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날 효도 요즘 효도
2007.01.17 08:06
옛날 효도 요즘 효도
행촌수필문학회 김영옥
또 한 해를 보냈더니 내 나이도 어느새 일흔 둘이다. 이제 분명 노인 축에 든 것 같아 고령화사회라는 보도들이 나올 때마다 귀를 세우지 않을 수 없다.
누구든지 오래 살고 싶은 마음이 없다고 하면 거짓이다. 오래 살고자 좋다는 것은 다 해보려고 한다. 나이가 들면서 생에 대한 애착은 더해간다. 나도 예외는 아니다. 이제는 부모에 대한 책임도 자식들에 대한 책임도 떨어져 나가고, 사람의 본분이 무엇인지도 알게 되니 이 세상에 태어난 것에 감사하며 더 오래오래 일하며 잘 살아보고 싶은 마음 간절하다. 마음은 간절하지만 몸이 따라주지 않아 가끔은 불안하기도 하고 초조하기도 하다.
손자들이 새해인사를 하면서,
“할아버지, 할머니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오래오래 사세요.”
한다. 정말 오래 살아야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좋아해야 할지 슬퍼해야 할지 기분이 착잡하였다. 우리가 자라던 시절에는 좋은 음식은 으레 할아버지 상에 올리고 명절이면 마을에서 가장 연세가 많은 분에게 상을 차려들고 가서 세배를 하곤 했었다. 성경에서도 ‘백발은 면류관'이라 했고, 농가월령가에서도 ‘좋은 목화는 부모 옷에 두고 서리 마지 마구 따서 우리 옷에 두어 입자'고 노래했다. 이렇듯 노인대접을 극진히 하였건만 반세기가 지난 지금은 너무도 달라졌다. 노령인구는 늘어가고, 저 출산으로 아기들이 귀하다보니 생긴 현상이 아닐까. 무엇이든 흔하면 푸대접 받고 귀하면 왕 대접받는 이치로 생각함이 좋으리라.
나의 소녀시절 엄마가 돌아가셔도 할아버지 할머니의 따뜻한 사랑 속에서 서러움을 못 느끼고 자랐었다. 경륜에서 얻은 많은 지혜의 이야기들, 예절들, 각종 장 담그기, 설 명절 때 많은 다과 만들기 등 할머니는 언제 봐도 정을 듬뿍 주셨기에 지금도 할머니만 생각하면 고맙고 보고싶고 그리워진다. 가끔 TV에서 3대, 4대가 모여 사는 가족을 보면 옛날 생각이 나면서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
4명의 자녀들이 일찍 내 품안을 떠나고 남편과 둘이만 산지가 23년째다. 크게 웃을 일도 없고 사는 재미도 없다. 가족과 정이 그립다. 예쁜 손자들에게 정을 주고 어울려 놀고도 싶다. 하지만, 일년 내내 잘하면 몇 시간 만난다. 인간은 음식만 먹고 사는 것이 아니라 자유와 사랑과 이상을 가지고 보람을 느낄 때 행복하다고 했다. 자주 부대끼며 살아야 미운 정, 고운 정도 생기는 것인데…….
요즘 목욕탕에 가보면 90세 가까이 되는 할머니들이 혼자 오는 경우를 종종 본다. 그날도 옆자리에 85세 된 할머니가 혼자 오셨다. 등을 밀어드리면서 같이 올 자녀가 없느냐고 말을 걸었더니 허탈한 표정으로 아들, 딸 6남매나 된다고 했다. 남이 부러울 만큼 사신 분이었지만 자식들한테서 받는 푸대접에 마음이 편치 않아서 얼마 전 87세 할아버지와 작은 아파트로 나와서 산다고 했다. 선뜻 모신다는 자식들이 없다면서 서글퍼하는 모습을 보며, 오래 사는 것이 영예로운지 치욕스러운지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또 요즘은, 자식이 이혼하면서 어린 손자와 장성한 아들까지 맡아 고생하는 노인들이 늘어가고 있다. 옛날 효자는 부모를 극진히 모시는 것이었지만, 요즘 효자는 자식들이 손자들을 맡기지 않고 아무소리 없이 잘 살아주는 것만으로도 가장 큰 효도라고 할 정도다.
의학이 발달하고 섭생이 좋아지면서 노령인구는 늘어만 간다. 그러나 너나없이 늙고 병들면 어느 자식에게도 갈 곳이 없는 처지에 이른 것이 오늘날 노인들의 공통된 입장이다. 그렇다고 양로원만 자꾸 늘리면 해결될까? 가족이란 개념이 점점 사라지다보면 만물의 영장인 사람이라 할 수 있을까. 어쩌다 세상이 이 지경까지 왔는지 한심하고 서글퍼진다.
왜, 젊은이들을 대도시로만 불러들이는지 모르겠다. 지방으로도 분산시키면, 시골의 한 마을 전체보다 더 비싼 값을 치르며 새장 같은 집 한 칸을 마련하느라 부모도 자식도 제대로 돌보지 못하는 현상은 생기지 않을 텐데 말이다. 또 꼭 필요치도 않는 문명의 이기들을 마련하고, 과도한 사교육비를 준비하느라 주부들을 더욱 정신없이 직장으로 내모는 것 같다. 가정과 직장 두 주인을 어찌 같이 잘 섬길 수 있겠는가. 젊은 주부의 어깨에는 남편 치다꺼리, 자녀들 양육, 양쪽 집 부모 돌보기, 집안일은 또 얼마나 많은가. 이 많은 의무와 책임을 누가 맡는단 말인가. 그래서 저 출산, 결혼 기피현상도 덩달아 만연하는 것 같다. 오늘날 젊은 여성들이 밖으로 나돌면서 여러 가지 사회문제가 나타난 것이 아닐까?
요즈음 문제가 되고 있는 저 출산문제, 가정파탄, 아동 학대, 노부모 거부 현상 등 본연의 애정이 메말라 가는 이런 현상을 어떻게 하면 조금이라도 해결할 수 있을지, 노소가 머리를 맞대고 생각해봄직 하다. 자녀를 독립하도록 길러놓고 여러 가지 면에서 경륜이 많은 여성들을 직장으로 채용해서 적재적소에서 일을 하게하고, 젊은 남성들에게는 더 많은 일자리와 보수를 많이 주어 젊은 주부들이 집안 살림만을 돌보게 하면 좋을 듯싶다. 아이들도 적은데 앞으로 많지도 않은 가족끼리 노소가 함께 살 수 있도록 집을 설계해보면 어떨까. 두 쪽이 모두가 서로 필요로 하고 행복감을 가질 때 살맛나는 세상이 되지 않을까 싶다. 이렇듯 새로운 이념과 정책을 강구해보는 것이 나만의 부질없는 생각일까?
(2007년 1월)
행촌수필문학회 김영옥
또 한 해를 보냈더니 내 나이도 어느새 일흔 둘이다. 이제 분명 노인 축에 든 것 같아 고령화사회라는 보도들이 나올 때마다 귀를 세우지 않을 수 없다.
누구든지 오래 살고 싶은 마음이 없다고 하면 거짓이다. 오래 살고자 좋다는 것은 다 해보려고 한다. 나이가 들면서 생에 대한 애착은 더해간다. 나도 예외는 아니다. 이제는 부모에 대한 책임도 자식들에 대한 책임도 떨어져 나가고, 사람의 본분이 무엇인지도 알게 되니 이 세상에 태어난 것에 감사하며 더 오래오래 일하며 잘 살아보고 싶은 마음 간절하다. 마음은 간절하지만 몸이 따라주지 않아 가끔은 불안하기도 하고 초조하기도 하다.
손자들이 새해인사를 하면서,
“할아버지, 할머니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오래오래 사세요.”
한다. 정말 오래 살아야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좋아해야 할지 슬퍼해야 할지 기분이 착잡하였다. 우리가 자라던 시절에는 좋은 음식은 으레 할아버지 상에 올리고 명절이면 마을에서 가장 연세가 많은 분에게 상을 차려들고 가서 세배를 하곤 했었다. 성경에서도 ‘백발은 면류관'이라 했고, 농가월령가에서도 ‘좋은 목화는 부모 옷에 두고 서리 마지 마구 따서 우리 옷에 두어 입자'고 노래했다. 이렇듯 노인대접을 극진히 하였건만 반세기가 지난 지금은 너무도 달라졌다. 노령인구는 늘어가고, 저 출산으로 아기들이 귀하다보니 생긴 현상이 아닐까. 무엇이든 흔하면 푸대접 받고 귀하면 왕 대접받는 이치로 생각함이 좋으리라.
나의 소녀시절 엄마가 돌아가셔도 할아버지 할머니의 따뜻한 사랑 속에서 서러움을 못 느끼고 자랐었다. 경륜에서 얻은 많은 지혜의 이야기들, 예절들, 각종 장 담그기, 설 명절 때 많은 다과 만들기 등 할머니는 언제 봐도 정을 듬뿍 주셨기에 지금도 할머니만 생각하면 고맙고 보고싶고 그리워진다. 가끔 TV에서 3대, 4대가 모여 사는 가족을 보면 옛날 생각이 나면서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
4명의 자녀들이 일찍 내 품안을 떠나고 남편과 둘이만 산지가 23년째다. 크게 웃을 일도 없고 사는 재미도 없다. 가족과 정이 그립다. 예쁜 손자들에게 정을 주고 어울려 놀고도 싶다. 하지만, 일년 내내 잘하면 몇 시간 만난다. 인간은 음식만 먹고 사는 것이 아니라 자유와 사랑과 이상을 가지고 보람을 느낄 때 행복하다고 했다. 자주 부대끼며 살아야 미운 정, 고운 정도 생기는 것인데…….
요즘 목욕탕에 가보면 90세 가까이 되는 할머니들이 혼자 오는 경우를 종종 본다. 그날도 옆자리에 85세 된 할머니가 혼자 오셨다. 등을 밀어드리면서 같이 올 자녀가 없느냐고 말을 걸었더니 허탈한 표정으로 아들, 딸 6남매나 된다고 했다. 남이 부러울 만큼 사신 분이었지만 자식들한테서 받는 푸대접에 마음이 편치 않아서 얼마 전 87세 할아버지와 작은 아파트로 나와서 산다고 했다. 선뜻 모신다는 자식들이 없다면서 서글퍼하는 모습을 보며, 오래 사는 것이 영예로운지 치욕스러운지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또 요즘은, 자식이 이혼하면서 어린 손자와 장성한 아들까지 맡아 고생하는 노인들이 늘어가고 있다. 옛날 효자는 부모를 극진히 모시는 것이었지만, 요즘 효자는 자식들이 손자들을 맡기지 않고 아무소리 없이 잘 살아주는 것만으로도 가장 큰 효도라고 할 정도다.
의학이 발달하고 섭생이 좋아지면서 노령인구는 늘어만 간다. 그러나 너나없이 늙고 병들면 어느 자식에게도 갈 곳이 없는 처지에 이른 것이 오늘날 노인들의 공통된 입장이다. 그렇다고 양로원만 자꾸 늘리면 해결될까? 가족이란 개념이 점점 사라지다보면 만물의 영장인 사람이라 할 수 있을까. 어쩌다 세상이 이 지경까지 왔는지 한심하고 서글퍼진다.
왜, 젊은이들을 대도시로만 불러들이는지 모르겠다. 지방으로도 분산시키면, 시골의 한 마을 전체보다 더 비싼 값을 치르며 새장 같은 집 한 칸을 마련하느라 부모도 자식도 제대로 돌보지 못하는 현상은 생기지 않을 텐데 말이다. 또 꼭 필요치도 않는 문명의 이기들을 마련하고, 과도한 사교육비를 준비하느라 주부들을 더욱 정신없이 직장으로 내모는 것 같다. 가정과 직장 두 주인을 어찌 같이 잘 섬길 수 있겠는가. 젊은 주부의 어깨에는 남편 치다꺼리, 자녀들 양육, 양쪽 집 부모 돌보기, 집안일은 또 얼마나 많은가. 이 많은 의무와 책임을 누가 맡는단 말인가. 그래서 저 출산, 결혼 기피현상도 덩달아 만연하는 것 같다. 오늘날 젊은 여성들이 밖으로 나돌면서 여러 가지 사회문제가 나타난 것이 아닐까?
요즈음 문제가 되고 있는 저 출산문제, 가정파탄, 아동 학대, 노부모 거부 현상 등 본연의 애정이 메말라 가는 이런 현상을 어떻게 하면 조금이라도 해결할 수 있을지, 노소가 머리를 맞대고 생각해봄직 하다. 자녀를 독립하도록 길러놓고 여러 가지 면에서 경륜이 많은 여성들을 직장으로 채용해서 적재적소에서 일을 하게하고, 젊은 남성들에게는 더 많은 일자리와 보수를 많이 주어 젊은 주부들이 집안 살림만을 돌보게 하면 좋을 듯싶다. 아이들도 적은데 앞으로 많지도 않은 가족끼리 노소가 함께 살 수 있도록 집을 설계해보면 어떨까. 두 쪽이 모두가 서로 필요로 하고 행복감을 가질 때 살맛나는 세상이 되지 않을까 싶다. 이렇듯 새로운 이념과 정책을 강구해보는 것이 나만의 부질없는 생각일까?
(2007년 1월)
댓글 0
| 번호 | 제목 | 글쓴이 | 날짜 | 조회 수 |
|---|---|---|---|---|
| 394 | 금강산의 겨울 | 이은재 | 2007.03.07 | 57 |
| 393 | 징글맞다 | 정목일 | 2007.03.02 | 54 |
| 392 | [3월의 글]문화적 담론과 국력 | 성기조 | 2007.02.26 | 45 |
| 391 | 날개 없는 천사 | 이의 | 2007.02.26 | 58 |
| 390 | 우리 집의 설날 | 김종승 | 2007.02.23 | 45 |
| 389 | 육아노인 | 임두환 | 2007.02.18 | 50 |
| 388 | [브레이크 뉴스 인터뷰]문학의 밭에 수필의 씨앗을 뿌리는 수필농사꾼, 김학 | 소정현 | 2007.02.06 | 103 |
| 387 | 세종대왕이 노하셨다 | 정현창 | 2007.02.05 | 53 |
| 386 | 사노라면 때로는 | 박세규 | 2007.02.05 | 51 |
| 385 | 샌디에고에서 | 이의 | 2007.02.01 | 56 |
| 384 | 어떤 편지 | 배윤숙 | 2007.01.30 | 55 |
| 383 | 즐거운 나의 집 | 이은재 | 2007.01.30 | 70 |
| 382 | 인의 사상과 오뚝이 | 성기조 | 2007.01.29 | 56 |
| 381 | 하나 | 조내화 | 2007.01.24 | 60 |
| 380 | 가족 | 이의 | 2007.01.23 | 58 |
| 379 | 두 번째 편지 | 고강영 | 2007.01.21 | 57 |
| » | 예날 효도 요즘 효도 | 김영옥 | 2007.01.17 | 68 |
| 377 | 길 | 이강애 | 2007.01.09 | 88 |
| 376 | 아내의 얼굴 | 김병규 | 2007.01.05 | 97 |
| 375 | 신세훈 씨에게 보내는 공개질의서 | 성기조 | 2007.01.03 | 445 |