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암탉의 하소연

2006.12.16 14:25

서순원 조회 수:81 추천:13

  어느 암탉의 하소연
                                                                                  행촌수필문학회 서순원




                                                                                                                          
눈물이 납니다. 너무 억울하고 너무나 슬퍼서 펑펑 눈물이 쏟아집니다. 나는 어쩌다가 불쌍한 닭의 신세가 되어 이토록 처참한 환경에 처하게 되었는지 너무나도 슬퍼서 눈물이 빗물처럼 쏟아져 내립니다.

나는 전라북도 익산시 근처 한적한 시골 양계장에서 살고 있는 이름 없는 건강한 암탉이랍니다. 지금 전라북도 익산시와 김제시에서는 조류독감 때문에 무서운 가축 도살사태가 벌어지고 있습니다. 흰옷 입은 닭의 저승사자들이 날마다 우리 종족들을 잡아다 땅에 묻고 있습니다. 씨앗을 땅에 묻으면 내년 봄에 싹이 트겠지만 우리 닭들은 씨앗과는 달리 목숨마저 빼앗기게 되니 얼마나 통탄할 일입니까? 우리는 과연 누구에게 이 원통한 대량학살을 막아달라고 호소해야 합니까? 나의 목숨도 언제 살처분되어 땅속에 묻힐지 모릅니다. 나 역시 피 말리는 공포 속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번 조류독감 사태 때문에 우리 닭들은 이미 수십만 마리가 떼죽음을 당했고, 수도 없이 많은 계란들까지 땅속에 묻혔습니다. 전염병에 걸린 닭들을 살처분하여 땅속에 묻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조류독감의 확산을 막기 위한다는 명분으로 다른 양계장에서 살고 있는 건강한 계란과 닭들까지 모두 살처분하여 땅에 묻어버리는 것은 너무나도 잔혹한 처사가 아닙니까? 옛날 페스트 같은 질병이 창궐하여 많은 사람들이 죽어갈 때에도 반경 3킬로미터 이내의 사람들을 모두 죽이지는 않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왜 우리들 닭이나 소, 돼지 등 가축의 질병이 발생하면 잔인하게 살처분을 합니까? 질병을 고치는 약을 개발해야  바람직할 텐데 인간과 너무 차별대우 하는 게 아닙니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조류독감이 철새들에 의해서 전염되고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막상 조류독감이 발생하자, 정부는 전염병을 옮긴 철새들이나 그 철새들의 배설물을 양계장으로 묻혀 들인 사람들은 그대로 놓아둔 채, 죄 없는 닭들만을 살처분하여 땅속에 묻고 있습니다. 이 같은 행위는 우리 닭들에게는 너무나도 억울한 처사가 아닐 수 없습니다. 내가 만일 저승에 가게 되면 염라대왕에게 엄중히 항의하려고 합니다.

우리 닭들은 수천 년 세월을 사람들과 함께 한집에서 동고동락하며, 사람들의 식생활에 크게 도움을 준 그들의 가족과 같은 존재들입니다. 그런 닭들이 사람들과 아무 관계도 없는 철새들보다도 대우를 받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요? 나는 요즘 사람들의 처신을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나는 조류독감의 전달자가 철새들이라고 하여, 또는 닭들만 죽음을 당하기에는 너무 억울하다고 하여, 철새들도 닭들처럼 살처분을 하여야 한다고 말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나는 다만 조류독감이 발생한 양계장의 닭들만은 폐사처분을 시키더라도, 수십만 마리의 건강한 닭들까지 모두 살처분하는 것은 매우 잘못된 처사라는 말을 하고 싶을 따름입니다.

나는 아직까지 조류독감으로 인해서 철새들이 떼죽음을 당했다는 말을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철새들은 비록 조류독감에 전염이 되더라도 그 병을 충분히 이겨낼 수 있는 저항력을 갖고 있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철새들이 지니고 있는 그 저항력의 원동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그것은 가공되지 않은 신선한 먹이와 신선한 공기를 마음껏 먹고 마실 수가 있고, 마음껏 사랑하며 자유롭게 짝짓기를 하고, 마음껏 날아다닐 수 있는 자유가 있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바로 그 자유가 철새들이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조류독감에 걸려도 끄떡하지 않는 강한 체력을 지니게 만든 주요한 원인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학자들은 금강하구에 찾아온 철새들이 금번 조류독감 발생의 원인이리라는 추측을 하기도 하고, 다른 학자들은 열악한 양계장 환경에서 발병원인을 찾으려는 사람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나는 금번에 발병한 조류독감의 원인을 자세히 모릅니다. 그렇지만 지구상에는 인간들의 지나친 욕심으로 인해서 자연의 질서가 파괴되고 있으며, 그로 인해서 예전보다 훨씬 더 많은 질병들이 새롭게 발생하였고, 수많은 동물들과 사람들이 고통을 겪고 있다는 사실만은 잘 알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닭들을 좁은 공간에 가두어 놓고, 운동은 물론, 사랑의 데이트와 짝짓기조차도 자유로이 할 수 없도록 우리들에게 고통을 강요하고 있습니다. 산란율을 높이기 위하여 밤에도 대낮처럼 환하게 백열등을 밝혀놓아 우리들의 수면을 방해하고, 수명까지 단축시키고 있습니다. 내 동료 암탉들은 연일 무정란만 낳아왔습니다. 양계장 속에 갇혀 있는 닭들의 신세야말로 교도소에 수감되어 있는 죄인들의 신세와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오랜 세월 인간들에게 헌신봉사한 대가가 고작 이것이란 말입니까?

사람들은 우리 닭들을 단순한 달걀제조기로만 생각하는 듯합니다. 그것은 인간들의 잘못된 생각입니다. 우리 닭들도 인간들과 다름없이 살아 숨쉬고, 따뜻한 피가 흐르는 귀중한 생명체입니다. 인간이나 우리나 다 같은 신의 피조물이요 자연의 하나라 그런 말입니다. 우리들도 과도한 스트레스를 지속적으로 받게 되면 무서운 질병들을 얻게되고, 그 질병들은 마침내 우리들을 먹는 인간들에게까지 치명적인 재앙을 가져다 줄 것입니다.

장자의 글속에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지 않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러므로 인간세상의 혼란을 야기시키는 것은 인간들의 욕심과, 세상을 그대로 두려하지 않는 분별심 때문이다.”
라는 말이 적혀있다고 들었습니다. 여기에서 분별심이란 다름 아닌 인간들이 자기들 중심으로 구분해 놓은 선과 악, 미와 추, 좋고 나쁜 것, 이익과 손해 등, 인간위주로 만들어 놓은 분별을 말하고 있겠지요. 사람들의 욕심과 분별심이 우리 동물들에게 얼마나 많은 고통을 안겨주고 있는가를 사람들은 알고나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나는 조류독감이 발생한 근본적인 원인이 인간들의 이기심 때문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인간들은 닭을 닭으로 키우지 않고, 소를 소로 키우지 않습니다. 인간들은 닭을 산란기계로 생각하고 소를 단순히 고기공급원으로만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인간들은 닭들이나 소들이 누려야 할 자유와 사랑과 행복을 모두 송두리째 앗아가 버린지 오래입니다. 이것들은 모두가 인간들의 잘못된 이기심 때문입니다. 이와 같은 인간들의 이기적인 행위는 우리 가축들에게도 참고 견디기 어려운 혹독한 스트레스를 안겨주고, 그런 스트레스 때문에 조류인플루엔자나 광우병 같은 무서운 질병들이 새롭게 발생하게 되었고, 이 질병들이 다시 인간들을 위협하는 악순환이 되풀이 되는 것입니다. 이런 게 인간의 자업자득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인간들은 남보다 많이 소유하는 것이 잘사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습니다. 그런 생각 때문에 인간들은 저희들끼리 서로 많이 가지려고 경쟁을 하면서 견디기 어려운 스트레스 속에서 일생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스트레스는 인간들뿐만 아니라 우리 가축들에게도 아니 모든 동식물에게도 병의 근원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들의 주인인 인간들이시여! 우리 종족들을 좁은 닭장에서 해방시켜 주십시오. 우리들이 우리 조상들처럼 원래의 닭의 모습, 원래의 닭의 생활로 되돌아 갈 수 있도록 해주십시오. 간절히 간절히 빌고 또 빌겠습니다.

사랑하는 나의 2세인 병아리들과 함께 멋쟁이 수탉의 호위를 받으며, 넓은 마당을 자유로이 헤집고 다닐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마음껏 사랑하고, 마음껏 노래하고, 마음껏 활동할 수 있는 게 우리 닭들의 원래모습입니다. 때때로 위풍당당한 수탉이 내게 다가와 꼭꼭꼭꼭하며 사랑의 신호를 보내오면, 나는 마치 첫사랑의 구애를 받은 소녀처럼 가슴이 뛴답니다. 그가 한쪽 날개를 아래로 빗겨 내리고 내 곁을 돌며 구애할 때면 나는 호흡이 멈추는 듯한 희열에 몸을 떨었습니다. 나는 그가 두려워 달아나는 척하며 그를 호젓한 우리들끼리 사랑을 나눌 장소로 유인하지요. 그가 나를 쫓아와 사랑의 몸짓으로 나를 감쌀 때 나는 가슴 가득 기쁨이 차오르곤 하였습니다.

우리들 운명의 주재자이신 인간이시여! 제발 우리들을 닭의 본래모습으로 돌아갈 수 있게 해주십시오. 그 길만이 진실로 가축들을 위하는 길이며, 또한 인간들 스스로가 조류독감이나 광우병 같은 무서운 질병에서 벗어날 수 있는 올바른 길이라고 굳게 믿습니다.

우리 닭들은 옛날 우리 조상들처럼 평화롭게 살아가고 싶습니다. 때가 되면 목소리를 높여 사람들에게 새벽을 알려주고, 건강한 알을 낳아 병아리를 깨어 자손을 번창케 하고 싶습니다. 또 백년 손님이라는 사위가 오거든 나 같은 씨암탉을 잡아 장모의 정성을 보여주셔도 원망하지 않을 것입니다. 현명하신 인간들이시어,부디 우리 닭들의 하소연에 꼭 귀를 기울여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