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마드시대를 선도한 우리 가족

2006.12.29 10:40

김학 조회 수:397 추천:33

노마드시대를 선도한 우리 가족
-2006년 우리 집 10대뉴스-
                                                      金 鶴


  2006년 병술년이 저물고 있다. 허위허위 달려온 365일이었다. 돌이켜 보면 즐겁고 기쁜 일이 있었는가 하면 괴롭고 힘든 일도 있었다. 인생이란 게 원래 그런 것이 아니던가.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예년처럼 2006년도 우리 집 10대뉴스를 뽑아 보았다.

첫째, 한해 두 번의 이사
올해는 이사복(移徙福)이 터졌는지 반 년 만에 두 번이나 이사를 했다. 식구가 줄었으니 작은 집으로 옮겨가는 게 좋겠다 싶어서 이사를 하기로 결정했었다. 11월이면 안골에 새로 지은 한신 休 플러스 아파트 32.8평으로 이사할 계획이어서 46평형 호성동 LG동아 아파트를 복덕방에 내놓았다. 로얄층이어서 그런지 1주일 만에 원매자가 달려들었다. 11월까지 그 집에서 전세로 살면 이사를 한 번만 해도 좋으련만 매입자가 바로 이사를 들어와야 한다는 것이었다. 하는 수없이 방 두개와 거실이 있는 아중리로 옮겼다. 이삿짐을 많이 줄였지만 쓰리 룸은 우리가 살기에 너무 비좁았다. 삼복더위를 그곳에서 어렵게 보내고 11월 26일 드디어 두 번째로 전주시 덕진구 인후동 1가 575 한신 休 플러스 아파트 102동 102호로 이사를 했다. 양도소득세, 취득세, 등록세, 이사비 등 경비도 많이 들고 번거로웠지만 새집으로 이사를 하니 아늑하고 포근하여 좋다.
1,336세대나 되는 대형 아파트단지인데 우리 집은 맨 앞 건물이어서 햇살이 잘 들어와 좋다. 1층인데도 앞길 4차선에서 오가는 차량들의 소음이 전혀 들리지 않는다. 창의 커튼을 열면 마치 무성영화를 감상하는 것 같은 느낌이다. 동사무소와 은행, 우체국이 가깝고, 양방‧한방‧치과병원‧약국들이 이웃이니 편리하기 그지없다. 마치 변두리에 살던 내가 종로로 이사를 한 기분이다.
1958년 봄에 고향인 박사고을 임실군 삼계(三溪)를 떠나 전주로 옮긴 뒤 11번째 이사를 했다. 확실히 현대를 유목시대[노마드 시대: Nomade: 遊牧時代]라고 한 아탈리의 주장은 백번 옳은 말이려니 싶다.

둘째, 둘째아들 창수 미국 텍사스 주립대 박사과정 유학

삼성전자 선임연구원으로 근무하던 둘째아들 창수가 회사에 사표를 내고 며느리와 함께 유학길에 올랐다. 미국 유타대학에서 석사과정을 마친 창수가 5월 11일 인천국제공항을 떠나 미국으로 건너가서 이번에는 텍사스주립대학교 대학원 박사과정에서 전자공학을 전공하고 있다. 우리나라 최고의 직장이라는 삼성전자에서 그냥 근무했으면 좋으련만 본인이 자신의 큰 뜻을 펼치고자 결심한 일이니 말릴 수도 없었다. 매달 학교에서 1,800달러씩 장학금을 받는다니 기본 생활비는 되는 모양이다. 박사고을 임실군 삼계(三溪) 출신인 나로서는 둘째 아들이 박사학위를 받으면 고향에 대한 우리 집안의 체면을 세우게 되어 즐겁다.

셋째, 큰아들 정수와 큰며느리 천지숙 이사

  서울 구로구 구로 3동 미래타워 아파트에 살던 큰아들 정수와 큰며느리 천지숙이 2월 7일 서울 영등포구 신길 7동 삼환 아파트로 이사를 했다. 전철역에서 가깝고 비교적 아파트 단지가 커서 손주 동현이와 저희 세 식구 살기에는 안성맞춤이다. 서울의 아파트 값이 천정부지로 치솟는다는데 그 전에 좋은 아파트로 옮겨서 다행이구나 싶다. 비록 25평짜리 작은 아파트지만 LG텔레콤 대리인 정수로서는 그 나이에 서울에서 제 이름의 아파트를 갖는 것만으로도 우선은 만족해도 좋을 것이다.

넷째, 내 낡은 컴퓨터 최신형으로 교체

컴퓨터를 많이 사용하다보니 컴퓨터에 무리가 갔던 모양이다. 지난 가을 어느 날, 갑자기 사용하던 중 컴퓨터가 고장 나고 말았다. 몸체가 숨을 거둔 것이다. 바다이야기 사건이 터지자 컴퓨터 게임방을 하던 사람들이 문을 닫는 바람에 최신형이나 다름없는 중고품들이 싼 값에 많이 나왔다고 했다. 단골 컴퓨터가게에 연락하여 17만 원에 몸체를 바꿨다. 말 타면 경마 잡히고 싶다던가. 이왕 바꾼 김에 모니터도 30만 원에 최신형 삼성 LCD TV모니터로 바꾸었다. 프린터는 지난해 인터넷에서 25만 원에 삼성제품을 구입했으니 마침내 최신형 삼성 컴퓨터가 되었다. 얇은 모니터여서 날렵하고 텔레비전으로까지 활용할 수 있으니 참 좋다.
나는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과정 수강생들의 작품을 메일로 받아 첨삭지도를 해야 하고, 7백여 명의 국내외 친지나 문인들의 E-mail주소를 확보하고 여러 가지 소식과 영상메일을 주고받아야 한다. 그러니 내 컴퓨터는 다른 이들의 컴퓨터에 비해 작업량이 많은 편이다. 드디어 낡은 컴퓨터를 최신형으로 바꾸고 2007년 새해를 맞게 되어 정말로 기쁘다.

다섯째, 둘째 며느리 최수영 보석디자인회사 포비온에 취직

둘째아들 창수랑 미국 텍사스주 달라스에서 사는 둘째며느리 최수영이 미국 보석디자인회사인 포비온에 취직했다는 반가운 소식이다. 보석디자이너인 둘째며느리가 남편의 뒷바라지를 하려고 6월 1일 미국으로 건너갔는데 그곳에서 취직까지 했으니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무남독녀인 둘째며느리가 미국에서 고생을 하는 것 같아 미안할 뿐이다. 외동딸을 훌쩍 미국으로 떠나보낸 둘째며느리의 친정 부모님들은 얼마나 딸이 보고 싶을까?

여섯 번째, 나의 수필집 ‘실수를 딛고 살아온 세월’ 출간

회갑기념 수필집 ‘아름다운 도전’을 출간한지 3년 만에 아홉 번째 수필집 ‘실수를 딛고 살아온 세월’을 대한문학사에서 펴냈다.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에서 수필창작을 강의하면서 수강생들의 수필작품을 첨삭지도하다 보니 나 역시 그들에게 시범적으로 열심히 작품을 빚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게 노력하다 보니 또 한 권의 수필집을 묶어내게 된 것이다. 본보기가 된다는 것은 어렵기는 하지만 또한 보람이 있는 일이다. 옛날 부모들이 세 살 터울로 자녀를 낳듯이 문인들도 3년 터울로 문집을 내는 게 열정적인 창작활동이려니 생각한다.

일곱 번째, 지역신문사신춘문예 수필부문 당선자 잇따라 배출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과정 수강생 중에서 2006년도에는 전북일보 신춘문예 수필부문에 김재희 님이, 경남일보 신춘문예 수필부문에 이주리 님이 당선되어 기쁨과 자긍심을 한껏 높여주었는데 올 연말에 또다시 충북 청주의 동양일보 제13회 신인문학상 수필부문에서 이은재 님이 ‘자운영이 만발할 때’란 작품으로 당선의 영광을 차지하여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과정 수강생들의 실력을 크게 떨치게 되었다. 이보다 더 기쁜 일이 어디 있겠는가.

여덟 번째, 사위 안 준 대리로 승진

신세계 E마트 본사에 근무하는 하나밖에 없는 사위 안 준이 지난 1월 대리로 승진하여 고명딸 선경이네 집안에 웃음꽃이 피었다. 직장인의 꿈이 승진이고 보면 용케도 첫 계단을 잘 올랐다는 생각이 든다. 성실하게 창의성을 발휘하여 열심히 근무하다보면 늘 좋은 결과가 있기 마련이다. 결혼한 첫해에 아들을 얻고 잇따라 승진까지 했으니, 축하의 박수를 받는 게 당연한 일이다. 사위의 심덕이 곱더니 좋은 일이 줄을 잇는 것 같아 흐뭇하다.

아홉 번째, 다시 교단에 선 아내 유영금 여사

전주교육대학을 졸업하고 초등학교 교사로 근무하던 아내가 결혼 초 건강 때문에 교직생활 14년 만에 사표를 내고 집으로 돌아왔었다. 전업주부로서 22년이란 세월을 보낸 아내가 지난해 기간제교사로서 다시 아이들을 가르치더니 올해도 역시 또 교단에 섰다. 나이가 들어서 손자손녀 같은 어린이들과 함께 생활하는 일이 즐거운 모양이다. 기회가 주어지면 앞으로도 더 가르치는 일을 하고 싶다고 한다. 아내가 낮에 집을 비우니 불편한 점이 없지 않지만 아내가 좋아한 일이니 말릴 수도 없다.

열 번째, 평화대사 임명장을 받다

4박5일 동안 일본 후쿠오카에서 열린 국제 세미나에 참가하여 연수를 받은 나는 초종교초국가연합으로부터 평화대사 임명장을 받았다. 우리 겨레의 꿈인 조국의 평화통일을 앞당기는데 조그만 힘일망정 보태야겠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2006년 우리 가족은 노마드시대[遊牧時代; Nomade]의 선두주자답게 이사를 많이 한 셈이다. 서울 잠실에 사는 딸네만 옮기지 않았을 뿐 우리 내외는 올해에 전주 호성동에서 아중리로, 아중리에서 인후동으로 두 번이나 이사를 했고, 큰아들 가족도 서울 구로구에서  영등포구로 이사를 했으며, 작은아들 내외는 서울에서 미국 텍사스 주 달라스로 이사를 했으니 그렇게 이야기해도 허튼 소리는 아닐 듯하다.
2007년 정해년(丁亥年)은 6백 년 만에 찾아오는 황금돼지해라면서 가임부부들은 저마다 출산을 기다린다고 한다. 그 돼지해에 태어난 아이들은 평생 먹을 것 걱정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다니 그럴 만도 하다.
새해에는 우리 아이들 2남 1녀도 모두 아들이던 딸이던 하나씩 낳아주면 좋겠다. 큰아들과 딸은 이미 아들이 하나씩 있으니 둘째아이를, 지난해 9월 9일에 결혼한 둘째아들은 첫아이를 낳았으면 한다. 하지만 강요할 수는 없는 일이다. 부모로서 나의 뜻을 전했으니 그저 기다리며 눈치나 볼 따름이다.
황금돼지해라는 2007년 정해년에는 어떤 일들이 우리 집 10대뉴스로 뽑힐지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