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개질 기도

2006.11.14 06:58

최정순 조회 수:111 추천:45

뜨개질 기도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과(기초) 최정순



“툭!”
하고 새벽의 정적을 깨는 신문 던지는 소리에 잠이 깨었다. 강아지 방울소리가 가끔 짤랑짤랑 들릴 뿐, 싸락눈 내리는 소리마저도 들리지 않는 새벽시간, 이미 아들 방엔 등불이 밝혀져 있었다. 결과를 기다리는 엄마와 아들의 마음 무엇이 다르겠는가. 냉철한 침묵만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벌써 18년 전의 일이다. 고등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이던 큰아들이 대입시험을 치르고 초조하게 합격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는 학력고사 성적과 내신 성적 그리고 본고사성적을 합한 점수가 합격여부를 판가름하던 시절이었다.
답안지도 이미 맞춰보았고, 본인이 채점을 해서 합격여부를 어렴풋이나마 알고 있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전국에서 일등급 학생들만 모여 벌인 씨름판이라서 합격통지서를 받아보기 전에는 결코 마음을 놓을 수 없었다.하루하루가 그야말로 살얼음판을 걷는다고나할까, 무녀(巫女)가 날카로운 칼날 위를 걷는 기분으로 합격만을 기다리고 있는 때였다.

드디어 합격자발표 날이 왔다. 기억도 생생한 1989년 12월 21일 아빠와 아들은 합격자발표를 직접 보려고 서울로 올라갔고, 나는 여기저기 신문사에 전화를 걸어 알아보고 있었다. 모든 신문사들은 통화량이 많아서 계속 통화 중이었다. 용케도 한겨레신문사와 통화를 할 수 있었다. 수험번호와 이름을 대자,
“합격이요, 축하합니다.”
하는 소리는 내 평생 잊을 수 없는‘나의 노래’가 되어버렸다. 보이지도 않는 수화기속의 안내원에게 절을 수없이 해댔던 일이 기억난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하느님!”
종일 외쳐댔던 일이 마치 방금 일어난 일인 것처럼 생생하게 떠올랐다. 이렇게 기분 좋았던 일이 그 뒤 몇 년 동안에는 없었던 것 같다. 팔불출이라도 좋으니 한 번 되어 보고도 싶다. 아들은 서울대학교 경영학과에 좋은 성적으로 합격을 했었으니까.
아들이 정말 고맙고 미더웠다. 합격의 기쁨을 얻게 된 것은 그저 얻은 것이 아니라 아들이 피나는 노력을 한 당연한 결과이었으니까. 아들의 목표를 향하여 엄마도 같이 맞선다면 아들에게 큰 짐을 주는 것 같아서 엄마는 한발 물러서서 아들을 지켜보는 수밖에 없었다. 흔히 하는 말이지만, 말을 물가에 끌고 갈 수는 있으나 물을 억지로 먹일 수는 없는 일이다. 아들 자신이 갈증을 느껴 물을 열심히 들이켜 준 결과다.

오랜만에 알고 지내던  동생을 거리에서 만났다. 상기된 얼굴에 힘이 넘쳐보였다. 좋은 일이라도 있느냐고 묻자 동생은 속니를 드러내 보이며 웃었다. 말썽꾸러기였던 큰아들 녀석이 올해 수능시험을 치르는데 아들을 위해서 구일기도를 시작했다며 그곳으로 기도하러 가는 중이라고 했다. 그래서 이번 11월 16일이‘대학입학 수학능력시험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솔직히 요즘 대학입학시험제도에 대해서 잘 모른다. 하지만 18년 전 내가 이미 겪었던 일이라서 자연스럽게 말문이 터져 나왔다.  

“어이, 동생! 그 감격스런 경사를 이제야 치른다고? 고등학교 3학년 수험생이 있다는 것은 곧 그만큼 젊고 꿈이 있는 생기발랄한 삶의 증표가 아니겠는가?”
하며 동생의 사기를 북돋아주었다.
“자네의 젊고 활기 넘치는 삶이 부럽기까지 하네, 이 사람아! 참기 힘들고 어려웠던 날들 수없이 많았겠지만 이때처럼 좋은 때는 없다는 것을 먼 훗날에 알게 될 걸세. 기도할 대상이 있고 고민할 대상이 있다는 것, 그 자체가 곧 행복인거지. 아들을 위해서 구일기도 하러가는 자네가 퍽이나 행복하게 보이네. 수험생을 둔 모든 엄마들이 지금쯤 어디선가 자식들을 생각하며 촛불을 밝히고들 있겠지. 그때 나는 이렇게 기도한 것 같네. 불안하고 초조한 마음을 떨치려고 뜨개질을 다시 시작했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한 올 한 올 짰다 풀었다 초저녁잠을 못 이겨 잘 못 뜬 올을 풀어서 다시 짜기를 수십 번도 넘게, 이렇게 뜨개질기도로 수없이 많은 날을 보냈었지. 아들 방에 불이 꺼지면 그제야 내 방의 불도 끄고 자리에 누웠으니까. 어느 날 성모님 상 앞에서 아들의 기도하는 모습을 본 일이 있었지. 그때 나도 성모님께 아들의 간절한 기도를 들어주시도록 뜨개질 기도를 더 정성껏 받쳤다네. 엄마의 모습에서 아들이 편안함을 얻고 생기를 잃지 않기 바랐었지. 아들 앞에서 나약한 모습이 아닌 초연한 엄마의 모습을 보여주려고 무던히 애를 썼다네. 행복의 문턱을 넘나들고 있는 동생의 기도가 부디 하늘에 닿아 기쁨의 날이 오기바라네.”

늦은 오후 나는 뜨개질감을 챙겨들고 아들 방 의자에 앉아 보았다. 가끔 마다르제스카 곡‘소녀의 기도’를 연주했던 육중한 피아노는 그 자리를 지키고 있고, 책상위엔 파란 망또를 입은 성모님상과‘우등상’이란 글자가 지금도 선명하게 보이는 영어사전이 놓여있으며, 벽엔 그 시절 청소년들의 우상이었던‘마이클잭슨’사진이 18년 전 그때의 일을 대변이라도 하듯 그대로 붙어있었다. 세 평 남짓한 이 방에서 꿈을 키웠던 아들이 불현듯 보고 싶다. 지금은 두 아이의 아빠가 되어 한 가정의 가장으로, 또 직장에서는 국제재무분석사로 열심히 살아가는 아들을 생각하며 엄마는 오늘도  내일도 계속 뜨개질을 할 것이다.

                           (2006년 11월 중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