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제자, 영화감독 장준환

2006.12.25 09:55

서순원 조회 수:175 추천:33

사랑하는 제자, 영화감독 장준환
                                                    행촌수필문학회 서순원


  2006년 12월 24일 오전 12시에 영화 ‘지구를 지켜라‘의 장준환 감독과 연기파 여배우 문소리가 가까운 친인척 80명만을 초청한 가운데 부산국제영화제 조직위원장인 김동호 씨의 주례와 아나운서 이금희 씨의 사회로 경기도 남양주 서호갤러리에서 결혼식을 올렸다고 한다. 신부 문소리의 소속사측은
“문소리와 장준환 커플이 번잡하고 떠들썩한 행사보다 서로의 사랑과 믿음을 확인할 수 있는 소박한 결혼식을 올리기로 뜻을 모아 80여 명의 친인척만 초청한 가운데 비공개로 진행했다.”
고 밝혔다. 요즘처럼 스타들의 결혼식이 상업성에 치우쳐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경우가 많은 시기에 문소리 장준환 커플이 보여준 검소하고 소박한 결혼식은 ’스타 결혼식‘의 새로운 전형을 보여 주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나는 이 발표를 보고 ‘장준환이라면 능히 그렇게 하고도 남을 사람이지.’하며 곧바로 머리를 끄덕였다. 내가 아는 장준환은 다른 사람들에게 폐를 끼치는 것을 무척이나 싫어하는 깔끔한 성격이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그는 자신보다는 남의 마음을 더 배려하는 속 넓은 사람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많은 사람들을 번거롭게 만드는 일이 부담스러웠을 것이고, 그래서 자신의 금전적인 이익을 접어두고 비공개로 단출하게 결혼식을 올리기로 마음먹은 듯하다.

  다른 사람들에게 폐를 끼치지 않으려는 이러한 결정은, 말로는 누구든지 쉽게 할 수 있는 일이지만 실제 행동으로 옮기기는 어려운 일이다. 나는 남들이 하기 어려운 결정을 하고 그 일을 실행에 옮긴 장준환 문소리 부부에게 힘찬 박수를 보내 앞날을 축하하면서, 3년 전 대종상에서 신인 감독상을 수상하는 장준환 감독의 모습을 보고, 나의 기쁜 마음을 써놓았던 글을 여기에 덧붙이고자 한다.  

대종상 시상식이 방송되었다. 여느 때나 마찬가지로 관심 없이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다. 신인 감독상 수상 차례가 되고 네 명의 후보자를 소개하는 가운데 장준환이라는 이름이 불려졌다. 나의 머릿속에는 문득 내가 전주 전라중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있을 당시 나의 반 학생이었던 장준환의 얼굴이 떠올랐다. 특별히 다른 이유가 있어서보다 내가 알고 있는 장준환은 그 학생뿐이기도 하였고, 그는 미술에 소질이 많았을 뿐만 아니라 음악을 좋아했던 그가, 혹시 영화계로 진출하지 않았는가 하는 생각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신인 감독상 수상자는 '지구를 지켜라!'의 장준환 감독.“
하고 발표했다. 나는 긴장되고 가슴이 뛰었다. 상을 받기 위하여 무대에 나온 그는 정말로 나의 제자 장준환 바로 그 학생이었다.

언제나 웃는 인상에 두툼한 몸매, 머뭇거리는 듯한 말투까지 중학교 3학년 때 그 모습 그대로였다. 다만 약간 뚱뚱한 편인 몸매가 전보다 단단해졌고, 말소리에 자신감이 더 붙어있었다. 나는 그의 얼굴 보느라 그가 한 말들은 잘 기억할 수가 없다. '아, 장준환이 영화감독이 되었구나. 그것도 신인 감독상을 받을 만큼 실력 있는 감독이…….'  나는 감개무량했다. 연락처를 알면 축하전화라도 하고 싶었다.

그 뒤 어떤 텔레비전 방송프로그램에서 그는 금년도 대종상 신인 감독상 수상자로서 인터뷰를 하고 있었다. 대학에서는 영문학을 전공하였는데 영화감독이 된 이유를 묻는 사회자의 질문에, 대학 진학 당시 그는 미술을 전공하려고 하였으나, 어머니가 눈물로 반대를 하였기 때문에, 할 수 없이 영문과에 입학했노라고 했다. 나는 그의 말에 곧바로 수긍이 갔다. 학생 시절에 그렇게도 미술을 좋아했으니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하고 싶었다는 말도 이해가 되었고, 마음이 착하고도 여린 그가 어머니의 간곡한 애원을 거절할 수 없었다는 말도 또한 이해가 되었다. 그는 그만큼 순하고 착한 학생이었다. 그러나 중학교 시절에도 그토록 미술과 음악을 좋아하였으니 훗날 그가 예술 쪽의 직업을 선택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귀결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였다. 그 얼마 뒤에는 모스크바영화제에서 그가 신인 감독상을 수상하였다는 말을 들었다. 정말 대단하다. 이젠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으니 말이다. 이렇게 감개무량할 수가 없다!

그 뒤 2003년 11월 30일에는 제2회 대한민국영화대상 시상식이 있었다. 지난해에 MBC 영화상에서 이름을 바꾼 대한민국영화대상 시상식은 올해가 두 번째이다. 시상식의 권위에 맞게 기라성 같은 영화인들로 장내는 입추의 여지없이 대만원이었고, 영화에 종사하는 사람 이외에도 많은 사람들이 축하를 하며 시상식에 흥을 돋우었다. 정상급 가수들과 개그맨들도 모두 참석하고 있었다.

영화배우 안성기와 탤런트 송윤아의 사회로 진행된 시상식이 신인 감독상 시상 차례가 되었다. 나의 가슴은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이윽고 후보자 호명에 이어 신인 감독상 수상자가 발표되었다. ‘지구를 지켜라!’의 장준환 감독이 불려졌다. 나는 벅차오르는 가슴을 억누를 수가 없었다. 그는 지난번 대종상과 모스크바영화제의 신인감독상에 이어 세 번째의 신인감독상 수상이었다.

그는 직접 시나리오를 각색하였고 4명의 최우수 각색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정말 대단한 실력이다. 그가 감독한 '지구를 지켜라!'는 최우수 남우조연상(백윤식)을 수상하기도 하였으며, 로드 무비, 바람난 가족, 봄여름가을겨울 그리고 봄에, 살인의 추억 등과 함께 최우수 작품상 후보에 올랐으며, 최우수 감독상 후보(장준환), 각본 각색상 후보(장준환), 남우주연상 후보(신하균), 촬영상 후보, 편집상 후보 등 12개 부문의 후보가 되어 그의 예술성을 유감없이 보여 주었다. 금년 대한민국영화대상에서는 최우수 작품상, 감독상, 남우주연상 등 6개 부문을 석권한 <살인의 추억>이 최우수 영화라고 말할 수 있겠고, 그 뒤를 이어 장준환 감독의 <지구를 지켜라!>와 <바람난 가족>이 나란히 12개 부문에 후보로 올라 함께 2등을 차지한 셈이다.

신인 감독상을 수상한 자리에서 그가 제일 먼저 한 말은 이 영광을 어머니에게 드리고 싶다고 했다. 이 세상의 모든 어머니들이 자식을 끔찍이 사랑하기는 마찬가지이지만 장준환의 어머니는 특별난 어머니였다. 그분의 일상생활은 하나하나가 모두 장준환의 뒷바라지였다. 음식을 만들 때도 집안 청소를 할 때에도 가구를 정리할 때도 모든 일의 기준이 되는 것은 장준환인 듯하였고 남편은 오히려 뒷전인 것 같았다. 삶의 희로애락이 모두 장준환 그에게서 나오는 듯했다.

어머니의 사랑을 듬뿍 받은 때문인지 장준환은 성품이 고왔다. 나는 그가 다른 학생들과 다투고 싸우는 걸 보지 못했다. 그는 언제나 빙긋이 웃는 모습이었다. 미술을 좋아하여 그의 노트에는 간간이 삽화처럼 그림이 그려져 있었고, 방과 후 자기 방에서 공부할 때에는 음악을 들으며 복습을 한 걸로 안다. 그는 미술, 음악을 좋아했다. 반면 그는 체육과목을 부담스러워 했다. 약간 뚱뚱한 몸매인 그는 고등학교 입학을 위한 체력장 연습 시간에 무척이나 애를 먹었고, 마지막 오래달리기 코스를 제일 힘들어했다. 조용히 생각해 보니 20여 년 전 일들이 엊그제 일인 양 머릿속을 주마등처럼 스쳐간다. 수많은 제자들 가운데 그가 나의 뇌리에 오래 오래 남아있는 이유는 그의 착한 성품 때문이리라 생각된다. 정말 대견하고 자랑스럽기 그지없다.

내가 장준환 감독을 더욱 높게 평가하는 것은 그가 직접 시나리오를 각색하고 감독한 영화 ‘지구를 지켜라!’가 두 부문 모두 최우수 각색상 후보와 최우수 감독상 후보로 선정되었기 때문이다. 그는 글도 잘 쓰고 감독으로도 역량이 풍부한 사람임이 입증되었다. 영화감독은 정말 대단한 사람들이다. 시나리오 선정에서부터 연기지도, 촬영, 효과, 조명 등 각 분야를 모두 이해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어려운 직업이다. 아마도 알아야 할 부문이 소설가보다도 훨씬 더 많아야 하리라. 뿐만 아니라 사람 다루는 솜씨도 있어야 하고, 관객들의 마음도 읽을 줄 알아야 하리라. 영화감독들은 정말 대단한 사람들이다.

  나의 30년 교편생활, 수많은 제자들, 그중 어느 한 사람 소중하고 반갑지 않은 사람이 있겠는가? 그렇지만 한때 영화광이었던 나에게, 장준환의 대한민국 영화대상 신인감독상 수상은, 그의 착한 마음과 함께 나에게 커다란 환희를 안겨 주었다. 그의 영화 ‘지구를 지켜라!’는 훌륭한 작품임에도 흥행에는 미흡하였다. 흥행이 부진하여 아쉽지만, 첫술에 배부르면 자만하고 나태해지기 쉬운 법, 더 열심히 노력하여 훗날 대성하라는 팬들의 격려로 알고 더욱 노력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정말 훌륭하다, 장준환. 비록 연락은 하지 못해도 먼발치에서 너의 건강과 발전을 빌련다. 장하다, 장준환! 장준환 파이팅!    

  오늘은 젊은 날의 추억을 되새기며 한 편의 우리 영화를 감상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