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책 읽기 편력

2006.10.24 20:33

이해숙 조회 수:165 추천:31

나의 책 읽기 편력(編曆)
                                                           - 책과의 만남 -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과(야) 이해숙





“아줌마! 민규, 민승이 데리고 교회 가도 돼요?
“그래, 들어와! 저 옆방에서 조금 기다려라. 애들 밥 금방 먹일게”

초등학교 시절 옆집에는 민규네가 살고 있었다. 민규는 나보다 다섯 살 아래였고 그의 아버지는 큰 공장의 부사장이었다. 우리 동네에서 가장 먼저 텔레비전을 샀었고, 그들이 보던 일제(日製) 텔레비전을 큰 것으로 바꿀 때는 우리가 그것을 중고로 샀었다. 그 때 가장 인기있던 드라마 '여로'시간이 되면 우리 집 방이며 마루, 마당까지 온 동네사람들이 모여 함께 울고 웃었던 기억이 새롭다. 엄마가 교회 갈 때 옆집 애들도 데리고 가라고 하셔서 그 집엘 갔더니 쾌히 승낙하시며 옆방으로 나를 들어오라고 하셨다. 그 때 내 눈에 띈 그 광경이란!

우리 집에는 한 권도 없는 계몽사의 전집들로 꽉 들어찬 책꽂이! 그 날 이후 나는 애들과 놀아준다, 책 읽어준다, 교회 데리고 간다는 등 온갖 구실을 붙여 그 방을 드나들며 공짜로 그 책을 다 읽었던 기억이 있다. 그렇게 책읽기에 맛을 들인 나는 좀처럼 그 버릇에서 헤어나질 못했다.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또 오빠 책꽂이의 책을 많이 읽었다.

길, 사랑하였으므로 행복하였네라, 테스, 그리고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이 모든 괴로움을 또다시…….  중학교 시절 요한나 슈피리의 ‘알프스 소녀 하이디’를 읽고 친구랑 주인공 이름이 ‘하이디’ ‘하이지’하며 옥신각신하다가 결국 학교 도서관에서 번역에 따라 다르게 표현되었음을 확인한 일도 있었다. 토마스 하디의 ‘테스’를 읽고 깊이 감동을 받아 이십대에 다시 한 번 읽은 기억이 난다. 학교 점심시간이면 칠판에다 읽은 책의 감동적인 구절이나 싯귀들을 적어 친구들에게 알려 주던 생각이 새롭다. 나의 이런 행동들을 호응해 주며 새로운 시들을 적어 달라, 좋은 책들을 소개해 달라는 친구들도 있었다.

고등학교 3학년 때 공무원 시험을 준비해 보라는 선생님의 권유로 도서관을 다니면서도 대부분 공부보단 책 읽는 것이 더 좋았다. 절실한 생각이 없이 준비한 공무원시험에 합격할 리가 없었다. 서울에서 직장생활에 재수 삼수를 하면서도 몽고메리 여사의 ‘빨강머리 앤 10권’을 읽었다. 동대문도서관에서 마지막 권을 읽은 다음 생각나는 13명의 친구들에게 편지를 쓴 적이 있다. 작가들이 한 작품을 끝내고는 그간 쏟은 기운의 소진으로 얼마간 앓아눕는다는 이야기처럼, 나도 그 책을 읽고 며칠동안 앓았던 적도 있었다.

그 해 여름, 스물여덟의 나이에 해변시인학교를 찾았다. 시(詩)를 습작하며 꿈을 키우던 나는, 주문진에서 가진 해변시인학교 캠프에 참석하여 ㅎ시인께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내 시를 보여 드렸다. 실력이 안 되는 걸 붙잡고 늘어지면 시간낭비요 정력낭비이니 정 시를 쓰고 싶으면 100편을 채워서 다시 오라고 하셨다. 그날 밤 캠프파이어에서 내 마지막 열정을 다하고, 나는 깨끗이 글쓰기를 포기하였다. ‘댄싱 퀸’의 상품으로 시집 5권을 받았었다.

결혼 초에는 노환의 시부모님, 연년생의 아이들, 보증을 잘못 서서 3천만 원의 융자로 채무와 밀린 이자를 정리해야 했던 숨막히던 시절이 있었다. 10년 걸려 융자금을 다 상환하는 짜디 짠 일상 속에서도, 나는 손에서 책을 놓은 적이 없다. 장편들로는 오싱 전10권, 태백산맥, 지리산, 객주, 빨강머리 앤10권은 두 번을 읽었고, 토지 21권, 이상문학상은 10여 년째 해마다 읽고 있다. 내 일상에서 책 읽기는 숨쉬기와 마찬가지이며 습관처럼 손이 가는 커피와도 같다.

책 속에서 나는 나의 꿈을 보았고, 어느 이국의 거리를 거닐었으며, 먼 나라로의 여행을 떠났다. 사막 한 가운데서의 고독한 방랑자이며, 주먹만한 별들이 쏟아지는 인도 하늘아래에서 별들과의 만남을 즐기는 지구별 여행자이기도 하였다. 이제 긴 터널을 빠져나와 볕 고운 하늘을 쳐다보며 맛있는 바람을 마시는 여유를 얻었다. 두 분 시어른들도 돌아가셨고 아이들도 자랐다. 가만히 가슴속에서 자라고 있던 글쓰기의 소망! 이제 그 첫발을 떼었다.  

책 선물 받는 것이 가장 고맙고 책 선물할 때가 가장 기쁘다. 지금도 매달 한두 번은 인터넷으로 여러 권의 책을 산다. 내 스스로 나에게 하는 선물이다. 한꺼번에 많은 양의 아세트지를 사서 30cm의 폭으로 잘라 롤로 감아둔다. 새 책을 장만할 때마다 적당한 크기로 잘라 책표지을 싼다. 오랜 습관이다. 이런 작업들이 나는 참 행복하다. 새 책을 투명한 표지로 싸 내 이름을 쓴다. 읽으며 밑줄을 긋고 메모한 흔적이 있는 책을 벗들에게 선물하기도 한다. 나는 책을 빌려 보지를 않는다. 책 읽을 땐 밑줄을 긋고 메모해야 직성이 풀리는 게내 성격이다. 남의 책에 밑줄 긋고 메모할 수는 없지 않은가? 또한 빌려 보고 돌려주려하면 아까워서 주기 싫기 때문이기도 하다.

세 아이 중 큰애가 나의 이런 점을 닮은 듯하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작품은 모두 섭렵하였으며 지금도 베르베르의 작품을 기다리고 있다. 그 작가는 너무 글을 안 쓰는 것 아니냐고 불평이다. 노빈손 시리즈는 새 책이 나올 때마다 날름날름 받아먹어 단행본 열다섯 권을 모두 읽었고, 해리포터도 새 책이 나올 때를 기다리며 읽은 책을 읽고 또 읽었다. 반지의 제왕도 물론이다. 구몬 국어를 ‘완료’하면서 지문에 인용된 책은 모두 사서 읽었다. 2년 전 겨울에 마트에서 석류를 사다 준 적이 있었다. 우리의 석류는 신맛 때문에 애들이 먹기 힘들지만 이란의 석류는 단맛이 있어 먹기가 수월했다. 석류를 사서 건네며,
“정현아, 이거 이란산(産 )석류야.”
나는 석류가 우리나라에만 나는 과일인 줄 알았었다.

“어머니, 석류는 본래 이란이 원산지예요. 징기스칸이 이란을 정복하고 그 곳에서 석류를 먹었잖아요? 모르셨어요? 알렉산더가 동방원정을 통해 중앙아시아 페르시아 전역을 정복하였다지만 징기스칸은 알렉산더보다 두 배나 되는 땅을 정복하였고, 알렉산더는 33살에 죽었지만 징기스칸은 60세 넘게 살았으며, 알렉산더는 정복지를 제대로 통치하지 못했지만 징기스칸은 그의 정복지를 완벽하게 통치했어요. 사생활이 건전하여 장수했나 봐요.”
6학년 겨울방학 때 정현이로부터 들은 세계사 강의다. 다 독서의 효과인 듯싶어 흐뭇했다.

책 읽기도 중독인 듯하다. 책을 읽으며 책 속에서 나오는 다른 책이 있으면 메모를 한다. 책 읽기가 끝나면 또 새 책을 산다. 그렇게 책 읽기는 이어진다. 여름방학에 읽은 책 중에서 4권의 책을 인터넷으로 구입해 그 중에 두 권을 읽었다. 그 두 권을 읽으며 또 세권의 읽을 꺼리를 발견하고 주문을 했다. 나의 이 책 읽기 중독현상은 죽을 때까지도 이어질 것이다. 그리고 이 버릇을 굳이 버릴 마음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