(靜的)인 수필가 김재희는 때로는 산을 찾고 드라이브를 즐기며 동적(動的)인 행동을 하기도 한다. 그러면서 자신의 생각의 깊이와 너비를 다지기도 한다.

내게도 붓을 다룰 수 있는 능력이 주어진다면 창호지에 스며드는 교교한 달빛을 그리고 싶다. 봄이면 소쩍새 울음을 품은 달빛을, 여름엔 하얀 박꽃 등에 업힌 달빛을, 가을이면 이슬 머금고 겨울엔 서릿발 사이에 낀 달빛을 그리며 밤을 지새워 보고 싶다. 상큼한 초승달의 감칠맛을, 통통히 여문 보름달의 풍만함을, 축축이 젖은 그믐달의 애잔함을 그려내고 싶다. 마음에 그런 그림을 그려낼 수 있는 창호지를 바른다.
                                        -<마음에 창호지를 바른다> 중에서-
  
다양한 색상과 디자인으로 한지작품을 선보이는 전주의 전국한지공예대전을 둘러보고 상을 얻어 쓴 작품이다. 이 구절은 묘사와 비유가 빼어난 구절이다. 나도향의 <그믐달>이란 작품과 견주어도 결코 손색없는 절창이다. 이런 한 편의 수필을 읽을 때 독자는 수필의 맛과 멋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영국의 작가 Leggett의 말을 음미해 볼 일이다.
“무엇을 보았느냐가 문제가 아니라 직관과 사색으로 그 본 것에서 어떤 의미를 발견했느냐가 중요한 것이다.”
바로 그것이다. 하잘 것 없는 사물이나 사건에서도 무엇을 찾아내고 어떤 것을 발견했느냐가 중요하다는 이야기다. 우리 주변에 수필의 소재는 널려 있다. 그러나 널려 있는 그 소재에서 어떤 의미를 찾아내려고 노력하지 않으면 좋은 수필을 쓸 수 없다.

곡성에서부터 시작하는 강변도로는 한적한 길이어서 좋다. 지리산 자락의 푸른색과 잔잔한 강물의 흐름이 어우러진 풍경은 유난히 정겨워서 좋다. 강이라지만 바다에 접한 하류를 제외하고는 바닥이 아주 얕아서 자세히 보면 속이 다 들여다보이는 동심 같은 강물이다. 물위로 올라온 모래도 아름답거니와 물속에 잠겨서 아련하게 비치는 모래 또한 형용할 수 없을 만큼  아름답다. 얇은 옷 사이로 비치는 여인네의 속살 같아서 조심스럽게 발을 디뎌야 할 것 같은 강. 그 강변 사람들은 그렇게 맑은 심성으로 살 것 같다. 그래서 재첩 캐는 여인들의 몸짓까지도 사뭇 달라 보이는 걸까?
                                    -<물 따라 길 따라> 중에서-

비단결 같이 고운 문장이다. 섬진강을 따라 드라이브를 즐기는 작가의 심성이 곱게 드러난 작품이다. 문장력을 충분히 수련했기에 이런 표현이 나온 게 아닐까 싶다. 부처님에게는 부처님만 보이고 도둑놈에게는 도둑놈만 보인다더니 마음이 깨끗해야 깨끗한 사물도 제대로 보이는 모양이다. 깨끗한 강물에 씻기고 씻겨서 더 씻길 것이 없는 섬진강의 모래를 닮고 싶어 하는 화자의 마음이 눈에 보이는 성싶다.
수필가 김재희는 주로 서정적인 수필을 즐겨 쓴다. 그러나 때로는 사회적인 수필, 시사성 있는 소재도 다룬다. 세상이 온통 줄기세포 문제로 시끌벅적할 때 그녀는 관감이 붓을 들었다.

물은 흘러야 썩지 않는 법이다. 흐르지 않고 모여 있기만 한다면 어찌 될 것인가. 오래오래 살면 좋겠지만 그러기 위해 무분별하게 과학기술을 인용하는 것은 신중하게 고려해볼 일이다. 인간의 탄생과 수명은 신의 영역 안에 두고, 인간의 힘으로 감당할 수 있는 부분가지만 접근하면서 자연의 순리에 따라가는 것이 좋지 않을까.
                                -<줄기세포, 무엇이 문제인가> 결미-

  
김재희 수필가는 연한 상추처럼 연약해 보이지만 때로는 전면에 나타나 자신의 의사를 과감하게 표출하기도 한다. 인간이 신의 영역까지 넘보는 것을 탐탁치 않다고 질타한다. 우물쭈물 하지 않고 자신의 의견을 솔직하게 밝힐 줄도 안다.
그런가 하면 불심으로 가득 채워진 김재희의 마음속엔 효심(孝心)도 크게 똬리를 틀고 있다. 친정 부모님에 대한 마음과 시어머니에 대한 마음에 차이가 없다.

“다 같은 자식이잖아요? 똑같이 배 아파 낳아서 고생하며 기르셨는데 큰아들 작은아들 구분하지 마세요. 그리고 어머니 돈 없으셔도 저희 형편껏 모실게요. 그런 걱정은 마세요.”
“그런디 내가 병들어 오래까지 똥 싸고 오줌 싸면 어쩐다냐? 죽을 복을 타고나서 쉽게 눈을 감았으면 좋겄는디…….”
“젊고 건강할 때는 자식이 무슨 필요가 있나요? 그럴 때 자식이 필요하지. 그런 경우가 되더라도 힘껏 해볼게요.”
“그런 말만이라도 들은깨 맴이 편안허다.”
                                    -<고부간의 대화> 중에서-

  모든 것에 기대치가 작은 어머님은 아주 사소한 것에도 기뻐하신다. 싸구려 옷가지 하나에도 감동하시고 누가 끼다 준 허름한 가락지 하나에도 정겨워하신다. 고급 음식보다는 값싸고 담백한 것들을 좋아하신다. 그러기에 적은 것을 해 드리고도 서로 큰 기쁨을 얻는다.
                                    -<어머님의 손복[手福]> 중에서-

어느 날 시골에 혼자 사시는 시어머니와 통화를 하다 몸이 불편하신 걸 깨닫고 달려가 시어머니를 전주로 모시고 오면서 고부간에 나눈 대화다. 마치 판소리의 가사 한 구절처럼 전라도 사투리여서 더 정겹다. 이런 고부들만 이 세상에 산다면 ‘고부갈등’이란 말이 국어사전에서 사라져야 할 것이다. 큰며느리도 아닌 둘째 며느리의 마음이 이렇다면 독자는 이 화자에게 존경과 부러움을 갖게 될 것이다. 이 예화를 널리 알려서 효도의 본보기로 삼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며느리한테서 이런 다짐을 들은 시어머니의 심정이 어땠을까는 일러 무삼하리.

“아버지, 저 어려서 아버지께서 제 기저귀 갈아주시고 오물 닦아주신 적 없으세요?”
“있었지.”
“그럼 이제 제가 그 빚 좀 갚을게요.”
                                      -<산이 푸르른 날에> 중에서-

환자복 바지를 움켜쥔 채 놓지 않은 친정아버지의 팔을 잡고 큰딸인 화자가 간곡하게 설득하는 대목이다. 병실에서 환자와 보호자로 만난 부녀간의 정겨운 대화 한 토막이다. 이 짧은 대화 속에는 화자의 따뜻한 효심이 가득 담겨져 있다. 친정어머니에 대한 작품들 역시 효심으로 가득 채워져 있다. <찔레꽃 머리(-어머니, 내 어머니1-)>, <연꽃 속으로(-어머니, 내 어머니2-)> 이 연작들을 읽으면 친정어머니를 향한 딸의 마음이 오롯이 담겨있어 눈시울이 뜨겁다.
수필가 김재희는 딸이 없으니 친정어머니로서 아기자기한 작품을 낳기는 어렵겠지만 시어머니가 되었으니 앞으로는 고부간의 이야기, 할머니와 손자 이야기가 자주 등장하리라 믿는다. 그 예고편이랄 수 있는 작품이 있다.

신혼여행에서 돌아와 하룻밤을 지내고 떠나는 아들 내외를 데려다 주고 싶었다. 가지고 가야할 짐이 많기도 했지만 이제는 성인으로써 제 짝을 만나 살림차려 나가는 길을 동행하고 싶었던 것이다. 이제 정말 내 품에서 떠나는 마지막 순간인 것인가. 그렇다면 조금 더 연장하고 싶었는지 모른다.
                                                -<희망의 커튼> 중에서-

이 때 부모의 마음과 자식의 마음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 이런 상황일 때 어느 부모나 이 작가와 같은 생각일 것이다. 그러나 자녀들의 마음은 다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런 화자의 청을 아들내외가 거절한다면 부모의 수고를 덜어드리겠다는 좋은 뜻도 있을 것이고, 신혼부부 자기들만의 즐거운 시간을 더 빨리 갖고 싶어서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것을 헤아리는 일은 부모의 몫이어야 한다.
수필가 김재희는 교육자인 남편의 발령에 따라 이곳저곳으로 옮겨 다니며 보금자리를 틀었다. 무주 설천 어느 학교 관사에서 3년이나 살다가 떠나오면서는 그 동안 정이 들었던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에게도 작별인사를 나눈다.

아무리 미물이라지만 그동안 나눈 정을 어찌 모른 체 하고 갈까. 항상 다니던 곳에 생선 몇 토막을 놓아주었다.
                                        -<떠나오는 정> 중에서-

  작가와 들 고양이와의 이별의식이다. 이처럼 자연친화적이고 동물사랑정신이 몸에 배어 있기에 정감이 가고 공감을 자아내는 수필을 쓸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가슴이 따뜻해야 정감이 넘친 글을 쓰게 된다. 수필은 정의 문학이라고 하지 않던가?

어려서 단순하고 맑던 웃음이 키가 자라는 만큼 사고의 영역도 커가면서 갖가지 의미가 담겨진다. (중략) 복잡하고 넓은 사회에서 웃는 웃음일수록 다양하고 나이가 많아질수록 차원이 다르다.
                                          -<웃음에도 연륜이 있다> 중에서-
웃음과 칭찬은 사람만이 활용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무기이다. 이 두 가지 무기를 잘 활용하면 세상살이에서 큰 도움을 받을 수 있다. 간난아이는 하루평균 3백 번을 웃는데 어른이 되면 17번밖에 웃지 않는다는 통계가 있다. 그만큼 순수성을 잃었기에 웃을 일이 줄어든 것이리라.
“웃으면 복이 온다.”
“웃느라 한 말에 초상난다.”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
웃음과 관련된 속담도 많다. 모름지기 이 두 가지 무기를 잘 활용하는 사람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런 사람이라야 더 좋은 인간관계를 가질 수 있고, 그만큼 더 좋은 글을 쓸 자료를 많이 구할 수 있을 것이다.

  장터목산장에서 백무동까지 내려오는 길도 만만치가 않았다. 아무리 내려와도 줄지 않던 거리가 마지막 순간에 도달하자 한꺼번에 맥이 빠져 한 발작도 움직일 수 없는 상태가 되어 버렸다. 뒤돌아 올려다 본 산은 여전히 오락가락하는 날씨 탓에 안개에 묻혀 있었다.
지리산 종주, 성삼재에서 장터목산장까지 장장 30여 킬로미터를 27시간 동안 걸었다. 이제는 산에 대한 미련이, 아니 오르막길에 대한 콤플렉스가 조금은 가실 것 같다. 언제 또다시 새로운 도전이 필요할지 모르지만…….
                                          -<지리산을 종주하며> 중에서-
  
27시간의 강행군 산행! 건장한 젊은 남성으로서도 선뜻 나서기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 50대의 주부가 도전했다니 실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풀잎처럼 가녀린 여류 수필가 김재희의 어디에 그런 용기와 도전정신이 숨어 있었을까? 이 작품에서 인간 김재희의 평소와 다른  모습을 찾아볼 수 있을 것 같다.  런가 하면 독자의 눈물을 자아낼 줄도 아는 여류 수필가가 바로 김재희다.

오빠의 향기는 아마 허브향일거야. 뭐 특별히 그 향에 의미가 있는 게 아니라 이름이 오빠하고 어울릴 것 같아. 오빤 좀 터프했잖아. 햇볕에 그을려 항상 거무튀튀한 얼굴이며 간편한 점퍼가 어울렸어. 살면서 양복 입은 모습은 별로 기억이 안나. 그래도 자신의 직업에  긍지를 갖고 있었어. 난 그 점이 좋았는데. 더 맘에 든 건,
“내 이름 뒤엔 부실공사는 없다.”
라는 철저한 직업의식이었지.
                                    -<풀 향기 퍼지는 날> 중에서-

  세상을 떠난 오빠의 첫 기일이 돌아오기 전 어느 가을날 오빠의 무덤을 찾아가서 잡초를 뽑으며 오빠와 대화를 나누듯 모노로그 기법으로 쓴 수필이다. 세월이 흐르면서 오빠의 존재가 잊혀져 가는 것을 서글퍼한다. 그러나 화자는 세상살이란 게 그렇게 잊으며 잊혀지는 것이라고 오빠를, 아니 자신을 타이르기도 한다.

Ⅲ. 수필가 김재희가 가야할 길

수필가 김재희는 우리 시대의 주목받는 작가 중 한 사람이다. 어떤 요리를 주문해도 맛깔스럽게 만들어 내놓을 만한 능력을 지닌 요리사다. 그러니만큼 한국요리, 서양요리 가리지 않고 모두 잘 해낼 수 있는 요리사가 되기를 바란다. 식도락가는 가격과 거리에 구애받지 않고 좋은 음식을 찾아다닌다. 편식을 하는 이들은 식도락가가 될 수 없다. 좋은 수필가가 되려면 수필소재의 장보기를 잘 해야 한다. 그 소재의 장보기는 수필가 김재희의 입맛대로 고를게 아니라 독자의 입맛을 염두에 두고 고르라고 권하고 싶다. 작가의 입맛에 맞게 장보기 하여 만든 요리라 해도 독자라는 손님들이 맛있게 먹지 않으면 헛수고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앞으로는 소재의 다변화에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주기 바란다. 우주만물이 다 수필의 소재라고는 하지만 그 소재에서 무엇을 발견하고 어떤 의미를 찾아낼 것인가가 중요하다는 뜻이다. 또 세월이 흘러 중견 수필가가 되었으니만큼 그 연륜에 걸맞도록 매사에 적극성을 보여주었으면 한다. 문단의 주변인이 아니라 주체가 되도록 참여하여 후배들에게 본을 보여  라고 권하고 싶다. 아울러 치열한 작가정신으로 창작활동에 임하여 3년 터울로 제2, 제3의 수필집을 출간하기를 바라마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