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변해야 산다

2006.10.21 19:31

유영희 조회 수:89 추천:28

남성, 변해야 산다
행촌수필문학회 유영희



  언제부턴지 남성들은 작금의 현실이 그저 못마땅하다. 남녀평등이 아니라 여성상위시대가 도래하여 남성들의 위치가 한없이 불쌍하고 위태한 지경이라며 탄식하고 있다. 허리가 휘도록 일한 대가로 받은 월급은 구경도 못한 채 통장, 도장, 카드까지 아내 손에 있으니 호주머니가 가벼워 그만 붕 하늘로 떠오를 지경이다. 그러고도 집에 들어가면 아내의 비위를 맞추어야 하는 안쓰러운 자신들의 처지가 서글퍼 자조의 술잔을 기울이다 보면 자정을 넘기기 일쑤다. 늦은 귀가 때문에 아내가 바가지를 긁으면 처자식을 먹여 살리기 위해서라고 큰소리를 쳐보지만 갈수록 기가 세진 여자들 때문에 세상 살기가 싫다고 중얼거린다.

문명이 발달하면서부터 인류는 남성우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전 세계의 역사 속에서 남성우위에서 빚어진 크고 작은 범죄는 헤아릴 수 없이 많다. 명문집안일수록 여성은 가정의 대를 잇는 존재에 불과했다. 부부 사이의 섹스는 아이를 낳기 위한 수단에 불과했다. 아내가 남편에게 성적인 유혹을 하거나 즐거움을 느끼면 정숙치 못한 여성으로 취급받았다. 남성은 아내에게서는 얻지 못하는 성적 즐거움을 집 밖에서 해결하는 등 성 불평등을 초래했다. 중세시대에 자행된 마녀사냥도 여성학대의 단면이라 할 수 있다.

몇 년 전에 요르단에서는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친오빠가 여동생을 총으로 쏘아 죽인 끔찍한 사건이 있었다. 이유는 여동생이 사촌오빠에게 성추행을 당하여 집안의 명예를 더럽혔기 때문이었다. 힘이 약하여 일방적으로 당한 일인데도 오빠는 자신의 여동생을 살해하였다. 일반적인 생각이라면 여동생을 죽일 게 아니라 가해자인 사촌을 죽였어야 하건만, 그의 어머니마저도 아들의 선택이 옳다고 말하였다. 이슬람 국가에서는 이를 ‘명예범죄’라고 부른다. 여동생을 총으로 쏘아죽인 살인자는 감옥에 가긴 가되 불과 몇 개월의 형을 살고 나오면 끝이라고 한다. 복역하는 중에도 ‘명예범죄’를 저지른 사람은 재소자들 사이에서 영웅대접을 받는다고 한다. 지금껏 ‘명예범죄’로 희생된 여성의 수가 헤아릴 수 없이 많다니 몸서리가 처진다.

전 세계의 페미니스트들이 ‘명예범죄’에 대하여 이목을 집중시키고 그 희생에서 여성을 해방시키려고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그러나 깊이 뿌리내린 그 나라의 전통의식은 쉬 바뀌기 어려울 것이다. 세계적으로 달라진 여성들의 위상을 고려하고 또한 여론에 밀려 아랍 국가들은 ‘명예범죄’를 막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명예범죄’를 저지른 남성이 극형에 처해진 경우는 아직껏 없다. 여성상위시대라며 탄식하는 남성들에겐 무던히 부러운 나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세계는 분명 변하고 있다. 선구자적 의식을 가진 소수의 아랍 여성들을 중심으로 차도르를 벗어 던지자는 운동이 번지고 있다. 우리나라는 물론 가까운 일본도 마찬가지이다. 아버지 없이 자녀를 양육하는 여성이 많아지고 황혼이혼이 급격히 늘어가고 있다. 결혼한 딸이 만약 부당한 대우를 받고 산다면, 70%가 넘는 부모가 이혼을 시키겠다는 통계가 나왔다. 여성이기에 무조건 참고 살아야 한다는 예전의 사고와는 한참 달라진 의식이다. 경제적 능력만 있으면 굳이 남성의 종속적인 존재로 살지 않겠다는 여성들의 단호한 항거일 것이다. 체면 때문에 혹은 자녀를 생각해서 무조건 참고 살던 여성들이, 정년퇴직한 남편을 상대로 이혼소송을 내며 인간답게 살겠다고 선언하는 이 세상을 남성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여성이 나이가 찼으니 결혼해야 한다는 의식도 바뀌었다. 결혼하지 않고도 정자를 구입하여 자녀를 낳고 싶어 하는 여성들까지 생겨나는 추세이다. 남성이 벌어오는 돈과 힘을 의지하여 살던 여성들이 이제는 인간이란 당당한 존재로 살려고 한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할 상황이다. 바야흐로 남성들은 달라진 현실을 바로 보고 그에 걸맞게 변해야 하는 시대를 맞은 것이다.

요즘 TV의 어느 채널에서는 바람피운 남편과 이혼한 뒤 새 삶을 개척해가는 중년 여성의 이야기가 방송되고 있다. 남편의 그늘에서 벗어나면 아무것도 할 수 없으리라는 생각과는 달리, 아내는 세상을 알아가며 주위의 도움으로 당차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아내를 소유물로 생각했던 남편은 이혼 뒤 달라진 아내의 모습에 경악과 분노를 느낀다. 여성을 향한 남성의 지배욕을 보여주는 드라마이다.

여성을 남성의 의식에 묶어놓고 지배하던 긴 역사가 바야흐로 변하는 마당이니 남성들이 당황해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가사노동의 가치 따위는 생각지도 않았는데 이제는 이혼할 때 부인이 전업주부였다 하더라도 부부의 재산은 공동분할이 된다. 이는 직접 나가서 돈을 벌진 않았지만 자녀를 양육하고 재산을 불리는데 전업주부인 아내의 수고를 남편과 똑같이 인정해 준다는 뜻이다.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든가 ‘여자가 무슨?’ 따위의 말은 머리에서 온전히 지우는 게 노후대책의 한 관건임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인터넷으로 ‘여성학' 강의를 듣고 잠시 ’지뢰 찾기‘ 게임을 하는데 남편이 다가와 말을 건넨다.
“당신 나이가 몇인데 지뢰 찾기야? 비켜! 나 뭐 좀 찾아볼 것이 있어.”
여차여차하니 좀 비켜달라는 부탁과는 전혀 거리가 먼 명령조다. 방금 들었던 강의를 토대로 유식을 떨어보고 싶건만 이미 길들여진 여자는 군소리 하나 못하고 컴퓨터를 내어준다. 어떤 긴급한 사항이었는지는 모르지만 방에서 들으니 컴퓨터 앞에 앉은 남편의 웃는 소리가 들린다. 분명 좋은 마음이 아니었건만 왜 말 한마디 못하고 자리를 내주었을까? 집안의 평화를 위해서였노라고 비겁한 위로를 해 보건만 기분이 유쾌하지는 않다. 우리 집 남자는 자타가 인정하는 애처가라고 하지만 그 기준이 모호해진다.

지금은 애처가의 기준도 알 수 없고 남성중심의 지배사고에 절어버려서 내겐 남편을 바꿀 능력조차 없다. 하지만 필히 전해주리라. 당신의 정년퇴임 뒤 퇴직연금 앞에서 내 마음이 어떻게 바뀔지는 나도 모른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