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강녀의 사랑

2006.12.07 15:28

박주호 조회 수:81 추천:9

맹강녀의 사랑
                                         전북대 평생교육원 수필창작반(야) 박 주 호



내 고향 주변 관광지로는 남한산성이 있다. 초등학교 땐 선생님께 이끌려 그곳으로 곧잘 소풍을 갔었고, 어른이 되어서는 내가 식구들을 데리고 자주 가던 곳이다.  남한산성은 조선 16대 인조임금이 청나라에 필사의 항전을 하던 곳이니, 그 산성은 전쟁과 관련이 깊다.

어린시절, 중국에도 외침을 막기 위해 쌓은 기나긴 만리장성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었다. 세계 10대 불가사의 중 하나인 만리장성은 기원 전에 쌓기 시작했다고 한다. 인공위성을 타고 달나라에 간 암스트롱이 그곳에서 보았다는 것이 그 만리장성이라고 했햇었다. 그토록 보고싶던 만리장성을 찾아가는 마음은 설렘 그 자체였다.  여행 안내서에 케이블카는 날씨가 좋지 않으면 운행을 안 하며 비용도 반환은 불가능하다는 내용이 있었다. 여행복(旅行福)이 있으면 나쁘던 날씨도 좋아지는 법이다. 북경의 청명한 날씨와 적당한 기온이 전혀 다른 나라 같지 않았다. 이동 중에 가이드는 웃으며 너스레를 떨었다.

"이번 팀은 복이 많으신 것 같습니다."
이 말은 모든 가이드들이 어디를 가든 곧잘 쓰는 말이다. 그러면서 그는 만리장성에 얽힌 전설을 한 토막 전해주었다. 맹강녀(孟姜女) 이야기였다.

진시황이 중국을 통일하기 전에 이미 춘추전국시대에는 각국마다 몽고족과 북방민족의 침입을 막기 위해 흙과 돌을 섞어 성을 쌓았다고 한다. 통일을 하고 나서 모든 성을 잇는 공사를 한 황제가 바로 진시황이다.  이후 명나라 때 무너진 성을 보수하면서 기초석은 2톤이 넘는 돌로 정교하게 놓고, 그위에 벽돌로 다시 쌓은 것이 오늘날 우리가 볼 수 있는 성이라고 했다.

진시황 당시에 성 1 리를 쌓을 때 마다 사람 한 명이 죽을 정도로 희생이 많았기 때문에, 만리장성을 쌓으려면 만 명이 필요하다는 노래가 나돌았다. 중국 소주에 살고 있던 만희량이라는 사람은 이름 때문에 그 노래의 희생양이 되었다.
만희량은 관원들이 잡으러 올 것을 피해 떠돌아다니다가 맹원외 부부의 집으로 숨어들었다. 그곳에서 맹원외 부부의 양녀인 맹강녀를 만나게 된다. 나비를 쫓다가 연못에 빠진 맹강녀를 만희량이 구해 준 것이 계기가 되어 둘은 결혼하게 되지만, 이들이 결혼한 지 사흘도 안 되어 신랑은 관원들에 의해 만리장성 쌓는 곳으로 끌려갔다. 맹강녀가 만희량을 기다린 지 반년이 지날 무렵 꿈속에서 남편이 문을 두드리며
"추워 죽겠습니다."
라고 했다.

맹강녀는 그길로 솜옷을 준비하여 만리장성 쌓는 곳을 물어물어 찾아 갔다. 남편을 보았다는 사람이  있어 행방을 물으니, 불과 며칠 전만 해도 있었는데 보이지 않는다고 하며 이미 죽었을 거라는 말을 듣는다. 맹강녀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 사흘 밤낮을 대성통곡하며 남편을 살려내라고 울부짖었다. 이때 천둥번개가 치며 하늘에서 폭우가 쏟아졌고, 장성 40리가 무너져 내렸다고 한다. 무너져 내린 장성 속에는 무수한 시체들이 나왔고, 맹강녀는 꿈에 그리던 만희량의 시체를 찾아 안고 강물에 몸을 던져 죽고 말았다. 실제로 중국 하북성 산해관 쪽에 그녀의 묘가 있으며 그 옆에는 원망스런 눈초리로 만리장성을 바라보는 그녀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고 한다. 지금도 중국 초등학교 교과서에 '맹강녀 이야기'가 실려 있다고 했다. 중국 사람들이 만리장성을 세계에서 가장 크고 긴 공동묘지라고 한다는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

팔달령에 이르니 이미 수많은 사람들이 장성을 오르내리고 있었다. 3겹으로 쌓았다는 장성은 구분하기가 쉽지 않았다. 중국인들이 그토록 좋아하는 용이 마치 살아 꿈틀대듯 해발 천 미터가 넘는 산 능선을 따라 이어져 있었다. 전체 길이가 약 6350km 이고 평균 높이가 7.2m  너비가 아랫부분은 9m이고 윗부분은 4.5m나 된다. 만리장성을 처음부터 끝까지 가 본 사람이 지구상에 한 사람도 없다는 것만 봐도 대단한 것은 틀림없다. 그러나 그 많은 희생으로 쌓은 만리장성도 징기스칸을 막지 못했다. 말 타는 재주는 몽고유목민들을 당할 수 없다고 한다. 말을 타고 넘을 수 없을 만큼 쌓은 성도  세계를 지배한 징기스칸에게는 한낱 상징물에 불과한 것이었다. 일찍이 당태종도
"사람이 장성보다 낫다."
라는 말을 남겼다. 전쟁은 물리적인 방어보다 사람의 지혜로 막아야 한다는 뜻일 것이다. 전쟁에서 나라를 지키고자 쌓은 만리장성이지만 국민들을 착취와 고통으로 몰아넣어 국력이 약해진다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분명 만리장성은 대단한 건축물임에는 틀림없지만,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는 역사적으로 교훈을 주는 바가 적지 않다. 지금도 만리장성은 보수가 이뤄지고 있고 누군가 성 쌓기를 계속하고 있다고 했다. 만리정성이 길듯, 얽힌 이야기들도 많다.

우리가 흔히 속담처럼 하는 말 중에
"하룻밤을 자도 만리장성을 쌓는다."
라는 말이 있다. 분명 알아야 하는 것은 하룻밤을 만리장성처럼 길게 보내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남의 아내를 탐내 하룻밤을 자고  같이 살겠다는 조건으로 만리장성을 쌓는 남편에게 옷과 편지를 전해주러 갔다가, 그곳에 붙들려 남편 대신 장성을 쌓게 되었고 그녀의 남편은 무사히 아내 곁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는 이야기다. 만리장성이 아무리 위대하다한들 사랑만 할까. 인간의 무한한 욕심은 화를 부를 수도 있다는 말로 들린다.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맹강녀가 무척 아름다웠다고 한다. 진시황이 그녀를 황후로 맞이하겠다고 유혹했으나, 남편의 시신을 안고 물에 빠져 죽음으로써 당당하게 맞섰다고 한다. 맹강녀가 남긴 말처럼 진나라는 짧은 역사로  끝나버렸다.

  내일의 일정을 위해 중국의 발 마사지를 받으며, 맹강녀의 절개를 곱씹어보다가 슬그머니 머리를 돌려보니 아내가 바라보였다. 그녀는 나의 맹강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