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밤에 펼쳐진 국악의 향연

2006.10.16 15:09

신영숙 조회 수:77 추천:25

가을밤에 펼쳐진 국악의 향연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과(중) 신영숙




    쑥대머리 귀신형용 적막 옥방의 찬 자리에 생각나는 것은 임뿐이라

    보고지고보고지고 한양낭군 보고지고

    오리정 정별 후로 일장 수서를 내가 못 봤으니

    부모 봉양 글공부에 겨를이 없어서 이러는가

    연이신혼 금실우지 나를 잊고 이러는가


  작은 체구의 나이 든 명창이 판소리  춘양가 중 쑥대머리 한 대목을 뽑고있다.
“얼~수  잘 한다.”
여기저기서 관중의 추임새가 이어지고, 나이 지긋한 명고수가 짚어가는 중머리 12박의 북장단이 흥을 돋워준다. 소리문화의 전당 연지 홀, 크고 넓은 공연장이 꽉 찬 관중들의 열광하는 박수소리와 소리꾼의 열창이 어우러져 가을밤의 정취를 한껏 돋운다. 그곳에는 한국인의 정서에 맞는 우리의 소리와 정말 오랜만에 무대위에 오른 그리운 얼굴들이 거기에 있었다.

국악원 개원 때부터 전북도립국악원에서 근무하다 정년으로 떠난 명인들도 함께 참석한 뜻 깊은 자리였다. 악보가 없던 시절, 구전으로 전해오는 소리를 그야말로 실기로만 익힌 노장들과 요즘 체계적으로 좋은 환경에서 국악을 공부한 신세대 국악인들이 함께한 자리, 어느 누가 월등하다고 말할 수 없을 만큼 듣는 이들이 만족해 할 정도로 각 분야에서 좋은 연주를 하고 있었다. 소리문화의 전당이라는 훌륭한 장소가 우리고장에 마련되었다는 사실이 공연하는 예술인들은 물론 시민의 한 사람으로 각종 공연을 볼 때마다 뿌듯한 생각이 든다.

시설 좋은 장소에서 좋은 작품을 자주 관람하다보니 관전하는 시민의식도 한층 성숙된 것 같다. 공연자에 화답하는 박수와 환호, 이들은 무대와 하나가 되는 방법을 터득하고 있었다. 오랜만에 박수를 치며 가슴을 열고 허허로이 웃고 즐거워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소리문화의 전당 연지 홀, 전북도립국악원 개원 20주년을 기념하여 교수들이 펼치는 흥겨운 국악잔치다. 그곳에는 판소리도 있고, 우리 춤도 있으며, 어깨춤이 저절로 나는 남도민요도, 그리고 해학과 풍자가 곁들인 단막 창극 '어사와 나무꾼' 춘향가 중 이몽룡이 어사 되어 춘향을 만나러 서울에서 남원고을로 내려오던 중 산중에서 나무꾼을 만나 주고받는 재담을 단막극으로 꾸민 창극, 나무꾼이 뱉어내는 저속한 말들이 관중을 사로잡는 매혹적인 언어가 되고, 폭소와 열기를 이끌어 낸다.
언어란 말하는 사람과 장소에 따라 이렇게 다른 분위기가 연출된다는 걸 새삼 깨닫는 밤이다. 소리꾼은 소리뿐 아니라 뛰어난 연기력도, 소리에 어울리는 재치있는 몸짓도 갖추어야하는 만능 예술인이다. 관객과 무대위에서 열연하는 연기자가 한 마음이 되어 흥과 소리가 화합하다보니  일상에서 쌓인 스트레스를 모두 날려 주었다.
신명나는 농악 한마당이 관중을 들뜨게 하고, 오랜만에 현역을 떠난, 나이 드신 명창들의 판소리도 감상할 수 있어서 더욱 뜻이 깊었다. 가야금 병창의 명인도 함께한 공연이었다. 한결같이 전문가의 실력이 두드러진 공연을 보면서 함께 웃고 갈채를 보내고 가을의 정취에 꼭 맞는 장소에서 2시간의 공연이 지루한 줄 모르고 지나갔다.
  전주는 예향답게 어디서나 우리소리 한 대목쯤 흥얼거릴 수 있고, 국내의 내로라하는 소리꾼은 전주에 모여 있다는 착각이 들 정도로 낙향해서 후진 양성에 힘쓰고 있는 분들이 한두 분이 아니다. 1986년에 국악원이 개원해서 여기를 거쳐간 도민들의 수가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원생들이 1,300여 명쯤 되니 학교를 방불케 한다. 같은 시간대에 수업이 이루어지지 않아서 그렇지 아침 10시부터 저녁 9시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이곳에서 적성에 맞는 교육을 받고 있다.
국악원에는 여러 분야의 예능보유자들이 지도하고 있다. 우리 민족의 한이 담긴 판소리도 있고, 우리의 정서에 맞는 멋들어진 춤사위도 그곳에 있다. 흥에 겨워 어깨춤이 저절로 나는 민요가 있고, 소리 따라 장단을 맞추는 북소리가 있으며, 해금의 간드러진 소리와 거문고의 품위있는 가락도 있다. 가야금산조와 가야금에 소리를 얹어 부르는 가야금 병창이 있으며 이것을 지도하는 명인이 그곳에 있다.

달밤에 들으면 심금을 울려주는 대금의 선율이 있고, 몸과 마음이 함께 움직일 수 있는 풍물이 있다. 시조, 단소 등 이 밖의 많은 과목들이 시민들을 기다리고 있다. 국악은 ‘우리나라 음악’이란 뜻이지만  1910년 일제 강점기가 시작되면서 ‘국악’이란 용어는 널리 사용될 수 없었다. 독립된 주권을 지닌 한 나라의 음악이라는 의미로는 더 이상 이 말을 쓸 수 없게 된 것이다.
1945년 광복이 될 때까지 우리의 음악은 ‘조선악’ 또는 ‘조선음악’으로 불리게 되었다. 국권회복과 함께 빼앗겼던 용어 ‘국악’은 1945년 광복의 기쁨과 더불어 되찾았다. 국악이란 말은 1951년 국립국악원이 개원하면서 정부기관의 명칭에 공식적으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이런 우여곡절을 겪은 우리의 국악을 가을밤에 감상하니 기쁨에 겨운 감격의 눈물이 볼을 타고 흘렀다. 우리가 우리의 음악인 국악에 더 관심을 갖고 사랑해야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