짝사랑

2006.12.18 07:47

김영옥 조회 수:81 추천:14

짝사랑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과(고) 김영옥




  "사랑은 오래 참고 온유하고, 질투하거나 자랑하지 않고, 교만하지 않고, 무례하게 행동하지 아니하고,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않으며, 성내지 않고, 불의를 기뻐하지 않고, 진리와 함께 기뻐하며, 모든 것을 참고, 믿고, 바라고, 인내한다."
성경 고린도전서 13: 4-7절에 기록된 말씀을 보면, 사랑은 우리 인간에게 가장 큰 덕목이 아닌가 싶다. 사랑은 말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행실이 꼭 따라야한다.
          
  이 세상에서 하느님의 사랑과,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것보다 더 큰사랑이 어디 또 있을까?
세상 부모들의 공통점은 누구나 온갖 힘을 다하여 오직 자식들이 잘 살기를 바라는 마음일 것 같다. 자식사랑은 계산해서 언젠가 되돌려 받으려 하기보다는 주고싶은 도둑놈이라 하지 않던가.
우리 집 옆방에 혼자 사는77세 할머니는 아들 넷에 딸 하나를 두었다. 허리수술을 하고 당뇨도 있어서 병원출입이 잦다. 자녀들과 떨어져서 혼자 지낼 만큼의 생활비를 받으면서도 철따라 간장 된장 고추장 젓갈까지 담가준다. 아직도 소금이 두 포대나 쌓여있다. 동사무소에 가서 박스  접는 일도 하고, 용돈을 아껴서 두 집 손자들의 대학등록금에 보태라고 백만 원씩 주었다고 자랑하신다. 올해도 무거운 메주덩이를 옥상으로 나르느라 너무 힘들어 보여서,
“이제 그만해주세요. 몸도 좀 돌봐야지요.”  
했더니
“자식들이 한창 배울 나이에 영감님이 재산을 탕진하고 죽어서 자식들에게 고생을 많이 시킨 것이 가슴아파 할 수 있을 때까지는 해주고싶어요.”
하셨다. 자식이 무엇이길래 저런 몸을 가지고도 오직 자식 생각만 하는지. 참으로 사랑은 무한한 힘을 갖고 있음을 절실히 깨달았다.

  나 역시 자식이라면 누구 못지않다. 항상 옆에 두고 보고 싶은 것이 자식이다. 아들 하나, 딸 셋을 두었지만, 모두가 대학공부를 서울에서 하면서부터 떨어져 살았기에 늘 그리운 정만 가슴에 안고 산다. 일년이면 몇 번 잠깐 얼굴만 스칠 뿐 손 한 번 잡아 볼 새도 없이 헤어져 지낸다. 직장 다니랴, 살림하랴, 자식 돌보랴, 부모까지 생각한다는 것은 너무 무리한 요구인 듯하여 짐작은 하지만, 때로는 옛날을 회상하며 살며시 보고 싶을 때가 많다. 목소리라도 듣고싶어 수화기를 들었다가도 지금 이 시간에 전화를 하면 저희들 생활에 지장을 주는 게 아닌가 싶어 망설여진다. 휴가철이면 행여 오려나 기다리다가 저희 가족끼리만 어디 다녀오겠다는 전화를 받으면 왠지 헛다리짚은 것 같아 눈물이 왈칵 솟으면서 허망하여 울적해지곤 한다. 하지만, 자식들은 부모를 잊는 때가 많다. 나 역시 그랬으니까.

그럴 때마다, ‘내가 너희들을 어떻게 길렀는데?’ 라는 생각을 하면 화가 나지만 ‘바르게 잘 살아주어 고맙다.’라고 생각을 바꾸면 이내 섭섭한 마음을 거두게 된다. 어느 자식인들 부모생각을 하고 싶지 않을까. 너무 바쁜 세상 탓이려니 자위하면서 마음을 삭인다. 자식들은 나같이 어려운 생활하지 않고 넓은 세상 두루 보며 활발하게 잘살라고 허리끈 졸라매며 그 고생하지 않았던가. 70이 넘은 나이에 지금도 먹을 것, 입을 것, 좋은 것들을 보면 잘 살고 있는 장성한 자식들이 생각나서 '가까이 있으면 좋으련만' 하면서 혼자 중얼거린다. 올해도  배추 100포기를 김치로 담가 택배로 보냈다.
늘 잊을 수가 없다. 밤늦게까지 아무 소식이 없으면 잠자리가 편하다. 부모가 되어봐야 부모마음을 안다고 했던가? 나 역시 자식들을 한없이 짝 사랑하고 있으니 말이다. 짝사랑도 여호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것이니 감사할 따름이다.

비록 자식뿐만 아니라 모든 이들에게도 마찬가지다. 내가 베푼 만큼 받아야지 생각하면 그 순간부터 마음은 늘 저울질하느라 괴롭다. 짝사랑하는 마음으로 뿌린 정은 되돌아오지 않는 것에 구애되지 않아 기쁘고, 받는 쪽은 부담이 없어 좋다. 남을 사랑함에는 많은 희생이 따라야하니, 신이 아닌 이상 말같이 그리 쉬운 일이던가. 그래서 나는 누구를 사랑한다는 말에 좀 인색한 편이다. 말만하고 보면 어쩐지 내 양심이 번민할 것 같아서이다.

사랑도 물질도 받아서 싫다는 사람 어디 있던가? 우리 모두가 받기보다 주는 사람이 되면 오죽이나 행복할까. 어떤 이들은 짝사랑을 어리석고 미련하고 슬픈 짓이라고 하지만, 나는 짝사랑이야말로 가장 고상하고 품위 있고 존귀한 행위로 여기고싶다.
                                              2006년 12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